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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탕주의의 최종 결과는 파멸이다
07/13/2020 08:0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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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랜동안 알고 지냈던 사람이 있었다. 어찌 어찌 해서 미국으로 이민와서 내 살던 동네에 정착해서 살았다. 허우대도 좋고 인심 또한 좋아서 그와 친근하게 지냈다. 서울의 어느 商高(상고)를 졸업한 것까지는 아는데 대학은 어느 곳을 다녔는지 말한 적은 없다. 


부인이 이화여대 간호학과를 졸업하고 월남전쟁이 한창일 적에 거기 가서 근무하기에 이르자 남편되는 내 친지도 따라 가서 미군 장교구락부의 Bar에서 술따르는 일을 했다. Bartender라는 직업 덕택인지 영어발음도 좋고 회화도 괜찮았다. 그의 부인은 자주 New York Times를 읽은 이야기를 하더만 이 양반은 그런 내색을 내지 않은 것으로 봐서 쓰고 읽는 것은 별로였던 것 같았다. 


헌데, 통이 큰 사람이었다. 무슨 사업을 하면 초장부터 됩따 크게 벌리는 스타일이었다. 그리고는 金딱지 Rolex시계를 차고, Mercedes Benz E420인지, S420인지를 몰고 다녔다. 언젠가 우리 부부를 그 차에 태우고 인근의 일본식당에서 일식의 여러가지를 흐더분하게 대접하더군. 특별히 우리에게 그래 할 이유는 없었다. 뭔가 과시하고픈 맘이 있었던 것이 아닐까? 그리고 가끔 가다 풀장이 구비된 Princeton의 자기집에 교횟 사람들을 다 초청해서 남자는 맥주파티, 여자들은 불고기파티를 벌리곤 했다. 그럴 처지가 아님을 그 부인이 내 처에게 슬쩍 흘린 적이 있었다. 다~ show라는 것을...


한인회장에도 출마한다고 Newbrunswick라는 인근 도시의 큰 호텔 연회장을 빌려서 영어로 회장을 주름잡는 회의장에도 초대 받은 적이 있었다. 나중에 알고 보니 New Jersey 州지사 운동의 한 일환이었더군. 어떤 때는 김대중이가 Princeton 대학에 와서 강연하는 행사에 팸푸렡을 나눠주었고, 후에 하는 말이 김대중이가 대통령에 당선돼서 그를 찾아 갔던 이야기를 전해 주었다. 대통령을 만나려니 그 문밖에 수십명이 차례를 줄줄이 기다리고 있었다고...그와 만나서 무슨 보답을 받았는지는 말하지 않았다.


아무튼 Princeton, NJ 인근에 값 나가는 집을 수리해서 돌려치기를 몇번 하다가 쫄딱 망하고 살던 집까지 은행에 빼았기고, 구석진 곳에 버려진 집을 $70.000불에 사서 번듯하게 수리하는 손재주가 있었다. 내가 그곳을 떠난 후에 들으니 딴 도시로 이사갔다는 소식을 듣는다. 미국인과 결혼한 딸네집 근처의 아파트였던 것 같은데, 한번 전화했더니 달가워하지 않아서 그 후로는 소식없이 지낸다. 


그가 부동산을 사고 팔고 할 적에 내가 여러번 충고했었다. 지금은 경기가 하강하는 국면이니, 부동산 투자를 삼가하는 것이 좋겠다고... 집을 살적 마다 그렇게 귀뜀했으나 경제동향에 관해서는 無識한 사람이라 이야기가 통할 理가 만무했다. 소(牛)도 그루터기가 있어야  등을 긁는다고. 그래서 그런지 하는 일마다 되는 것이 없다가, 급기야는 나를 포함하여 인근 동네사람들을 등쳐먹는 일에 까지 서슴치 않고 나섰다. 배고프면 무슨 짓을 마다 하겠는가?


나한테 공동묘지를 몇자리 사놓으라는 둥, CPA하는 친구에게 빵꾸 안나는 Tries를 수입하자고 회사돈을 가로 채지를 않나, 돈많은 사람들의 집을 수리한답시고 날림공사로 피해다니질 않나... 하여간에 동네사람들의 인심을 잃고 살았다. 이 부부의 흠은 무슨 수를 쓰더라도 남에게 "자기네가 잘 산다, 그리고 가장 예수 잘 믿는다, 이웃을 정말 아낀다"...뭐 그런 인상을 주기에 온갓 정력을 쏟는다는 거...뭣 땜에 그래야 하는지...Who knows? 


내가 어째서 이런 구질구질한 남의 구린 데를 들먹이는고 하니, 이 사람들이 보여준 모습이 바로 한국인들의 전형적인 고질적 행태라는 거다. "이 모습 이대로 날 받아 주소서"의 일생을 살다가 말년에 가설라무네 그 신세가 말이 아니게 고달파진 일화를 상기시키기 때문이다. 어찌 이들 뿐이랴! 내가 미국으로 이민와서 접촉한 수많은 한국인들이 이와 버금가는 인생살이를 하며 남에게 害되는 일을 예사로 하는 족속을 많이 보았고 또 당했기 때문이다. 이 두 부부는 우리 교회에서 장로직을 오래 맡고 있었다. 마치 북조선의 김일성이 기독교 집안의 아들이었고, 김대중, 문재인이 천주교 세례교인이며, 김영삼, 이명박이도 유명 교회의 장로였다. 박원순이는 다행스레(?) 기독교인이 아니었다네. 죽어서 예수님의 낮을 더렵힐 염려가 없었다.


문제는 자기네들이 그리 살고 있다는 사실, 그 자체를 모르고 있다는 데에 있다. 왜들 그럴까? 인생의 어떤 이정표, 다시 말해서 인생철학이 갖추어지지 않은 상태로 사회에 던져 젔기 때문이 아닐까? 그러나 가끔가다 통렬히 悔改(회개)하는 인사들도 많더라 마는... 삶의 기준, 또는 양심의 잣대, 뭐 그런 것이 없다는 것이 불행의 씨앗이 되지 아닐까 한다.  故박원순 서울시장이 살아간 그 裏面(이면) 내 知人의 모습과 겹처진듯, 엇갈리듯, 그 옛날의 일을 회상한다.  종북이 주사파들의 행사에도 이와 매우 흡사한 점이 발견되고 있으며 그들의 결말도 궁극적으로 事必歸正의 길로 가지 않을까 점쳐 진다. C'est La Vie, 그것이 인생이라면,  내게 무시기 할 말이 더 있을꼬나? That's life, isn't it?


禪涅槃

7/13/20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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