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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수 전파하기 전에 사람이 되라
05/31/2020 09: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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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수 믿는 사람들은 기쁜 소식을 땅끝까지 전할 의무가 있다. 오늘이 일요일이기도 하지만, 현재 중불방 19개의 글 중에서 9개가 '믿는 이들이 이 요구사항을 전파하려고 애쓰고 있다. "수고하고 무거운 짐진 자들아! 다 내게로 오라. 나는 마음이 온유하고 겸손하니 나의 멍에를 메고 내게 배우라. 그리하면 너희 마음이 쉼을 얻으리니, 이는 내 멍는 쉽고 내 짐은 가벼움이라 하시니라" (마태 11장 28-30절)


자기네는 이미 이 말을 믿어본 결과 그 짐이 가벼워졌으니, 아직 믿지 않는 者들을 어여삐 여겨서 이곳에 자리를 거의 독차지 할 정도다. 세계의 땅끝까지는 아닐망정, 부족하나마 미교포들이 많이 모인 곳에서 이 "기쁜 소식"을 전하라는 召命(소명)을 다 하고자 한다는 이야기인데......


사람이 산다는 그 자체가 고생이라고 불교에서는 말한다. 왜 그런 가를 추적하다 보면 궁극에 가서는 욕심에서 출발한다고. 그러니 그 욕망 그 자체를 없애면 마음고생이 사라지지 않을까 하는 깨닯음, 소위 涅槃의 경지에 이른다는, 다시 말해서 무거운 짐을 가볍게 하면 우선 삶이 가벼울 것이 아닌가 하는 논리가 예수님의 입을 빌린 설교라 할 수 있다.


우선 이 진실을 믿고 따르는 것이 첫째 관문이고, 그것을 충실히 하고 나면 또 다시 거처야 할 멍에는 "땅끝까지 그 길을 전파해야 한다. 첫째의 관문을 통과하기도 어려운데, 다음의 과제 역시 난관이 아니겠는가? 그렇다면 오늘의 중불방의 증인들은 이미 첫째의 수고를 과연 완수했다고 보십니까?


내 妻는 아침에 걷는 운동을 한다. 어느 날 이 동네의 큰 길 신호등이 떨어지기를 기다리고 있었다. 저 쪽에서 어떤 동양인이 헐레벌떡 뛰어오면서 길을 물었다. "자기는 Palo Alto라는 이웃동네에 사는데, 아침산보를 나왔다가 길을 잃었다며, 집으로 돌아가려고 지나가는 차들에게 자기를 데려다 달라는 신호를 했어도 누구 하나 차를 세워지지 않았다고. 자기가 찾아갈 수 있는 길목으로 까지 안내해 달라고"


마침 아침식사를 하려던 참에 집사람이 나의 도움을 청하는 거라. 내 처 자신도 그 길을 어찌 가는지 몰랐다. 내가 급히 그를 차에 태우고, 그 분의 주소를 찾아갔다. 한 참이나 걸리는 길을 내려왔다는 짐작이 갔다. 그 분이 우리를 집 안으로 불러들이자, 낮선 사람의 집에 무작정 들어갈 이유가 없던지라 경황없는 오늘은 그냥 돌아가야 하겠다고 사양했으나 막무가내로 들어가자는 거다. 


아침을 먹으려던 참이란 것을 상기시켰더니 내가 대접하겠다고 우겨서 마침내 그 집에 들어섰더니, 그의 부인으로 하여금 아침상을 우리에게 내어놓게 주문했다. 영문을 모르는 부인이 어쩔 줄을 몰라하는데, 집안의 사정은 우리 부부가 앉을 자리조차 없었다. 어린 아이에게 죽을 먹이고 있었고, 그 식탁이란 곳에는 온갓 잡동산이로 쌓여있었다. 부인이 어제 먹던 것을 끓여내어 놓을까 하고 주저했더니, 아무 거나 내어놓으라고 재촉하는 거라. 내가 보아하니, 그 주인장의 요구는 우리 모두를 난처하게 만드는 무리가 있었다.


전화번호를 전하고 다음을 약속하고 나왔다. 그 후에  "그 날 고마웠다"는 이메일로 자신의 입장을 설명했다. 자기는 x-ray판독의 의사인데, 당뇨병이 심해서 혈당조절기를 달고 있는데, 그 날따라 작동이 않된 줄 모르고 길을 떠났다. 혈당이 낮아지자 정신이 혼미해졌던 고로 의사로서 시간을 지체해서는 생명이 위험한지 아는 바라, 어느 누구도 차를 세워주지 않더라는 거. 말하자면 나의 재빠름으로 안전하게 집으로 돌아갈 수가 있었다고.


문제는 그 다음이었다. 그렇게 고마운 일을 해주었으니 무슨 선물을 우송하겠단다. 뭔가 했더니, 두권의 책이 도착했다. 한 책의 제목은 "메시아"란 것이고, 또 하나는 "예수, 한국사회에 답하다"라는 것이었다. 그 첫 감사이메일에서 "나보고 교회를 다니라"는 충고였다. "우리는 이미 30년의 교회생활을 해본 입장으로 현재 다니지 않고, 앞으로도 그래 할 생각이 없다"고 못을 박으면서 보내 준 책을 어떻게 되돌려 주어야 하는 가를 물었다. 어떻게 해라는 말은 없었다. 읽지 않은채 아직도 내 책상 위에 있다.


그런데 이 장로는 내가 싫다는 것에는 상관않고 자기 멋대로 밀고 나가는 거라. 아침밥을 망쳐놓고, 먹다 남은 된장찌개로 대신할 것을 우기던 "이웃 사랑을 하는 교인"에게 환멸을 느꼈다. 완전히 자기 본위로 남을 좌지우지하는 가장 이기주의자란 것이 분명했다. 몇번 더 전화를 해대며 친구로 지내기를 원했지만, 天性을 바꾸지 못한 인간과 더 이상 내통하고픈 생각이 털끝만치도 없어서, 대꾸않았어도 몇번 더 집적이다 그만 두더군. 앞에서 말한대로 "내 멍예는 실상 가벼운 것이 아니었다". 왜냐? 옛 자신만을 앞세우는 버릇을 버리지 못하면 무거운 짐이 결코 가벼워지지 않는다.


禪涅槃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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