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칭찬하면 죽는 줄 아는 옹졸한 인간들
05/30/2020 10:3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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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전에는 그랬고, 지금도 그럴 줄로 안다. 왜 한국인들은 그래야 하는가? 오랜 유교전통에서 비롯된 것이 아닐까 한다. 당시엔 씨족 및 부족들이 洞口(동구: 동네 입구) 안에 몰려살면서 서로를 견제하며 질서를 유지해야 했던 관습이 지금도 그대로 이어져 내려오고 있기 때문이 아닐까?


내가 1972년에 영구권을 받아쥐고 이민했던 당시에 딸 둘을 부모님에게 맡겨놓고 Seattle에 내려서 이민수속을 마치고 3개월동안 내 여편이 울고불고 하는지라 남겨둔 두 아이를 데려왔다. 그리고 이들이 고등학교를 졸업하자, 성년이 된 두 딸을 한국으로 보내서 그들이 철없이 미국行 했던 그 조국을 돌아보고, 미국시민이 될 것인가, 아니면 한국인으로 살 것인 가를 스스로 결정토록 했다. 성인이 되면 영주권을 포기하고 시민권자로 바꿔야 했기 때문이다.


고려대에서 주관한 교포자녀들의 고국방문에 참가토록 하였고, 그 체류기간동안에 친척집들을 방문해서 고향사람들이 사는 모습을 알아보게 했었다.  한달 후에 귀국한 그들에게 "한국이 살만 한가"를 물었다. 두 딸이 고개를 절레절레 흔들며 절대로 한국에 살기를 원하지 않는다고 대답했다.  그들의 의사에 상관없이 데려왔으니 본인들이 이제 그래 결정한 바라 애비로서 할 바를 다했다고 생각하고 마음을 놓았다.


이들이 가장 싫어했던 것은 이런 거였다. 친척들이 거듭 하는 말이 "너희는 한국아이들인데 어째서 한국말을 못하는가?" 심지어 택시를 타고 두 자매가 차 안에서 영어로 속삭이면 운전하는 넘이 같은 불평을 하면서 "보아하니 한국인인 것같은데, 왜 모국어를 쓸 줄 모르느냐"고 따지더라는 거다. 심지어 길을 건너는 데서도 지나치던 행인이 같은 훈계를 하더라는 거다.


알다시피, 미국에선 Mind your business가 철저하게 지켜지는 나라다. 그런 사회풍토에서 3살과 1살부터 자라난 이들에게는 너무나 충격적인 사건이 아니었겠는가? 한국어를 유창하게 구사한다면 얼마나 좋았으리오. 1970년대 초에는 이민자들도 많지 않았고, 내 비록 뉴욕 근방에 살았어도 "한글학교"라는 것도 없었던 때고, 살기 바쁜 내 신세에 그런 데를 보낼 형편도 않됐었다. 더구나 미 초등학교에서도 원하지 않았었고...


좀더 자라서 사춘기에 한인교회에 보냈더니 다른 아이들이 쌍욕만 주절거리고 그 행실이 매우 불량하다며 다시는 한국아이들과 섞이려 하지 않았다. 대학 초년생일 적에 한국 유학생들이 많을 터이니 한국학생들 활동에 참가하라고 말했다. 내게 보고 하기를 도저히 그 아이들과 놀 수가 없더라는 거다. 우선 모두들 최신 유행 의상과 최고품으로 치장하며 비싼 자동차를 몰고 다니는 꼴이 너무나 이상하였다고... 대학교가 공부하는 곳이 아니냐는 거다. 


나 자신이 격은 이야기로 돌려서, 1970년에 10대 종합상사를 뽑아놓고 무조건 해외에 수출거점을 마련하라는 박통의 명령에 따라 내가 선경산업의 Sydney, Australia에 지점을 개설하였다. 나 혼자 가야한다는 조건에다, 지사운영비조차 형편없이 부족했던지라 어디 판촉을 나설 엄두가 나지 않았다. 움직이면 돈이 드는데 생판 모르는 곳에 던져놓고, 본사넘들도 영어로 통신하지 못했던 고로 수출실적을 올린다는 것은 하늘의 별따기였다. 생활비조차 제 때에 보내주지 않아서 싸구려 노동자 합숙소로 옮겨다녀야 했다.


그러던 어느 날이 Sydney Morning Post란 신문의 business난을 펼치니, 영국의 Emperial Chemical회사 -poly섬유개발의 원조로 마치 나이론의 Dupont과 같은 - 일본이 Polyester원사를 호주시장으로 Dumping한다고 법정에서 싸우고 있다는 기사를 읽게 되었다. 선경은 당시에 일본 Teijin(帝人)과 합작해서 한국 최초로 Polyseter합성섬유를 생산하고 있었다. 


급히 호주의 관세법과 덤핑규정을 찾아보니, 일본이 그 대상에 올라있으나 한국의 이름은 거기 없었다.

옳치! 한국製를 팔 수도 있겠다 싶어, 본사에 그 가능성을 타진하기에 이르렀다. 그 소식에 수출담당 상무가 급히 호주로 달려와서 Nissho Iwai라는 무역중개상을 통하여 한국 최초로 Polyester原絲 US$20만불어치를 성사시켰다.


그런데, 본사의 어느 시키도 나의 공로를 언급하는 넘이 없었다. 그건 그렇다 치자. 귀국한지 얼마 않돼서 선경合纖의 부사장하던 최뭐라는 者가 나를 찾는다 하여 그의 사무실로 갔다. 그 쪽은 생산회사였고, 내 부서는 수출회사였다. 내가 그의 방에 들어서자 아무 말 없이 아래 위로 훓어보더니 가보라는 듯 손짓을 하더군. 이 쪼다는 상공부의 기계수입과에 일하면서 일본의 섬유생산시설을 수입하는 데에 일조를 했던 넘을 그 자리에 앉혔다. 공무원 특유의 거드름을 피우면서 사내를 휘젓고 다녔었다.


이런 시시한 인간들이 한국에는 너절하다. 자기가 맡은 제품을 세계시장에 처음 어렵게 수출토록한 장본인이 나였는데, 불러서 차 한잔을 내어놓지는 못할 망정, 따듯한 말 한마디 하기는 커녕 자리에 앉히지도 않는 병신시키가 웃자리에서 맴돈다. 요즘 국회의원 한다는 치들이 이권을 찾아 여기저기 다니면서 추태나 부리는 뉴스를 연상시킨다. 어째서 고국을 등지고 일찌기 이민보따리를 쌌는가를 물어 보는 사람도 이 者들과 별 차이가 없다 하겠다. 이런 넋빠진 인간들이 나라를 주무르니, 그 나라가 제 꼴을 하겠오? 그래도 젊은 놈들은 주사파가 좋다네, 아이고...지들은 한국이 세계11위의 경제강국이 될 적에 에미의 젖을 빨다가 빨갱이 교육을 받았으니, 선배들이 얼마나 고생하였는지 알턱이 없겠지, 하긴...


禪涅槃

5/30/20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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