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추석은 단지 가을의 첫 보름달일뿐
09/14/2019 08:46
조회  287   |  추천   7   |  스크랩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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추석의 우리말은 한가위다. 한국에선 큰 명절로써 흩어졌던 자식들이 부모의 집을 찾는다. 마치 강남 갔던 제비가 봄철에 처마밑 제 집을 찾아들듯이... TV영상에서 귀향객들의 행렬이 고속도로를 꽉 막아놓을 정도로 분비는 광경을 보노라면 나같은 실향민에게는 서글픔을 안겨준다. 오라는 사람 없고 가야할 고향은 바다 건너...타향살이 50년에 둥근 달의 휘황찬란한 잠자리를 뒤척일 뿐이다.


오직 남쪽일 뿐인 귀향길이다. 북한녘은 막힌지가 70년에 이른다. 나같은 이민자로서는 태평양을 건너 다녀야 하는 어려움이 있다. 그렇다고 고향의 달은 더욱 크고 둥근 것이 아니지 않는가? 시간 차이가 있을 뿐이다. 현 pacific 아침시간으로 8월 14일 8:13분은 서울시간으로 8월 15일 밤 12:13분이다. 이미 중천으로 한참 올라간 평소의 작은 달이다. 그러나 나의 오늘의 달은 한 나절이 지나야 비로서 풍만한 그 것이 된다.


한가위란 명절은 그들에게 이처럼 이미 왔다가 갔으나,  California의 것은 아직 오지 않았으니 미국의 교포인 나와 내 가족은 어느 시각에 따라 명절을 즐기며, 부모와 조상에게 제사를 지내야 하는고? 아다시피 미국사람들에겐 보름달의 festivity가 아예 존재하지 않는다. 이들에게는 Thanksgiving day라는 가을의 풍요함을 감사하는 행사가 있을 뿐. 


오래 전에 한국일보 열린마당에 '진리란 없다'고 말했던 적이 있다. 알만한 사람이 '말도 않되는 소리'라고 퇴박하는 댓글을 달았다. 眞理(진리)란 時와 空을 초월한 사실이어야 한다. 시간과 장소에 따라 그 의미가 달라진다면 그것은 절대절명의 진실일 수가 없다. 그런데 사람들은 자기가 믿는 것이 곧 진리라고 우긴다. 17세기의 서양의 천주교는 天動說(천동설)을 주장했었다. 당시에 Copernicus와 Galileo, 그리고 Giordano Bruno는 地動說(지동설)로 곤혹을 치뤘지만 서도... 


참고: More than 350 years after the Roman Catholic Church condemned Galileo, Pope John Paul II is poised to rectify one of the Church's most infamous wrongs -- the persecution of the Italian astronomer and physicist for proving the Earth moves around the Sun. 한편 교회다니는 분들은 요한복음 3장 16절의 말씀을 반드시 믿어야 한다. <하나님이 세상을 이처럼 사랑하사 독생자를 주셨으니 이를 믿는 자마다 멸망치 않고 영생을 얻게  하려하심이라.-개역한글판> 


믿는다는 것...하나님의 존재여부조차 유태인의 것과 한국인들의 것은 다르다. 어느 나라의 하나님인가? 독생자란 예수 그리스도를 칭한다. 예수가 과연 '구워자'인가? 신교에서는 그렇게 믿지만 교회 밖에서는 의아해 한다. 멸망치 않고 영생을 얻는다고? 생명체는 반드시 죽게 되어 있다. 不滅의 眞理(불멸의 진리)다. 그런데 영원히 사는 방법이 있다고? 물론 앞의 말을 진심으로 받아들일 적에 가능한 말이다.


순전히 認識(인식)의 문제에 봉착한다. 한 개인이 세상을 어찌 보느냐? 그러나 共同體(공동체)의 인식은 다르다. 예를 들자면 문빨갱이의 사회주의적 인식과 자유민주주의 헌법이 다른 것 처럼.... 미국교포가 보는 가을의 보름달과 한국인들의  '강강수월래의 마을의 잔치"는 이처럼 의미가 다르다.  Carl Jung이란 스위스의 심리학자는 개인과 집단의 인식을 구별하였다. 집단의 인식에는 archetypes, 즉 또 다른 conscience (良心)이 존재한다는 것이다.


만일에 어떤 사람이 공동체의 conscience를 저바리면 그는 응당 그 집단의 異端者(이단자)로 취급받게 된다. 그로써 왕따를 당하게 됨은 말할 것도 없다. 추방의 대상자가 대통령이란 권좌에 앉아서 자기 멋대로의 별난 짓을 계속할 경우에는 어찌 해야 하는고? 그래서 '뭉치면 살고 헤어지면 죽는다'는 구호가 등장하고, 각 개인의 認識을 결집시켜야 만이 '집단적 양심'이 전체의 생각을 지배할 수 있다. 그래서 '진짜 뉴스'를 '가짜 뉴스'로 시기쳐야 하는 이유가 생긴다. 마치 문빨이와 曺國이 '더불어' 하는 것 처럼...


그것을 일러 革命이라 한다. 20세기 초에 Vladimir Lenin이 '볼쉐빜의 혁명'을 일으켜 수백년에 걸친 노예노동국가인 제정러시아를 붕괴시켰다. 그에 준하는 운동이 후에 세계 각처에서 단행되었지만, 70여년의 실험이 결과적으로 실패하고 말았다. 단지 중국과 북한이 그나마 명맥을 유지하며 인간의 '자유와 평등'이란 집단적 양심을 저바린 정치독재가 지금 패망의 길에서 허덕이고 있다. 


그런데 대한민국의 문재인과 그 종북-주사파들이 이를 모방하려고 애를 쓰고 있으니... 한국인들에게 과연 퇴색한 구시대의 사고방식을 불식시킬 수 있는 지도자가 在野(재야)에 있는가? That is the question. 기독교 역사에서는 수천년에 걸친 종교와 정치의 기득권자들이 힘없고 가난한 백성을 착취했었음 보여주고 있다. 그 제도와 관행을 뒤엎으려던 인물이 있었으니, 그가 바로 예수였다. 대한민국에 그러한 위대한 思想家(사상가)나 革命兒(혁명아)가 있는가? I doubt it.


禪涅槃

9/14/201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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