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禪涅槃(선열반)(zenilvana)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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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인들, 웃기는 꼬락써니 하며
05/25/2019 07:4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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벌써 35여년 전이 되는 것 같다.  그 때는 어머니가 생존해 계실 때여서 매년 2-3월을 택해서 한국을 방문해 오던 차였다. 이곳 뉴욕지역 고교동창 대장이 이번 길에 서울 회장에게 급히 전할 것이 있다고 했다. 쾌히 승락하고 시간을 내어 그를 찾아 갔다. 그때 우리 동기 총동창 회장으로 이 회사의 회장님 되시는 김 아무개가 계셨다. 


1970년대 초 막 이민와서 빈털털이였다만 마음 만은 꽤 부풀어 있었다. 당시에 그는 미국 유학시절이었다. 나중에 안 사실은 이러했다. 그의 아버지가 옛날 증권파동 때에 돈을 트럭으로 날러서 당대의 유명 보험회사를 인수했다고 들었다. 그 때까지 아버지 밑에서 회사를 운영해 오고 있던 참이었다.  옛날 어릴 적, 얼마전 뉴저지 공원에서 어린 것들을 데리고 뛰어놀던 그때의 추억을 더듬으며 그의 비서실로 들어섰다.


비서실 책상 하나 건너에, 아니! 이 사람... 또 다른 동창이 앉아있는 것이 아닌가?  같은 대학 입학시험에 떨어졌을 때 내가 썼던 참고서를 넘겨주었던 그런 인연이 있는 친구였다.  35년이 넘는 그때에 뜻밖에도 거기서 만나다니... 너무나 반가웠다.  "여기 있었구나!"... 소리내어 그를 반겼는데, 그는 고개를 떨구더니 한동안 말이 없었다. 무슨 용건으로 왔냐는 듯이 물끄럼이 건너다 보는 것이 아닌가! 


반기는 기색이라고는 금마의 상판, 그 어느 구석에도 없었다. 아니 이럴 수가 있는가?  너무나 턱무하다는 생각이 머리를 스치고 지나갔다.  순간, 나도 모르게 모멸감에 사로 잡히고 말았다. 이렇게 소리 질렀다. "야 !...이 새kki야 35년 만에 만났는데 넌 반갑지도 않냐? ..." 


아무 응답이 없었다. 그때 대학시험에 자기는 떨어졌고, 나는 붙었다 하더라도, 이미 옛날 일이 된 이 마당이 아닌가? 나를 보는 순간에 그게 챙피해졌다는 건가?  그래도 그렇지... 하는 수 없지, "내 뉴욕의 동창 일로 네 회장을 만나려 하는데 당장 알아 볼 수 없겠어?" 내친 김에 다시 한번 언성을 높였다. 서슬이 퍼렀게 보였던지, 찍 소리없이 안으로 들어갔다. 나오더니 회장실로 들아가 보라는 시늉을 했다.


엉거주춤이 하여 회장이란 者의 방을 들어섰다. 어둑한 저 안쪽으로 큰 마호가니 책상 뒤에  "김 아무개"란 동창이 보였다. 긴 가죽 쏘화 곁으로 천천히 두리번거리며 접근 하는데, 그는 도무지 일어 설 기미를 보이지 않았다. 어느 만큼 가까이 가야 할지 망설이자, 그가 친절하게도 더 가까운 곳으로 오라는 제스쳐를 했다.


문깐에서 부터 정신이 깝박했었는데 동창들 두명에게서 이런 찬 바람에 어개가 막혔다 할까, 아니면 얼어버렸다 할까, 어떻게 행동해야 할지 몸둘 바를 몰랐다. 이처럼 친구를 맞이하는 꼴을 본적이 없었다. 내가 알아온 상식과는 너무나 동떨어진 현상이아닌가. 


매우 거북했지만 별 선택의 여지가 없었다. 하라는 대로 할 수 밖에... 권하는 대로 회장의 큰 책상 앞에 앉았다. 가까이도 또 너무 멀지도 않은 그 자리에서는... '얄구지게'도 그를 올려다 보아야 했다. 용건이 있어서 예까지 왔으니, 먼저 말을 꺼내는 것이 당연하겠지비. 말을 건네려니 어쩐지 머뭇거리게 됐다. 회장님은 내게 아무말도 건네오지 않았다. 동창 한테라도 반말을 해서는 않될 것 같은 그런 위압감에 빠졌다. 아니면 반발이랄까...종잡을 수없이 그냥 어떨떨했다. 


마침내 나온다는 말이, "너...너, 너 한테... 반 말을 해도 좋을지 모르겠다." 띠엄 띠엄 더듬거리며 뉴욕 동창이 전하려던 용건을 말했다. 그 면회는 길지도 않았고, 친구와 친구가 오랜만에 만났다는 人情(인정)의 오감이 없었다. 그 분위기 속에서 짤막한 회견을 끝내고 밖으로 나오니, 그 비서되는 동창이 우리 동기의 간부되시는 몇 분들을 어느 식당에 불러놨단다. 그리로 가자면서 승용차에 나를 태우고 남산 중턱의 어느 식당으로 차를 몰았다. 그 비서께서는 나에게 어떤 우정어린, 아니 인간적인 대화를 잊은 채 운전기사에게 이렇게 명했다. 


"이보게! 거~ 무시기 식당으로 가세"... 양반이 하인에게 하듯한 거만한 어조다. 그 거드름을 피우는 꼴이 참으로 가관이더군. 中國의 古史에 이런 기록이 생각났다. 어느날 정승의 행렬이 지나가는데, 말고삐를 잡고 거드럭거리는 남편의 모습을 보자 너무나 챙피해졌던 남어지 그의 여편이 목숨을 끊었다 한다.


그는 나를 내려놓고 회사로 돌아갔다. '오랜만에 만나서 반갑다'... '시간 내어 언제 다시 만나자'..., 뭐 그런 말이 전혀 없었다. 내가 지금 다른 세상에 와 있나, 어리둥절 할 수 밖에. 한 때 나도 재벌의 비서를 했던 적이 있던 사람이다. 친구를, 아니... 사람을 이처럼 대하는 꼴을 머리털 나고 본 적이 없다. 서울의 유명 요정에서 일하던 퇴기들이 내 회장님한테 돈을 꾸러 가끔 찾았다.  총수가 극진히 대접해 보냈던 일을 기억한다. 소위 동창이란 녀석이 시시한 기업에, 그것도 제 동기의 동창네 회사에서 일하는 者가 이러 했다. 세상에.., 眼下無人(안하무인)이라는 건가? 아니면 뭐야?


두 명의 간사들과 점심을 같이 했다. 그들의 성공담을 듣고 나서 나도 이민 과정에 고생한 이야기를 했다. 갑자기 조용해지는 거라. 그들과 헤어져서 생각하니, 그들은 낙오자의 넉두리로 받았다는 건가?. 속으로 "나는 말이야! 느그들 세상에서 누구보다도 먼저 출세했던 사람이야! 그걸 헌신작 버리듯이 빈손으로 이민와서 바닥부터 긁어가며 자리잡았다구. 그러는 과정에서 쓴맛 단맛 다 보고 사람이 됐다. 왜~...매우 자랑스러웠다. 지금도 그래 생각하지만, 한국에서 "잘 나가는 동창들"에게는 어쩐 일인지 거북하게 받아졌던 것이다. 그 자리에 참석했던 중의 한 명과 비서하던 넘은 얼마전에 타계했다..., 동창들 웹페지에서 읽었다.


이런 일이 있고서 여러 해를 넘긴다.  그 회장님께서는 "아트란타" 에서 심장마비로 갑자기 죽었다고, 동창들 간에 설왕설래 했다,  그때의 정권, 전두환이의 미음을 사서 사업이 기울자, 또 다른 심복의 동기동창에게 한탕 당하고 팍싹했다던가? 뭐 그런 소문이 들렸왔다. 금마마져 죽고 말았다. 그들 세상에는 의리라는 것은 없더군.  모두들 잡아먹고 잡혀먹고 하다가 일찌기 천국으로 가시더라. 왜들 이래!


禪涅槃

5/25/201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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