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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편-자유무역과 보호무역의 正體
03/15/2019 06:3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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뭐든지 공부가 될성싶으면 讀者가 반으로 뚝 떨어진다. 허접한 것에는 벌떼처럼 몰려들고...... 그리고는 누가 無識하다는 無자만이라도 들먹이면 '죽여라 살려라' 인터넽의 뒷구멍에 숨어서 오망가지 욕지거리를 하더군. 중앙일보 J-블로그의 고매하신 분들은 물론 아니겠지만 서리. ㅉㅉㅉ, 워짜 그란 디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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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letton Woods Conference('블레톤우쯔'협약) 체결되었을 때는 1944년으로 아직도 2차대전이 진행중이었었다. <아래 참고> 그런데 어떻게 미국의 딸라가 당시의 유럽의 강대국들을 상대로 세계국제무역의 결제통화로 등장할 수가 있었을까? 한국에서 이즈막에 '기조통화'라 하더군.


참고: The Bretton Woods Conference, officially known as the United Nations Monetary and Financial Conference, was a gathering of delegates from 44 nations that met from July 1 to 22, 1944 in Bretton Woods, New Hampshire, to agree upon a series of new rules for the post-WWII international monetary system.


1940년 전후에 영국이 독일과 전쟁하면서 막대한 국력을 소모하자, '쳐칠'이 FDR(Franklin Theodore Roosevelt)에게 미국의 참전을 종용하여 왔었다. FDR은 호의적이었으나 미국회에서 참전하는 것을 원치 않았다. 그나마 소극적으로 영국과 통상하던 미국상선들을 대서양에서 독일의 U-Boats들이 공격해 왔음으로 결국은 유럽전쟁에 말려들지 않을 수 없는 처지가 되고 말았다. FDR은 Lend-Lease Policy (Cash and Carry 즉 "돈내고 가져가라")는 기존의 법을 원용하는 편법으로 선전포고 없이 전쟁물자를 영국에 제공하기에 이르렀다. 


'쳐칠'과 FDR이 대서양 한복판의 함상에서 이를 공식화 하기 위하여 "Atlantic Charter"라는 '메모'를 주고 받았다. 이는 대영제국 (카나다, 뉴질랜드, 호주, 인도 및 남아프리카공화국), 불란서(북아프리카, 인도차이나)가 대서양에서 유럽 여러 나라들과 교역하려는 미국의 모든 노력을 과거 150년 동안 봉쇄해 왔었던 (1790년 이래) 영국이 대서양 상에서의 미국 선박통행을 자유롭게 허용하겠다는 의미가 숨어있었다. 미국은 이로써 막강한 해양국가로 등장하게 되었고, 결국 세계무역의 최대 채권국으로 부상하는 계기가 되었다.


제2차세계대전(1939년 9월-1945년 9월)에 7천만명이 죽었다. 그 대부분이 민간인이었다. 연합국 측에서 군인; 1천4백만, 민간인; 3천 6백만, 총계로 5천만명이었고, 동맹국 측에서는 군인; 8백만, 민간인; 4백만, 전부 1천 2백만명이 사망했다고 집계되었다. 인류역사상 6년간의 한 전쟁에서 이렇게 많은 희생자를 낸 적이 없었다고 한다. 특이한 것은 영국, 카나다, 호주, 뉴질랜드, 불란서, 쏘련, 미국등의 연합국의 사망자가 동맹국에 비해서 거의 5배로 계산되고 있다. 쏘련 한 나라만 2천 7백만명으로 전체 죽은자들의 반 이상이 되었다. 민족별로는 쏘련과 중국사람들이 죽은자들의 대부분인 85%었고, 독일, 일본, 이태리등의 동맹국은 15%의 사상자를 냈다. 일본군의 학살, 독일의 '나찌'수용소와 기타 기아, 질병, 폭탄에 기인한다. 


천지개벽이 있지 않는 한 사람들은 절대로 자기 생각을 바꾸지 않는다. 인류역사를 돌이켜 보면 전쟁이란 엄청난 살상의 희생이 있음으로 해서 기존의 고정관념에서 해방되었고, 그리고 비로소 뭔가 새로운 것을 받아들이게 된다. 인간의 약점을 가장 잘 파악한 사람들이 국제공산당들이다. 그 대표자가 '스탈린'이고 그 다음이 김일성... 그리고 '캄보디아'의 '폴퐅'이 이에 빠지지 않는다. 옛날에 '브르주아'(자본가 계급)이라면 무조건 총살해버렸고, 그 남어지는 아침 저녁으로 사상교육을 해야 했다. 북한에서는 아직도 이런다고 하더군.


아무튼, 이런 연고로 해서 大西洋(대서양) 군함 상에서 영국과 미국이 주고 받은 '메모'가 Bretton Woods Agreements의 선행조건이 되었으며, 미국은 세계무역활동에서 생기는 국제간의 모든 무역결제를 金 1온스당 美貨 US$35로 이행하겠다고 약속했었다. 당시에 미국은 1-2차 세계대전의 승전국가로써 兩大(양대)전쟁으로 세계의 금보유고의 70%이상을 확보한 부강한 나라로 등장하게 되었다. 반대로 대영제국은 두번의 전쟁으로 英(영)연방의 여러 식민지들이 독립해 버렸고, 국내의 모든 산업들은 파괴되어 버렸다. 수백년 동안 누려온 '파운드貨'가 더 이상 국제결제통화로 사용할 수없게 되었던 바다. 


이 조약에 세계의 많은 내노라 하는 통상국가들이 가담하게 된 또하나의 이유는, 세계1-2차대전이 "이웃거지만들기"의 국제무역 정책에 당시의 열강들이 골몰했던 결과라는 것이 후에 판명되었고, 그후 1930년 대에 미국이 경험한 "경제공황"의 위기가 결과적으로 얼마나 무서운 파국을 초래했었는 가을 모두가 실감했기 때문이었다. 한 나라가 자기 나라의 화폐가치를 낮게 평가하여 자기네 상품을 상대적으로 싸게 팔고, 남의 것은 높은 관세로 막아내는 그런 "보호무역정책"은 自滅(자멸:스스로 망하다)하는 첩경이란 것을 깨닫게 되었다. 이것이 바로 흔히 말하는 'Beggar-Thy-Neighbour'(이웃거지 만들기)란 보호무역정책이다. 요새도 金本位화폐 정책으로 돌아가야 한다고 주장하는 얼간이들이 가끔 TV에 나타나서 아는 척을 합디다 마는 정신나간 소리지요.


18세기에 David Ricardo가 국제간의 분업으로 국가끼리 서로 주고 받으면서 무역을 하면 양쪽이 다 잘 산다는 "국제자유무역"의 경제이론이 이러한 우여곡절 끝에 궁극적으로 IMF와 IBRD의 형태로 金世紀(금세기)에 현실화하게 되었던 것이다. 그 당시에 영국의 이익을 대변한 J. M. Keynes는 딸라화 대신에 국제통화를 별도로 만들고 이를 관리하는 국제중앙은행의 역활을 할 수있는 한 기관(마치 한 나라의 중앙은행처럼)을 만들자고 제의했었다. 그 이유는 미국이 세계의 金을 70% 이상 소장하고 있더라도, 딸라貨는 미국의 재정정책이나 경상수지에 변덕의 높고 낮음에 따라 그 화폐가치를 항시 보장하기 어렵다는 주장이었다. 더구나 딸라貨를 원하는대로 무한정 발행할 수 있는 권한을 미국에게 주면 그런 기준 화폐국가의 특권을 남용할 수가 있다는 우려에서 나온 말이었다.


그러나 영국은 그 때에 부채국가였고 미국은 부강한 나라로 등장한 이상, 당시 美國의 외무부 장관이던 Cordell Hull이 우기는 대로 미국의 이익이 잘 반영되는 방향으로 "International Monetary Fund", 줄여서 IMF 라는 무역결제기구가 마침내 창설되게 되었다. 막상 IMF기구가 발족되고 보니 세계 여러나라들은 국제결제 기준통화가 된 딸라貨를 그 나라들의 외환보유고에 보유한 것이 별로 없었다. 따라서 각 나라는 IMF에 자기네 나라의 화폐가치를 보장하기 위하여 자기네의 金덩이를 IMF에 저당 잡아놓고 딸라貨를 대신에 받아다가 무역에서 생기는 부채상환에 결제수단으로 金 대신에 사용하는 시대를 시작했다. 


저개발국가들이나 영국, 독일, 그리고 일본 같은 나라들은 전쟁 후에 국가재건을 위하여 모든 것을 수입해야 할 입장이었는데, 수입한 것들을 딸라로 결제할 돈이 모자랐던 현실이고 보니 어디서 돈을 꾸어와야, 즉 借款(차관:Loan)해야 뭔가 국제무역을 할 수가 있었다. 이렇게 해서 생긴 것이 International Bank for Reconstruction and Development, 줄여서 'IBRD'란 국제은행이 등장하게 되었고, 또 '마샬플랜'이란 것으로 장기원조를 유럽에 제공함과 더불어 후진국에게는 AID란 이름으로 물자나 장기금융의 형태로 이들을 원조하기에 이르렀다. 문론 미국의 財貨(재화)와 딸라 명목의 화폐를 제공했던 것이다.


그런데 6년 후에 한반도에서 6.25 동란이 발발하자, 전쟁물자를 미국에서 만들어서 한국전쟁에 쓸 것이 아니라 일본의 경제를 살리면서 동시에 이로써 딸라貨를 일본에 제공하면 결국 IMF의 딸라貨의 부족을 해결할 수 있다는 발상을 미국이 하게 되었다. 당시에 일본의 '요시다'란 천재가 수상이 되어서 미국의 방위우산 아래에서 이런 생각에 적극 협조하는 것이 一擧兩得(일거양득)이란 것을 깨닫고 실천에 옮겨 온지가 半세기에 이른다. 


최근까지 이 정책이 역대의 기민당 국제외교정책으로 자리를 굳혀 왔었고, 그 간에 정치적으로나 경제적으로 일본이 재미를 쏠쏠히 보아 왔던 것이다. 미국이 일본의 이런 얍쌉한 작전을 눈치채고, 일본화의 교환비율을 상향조정해서 미국제품을 더 사주라고 아무리 사정을 했어도 馬耳東風(마이동풍)이었었던 것이다. Hans Joachim Morgenthau (1904~1980)란 20세기의 국제정치학계의 巨星(거성)이 남긴 말대로 "국제정치에서는 눈물도 콧물도 없는 비정한 세상"이란 말이 맞는다. 중국이 지금 이 짓을 하면서 미국을 곤경에 처넣고 있는 것이나 매한가지였다. 이로써 일본이 세계의 또 하나의 최대강국으로 다시 부상하게 되었던 것이다. 


쏘련과의 냉전의 와중에서 독일, 일본, 한국, 중국의 경제가 미국과 대등한 무역능력을 키워주는 것이 장기적으로 IMF의 딸라貨를 국제결제의 최종수단으로 굳히는 결과를 가져올 것으로 미국이 의도하면서 여러 모로 세계를 미국자본주의로 부흥시킨 공로를 부인할 수 없다.  물론 미국의 국제적 대기업이 살찌게 되었고 공장노동자들은 welfare 대열에 줄을 서야 하는 그 결과를 초래했다.  딸라貨의 남발을 초래하는 원인이 되었으며 결국에 가서는 미국의 금보유고를 이들 나라에 유출시키면서 부채국가로 전락하는 빌미가 되고 말았다.  


한말로 정리한다면 IMF란 자유무역체제를 살리기 위하여 미국은 自國(자국)의 경제를 망치게 되었다는 말이 된다. 1997년에 동남아의 여러나라들이 소위 IMF사태라는 경제적 곤혹을 치루었고, 그 10년 후인 2008년에  미국 자신이 금융위기로  망하느냐 마느냐의 기로에 섰던 것을 겨우 살려놨던 또 다른 10년 후에 지금에 보호무역을 해야 하겠다고 Trump가 설치고 나섰다.  중국 등등의 세계가 겁을 먹고 미국을 응시하는 이유가 바로 이런 과거의 경험에서 나온 'fear itself'라고 할까......바라기는 window dressing으로 끝내 주었으면 하지만. (제5편에 계속)


禪涅槃

3/15/201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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