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禪涅槃(선열반)(zenilvana)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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통일을 붉게 (제4편: 만남은 우연이 아니다.)
01/10/2018 11:3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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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두워져 가는 초저녁이 되고 말았다. 중량교 전철역이란 곳으로 그를 따라 천천히 걸었다. 낙으막한 집들의 창문에서는 불빛들이 하나 둘씩 우리의 걸음을 재촉했다. 검붉은 구름 속 저멀리의 건물들 위에는 저녁놀이의 긴 흐름이 성급한 별들에게 그 날의 하룻빛을 끝내어주고 있었다. 우리는 조금 전에 주고 받은 대화를 이것 저것 되살려 내면서 낯설은 동네길을 이리저리 더듬으며 발길을 옮겼다.

내가 옛날 학교다닐 때에 분명히 같은 길을 다녔었겠지만, 지하철이 근처에 있다는 말을 처음 들었듯이 이 길도 전혀 생소한 동네길로 변해 있었다. 얼만큼 걸었을까? 박성준이가 이런 말을 했다.

"여기까지 걸어오기 까지 한번도 쉬지 않았다는 것이 신기하게 생각된다."

무슨 말인지를 몰라 하면서, "우리가 그렇게 멀리 걸어온 것도 아닌데 무슨 말을 그렇게 하냐?"

"아냐... 이 길은 내가 출-퇴근 하는 길인데 이 정도까지 오려면 벌써 몇번은 숨을 돌렸야 했다. 그런데 너와 얘기하다가 보니까 쉬는 것을 잊어버렸다는 생각이 들게 되었다. 좀 전에 내가 쉬어야 하는 지점을 나도 모르게 지나쳤다는 것이 뒤늣게 생각되었다."

그가 찔룩거리며 천천히 걷는다는 것은 알았지만 이처럼 쉬어가며 걸었어야 하는 정도인지는 미쳐 알지 못했었다. 일에 열중하다가 보면 먹는 것도 잊어버린다고 하더니, 나와 대화하며 걷는 것이 그만큼 재미있었다고 해야할지... 아니면 짧은 거리의 길을 쉬어가며 걸어야 하는 것을 내게 보이기 싫었다고 봐야 할까? 하여간에 대화에 열중하다가 그런 것은 문제가 않됐던 모양이었다.

"어디가 아프냐?

"응... 다리가 시큰거리면서 힘이 없다. 감옥살이를 하면서 운동할 기회가 많지 았었기 때문에 이렇게 된 것이 아닐까 생각하는데, 여러해 동안 별로 호전되는 것 같지가 않아서 요즘 걱정하고 있다. 그래서 약을 먹고 있다고 말했다. 내가 지금 형편에 약사먹는 것 조차도 사치라는 생각이 들어서 그것 마저 계속 복용하지 못하고 있지..."

"무슨 소리를 지금 그렇게 하냐? 몸을 제대로 건강하게 해야 할 것이 무었보다도 중요한 것이 아니냐? 약값까지 절약하면서 살아야 한다니 말도 안된다."  항의 쪼로 다구쳤다.

"실은 아파트를 장만하는라고 무리를 했었지. 내 현재의 수입으로는 주택융자금을 감당하기가 힘들었다. 힘겨운 것을 알면서도 억지를 하다가 보니 다른 것들을 줄여야 하게 되었다. 들어가 잘 자리만은 확보해야 하지 않겠니? 그러다 보니 무리가 되고 말았던 거다."

그가 메고 있던 가방을 열어서 약병 여러개를 꺼내 보여주었다.

더 할말을 잃고 말았다. 그리고 생각에 잠겼다. 낯에 다방 안에서 봤던 창백하고 허약한 얼굴의 주인공이 밤에는 다리를 질질 끌고 지하철을 타러 매일 외로운 길을 걸어다녀야 하는 이 인생... 그 삶의 주인공은 과거에 어떤 젊은이였던가?

1960년 봄, 우리 서울고등학교 졸업생들이 대형뻐쓰를 전세내어 서울商大 교문 앞에 모두들 하차하였었다. 모두 3대의 뻐쓰가 우리를 그 날의 입학시험장으로 우리들을 안내했었다. 교정을 가로질러서 우리가 일렬로 서서 시험장이라 표해논 교사의 걸물로 행해서 걸어들어갔다. 수많은 수험생들이 좌우에 비켜서서 이런 진풍경을 구경하는 가운데로 우리가 당당히 그리고 어줍하며 걸어들어 갔었다. 박성준이가 그 운동장에 모였던 지망생들 중에 한사람이었으리라. 우리들의 이 행렬이 이들의 시골청년들에게 놀랍고도 위협적으로 보였을 것이다. 후에 그가 그렇게 내게 말했다. 일차로 낙방했던 그가 그때로 2번째로 시도했었던 바였고, 결국 합격하여 나와 같은 경제학과의 동창생이 되게되었다.

그 대망의 大學에 합격하였다고 해서 내 어머니가 종로2가 화신백화점의 구건물 건너편에 위치한 어떤 가방점으로 나를 이끌고 갔다. 여러가지의 상품 중에서 제일 비싸다는 '낙타가죽'으로 만들어진 가죽가방 한개를 내게 사들려 주었다. 소가죽이든 말가죽이든지 가방이면 됐지 구태어 '낙타가죽'이어야 할 필요가 없었지만, 어머니 한테는 너무나 대견한 경사라서 제일 고가품이라야 한다는 생각이었던지 어려운 살림이었건만 전혀 아까운 생각이 들지 않았던 모양이다. 내가 이 가죽가방을 들고 몇개 안되는 책들을 그 속에 넣고 등교하게 되었다. 아주 큼지막해서 좋았는데 문제는 그 가방의 색갈이었다. 가죽가방이 보통 갈색이었음에도 이것은 노랑색을 하고 있는 것이 특이했다. 노란 호박꽃의 색갈로 멀리서도 누가 그 가방을 들고 있나를 곧 식별할 수 있는 그런 유난스러운 가방이었다. 어머니가 사준 것이니 들고는 다니지만 그 별난 색갈이 마음에 걸려서 챙피하다는 생각까지 들었다. 그때 지방에서 온 학생들 중에는 고무신과 보자기에 책과 공책을 싸들고 다니던 사람도 있던 풍경이 그 노란가방을 더욱 의식하게 만들고 말았다.

어느 날이다. 1960년 봄의 4월에 찬바람이 가끔 불어왔지만 그래도 따듯한 봄빛이 내려쪼이는 교정의 잔디밭에 나 혼자 이 가방을 옆에 놔두고 다음 강의시간을 기다리며 앉아있었다. 누가 등뒤에서 "너도 경제학과생이냐?" 하는 음성이 들려왔다. 돌아다 보니 생판 처음 보는 젊은이가 내게 말을 걸어오는 것이 아닌가... 그를 처다보며 수긍하는 말을 건넸다. 그가 곁에 앉아도 좋겠냐고 물어왔다. 그 때는 갓 입학했던 분위기로써 서로가 서로를 알고자 하는 그런 분위기였던 지라, 지방학생으로 보이는 이 친구의 접근을 궂이 마다할 필요가 없었다.

우리는 재수생까지 포함해서 25명이 합격했던지라, 구태어 모르는 타교생들과 서둘러 친구를 만들어야 할 욕구는 별로 없었다. 자기는 박성준이란다. 경상남도 통영이 자기 고향이고 학교는 부산에 있는 시시한 이름없는 고등학교를 졸업했다면서 학교이름을 밝히지 않았다. 생각하기에 통영이라면 남해안의 도시가 아니냐...그런데 부산의 어느 시시한 데에서 왔다고?...

나는 서울高를 졸업하고.....말문을 열려들자, "이미 알고 있다"고 내 말을 막았다. "너희들은 표가 났다. 우리 지방학생의 눈으로 볼때 말이다."  의아해 해서 어떻게 알았냐고 물을 수 밖에... 노란색의 가방을 의식하면서 다시 물었다. "너희들이 시험보러 왔을때 줄줄이 교정을 지나가는 것을 봤기 때문이다." 그 때 많은 시험생들을 밀어내다 시피 시험장으로 들어갔었지.

"부산의 어느 고등학교냐?" 다구쳐 물었다. "'해동고등학교'라고... 너는 아마 처음 들어보는 학교일 것이다. 부산에서는 깡패학교로 유명하다. 그 학교의 역사를 통털어서 상대를 입학한 사람은 아마도 내가 처음이었을 것이다. 불교재단으로 올데 갈데 없는 학교로 부산에서는 주먹깨나 쓰는 학생들이 많다고 소문이 나있다. 나는 이런 '가다'들 덕택으로 길거리에서 피해를 보는 일이 별로 없었다"고 말하면서 웃었다. 체격이 크고 얼굴마저 네모난 얼굴을 보고 누가 쉽게 시비걸 그런 체격이 아닐 걸로 보였다만.

별천지에서 나타난 친구같다는 생각이 들면서, 활기있고 붙임성있는 접근이 싫지가 않았다. 이러고 있는데 강의시간이 임박했다는 벨소리가 들려와서 그 자리를 떠서 둘이서 강의실로 향했다. 그런 첫 소개가 있은 후에 강의실 여기저기서 자주 맞부닦치는 경우가 많았다. 그럴때 마다, 한국의 남쪽 바닷가, 통영인지..., 삼천포인지의 친구를 눈여겨 보게 되었다. (다음편에 계속)

禪涅槃

2018-01-10 12:26:3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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