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꽁트> 도긴개긴...술이나 처먹어!
03/28/2019 10:3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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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꽁트>

 

 도긴개긴...술이나 처먹어!                                                손용상<소설가>

 

 동창회장인 세종체육관은 30년 만에 모인 동창생들간 오랜만의 악수들로 온통 귀가 따가울 정도로 소란했다. 문동(文東)고등학교 제18회 동창생들의 홈 커밍 데이였다. 졸업생 총 약 500명중 줄잡아 거의 200명이나 참석한 성황이었다. 그들은 적당히 배가 나오고 대머리가 된 놈, 금테 안경에 얼굴에 기름기가 흐르고 부티가 나는 놈, 그런가 하면 보기에 폭삭 찌그러져 고단해 보이는 놈들...등등 제가끔 나름대로 삶의 나이테가 굵어져 있었다. 총무의 얘기에 의하면 그 사이 죽은 놈, 해외로 이민 간 놈 등등을 빼면 대체로 전체의 반은 참석했다고 했다.

 

 어떤 모임이든 늘 그러하듯, 동창회란 주로 잘난 놈들이 무대에 올라와 설치고 출세 못한 못난(?) 것들은 그냥 아랫단에 모여서 서로 욕질이나 해대는 식으로 시끌벅적하기 마련이었다. 동창회란 것이 무슨 이익 단체는 아니지만, 그래도 연륜이 흐를수록 회장단에는 관리가 되었거나 정치판에 기웃거리며 이름께나 파는 친구들이 주도를 했다. 그리고 더하여 돈 좀 벌어 소위 출세했다는 녀석들이 몰려드는 건 어찌 보면 인지상정...그 밑에는 동창회를 이용해서 뭔가 장사라도 해보려는 약삭빠른 녀석들이 개미떼처럼 꾀어 짤짤거리고 있었다.

 누군가의 글이 생각났다. 시장의 장사치들이 제아무리 불경기라고 울상을 짓더라도 동창회와 아줌마들의 계모임은 끊임없이 열릴 것이고, 그리고 나아가 대한민국은 그들이 있는 한 늘 소란스러울 것이라는 말이 떠올랐다.

 

 그날 나병태는 기분이 영 젬병이었다. 동창회가 이런 식으로 움직이는 데 대해 공연히 배알이 꼴렸기 때문이었다. 학창시절 건달과에 속해 급우들에게 비교적 두려움과 경시의 대상이 되었던 그였지만, 하지만 어쩌랴...세월이 지나자 그런 건달들에게 늘 빵셔틀로 비위를 맞춰주던 당시 꼬마들도 이젠 아무도 알아주지도 않았고, 그보다 동창회 자체가 소위 출세한 놈들이 대세가 되어버린 마당에 왕년의 건달인들 어쩔 도리가 없었다. 그냥 당시의 서클 동료들과 따로 모여 설치는 동창들에게 삐딱하게 비아냥이나 틀며 술이나 축내는 것이 고작이었다.

 

 그러다가 그는 그 시절 특히 어울렸던 별명이 삐딱이라는 한 친구를 오랜만에 만났다. 고교 2학년 때 그의 옆자리에 앉았던 가분수 공태수였다. 녀석은 머리통이 유난히 커서인지 무게중심이 약간 왼쪽으로 기울었고, 하는 생각도 늘 삐딱해서 그런 별명이 썩 어울리던 친구였다.

, 이거 공태수 삐딱이 아녀? 오랜만이다.”

? 너 나병태? 그래...너병태지?”

그는 병태를 만나자 잠깐 멀뚱멀뚱 쳐다보다가 마치 자기 별명을 기억해 주는 것이 뜻밖인 듯한 표정을 지었다. 그러면서 자기도 병태의 별명이 새삼 생각난 듯 너병태를 강조하듯 하며 악수를 나눴다. 왜냐면 당시 그들은 함께 놀다가 뭔가 서로 트릿한 일이 생기면 서로 별명을 거론하며 으르렁 거리곤 했기 때문이었다. 말하자면 나병태는 너병태(너 바보)’로 불렸고, 공태수는 ‘5분전또는 삐딱이로 서로 치고 박고했던 사이였다. 생각해보니 그들은 서로 띄엄띄엄 인편에 소식만 들었을 뿐 졸업 후 처음으로 만났다. 병태가 물었다.

 “그래. 근데 너...듣자니 이번에 무슨 정의구현 시민단체인가, 간부됐다며?”

 “?” 

 병태 는 정말 대수롭잖게 지나가는 말처럼 했는데 그는 이 말에 적이 놀라워했다.

 “...어떻게 그런거까지 아냐? 유툽서 봤냐? ”

 “왜 몰라 임마. 요즘이 정보사회 아니냐? 너 원래 정의의 데모꾼 아녔냐? ” 

 그는 병태 입에서 시국 얘기가 나오자 마시던 술잔을 입에서 떼면서 뜨악한 표정을 지었다.

 “웃기네. 내가 무슨 데모꾼? 옛날 얘기지. 근데... 너 혹시 무슨 정보기관 끄나블이냐?

 “삐딱이 너 몰랐냐? ...말이야. 경찰청에 있어.”

 “정말여? 출세했네...”

 “아니, 뻥이여!”

 “매친...너병태거튼넘!” 

 그들은 서로 눈을 마주치며 옛날처럼 킬킬거렸다.  

 그때 본부석에서 동창회 총무가 개회를 선언했다. 이어 무슨 정당의 고위직 간부 출신인 오달(吳達)이란 신임 동창회장이 마아, 우리 문똥고등핵교 십팔해() 홈커밍데이를 만나...’ 어쩌고 인사말을 시작했다. 그는 버릇처럼 마아마아 하며 연상 입을 쩝쩝거렸다. 그는 인사말을 하는 동안 좌중이 계속 시끄럽자 다소 얼굴을 찡그리기도 했다. 사람들은 별 관심이 없었다.

 

 다음엔 감사패 증정이 있었다. 동창회 기금을 모으는 데 돈을 많이 낸 부자 회원들에게 번쩍번쩍 빛나고 크고 좋은 감사패가 주어졌다. 그런데 정말 웃기는 건 현 회장과 전임 회장이 서로 감사패를 주고받은 것이었다. 회장이 감사패를 다 나눠주고 나서 자리에 앉자 갑자기 총무가 일어나더니 이렇게 소리쳤다.

 “여러 동창들께 한 가지 묻겠습니다. 사실 이번 동창회 기금조성에 우리 오달이 신임회장이 어느 회원 못지않게 물심양면으로 많은 노력을 했습니다. 그래서 우리 회원 모두의 이름으로 동창회장한테도 감사패를 주려고 하는데, 여러분 의견은 어떻습니까?”

 이 말이 떨어지기가 무섭게 앞에 앉은 친구들은 미리 짜기라도 한 듯이 찬성이요!’ 하고 소리치며 박수를 쳤다. 진행은 일사천리로 이뤄졌다. 뒤이어 배불뚝이 전임회장이 배를 앞세우고 걸어 나와 신임회장한테 감사패를 주었다. 그는 영광스런 감사패를 두 손에 들고 만면에 웃음을 띤 채, 마치 선거판의 후보처럼 팔을 치켜세우며 좌우로 고개를 숙여 인사를 했다.

 “짜아식들, 오다리 패 저것들끼리 통반장 다해먹네...엿이나 먹어라!” 

 중간에서 누군가가 비아냥거렸다. 병태 네들은 그냥 벌레 씹은 얼굴로 바라보고만 있었다. 그런데 감사패 증정을 폼 나게 끝낸 뒤 이어 결산보고를 하는 도중에 일이 터졌다얘긴즉 무슨 동창 아버님 회갑연에 10만 원, 무슨 동창 어머님 장례식에 10만 원. 낚시회 20, 등산회 20, 신임회장 취임 화환대 20, 골프대회 상품 30, 촛불집회 후원금 30등등 한참 돈 쓴 내력을 밝히는데, 그때 곁에 있는 공태수가 갑자기 벌떡 일어서며 느닷없이 찬물을 끼얹었다.

 “듣자듣자 하니...너들끼리 잘들 해쳐먹는구나

 순간 분위기가 잠깐 썰렁해졌다. 그러자 몇몇 야당성 동창들이 와 함께 일어나 신임 회장단을 성토하기 시작했다.뭔가 맺힌 게 있는 것 같았다. 

 “야 이 자식들아, 너들 지금 뭐하고 있는 거냐! 동창화란게 출세한 놈들끼리 놀러 다니며 회장 취임식이나 골프대회에 생돈 뿌리고 다니는 데냐? 글고 촛불집회 후원금은 또 뭐냐? x불놀이에 콘돔 사다줬냐? 그게 다 우리가 회비 낸 세금인데 왜 너들 맘대로 써? 돈을 써도 옳게 쓰면 말 안 한다. 지난번 부도 나서 망한 박근철이 감방 갔을 땐 너들 위로금은 커녕 콧배기나 내밀었냐? 실패한 동창에겐 부조도 안하냐? 듣자하니 오달이 니가 박근철이 고소했다메? 그 따위로 하려면 동창회 때려치워라! 뭘 감사하다고 감사패를 주고 즈랄하시나?”

 삽시간에 동창회장은 어수선하게 변해갔다. 예서제서 오달이 스키가 박근철이를 고소 했어? 그래서 감방간거였어? 저 자슥 나쁜스키네. 어쩌고 하는 소리도 들려 왔다. 그러자 부회장이 자리에서 벌떡 일어나서 큰소리로 말했다.

 “공태수 너, 우리가 아주 못마땅한 모양인데, 너 어디 무슨 시민단체 간부 한다더니...거기서 이런 깽판 치는 수법 배웠나? 우리한테 감정이 있으면 나중 조용히 찾아와서 협상을 할 것이지 왜 동창회장을 소란스럽게 만드냐.?”

 “협상 좋아하네. 조용히 찾아가면 너들이 일자리 줄래? 우리가 무슨 부로카냐? 열팔스키!”

 옆의 몇 친구들이 비아냥거렸다. 장내가 소란스러워지자 총무가 당황한 듯 소리쳤다.

 “여러분 이성을 찾읍시다, 이성을!”

 “염병...이성 같은 소리 하고 자빠졌네. 요즘도 그런 거 가지고 있는 사람 있나?.”

 공태수가 그야말로 삐딱이답게 콧방귀를 뀌었다. 병태가 픽 웃으며 한마디 더 거들었다.

 “시키야, 너나 저넘들이나 도긴개긴이여. 술이나 처먹어!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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