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처음 밟아본 광화문광장
11/09/2019 11:4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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처음 밟아본 광화문광장

 

 

방용호

 

    서울에는 대한민국의 얼굴과도 같은, 세종로 4거리와 청계천으로 이어지는 광화문광장이 있다. 조선시대에는 광화문 앞 남북방향 세종대로에 여러 관청들이 양편으로 자리하고 있었던, 국가행사의 공간이었다고 한다. 일본식민통치 때 경복궁의 수많은 전각과 더불어 광화문이 철거되는 등 많은 공간이 왜곡되거나 훼손되었던 것을, 2009년 뜻을 같이하는 사람들이 모일 수 있는 대화의 광장으로 조성했다.


시민대화의 공간을 목적으로 세종대왕과 이순신장군의 두 동상사이에는 여러 조각품, 바닥분수와 샤프분수, 편의시설, 만남의 해치마당 등이 조성 되였으나, 광화문광장은 왕복 10차선의 차도에 쌓여 있는 탓인지 뉴욕의 Washington광장이나 런던의 Trafalgar광장에 비할 바가 못 되는 소란스러운 공간이라고 한다.

 

   그래서 광화문광장은 가족이나 친구들이 함께 여과를 즐기는 쉼터보다는 오히려 중국혁명운동의 무대인 베이징의 천안문광장(Tiananmen)과 비슷하다. 그간의 사용된 실적으로도 그렇다. 10차선을 조정함으로서 폭을 100m까지 넓일 수 있는 탓으로 국민들이 궐기행사를 하는 광장정치 공간으로 사용되어 오고 있다.

 

    광화문광장이 한국적인 광장정치의 중심으로 세계에 알려지기 시작한 것은 아마도 여객선 세월호의 침몰을 계기로 시작한 미국 쇠고기수입을 반대하는 광우병 촛불시위가 아닌가 싶다. 중고생으로부터 대학생, 종교지도자, 회사원, 유모차를 끄는 주부들까지 촛불처럼 몸을 불살라 주의를 밝게 하는 함성이 이 곳에서 연일 울렸다.


    2016년에는 언론인들이 조작하여 정치화한 박근혜-최순실 게이트를 토대로 대통령 퇴진촉구집회가 모이자, 분노하자, 내려와라는 함성을 20173월 헌법재판소의 탄핵이 선포된 후에도 이어져, 23차례나 계속되었다. 문재인정부의 수립 후로 그 광장에는 박근혜 탄핵 원천무효를 외치는 태극기집회가 등장하여 오늘에 이르고 있다.

 

    우리 부부가 인천공항에 도착한 103일에도 광화문일대는 좁은 뒷골목까지 전에 경험하지 못했던 100만여 태극기인파로 땅과 하늘이 하나가 되었었다고, 민박에서 보내온 운전기사가 자랑스럽게 말에 주웠다. 이런 저런 이유로 우리가 한국에 머문 10월의 광화문광장은 주말마다 분주했다.

 

    어쩌다 타향에서 90을 바라보는 과객이 되었지만 나도 정의와 자유를 그토록 애타게 호소하는 그 광장을 잠시라도 걸어보고 싶었다. 그 날이 바로 10월의 마지막 주말이 시작하는 금요일, 우리가 서울을 다시 떠나야만 하는 전날의 오후였다.

 

    우리 여행의 마지막 한 주간 침식을 챙겨주시면서 남해일대를 안내해준, 1980년대 인도에서 만난 모 한국중공업회사의 상무님부부의 뒤를 따라 지하철 3호선 안국역을 출발하여 율곡로 2길을 걸었다. 한자로 쓴 광화문이 보일 때 장사모님이 준비해온 태극기를 배낭에서 꺼내어 나에게 그리고 성조기는 제 처에게 주어서, 우리도 확성기에서 내 뽑는 구호의 원성에 맞춰서 고함치며 힘껏 흔들었다.

 

    나에게도 이토록 사랑하는 조국이 있다는 것이 감사했는지 눈시울이 젖어오는 것을 느꼈다. 그리고 이곳에 운집한, 전에도 몇 번 만나본 사람들 같이 느껴지는 이들에게 무엇인가를 하고 싶어졌다. 우선 태극기 10개를 사서 나누워 주다가, 세종회관의 계단에 자리한 참석자들과도 친해지고 싶었다. 빈손으로 접근 할 수 없어서 떡 세 봉지를 샀으나 그들은 제 뜻을 받아주지 않았다. 장사모님이 미국에서 여행 오셨는데 무엇인가를 하고 싶어 하는 작은 성의라고저를 대신해 주셨다. 그래서 떡 세 봉지를 더 사게 되었다.


    고장 난 전립선을 이유로 2시간도 채우지 못하고 지하철 경복궁역을 찾아 가다가전기 빛으로 문제인은 빨갱이라고 쓴 피켓을 들고 홀로 피곤하게 앉아있는 한 중년남자 앞에 나도 모르게 걸음을 멈추게 되었다. 그는 자리에서 일어나 나에게 머리를 숙이면서 손을 잡아 주웠다, 그리고는 친북사상으로 대한민국이 공산화되면 오늘의 자유는 물론 내 가정도 교회도 모두 빼앗기게 된다고 했다. 그는 계속해서 나에게 우리의 광화문함성은 좌파와 우파의 대립분쟁이 아니고 사법 행정부를 위시한 지방정부의 요직에 까지 심어져 있는 주사파의 만행들 때문이라고 했다.

 

    공항을 향해 달리는 차안에서 나에게는, 어제 잠시 걸어본 그 광장에서 그토록 애타게 부르짖는 그들을 위해 이승만과 박정희를 닮은 제3의 혁명가가 한반도 어딘가에 있었으면 하는 간절한 마음뿐이었다. 태극기물결이 분출하는 그 열망의 에너지를 대한민국의 성숙한 자유민주주의를 위해 지혜롭게 인용하는 영도자가 때를 기다리고 있지 않을까? 그리하여 광화문광장이 더 이상 소란스러운 정치공간이 아니라 대화와 쉼터를 위한 정서공간으로 바꾸어 졌으면 하는 마음이다.

 

    상무님 내외와 작별인사를 나누면서 나는 여비에서 남은 5만원 지폐 2장을 장사모님게 주면서, 어제 걸어본 광화문공간을 이승만광장이라는 대화의 광장으로 바꿀 때 보태달라고 부탁 했다. 이렇게 우리는 광화문광장의 열정과 더불어 깊어가는 한국가을의 아쉬움을 뒤에 남긴 채 언제 다시 방문할 기약도 없이 떠나오고 말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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