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선택의 지혜
09/03/2019 09: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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선택(選擇)의 지혜

 

방용호


    선택(Choice)이란 여럿 중에서 하나를 구별하여 골라내는 결정행위로서, 그 판단에 따라서 삶이 크게 달라진다. 어쩌면 우리가 그토록 추구하는 행복도 선택에 의해서 결정되는 것이 아닌가 싶다. 어떻게 옳은 선택을 하느냐는 우리들 각자에게 주워진, 사물을 이치(理致)에 따라 사리를 분별할 수 있는 이성(理性)에 의존한다. 우리에게 이성은 진실과 거짓, 선과 악 그리고 아름다움과 추한 것 까지도 식별할 수 있는 능력인 것이다.

 

    현대인들이 말하는 자유란 선택의 자유가 얼마나 있느냐에 따라서 주워지는 삶의 행복인지 모른다. 천지만물을 정복하고 다스리는 권세가 위탁된 인간에게는 출생과 죽음 그리고 가족관계를 제외하고는 스스로의 선택에 따라서 삶이 엮여진다. 자의든 타의든 모든 선택은 책임이 수반한다. 그래서 우리에게는 선택의 지혜가 요구되는 것이다.


    인간에게 선택은 자유와 더불어 절대적인 기본권리이라고 한다. 그러나 선택의 여지(餘地)는 선택의 자유(Freedom of choice)가 얼마나 보장 되였느냐에 따라서 다르다. 북조선의 김씨왕조 세습체제의 경우는 거주지의 선택은 물론 국내 나들이까지도 제한되어 있는데 비하여 남한의 시민들에게는 국회의원 그리고 국가원수까지도 선택할 수 있는 권한이 부여되어 있다. 일반적으로 자유민주주의 사회에서 허용된 선택의 자유는 개인의 경제활동이 제재된 전체주의국가들에 비할 바 없이 무한정하다.

 

    자유세계에서 사는 우리에게 주어지는 첫 선택은 생후 일 년이 되는 돌잔치에서의 돌잡이가 아닌가 한다. 부모님에 이어 만나는 형제들과 친척들은 선택은 아니다. 그러나 그들을 통하여 이웃들과 학우들을 선택하여 보고 들으면서 무엇으로 어떻게 살 것인가를 준비하는 과정에서도 많은 선택이 계속적으로 요구된다. 유교적 농경사회에서와는 달리 오늘의 우리는 생업이나 배우자를 택하는데 까지 막중한 책임이 있다. 소극적이고 수동적인 처지에서 능동적으로 자아실현의 입지를 위한 선택을 해야 하는 사령관이 되었다는 말이다.

 

    사람은 일생을 통해서 누구에게나 흥망을 좌우하는 여러 차례의 중요한 선택의 기회가 주어진다고 한다. 나는 조실부모를 한 탓으로 유년기부터 많은 선택을 스스로 결정하여만 했다. 성급하게 잘못 선택하여 가슴을 친 경우도 있었지만 돌이켜보면 옳은 선택이 더 많았든 것만 같다. 그 중 하나는 1959년 한미기술교류자금으로 미국에서 12개월간의 농업기술연수를 시작할 때였다. 나의 일정은 일당 $12을 받으며 미국의 여러 농과대학과 연구소들을 관찰(Observation)방문하는 경우와 일당 $8을 받으면서 한 대학에서 일반 대학원학생처럼 교실공부를 하느냐의 택일이었다. 나는 후자를 택하여 세 학기를 걸쳐 32학점을 취득하여 석학학위를 이수함으로서 1962년에 다시 도미하여 공부를 끝내는 기회를 얻었다.


    우리가 일상생활에서 흔히 경험하고 또 자주 엿보는 선택들은 직관적(Intuitive)으로 목적한 바에 적합하거나 합리적이고 또 윤리적이면, 그 것으로서 결정의 사유가 되는 것으로 믿는다. 미국의 심리학자 트레이시(Gary Tracy, 1944-)에 따르면 목적하는 선택에 있어서 인식하는 가장 중요한 요건(Primed)에 따라서 결정이 이루어진다고 한다. 그 선택요건이란 배우자를 택하는 경우라면 어른들이 말하는 가정배경 반듯한 본인의 인간성 과 같은 됨됨이 아닌가 한다. 산업구조가 날로 복잡해지는 탓인지 최근에는 선택의 결정을 인공지능을 인용하는 경우도 있다고 한다.


    캐나다 출신 작가 트레이시(Brain Tracy, 1944-)는 한 저서(Time Power, 2007)에서 복잡하고도 그 많은 선택들을 다섯으로 구분했다:

1) 자주적 선택: 한 기업의 총수처럼 자신이 책임지는 결정

2) 위임(Delegated)선택: 대리인을 통한 선택

3) 피해가야 할 선택: 해서는 안 되는 선택

4) 자명한 선택: 번뇌나 고심이 필요 없는 당연한 결정

5) 협의적인 공동선택: 여럿이 의논한 결과에 따라 결정

 

    정치 갈등 및 경기침체로 조용한 날이 없는 한국사회의 20199월은 더 소란할 듯싶다. 정부가 결정한 두 선택 때문이다. 그 첫째는 지소미아‘(General Security of Military Information Agreement)라는 1948 정부수립이후 처음으로, 한국과 일본 정부가 20161123일에 맺은 한일군사협정의 일방적인 파기이고, 둘째는 새로 선택한 법무부장관 후보자의 국회인사청문회에 앞서 여러 비리가 노출됨으로서 검찰이 수색 조사를 하는데 있다. 그 선택들이 합리적이냐 혹은 국가적이냐는 국민각자의 식견에 따라 다를 것이나, 한 기업이 회장의 자주적인 결정과는 달리 어느 누구에게도 책임의 추궁 같은 것은 없다는 것이다.


    책임을 안 진 역사적인 선택은 일본에 나라를 빼앗긴 조선 제26대왕 고종이 아닌가 한다. 청일전쟁으로 종주국이던 청나라가 무력하게 무너질 때 세계패권국들은 영국 및 미국 등의 해양세력이었으나 고종은 국제정세를 바로 파악하지 못하고 러시아에 기울려 친러(親露)내각을 세우고, 심지어는 러시아 공관에서 비밀리에 1896211일부터 1년을 피신(露館播遷)한 관례 없는 사건은 결과적으로 우리나라가 일제에 병합되는 화근을 제공한 셈이다. 그의 선택으로 조선은 망했으나 고종과 그의 식구들은 모두 일본 천황의 황족 신분이 되어 왕궁에서 궁녀들의 섬김을 받으며 여전히 잘 살았다. 그에게 과연 백성을 배려하는 민족애나 애국심 혹은 국가의식이 있었겠는가?

 

    고종의 아관파천과 문대통령의 조소미아 파기는 선택배경과 동기로 볼 때 유사한 점이 있어 보인다. 열거한다면: 1) 결정권자가 국제정세에 눈이 어두운 패거리(친러파 와 주사파)에 포위되어 해양패권국을 선별하지 못했다; 2) 국운(國運)을 좌우하는 매우 중요한 선택이지만 자신의 집권에만 몰두했다; 3) 결정권자에게 가장 중요한 선택요건에 나라와 국민을 사랑하는 마음이 없었다. 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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