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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버려질 사진들로 만든 나의 동영상
05/18/2019 09:3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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버려질 사진들로 만든 나의 동영상

방용호

 

 

     이름 세자만 달랑 써서 보내오던 성탄절카드도 그 수가 적어지는 듯싶더니 최근에는 부고(訃告)소식이 더 빈번해 진다. 아마도 내 세대의 연륜이 한국남성의 평균수명에 접어들고 있다는 징조인 것 같다. 고인의 명복을 기원하고 유가족들에게 조의를 표하는 이민교회의 추모예식은 그 옛날 내 고향의 농촌사회와는 달리 통곡소리를 대신한 조용한 음악소리가 조문객들의 마음을 사로잡아 고인의 마지막 길에 엄숙히 머리를 숙이게 한다.

 

     개신교회들에서 행하는 대부분의 추모예식의 식순에는 고인의 양력과 더불어 자녀들이 선택한 생존의 추억들을 닮긴 사진들을 영상으로 비춰준다. 그리고 고인이 훌륭하게 키운 자녀들을 소개한 후 몇몇 사람들의 추모사가 줄줄이 이어져, 고인의 알뜰한 성품과 생활철학을 포함한 평소 착하게 살면서 이웃들에게 남긴 미담들이 중복되는 경우도 있다. 나는 이러한 추모순서가 진행되면 나름대로 나 자신의 삶에 깊이 빠져들곤 한다. 언제부터는 꾸밈이 없는 그리고 이상적으로 한 생애를 마무리하는 나 자신의 추모예식을 설계해 보고 싶은 생각이 들었다. 어머님이 나의 출생을 위해 긴긴 시간 정성스럽게 준비하고 기다린 것처럼 나도 떠나는 이별의 절차를 마음을 다하여 소박하게 준비하고 싶은 심정인 것이다. 조문객들에게는 덜 지루하게 하는 한편 나의 소심(素心)을 마지막으로 보여주고 싶은 생각인지 모른다.

 

     어찌 보면 죽음은 한 삶을 정리하라는 조물주의 섭리임으로, 태어나는 것만큼이나 차분하게 마감 되여야 한다는 생각이 든 것이다. 그래서 나는 나의 파란곡절 많은 삶과 깊이 수놓아진 추억들을 더듬어 가면서 반추(反芻, Rumination)해 보곤 했다. 되풀이하여 추억들을 음미(吟味) 하다보면 한 삶을 스스로 이리저리로 따져보는 계기가 되어서 좋았다. 삶의 반추는 겸손과 회개의 소박한 기회를 만들어 줌으로 옹졸하고 미숙했던 나 자신을 마음속 깊이 반성한다는데 더 의미가 있는가 싶었다.


    망국지민(亡國之民)으로 태어나 이리저리로 전전하면서 알게 모르게 남에게 준 물질적 혹은 정신적인 피해, 명리(名利)에 사로잡힌 과욕 그리고 시기와 질투와 같은 추잡한 억지, 인색하고 부덕한 언행 등에 대한 반성과 용서를 비는 겸손한 작업임으로 스스로가 조용히 하는 일이다. 피해를 준 사람들을 일일이 찾아가거나 우편으로 용서를 구하고, 은혜를 입은 사람들에게는 고마움을 표시하는 마지막 계기로 생각하면 홀가분하고 감사한 마음이 생긴다. 이렇게 한 삶을 존엄하게 끝을 맺어야 하는 큰 이유는, 우리는 순수한 사랑으로 정성되게 준비되어 세상에 왔기 때문에서이다.


      흩어지고 희미하게 남은 추억들을 되살리며 한 삶을 반추하는 데는 그간 함께 만들어온 추억들과의 이별하는 어려움이 있다. 집안 구석구석에 자리 잡은 가구, 여러 사연들을 지니고 간직된 귀품, 먼 옛날에 써 놓은 일기장이나 낙서, 감사장과 우승컵, 파일 해 둔 신문잡지, 여행하면서 집어온 지도와 읽다가 좋아서 간직해온 잡지와 책 그리고 축음기판, 카세트, 시디와 같은 음악기구들을 하나씩 집어가면서, 이것들과 엮여진 사연과 연유를 회상하며 즐거운 시간을 보낼 수 있어서 좋다.

 

     주인이 떠난 세상에서 이 고물들은 어느 날 폐물로 전락되어 매몰처리장으로 옮겨지게 될 것이다. 모름지기 더러는 자녀들 누가 돈을 내고 처리를 해야 할 종목들도 허다하다. 사진들은 내 삶을 대표하는 귀물이지만 내가 없는 세상에서는 그 잔재(殘在)는 더 이상 소용이 없게 된다. 아무리 생각해도 내 사진들은 고아원에 마껴진 한 어린이가 간직하고 있는 그리운 엄마의 사진과는 달리, 어느 누구에게도 관심의 대상이 못 될 것임으로 내 손으로 폐기처리를 해야만 한다고 느껴졌다. 그러나 무엇으로 어떻게 그 귀물들을 폐물로 소각할 수가 있겠는가?

 

    그래서 나는 언젠가 폐물이 될, 쌓이고 쌓인 그 많은 사진첩에서 내 삶과 깊은 관계가 있는 사진들을 선택하여 나의 삶을 동영상으로 만들어 보기로 했다. 호랑이가 죽어서 가죽을 남기듯이 이름이라도 남기고 싶은 마음인 것이다. 그리고 내 장례식 때 바쁘게 살아가는 나의 가족들과 조문객들의 시간을 고려하여 10-15분짜리 동영상으로 고인의 소개를 대신하고 싶었기 때문이다. 사진첩에 누덕누덕 쌓여있는 사진들로부터 고르고 또 골라서 단 25장을 최종적으로 선택해야만 하는 어려움이 있었다.


     영상의 사진마다 각기 지닌 사연들을 자막으로 기록하는 한편 내가 좋아하는 찬송가(내 영혼이 그윽히 깊은데서)의 멜로디를 접목하거나 꼭 하고 싶은 말은 육성으로 주입함으로서, 나름대로 나의 개성을 나타내는 영상을 만들어 보았다. 아내와의 사진에는 여보, 평생 나와 함께 시간을 보내 주워서 늘 행복했다고 그리고 세 아들의 가족들에게는 건강하게 열심히 살아 주니 고맙다는 가슴 속에서 나오는 떨리는 말을 남겼다. 그리고 이민교회를 출입하면서 만난 지역사회의 친지들에게는 주님 오시는 그날 다시 만나자는 약속을 했다.

 

   나의 어린 시절은 외롭고 험난한 날들이었지만, 야학에서 시작한 나의 만학(晩學)은 가는 곳곳마다 좋은 사람들을 만난 탓으로 보람 있는 일들을 하면서 지구촌 오지마을을 전전할 수 있었다는 말을 남기려고 했으나 마음이 허락 하지 않았다. 대신 북조선의 내 고향사람들에게 다가올 자유의 날들을 위해 더 참고 기대려 달라고, 그리고 단신으로 월남한 나에게 꿈을 키워준 대한민국의 창대한 장래를 위해서 나는 자유민주주의 체제를 고수하는 시민의식이 퇴색되지 않고 영원토록 머물러 줄 것을 소원했다. 끝으로 고향을 떠나온 사람들이 건국한, 나의 후손들이 대대로 이어갈 이 위대한 나라 미국에는 기독교문화가 계속되기를 하느님께 기원했다.


     이렇게 언젠가 버림을 받을 사진들로 자작한 나의 동영상은 어찌 보면 내 자신이 만든 수의(壽衣, Shroud)와 같은 것이다. 나는 지금 여행준비를 끝내고 언제 올지 모르는 본향(本鄕)으로 가는 다음 열차를 기다리는 홀가분한 마음이다. 나에게는 오늘도 덤의 하루이기에 이렇게 더 없이 즐겁고 행복한 것이다. yonghobang@gmail.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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