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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겁한 한국교회의 지도자들
04/02/2020 11:3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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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겁한 한국교회의 지도자들

 

방용호

 

비겁(卑怯)이란 겁이 많은 탓으로 마음의 중심과 자부심을 잃고 당당하게 자기의 품위를 지키지 못하는 비굴함이다. 이렇게 천열(賤劣)해지면 부정적이고 소극적인 사람이 되어 용기를 잃게 된다. 국민은 비겁해지면 자기 나라가 풍전등화의 위기에 처해도 무지렁이가 된다. 대한민국이 종교의 자유를 잃으며 국가안보가 몰락 직면해 처해 있어도 강 건너 불구경하듯 방관(傍觀)하는 태도가 오늘의 한국교회 지도자들이 아닌가 싶다.


지난 3년간 한국사회에는 한미동맹이 해체되는 날 교회도 믿음의 자유도 함께 사멸된다는 말이 뜬소문처럼 계속 돌고 있다. 1951년 내가 38선을 넘어온 후 처음으로 들려오는 서글픈 목소리다. 그러나 교회 지도자들은 하나같이 황혼의 막다른 골목길에 서있는 나처럼, 강 건너 불구경하듯이 침묵으로 방관을 한다. 그것은 마치 일본군 위안부로 집을 나서는 누나동생들을 보고만 있어야 했던 한때의 우리 조상님들과 같은 자세가 아닌가 싶다.

 

기독교는 시작부터가 박해와 탄압에 항거하면서 지구촌 곳곳에 전파된 종교이다. 한국에서 가장 비참했던 기독교의 박해는 아마도 일제 강정기일 것이다. 신사참배거부운동으로 18개의 개신교학교가 폐쇄되었는가하면 구속된 324명의 교회지도자들 중 50명은 순교를 당했다고 한다. 1951년 월남하기 전 이북고향에서 그리스도인들의 박해를 경험한 나는 두 번째로 1970년대 아프리카 대륙이 사회주의로 빨갛게 물들을 때, 탄자니아 교인들의 애절한 눈동자를 보았다. 나는 또다시 같은 눈빛을 반세기가 지난 지난해 10월에 이승만 광장에서 목격했다.

 

그 광장에서 우리가 만난 태극기와 성조기를 들고 외치는 그들의 두려운 눈빛들에는 친북좌파정권이 평화라는 이름으로 대한민국을 북조선과 같은, 신앙의 자유를 말살하는 사회주의나라로 만든다는데 있었다. 그래서 그들은 옛날 이스라엘의 용감한 선지자들처럼 김정은의 대변자 노릇을 하는 문대통령의 하야를 호소하는 전광훈목사을 따라 한 목소리를 내고 있었다. 그들의 외침은 공산주의 빨갱이와 기독교는 같은 공간에서 함께 존재할 수 없다는 것이었다.

 

지난해 여름부터 문대통령의 하야를 외치던 전목사는 224일에 구속되었고, 26일에는 그가 인도하는 범투본’(문재인하야범국민투쟁본부)이 준비하던 3.1절 대규모집회는 우한폐렴을 이유로 무산되었다. 한국의 유일한 선지자 전목사는 감옥에서 연속해서 보내오는 서신에서도 12백만 기독교인들과 그들의 지도자 30만 목사들과 20만 장로들에게 뭉쳐 싸워서 승리하자는 간청을 거듭한다. 그의 45번째 옥중서신에도 한결같이 4월 총선은 대한민국의 국운을 좌우함으로, 주사파의 거짓에 현혹되지 말라는 것이었다.

 

한국교회 지도자들이 비겁하다는 나의 첫째 이유는 종북 반미정책에 대하여 침묵하고 방관하는 태도에서이다. 범투본이 김일성의 장학금으로 훈련되어 한국정부의 각 부처 요직 곳곳에 진지(陣地)’로서 구축한 100명의 친북인명을 발표한 후에도, 교회지도자들의 태도에는 변함이 없었다.http://cafe.naver.com/moontanhock). 교회가 클수록 더 잠잠하다고 한다.


진지란 이탈리아의 한 공산주의 철학가(Antoni Gramsci, 1891-1937)가 옥중에서 제시한 민주주의체제를 정복하는, 한때의 베트콩(Viet Cong)과 같은 존재이다. 남한정부의 요직에는 그러한 진지가 대학교수(17)를 포함한 법조계(3), 노동(36), 종교(10), 정치권(14), 문화예술 및 언론(13) 의료분야(2) 그리고 해외거주(5)100명 외에도, 지난 30년간(1980-2010) 북조선의 장학금으로 키워낸 무수한 사법고시 합격자들이 사법부 요소에 있다고 한다.

 

국가주체가 풍전등화와 같은 위기에 처해도 침묵하는 자세로서 어찌 진지의 역할, 베트남을 정복한 베트콩의 암적 존재를 이해할 수가 있겠는가? 그래서 나는 이 기회에 한국교회의 지도자들에게 월남이 베트콩과 월맹군에 의해 침몰될 때 이민해온 나의 이발사의 말을 그대로 전해주고 싶다: ‘그들의 숙청대상자의 첫 순위는 교회목사들이고, 다음은 베트콩의 앞잡이들이었다는

 

나의 둘째이유는 이기주의적인 태도 때문이다. 지도자가 이기적으로 내 실속에만 치중하다보면 명예욕에 매혹되거나 갑질 콤플렉스에 전의되기도 한다. 더 중요한 것은 우리에게 여럿이 함께 뭉쳐서 얻어지는 조직력이라는 위대함을 잃게 된다. 그런 탓으로 한국에는 그 많은 성도들이 70여년이 넘도록 신앙의 자유를 누리면서도 기독교의 향기를 제대로 품는, 제구실을 하는 변변한 신문이나 방송기구도 정당도 없는 침체된 상태로 머물러 있는 것이다.

 

교회가 겉으로 보이는 얼굴에만 경쟁적으로 치중하는 탓인지 한국 교회지도자들에게는 세상의 문물과 시국변화에는 관심이 없다. 그 탓으로 그들은 정경분리의 참뜻을 곡해하고 있는지 모른다. 그리고 초교파적으로 뭉치지 못하여 조직력이 없는 탓으로 미국처럼 기독교적인 문화를 만들 수도 없고 독일처럼 자유통일을 할 수 없게 된다고 믿게 되는 것이다.


자기만을 챙기는 지도자의 눈과 귀는 늘 이기적인 욕심으로 차단됨으로 조선왕조의 선비들처럼 이중인격자가 된다. 같은 주님을 섬기는 종이던 교회이던 자기에게 이득이 없으면 귀는 막고 눈은 감는다. 그래서 그들은 청와대 앞 아스팔트 단식기도와 예배에 방관했듯이 주사파정권의 감시를 받고 있는 전광훈목사가 투옥될 때도 또 그의 성도들이 공무원 120명과 경찰 400명이 기자들과 합세하여 주일예배를 집단적으로 방해하고 탄압할 때도 무관심했었다.


나의 셋째 이유는 지도력의 결핍이다. 흩어진 양떼를 푸른 풀밭으로 인솔하는 양치기처럼, 교회지도자의 지도력은 성도들이 환난과 핍박 중에서도 신앙을 지킬 수 있도록 하는 지혜의 힘이다. 그러한 조직력이 없는 탓으로 한국의 기독교는 친북집권자들이 반 헌법적이고 반기독교적인 정책을 거듭하고나 헌법으로 보장된 종교행사가 이유 없이 박해를 당해도 대응하는 힘을 못 갖게 된다는 것이다.

 

지도자들이 중심을 잃으면 국가와 사회를 좋은 길로 인도할 수가 없을뿐더러 재난을 만날 때도 보탬이 될 수가 없다. 우한폐렴으로 온 나라가 공포에 떨고 있을 때 미국에서와 같이 한날을 국가기도의 날로 정하고 초교파적으로 전지전능하신 하나님께 자비를 구했다면 얼마나 좋았을까하는 아쉬움이다. 오늘의 지도자들에게도 한국의 순교자 주기철(1897-1944)목사님처럼 신앙과 양심의 자유를 위해 불의에 죽음으로 대응하는 용기가 있으면 하는 마음 간절하다. 저자: 기독교인의 과외공부, 20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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