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갈림길에 선 한국의 사대주의
03/14/2020 19:5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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갈림길에 선 한국의 사대주의

 

방용호


사대(事大, Flunky)란 자주력이 약한 나라가 존립(存立)을 보존하기 위해 강한 나라에게 복종 하며 섬기는 태도를 말한다. 개인적으로는 약자가 강자에게 굽실거리는 아첨(Toadyism)과 같을 것이다. 어느 경우나 생존을 위한 약자의 수단인 것만은 사실이다.

 

사대나 아첨의 비굴함을 모면하려면 주체성을 키워 당당해지는 것이다. 그 주체성이 없으면 어떻게 처신하느냐가 최선의 대책이 된다. 그 대책의 하나가 바로 조선왕조 500년간 깊이 뿌리 내린 짱꼴라가 아니면 안 된다는모화(慕華)주의다. 모화사상이 수용되고 익숙해지다 보면 하나의 문화가 형성되어 중국을 아버지의 나라로 한족(漢族)문물을 흠모하게 된다.

 

모화사상을 먼저 떠오르게 하는 역사적인 사례는 조선 제4대왕 세종이 1446년 발표한 한국 최초의 국자(國字)인 훈민정음(한글)을 반대한, 崔萬理를 대표로하는 한글 창제에 기여한 집현전의 학자들이다. 세종이 창제한 한글은 지금껏 한자를 빌어서 소리로 때로는 뜻으로 취해오던 우리말의 발음을 직접 표현하는 최초의 우리글이다.

 

그들에게 한글은 첫째로 대국을 모시는 예의에 어긋남으로 비난과 노여움이 되어서 중대한 외교문제로 비화되며, 둘째는 고유문자가 있는 일본이나 몽고처럼 조선도 스스로가 오랑캐가 되는 것이었다. 그리고 소리와 글자를 합하는 것은 옛것에 어긋나는 것으로 중국문화를 섬김에 있어서 수치가 된다. 또한 한글은 배우기 쉬움으로 누구나 입신할 수 있음으로 누가 고심 노사하여 성리학(性理學)을 배우려 하겠는가하고 반대의 상소를 올렸다.

 

모화사상의 두 번째 골수분자는 제19대 대통령 문재인과 그의 수종자들이다. 그들의 외교는 모화라기보다는 맹목적이고 친화적인 것만 같다. 얼마나 친화적이냐는 유일한 동맹국가인 미국의 해외정책들에 대한 애매한 태도로도 알 수 있다. 이를테면: 1) 인도태평양동맹, 2) 사드배치, 3) 한일 지소미아 군사협정, 4)한미군사 훈련, 5) 해킹위험성을 지닌 화웨이(Huawei)’통신장비의 유통제한 등이다.

 

얼마나 주체성이 없으면 문대통령은 부인과 함께 혼밥의 처참한 신세로 국빈방문의 푸대접을 받으면서도 수치는커녕 중국을 산봉우리로 찬양했겠는가? 그의 동료들 중에는 중국은 말()이고, 그 말 등에 붙어있는 파리를 자기나라 대한민국으로 비유한 시장도 있었다.


현 정부가 친화외교를 가장 노골적으로 노출한 사례는 온 국민이 우환폐렴의 확산으로 생명에 위험을 느낄 때이다. 의사협회가 다섯 차례나 제안한 중국과의 출입국중단을 단행하지 않은 정책이다. 그들은 중국의 어려움이 우리의 어려움이라고, 더러는 한국과 중국은 같은 운명체라고 했다. 더 나아가서는 우환열병이라는 이름까지도 사용을 못 하게하는 아첨 등은 마치 황제로부터 책봉을 받지 못한 조선의 왕들과 같은 굴종의 자세였다.

?

한국은 세계적으로 7번째로 가는 무역 대국인데, 왜 현 집권자들은 한국이라는 주체성을 잃고 그토록 굴욕적인 모화외교를 할까? 그들에게 중국은 그들이 꿈꾸는 사회주의체제의 본향이기 때문일지 모른다. 아니면 중국주석 시진핑의 한국방문을 위해 황제에게 알랑거리는, 조공(朝貢)의 다른 모습인지 모른다. 한간에서는 시진핑의 봄나들이는 좌파정권이 꿈꾸는 장기집권을 위한 총선에 불씨가 됨으로 그렇게 안절부절은 못 한다는 것이라고 한다.

 

한국역사에는 모화사상의 동반자로서 사대교린(事大交隣)이라는 실리(實利)외교정책이 있었다. 교린사상은 섬기는 나라의 국력에 변동이 있거나 자국의 국익에 침해가 된다면, 어느 나라와의 교제가 더 유익이 되느냐에 따라서 정책을 바꾸는 현실주의적인 사상이라 하겠다.

 

사대교린은 조선 전기에 확립되었다고는 하지만 그 형태는 오래전부터라고 한다. 고구려는 한나라, 수나라 등의 강성한 왕조에 조공 책봉관계를 맺고 외교적 이익을 취하였는가 하면 고려도 송나라나 금나라와 사대교린적인 외교로서 국제적 위치를 도모하는 실리정책을 실시하였다고 한다. 사대교린이라는 실리정책 중에서 두 사례를 회상해 본다.

1) 신라의 제30대 문무왕(661-81)은 당나라와 합세하여 백제와 고구려를 처서 삼국통일을 이루었으나 그 동맹국이 자국을 빼앗으려는 속셈을 알아채고 견제하여 북쪽으로 쫓아냈다. 그러나 완전히 배척한 것이 아니라 문화는 받아들여 신라문화를 구축했다.

 

2) 조선조 제15대왕(1603-23) 光海君은 선왕 선조가 부르는 명이라는 아버지의 나라와 함께 임진왜란(1592-1598)을 치루면서 부국강병의 틀을 마련했다고 한다. 그러나 그에게 명은 지는 해였다. 그래서 명과 후금()간의 전쟁 때 명의 요청으로 원군 1만을 파병했으나 의도적으로 후금에 투항하게 함으로서 두 적대국사이에서 용감한 실리외교를 했다. 그러나 그는 서인(西人)정권의 인조반전에 의해 명나라의 은혜(再造之恩)을 배신했다는 이유로 폐위되었다.

 

모화사상의 골수분자 서인정권은 명나라에 충성을 계속하다가 청나라의 두 번에 걸친 침략(정묘호란, 병자호란)에 항전하다가, 결국에는 제16대왕 인조는 청나라 태종에게 항복의 삼배구고두의 례’(세번 절하고 머리를 아홉 번 조아리는)를 올려야하는 치욕을 당해야만 했다.

 

인생은 여러 갈래로 갈라진(Forked) 길목에서의 삶이 아닌가 싶다. 어느 방향에 덜 고달프고 더 편안한 길이 있을까 혹은 어느 줄이 더 쉽게 더 빠르게 목적지에 도달할 것인가를 고민하면서 한 세상을 산다. 나라의 대통령을 포함한 우리 모두도 기업의 총수들처럼 매일같이 여러 갈래의 갈림길에서 생각과 생각을 거듭하다가 과감히 선택해야하는 결단이 필요하다. 그 선택으로 흥망(Vicissitudes)이 좌우됨으로 우리에게는 지혜가 불가피하다는 것이다.

 

한국에는 오늘날에도 모화주의와 교린사상이 여전히 우리의 갈림길에 서있는 것 같다. 좌파와 우파의 정치적인 갈림이라기보다 자유민주주의와 전체주의사상의 대립으로, 지난 70년간 그런대로 성장해온 자유시장경제의 흥망이 기로에 서 있다. 그래서 모화사상에 현혹된 집권자들까지도 미중간의 패권대립에서 중국의 일대일로(一帶一路)와 미국의 인도-태평양 전략의 갈레길 에서 걸음을 멈추고 서성거리고 있는 것이다. 그들에게도 선별의 지혜가 있었으면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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