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처음 씻어본 아내의 발
07/08/2019 22:0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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처음 씻어본 아내의 발

 

방용호

 

    사람들은 하루같이 물로 몸과 손발을 씻으면서 산다. 뿐만이 아니라 물로 마음을 씻는(Ablution)종교행사도 다양하다. 물을 이용하는 종교의식에는 두 종류가 있다. 그 하나는 물로 몸과 마음을 정화함으로 경건과 충성을 뜻하는 규례이고 다른 하나는 겸손과 봉사의 의미로 물로 남의 발을 씻는 세족(洗足, Maundy)이라는 기독교 예식이다.

 

    유대교에서는 몸 전체(전신)를 물통(Mikvev)에 잠그는 예식(Tevilah)이 있는가 하면 기독교의 창시자 예수 그리스도는 세례요한에 의해 요르단 강물로 침례(浸禮, Baptism)를 받음으로서 복음사역을 시작했다. 인도의 갠지스 강의 성수에 전신목욕을 하는 힌두교와는 대조적으로 불교의 경우는, 일본에서와 같이 용기에 담은 물(Tsukubai)에다 손과 입안을 닦고 불전(佛典)에 들어간다. 이슬람교에서는 기도를 시작하기 전에 물로 손발과 귀를 씻듯이, 교회와 교파에 따라 방법과 형식은 다소 다르지만 그 어느 것이나 정화를 위한 신앙적인 자세임에는 다른바가 없는 듯하다.

 

    세족은 가뭄이 계속되는 중동지역에서 귀한 손님의 발을 물로 씻고 대접하는 고대시대의 풍습이었다고 한다. 종교예식으로서의 세족은 예수 그리스도자신이 십자가에서 처형을 당하기 전날 밤에 있었던 최후의 만찬에 앞서 12제자들의 발을 씻음으로서 시작되었다. 그래서 <부활절 전날의 수족예식> (Thursday Maundy)이라고 부른다. 예수님의 본을 받아 제자들이 계승한 수족예식은 로마가톨릭교회에서도 전승해 왔으나 1570년부터 중단되었다가 1955년 다시 회복되었다. 2013년의 부활절에 교황(Pope Francis)이 두 여성의 발을 씻음으로서 그간의 오랜 가톨릭전통을 중단했다. 수족예식은 교파와 교회에 따라 다르지만 미국에서는 일반적으로 교인들 상호간에 이루어진다고 한다.

 

    나는 사대주의사상에 익숙해진 한국유교사회에서 성장한 전형적인 한국남성으로 살고 있다. 섬김을 받으면서 한 삶을 보내고 있다는 뜻이다. 그러한 내가 교회의 세족예식에서 70이된 아내의 발을 씻으면서 표현 할 수 없는 마음의 충격을 받았다. 아내의 두 발을 잡은 순간 가슴이 벅차고 말문이 막혀, 나의 기도는 시작도 못하고 끝이 났다.

 

    15살에 어머님마저 잃고 눈물과 함께 슬픈 사연들 모두를 버리고 살아오는 내가 왜 이렇게 가슴이 터지고 눈시울이 뜨거웠는지 알 수가 없었다. 아마도 나의 직장생활 때문에 아프리카와 동남아시아의 적도나라에서 사계절 샌들을 신고 젊은 날들을 모두 보낸 아내의 발이기 때문일 것이다. 예수님 당시의 유다사람들 같이 내 아내의 발은 샌들과 함께 그 긴 세월 늘 먼지로 덮여있었다. 그것이 아니면 '내가 섬김을 받으러 온 것이 아니라, 섬기러 왔다는 예수님의 말씀을 이제 비로소 깨달은 수치 때문일지도 모른다. 여하튼 내가 처음 경험한 세족식은 나에게 섬김만을 받고 살아오는 지금까지의 삶에 부끄러움을 느끼게 했고, 늦었지만 섬김의 자세로 여생을 보내고 싶은 마음을 품게 했다.

 

    지난 세족식 때도 나는 아내의 발을 씻으면서 전에 없었던 또 다른 경험을 했다. 지금까지 아내로 부터 섬김만 받아온 과거가 너무나 죄송스럽고 염치가 없는 깨달음을 받은 것이다. 십자가의 고난 전날 밤, 최후의 만찬 전에 주님이 몸소 제자들의 발을 씻어 줌으로 보여준 섬기는 마음을 되살려주는 예식이었다. 서로 섬기기를 먼저 하라는 교훈임으로 그 옛날의 예수님제자들 철럼 오늘을 살고 있는 우리들도 세족을 행함으로서 가정과 교회, 사회와 국가에 섬김을 하라는 가르침을 주는 것 같다.

 

    발을 씻는다는 자세는 남을 받들고 섬기는 마음을 지닌 낮은 자의 수고임으로, 겸손한 마음에서 시작된다는 것이다. 종의 자세로 자기를 낮추지 못하면 발을 씻을 수가 없기 때문일 것이다. 그러기에 섬긴다는 마음은 예수를 닮은 그리스도인의 겸손이며 성숙한 인간의 모습이라 할 수 있다. 그래서 나는 예수님이 보여준 세족정신은 교만을 불태워 버린 겸손의 자세라고 믿고 있다.


    유교사회의 사대주의사상과 양반제도가 자취를 잃어간다고는 하지만 지금도 영악한 양반의 마음씨가 여전히 곳곳에 만연되어 누구의 섬김만을 강요하는 사회에서 우리는 살고 있다. 너나 할 것 없이 국가와 사회 그리고 이웃으로부터 수고 없이 섬김만을 요구한다는 뜻이다. 그래서 우리사회는 그 어느 하루도 평화스럽고 조용한 날이 없다. 교회와 같은 공동체에서도 섬김만을 바라는 상전들이 허다하다. 그들은 섬기는 수고 없이 공신(功臣)의 대접만을 바란다. 얻어지는 것이 변변치 않아 성에 못 미치면 어린아이처럼 울면서 요란하게 소동을 부린다.

 

    가정에서도 앉아서 심부름만 시키는 유교사회의 어른들이 있다. 남자로 태여 났다는 이유 하나로 섬김만을 받아온 바로 나와 같은 사람들이다. 부끄러움이 없이 자기가 할 수 있는 일까지도 남의 섬김에 의존하는 양반은 얌체(Selfish)에 속한 사람들이다. 앉아서 섬김에 의존하는 사람들로서는 정의로운 사회를 결코 만들 수가 없기에, 우리 모두가 섬기는 인성(人性)을 키워 가야만 한다.

 

    우리 모두가 갈망하는 이상적인 기독교문화는 섬기는 자세로서만이 이룩할 수 있기에 예수님이 몸소 보여준 세족사상에 깊게 접목되어야 할 것 같다. 섬기는 사람의 수가 넘쳐서 섬김을 바라는 수를 압도함으로서만이 기독교문화가 우리 사회에 깊이 정착될 수 있기 때문이다. 청운의 꿈을 지니고 대학에 진학하거나 직업전선에 첫발을 들어 놓는 젊은이들 그리고 백년가약을 맺고 사회로 진입하는 신혼부부에게도 부모형제나 은인의 발을 씻는 세족예식의 기회가 주어져, 섬기는 마음가짐으로 그들의 도전이 시작되면 어떨까 한다. 그리하여 우리의 문화는 섬기는 마음을 지닌 정치가, 기업가, 과학자 그리고 종교지도자들이 만들어 갔으면 한다.

 

    나도 예수님처럼 그리고 나의 발을 씻어 키워주신 내 어머님같이 남의 발을 씻는 마음으로 여생을 보내고 싶다. 그래서 나는 오늘도 아내의 발을 씻을 수 있는 다음 세족행사를 마음에 그려보는 있는 것이다.(저자: 황혼의 막다른 길목에서, 201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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