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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 운명을 바꾸어놓은 세 만남
06/08/2019 08:5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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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 운명을 바꾸어놓은 세 만남

 

방용호

    인간은 태어나면서 엄마를 시작으로 온갖 사람들을 여러 모습으로 만서 더불어 웃고 울면서 한 세상을 산다. 만남이 없이는 사람이 할 수 있는 일은 별로 많지 않다하여, 인간을 사회적인 동물이라고 부른다. 한 우물의 물을 마시는 농촌에 비해 도시 사람들에게 있어서 만남은 더 낯설고도 빈번하다. 지구가 지구촌으로 점점 더 협소해 지면서 오늘의 우리들에게는 만남의 이유도 더 다양해지고 있다. 우리 인생에 허다한 만남이 있듯이 국가들 사이에는 조약 그리고 기업체들에는 계약이 있다. 그 어느 것이나 인류역사가 이어가는데 있어서 불가피한 만남들이다.

 

    인생을 살다보면 인간의 지식으로서는 도저히 이해할 수 없는 초인간적인 만남들도 종종 있다. 누군가 예정한 것이 아니면 있을 수 없는, 결코 우연한 만남이 아닌 신기한 만남들이다. 나에게는 내 운명을 완전히 바꾸어놓은, 예측하지 못했던 만남이 세 번이나 있었다.

 

    그 첫째는 북조선에 있는 고향마을 야학에서 있었던 만남이다. 해방 다음해 어머니마저 잃은 나는 15살 때부터 삼촌댁에 얹혀서 농사일을 배우면서 마을 야학(夜學)에 다녔다. 그곳에서 농업은행에 근무하는 한 마을아저씨를 우연히 만나게 되었다. 그의 로부터 전해 받은 한 조각의 은행고시(告示)로 나는 6.25전쟁이 발생한 1950년 정초부터 3개월간, 평양중앙은행에서 강습을 받음으로서 원산지점에서 국영기업소와 군부대들의 재무를 담당하는 은행서기가 되었다. 그 일로 나는 인민군 증집에서 면제되어, 그 많은 목숨을 빼서간 동족상장의 와중에서, 하늘이 도운 듯이 살아남을 수가 있었다.

 

    두 번째의 기적은 1950년의 겨울 피난길에서 다섯 째 숙부님과의 만남이다. 그해 가을 북진한 UN군이 후퇴하게 됨으로 공산주의를 싫어하는 사람들은 잠시 몸을 피하는 것이 좋을 것이라는 소문이 나 돌면서, 원산부두에는 먼 바다에 떠있는 미군 LST를 기다리는 피난민들이 운집하고 있었다. 무작정 한지(寒地)에 나선 사람들 속에서 밤낮 이틀을 기다렸으나, 나에게는 승선의 기회가 주어지지 않았다. 걸어서라도 떠나야 한다기에 나는 누님이 싸주신 주먹밥을 옷 봇짐에 넣어 둘러메고 집을 나섰다. 그날이 바로 내가 원산에서 누님과 마지막, 아니 고향을 등진 69년 전의 125일이다.

 

    긴 겨울밤이 지나 새날이 밝으면서 미국군함들의 함포소리는 그쳤으나 어쩐지 나는 무서운 생각으로 더 이상 걸음을 계속할 수가 없었다. 그래서 길가에 앉아 주먹밥을 먹고 있는데 화물자동차 두 대가 남쪽을 향해 달려오고 있었다. 두 번째 짐차에서 숙부님이 나를 보고 차를 세우셔서 나도 함께 남하 할 수가 있었다.

 

    우리의 목탄(木炭)차는 동해를 따라 달렸으나 언덕길을 오르지 못하여 불가피하게 차를 버리고 걸어야만 했다. 해가 기울기전에 마을을 찾아가 침식을 해결하면서, 9주간을 도보로 포항에 도달한 것이다. 이렇게 만난 숙부님의 보살핌으로 나는 대한민국에서 23살에 만학의 기회가 주워져 서울에 있는 한 농과대학에 진학할 수가 있었다.


    세 번째의 기적은 서울의 청계천가의 한 중고서점에서 시작되었다. 대학을 졸업하고 여러 곳에 응모한 취업통지를 기다리는 어느 날, 나는 낡은 책을 팔고 사는 한 서점에서 대학시절의 외래강사님 한분을 만났다. 자기가 근무하는 농업연구소는 지방에 있지만 미국에서 파견된 교수들이 있으니 한번쯤 견학해 볼만한 곳 이라고 말씀해 주셨다. 그 외래강사님을 마난 것이 계기가 되어, 나는 비록 하찮은 임시직이지만 선발시험에 합격되어 미국 코넬대학에서 온 한 농생물학교수님의 사무실에 배치를 받았다.

 

    그 교수님의 추천으로 한미기술교환협정이 제공하는 자금으로 1년간 기술연수의 기회가 주워져, 나는 1959년 월남한지 9년 만에 꿈에도 없었던 미국행 비행기를 탔다. 해마다 나처럼 여러 정부부처에서 선발되어 도미한 연수원들에게는 일당 12불이 주어지는 순회견학과 8불을 받는 대학연수 프로그램이 있었다. 나는 후자를 택하여 한 주립대학에서 세 학기를 걸쳐, 생물학분야의 32학점을 이수하고 석사학위를 취득했다.

 

    시간에 쪼기다보니 일당 8불이 저축되어 귀국하기 전날 나는 400불을 주임교수의 비서에게, 혹시 내가 미국에 다시 오게 되면 비행기 표를 구하는데 사용 할 것이니 보관해 달라고 했다. 1961년에 귀국은 했으나 국내정치적 소란으로 나는 주임교수에게 공부를 계속하고 싶다는 편지를 냈다. 그 편지와 함께 400불의 소식을 비서로부터 전해 받은 주임교수가 알선한 학비(연구보조비)와 항공권이 준비됨으로서 나는 군사정부의 첫 사례로, 1962년 가을 다시 도미하여 학업을 마치고, 1966년 태국을 시작으로 약 30년간 동남아시아와 아프리카의 오지들을 전전하면서 많은 사람들과 함께 일을 했다.

 

    인생은 만남으로서 변화되어 성숙됨으로, 만남은 삶의 연속이며 존재의 의미이다. 이렇게 인생은 많은 만남으로 다듬어가는데, 귀중한 만남을 지속하기 위해서는 성심으로 맺어지는 믿음과 책임으로서 피차에 신뢰가 절대적이라고 한다. 이 요소가 결여되면 불행한 만남으로 끝이 나거나 만나서는 안 되는 만남이 된다. 믿음과 신뢰가 무너지면 백년을 약속한 부부도 동맹관계도 파열되고 만다. 미수(米壽)가 되도록 살면서 많은 사라들을 만났지만, 그 중에는 정치인과 공산주의를 찬양하는 사람들은 아지 없다. 나는 어쩐지 그들의 언행에서 신뢰성을 찾을 수가 없기 때문이다.

 

    인간사회에 좋고 나쁜 만남이 엇갈리는 것은 인간에게 주어진 자품(Characters)과 타고난 성정(Disposition)이 있기 때문인지 모른다. 요조숙녀처럼 안온하고 얌전한 사람은 자상하고 온순한 사람을 만나고, 선한 사람은 착하고 정직한 사람을, 게으른 사람은 건달을, 일하기 싫어하면 도박꾼, ‘주사파는 친북좌파 등등, 각자 자기 마음에 매력을 느끼는 사람들끼리 만나게 되는 것이 만남의 속성인가 싶다.


    나는 오늘도 좋은 만남을 위해 더 수련되고 또 더 슬기로워지고 싶은 마음이다. 인생은 만남의 연속이고, 좋은 만남은 자유와 행복의 그 자체이기 때문에서이다.(저자: 인생은 만나의 연속, 2008). yonghobang@gmail.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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