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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성이 흐려지면
05/29/2019 21:0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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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성(理性)이 흐려지면

 

방 용호

      인간은 성장하면서 밖으로 얻어지는 지식과 안으로 자신을 알아가는 지혜로서 인간다운 인간이 된다. 사람은 이성, 창조성 그리고 존엄성이 주추를 이루어 서로 협동함으로서 성숙해진다고 한다. 이성이란 사물의 이치에 따라 사리(事理)를 분별할 수 있는 의지와 능력이고, 창조성은 타고난 재능이 무엇이던 생존번영을 위해 개발 육성하는 근면이며, 끝으로 존엄성은 자기 스스로가 세상 그 무엇과도 바꿀 수 없는 절대적인 존재로 자각하는 자부심이다.


     이성으로 인간은 진실과 거짓, 선 과악 혹은 아름다움과 추한 것 등을 식별할 수 있음으로서, 인간다운 인간으로 살 수 있다. 이성이 흐려지면 인간은 인성(人性)을 잃게 됨으로 동물과 다름없는 존재가 된다. 한국에는 그런 사람을 개돼지로 비유하는 욕설들도 있다. 한 사회에 이성을 잃은 사람들이 많아지면 도덕적 가치와 법질서가 마비되어 불신과 다툼 그리고 분열이 형성된다. 이러한 무질서한 사회를 부정부패로 한때 국가부도까지 맞은 그리스에서는 아노미 (Anomie)현상이라고 부른다.

 

     이성이 흐려져 가치(진선미)판단을 제대로 못하면 철(Maturity)이 덜든 탓이다. 그것이 아니면 배운 것은 있으나 자신이 누군지를 아직 스스로가 깨우치지 못한, 교만한 심성 탓일 것이다. 그러면 부부로서의 도리, 부모로서의 책임 그리고 국민으로서의 의무에 무심해짐으로, 인간으로서의 품위와 예절은 물론 배은망덕한 사람으로 추락한다. 위치감각이 결여되면 아노미사회의 사람들처럼 설자리 앉을 자리, 할 말과 못 할말, 만나서는 안 될 만남, 심지어는 공사(公私)조차도 구별 못하는 미숙한 언행을 하게 된다.

 

    사람에게 식별능력이 결여되어 합리적인 판단을 못하면 개인에게는 물론 사회적으로도 허다한 혼란과 재난, 심지어는 국난까지를 초래한다. 대의명분까지도 잃는다는 뜻이다. 아마도 그 좋은 실례는 조선의 정치가 김성일이 만든 일본의 침략정황에 대한 위증상서가 아닌가 싶다. 그가 위증한 대의충절은 십만양병을 제안한 대학 정치가 병조판사(李珥)를 파직케 하여, 공수무책으로 맞은 임진왜란은 인구 3분의 1의 목숨을 빼앗기고 경작지의 3분의2는 황무지로 만들었다.

 

     이성이 흐려지면 무엇보다 메일의 대화에서 진위(眞僞)를 제대로 식별할 수가 없게 된다. 한자 중에는 ()로 시작하는 말이 허다한 것으로 보아 속임수는 비단 오늘의 것만은 아니다. 점차로 공영신문방송을 포함하여 공인들까지 빈번하게 사실을 조작하는 탓인지 쉽게 허위를 묵인하며 용서하다가 익숙해져 간다. 정치가에서는 빈곤층 사람들에게 무상복지라는 허도(糊塗)로서 인기영합(迎合)을 추구한다. 분별력의 부족으로 영특하고도 지능적인 허위사실에 국민 모두가 속으면 한 나라의 대통령까지도 철장에 가두는 끔직한 사건을 만들어 세상 사람들의 조롱꺼리가 된다.


     이성이 흐려지면 적군조차도 식별하지 못한다. 적은 늘 가까이에 있는 주변국들이라면 아군은 한국처럼 자유민주주의와 시장경제를 추구하는 나라들이다. 이 철칙에 따라 우리의 동맹국들이 누구이며 또한 어느 줄에서 국가안보를 위한 정치외교를 할 것인가를 결정해야한다. 미중간의 무역전쟁, 아니 문화적 충돌이라고도 알려진 이 패권싸움에서 어느 편에 서야할까에 대해서도 이성이 절대적이다. 마비된 이성으로 오판을 한다면 내 조국 대한민국의 운명은 조선왕국이 끝날 당시의 아노미현상을 되풀이 할 것만 같다. 이성이 흐려지면 우리가 그토록 선망하는 평화는 공짜로, 누군가에 의해 그냥 만들어지는 환상적인 것으로 오해하기 쉽다.

 

     이성이 흐려지면 쭉정이와 알맹이를 구분할 수가 없다. 알맹이를 식별할 수 없으면, 1948년 대한민국이 탄생함으로서 비로소 얻어진 투표권조차도 제대로 발휘하지 못하는 국민이 된다. 그리하여 그들이 선별한 지도자들은 민도가 낮은 자기들과 비슷한 수준이 되며, 더러는 속물근성(俗物根性)으로 두 얼굴을 지닌 위선적인 정치꾼들일 수밖에 없다. 쭉정이 지도자들에게 어찌 진정한 개혁자들처럼, 전체 숲을 보는 백년의 안목이나 국난을 예비하는 결단력이 있겠는가? 그래서 그들이 만드는 나라는 국제적으로 고립되고, 경제적으로 위축되어 사회는 불신으로 분열되기 쉽다.


     이성이 흐려지면 내 것(私有)이 얼마나 고귀한지 모르게 된다. 내 식솔, 내 집, 내 조국 등, 얼마나 사랑하고 또 자랑하고 싶은 존재들인가? 소유감은 우리에게 성취라는 열정을 있게 함으로서 스스로가 보람을 찾으며 그런대로 행복한 삶을 살게 한다. 생산수단을 공유(共有)로 하는 사회에서는 열정과 더불어 생산성이 하락한다. 이렇게 사회주의 체제는 우리를 게으르게 만들므로 생산보다는 분배에 더 마음을 두게 한다. 공유에 익숙해지면 공사(公私)의 구분이 잘 안됨으로 공금을 낭비하거나 착복 혹은 매관매직까지도 빈번해 진다. 한국에는 국가소유물 조차도 구분 못하는 사례가 법조계의 고위층에까지 있다는 보도가 있었다.

 

     한국남성의 평균수명을 넘도록 사는 동안 나에게는 초라해지는 이성과 민도를 요즘처럼 절박하게 염려하는 시절은 없었다. 자랑스러웠던 대한민국이 어쩌다 이토록 타락하여 아노미사회를 닮아 가는지를 알고 싶다. 배워 온 것이 잘못 된 것인지 혹은 나 자신을 알아가는 지혜가 그렇게도 옹졸한지를. 그래서 나는 오늘도 거울에 비췬 주름진 얼굴과 함께 얼마나 내 이성이 흐려졌는가를 타진해본다. 이렇게라도 상처 난 이성을 회복시켜 사람다워 지고 싶은 것이다. (저자: 어른을 위한 인성교육, 2016)   yonghobang@gmail.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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