wolfkang
wolfkang lim(wolfkang)
기타 블로거

Blog Open 08.23.2018

전체     12327
오늘방문     14
오늘댓글     0
오늘 스크랩     0
친구     46 명
  달력
 
분노의 하이웨이 Raging Skull
07/14/2020 22:45
조회  396   |  추천   8   |  스크랩   0
IP 108.xx.xx.50

"당신 트럭 운전하더니 변했어!"

아내가 절규하듯 내뱉은 한마디가 귓전에서 떠나지 않고 깊숙이 박혀 있다. 

어디서부터 일이 꼬이기 시작했는지 알 수 없지만 이제 인생 자체가 흔들리고 있다. 

삶의 궤도가 행복으로부터 한참 벗어나 있다.




분 노 의  하 이 웨 이

R a g i n g  S k u l l

2014년 경희 해외동포문학상 입상작

(단편 200자 원고지 217장)

Wolfkang Lim


새벽 5시, 알람 소리에 눈을 떴다. 유리창 밖으로 보이는 하늘은 아직 별들이 가물거리는 어두운 밤이다. 트럭 안에서 고약한 냄새가 풍긴다. 여러 켤레의 속옷과 양말을 모아 의자 뒤의 한쪽 구석에 처박아 둔 것이 생각났다. 좁은 트럭에서 사는 길 위의 인생은 지저분할 수밖에 없다.

커피포트에 물을 올려놓고 운전석에 앉아 창문을 내렸다. 퀭한 시선을 어두운 하늘에 던지며 찬 공기가 폐부에 스며들어 정신을 흔들어 깨울 때까지 멍하니 있었다.

집을 떠나온 지 벌써 3주째, 그동안 토론토에서 출발하여 인디애나주, 일리노이주, 퀘벡주, 펜실배니아주, 뉴저지주, 버몬트주, 버지니아주 그리고 사우스캐롤라이나주 이렇게 캐나다와 미국을 오가며 무려 10여 개 주를 종횡무진 돌아다녔다. 총 주행거리만 해도 장장 만 육천 킬로미터가 넘는다.

빈속에 마시는 뜨거운 커피가 식도를 타고 내려가 빈 뱃속에 온기를 짜르르 전해 온다. 지금 출발해야 약속 시간 8시까지 부루클린에 도착할 수 있다. 뉴욕 시내로 가는 날은 언제나 긴장된다. 교통은 복잡하고 길은 좁은데 20여 미터나 되는 대형 트럭은 갈 수 없는 통행 제한 길이 많기 때문이다.

하늘에 반짝이는 별을 보며 트럭을 끌고 하이웨이에 올랐다. 타판지 다리를 건널 때쯤 동녘 하늘이 어슴푸레 푸른빛으로 밝아 오고 허드슨 강에는 아스라이 물안개가 피어오른다. 아침 출근 차들로 차선 4개가 점점 밀리기 시작하고 나는 자꾸만 시계를 바라보게 된다. 한 시간 정도 여유 있게 출발하였는데 교통량은 자꾸만 늘어 점점 정체된다. 결국, 약속 시각보다 늦게 도착했다. 나는 안절부절 초조하게 운전해서 달려갔는데 정작 화물을 받는 회사는 왜 늦었느냐고 묻지도 않는다. 시내에 자리 잡은 오래된 상업지역이라 대부분의 건물이 대형 화물을 받는 도크 시설이 없어서 크고 작은 트럭들이 길에 세워 두고 물건을 싣고 내린다. 이중으로 주차하기도 하고 어떤 트럭은 아예 반대 방향으로 주차했다. 지게차들도 보행자 사이를 뚫고 이쪽저쪽으로 분주하게 물건을 실어 나르고 지나가는 승용차들이 요리조리 곡예 운전으로 지나간다. 무질서하고 혼잡한 상황이지만 그 누구 하나 경적을 울리거나 불평 없이 잘 돌아가는 것이 오히려 신기하다.

내가 배달해야 하는 회사도 예외 없이 도로 한가운데에 세우고 하역작업을 했다.

이런 상황에서 화물을 내리는 작업은 두 시간이 넘게 걸렸다. 이렇게 간신히 배달을 마치고 나니 다음 픽업 시간이 촉박하다. 교통체증으로 유명한 조지 워싱턴 다리를 건너 뉴저지 패터슨까지 가는 길은 짜증의 연속이다. 겨우 시간에 맞추어 화물을 픽업하고 이제 캐나다 몬트리올로 돌아간다.

오후 3시, 배가 고프다. 오늘 뭘 먹었는지 생각해보니 기억나지 않는다. 아무것도 안 먹었다. 내가 무엇 때문에 사는 거지?

힘들고 더럽다는 북미에서의 장거리 트럭운전을 시작한 지 벌써 9년째, 지저분함에 익숙해지고 경력이 쌓이는 만큼 점점 몸도 마음도 피폐해져 가고 있음을 느낀다.

오늘 밤에 캐나다 국경을 넘어야 내일 몬트리올에 배달하고 몬트리올에서 토론토로 가는 화물을 받아서 이번 주말이면 집에 갈 수 있다. 그런데 시간이 모자란다.

벌써 오후 4시, 앞으로도 3시간은 더 운전해야 겨우 캐나다 국경에 도착할 수 있다. 혼잡한 뉴저지를 벗어나 인터스테이트 하이웨이 87번 고속도로에 들어서서 바로 첫 번째 휴게소에 트럭을 세웠다. 전자레인지에 물부터 올려놓고 공중화장실로 갔다. 아침에 못 한 세수도 하고 이도 닦고 볼일도 봐야 하니까.

처음 트럭운전을 시작하였을 때는 공중화장실에서 이 닦고 세수하는 것이 창피했다. 그래서 밤 늦은 시간이나, 아침 일찍 사람이 없는 때를 이용해서 휴게소 공중화장실에 가서 볼일도 보고 세수했지만 지금은 누가 보건 말건 아무렇지 않다. 이제는 조그만 세면대에서 머리를 감거나 발을 올려놓고 씻을 정도로 용감하고 무식해졌다. 한국에서 회사에 다닐 때는 매일 실크 와이셔츠에 실크 넥타이만 매고 출근하였다. 지금은 하얀 와이셔츠를 마지막으로 입어 본지가 언제였는지 기억도 나지 않는다. 캐나다에 와서 자유분방하고 편한 옷차림이 좋더니 점점 게을러진다. 커피 얼룩쯤은 거슬리지도 않고 핫도그 먹은 뒤에 아무렇지 않게 손은 바지에 쓱쓱 문지른다. 트럭 운전사에게 패션은 사치이고 체면은 거추장스럽다. 불과 몇 년 사이에 더러워지고 뻔뻔해지고 거칠어진 자신을 보면 분명히 사람은 변한다는 말이 맞다.

라면이 다 되었다. 김치 병을 꺼내 보니 바닥에 몇 조각의 김치와 국물만 조금 남아 있다. 그냥 라면에 쏟아 부어 허겁지겁 먹기 시작했다. 사람은 변해도 라면 맛은 변하지 않는다. 신기하다. 10년 전이나 지금이나 질리지 않고 그 맛 그대로다.

서둘러서 다시 하이웨이에 올라 캐나다를 향해 출발하였다. 20,000kg의 화물을 실은 트럭은 속력을 내지 못해 주행차선에 끼어들고 나서도 기어가듯 느리게 전진했다. 10단까지 기어 변속을 모두 마치고 나서야 겨우 탄력을 받아 100km/h의 속력에 이르렀다. 즉시 크루즈 컨트롤을 작동시키고 느긋하게 뒤로 기대앉았다. 이제 쉬지 않고 3시간을 이대로 운전해서 달려가면 국경에 도착할 것이다.

라면 국물 맛이 아직도 입안에 칼칼하게 남아 있다. 담배를 꺼내 물고 라이터를 집는 순간, 우측에서 승용차가 트럭 앞으로 끼어들어 와 갑자기 정지했다. 아무 생각 없이 운전하다가 승용차의 빨간 제동 등을 보는 순간 손에 집었던 라이터를 팽개치고 황급히 브레이크를 밟았다. 타이어에서 끼이익 소리가 나면서 하얀 연기가 피어올랐다. 추돌하기 일보 직전에 트럭은 가까스로 겨우 멈추어졌다. 그러자 그 승용차는 다시 속력을 내어 앞으로 달려 나갔다.

"아니, 저놈이 미쳤나?"

승용차는 요란한 배기음을 내며 빠른 속도로 멀어지기 시작하였다. 조금 전, 승용차 한 대가 진입하려고 할 때 내가 양보하지 않은 것에 대한 보복 운전을 당했다. 내가 통행 우선권이 있으니 당연한 일이지만 트럭이 양보해 주길 기대한 승용차는 트럭이 못마땅했을 것이다.

"나쁜 놈새끼! 인정사정없이 그냥 깔아뭉개 버릴 걸!"

멀어져 가는 승용차의 뒤에 대고 빠아아아앙 사정없이 에어혼을 울렸다. 놈은 창밖으로 가운데 손가락을 내밀며 점점 멀어졌다.

"트럭운전을 그만둬야지. 젠장, 이러다가 내가 스트레스 때문에 미쳐 버리겠네."

캐나다 국경에 도착할 때까지 울분을 삭이지 못하고 우울했다.

‘세상에는 이런 환상적인 직업도 있구나!’

9년 전, 기대와 설렘 그리고 미지의 세상에 대한 모험심으로 시작한 장거리 트럭운전은 나의 상상을 초월하였다. 트럭 안에는 2층으로 된 침대가 있고. 냉장고 전자레인지 전기밥솥, 커피포트 선풍기 등 웬만한 가전제품이 실려 있으니 1년 내내 먹고 자고 생활하는 데 아무 불편함이 없다. 이런 트럭을 운전하며 미국과 캐나다 대륙을 여행하면서 돈도 벌 수 있으니, 이거야말로 꿈의 직업이다. 정말 그랬다.

몇 날 며칠을 달려도 끝도 없이 펼쳐지는 초원, 기암기석이 황홀하게 솟아 있는 바위산, 산 넘어 산 끝없는 산맥들, 삭막하지만 지평선이 까마득히 보이는 광활한 황야 그리고 한여름에도 만년설로 뒤덮인 로키산맥, 한국에서 보지 못했던 대자연의 파노라마를 두 눈으로 목격할 때마다 감동과 경탄의 환호성을 지르며 흥분했다.

자유의 여신상이 반기는 빅애플 뉴욕, 바람의 도시 시카고, 세계에서 가장 아름다운 다리 금문교의 샌프란시스코, 텍사스의 빅 댈러스, 휴스턴, 뉴올리언스, 보스턴, 솔트레이크, 밀워키, 덴버, 알라모, 산타페. 그리고 캐나다는 대서양 핼리팩스에서 태평양 밴쿠버까지……. 그뿐인가? “‘국민에 의한, 국민을 위한, 국민의 정부‘ 민주주의를 연설한 에이브러햄 링컨의 게티즈버그, 로큰롤의 황제 엘비스 프레슬리의 고향 멤피스, 역사 시간에 배운 곳, 영화에서 TV 드라마에서 나온 도시 하다못해 야구팀 미식축구 농구팀의 연고지로 알려진 곳까지 벅찬 감동에 젖는 기쁨을 누리면서 북미대륙을 달렸다.

9년 동안 정말로 엄청난 거리를 운전했다. 아메리칸 트럭 드라이버의 신의 경지라는 백만 마일 달성을 바로 눈앞에 두고 있다. 백만 마일, 즉 백육십만 킬로미터는 지구에서 달까지 갔다가 돌아와서 다시 또 달까지 간만큼의 거리이다. 그러나 트럭운전으로 백만 마일에 도달한다고 달라지는 것이 무엇일까? 별다른 의미가 없이 초라해지는 느낌이다.

북미의 장거리 트럭 운전사는 많은 직업 중에서 최하위그룹에 속한다. 어렵고 고독하고 위험하고 힘든 것도 있지만 인간적인 대우를 받지 못한다. 지금 운전하고 있는 나 자신을 보라. 맨발에 오래된 샌들을 신고 때가 줄줄 흐르는 반바지에 셔츠 앞가슴에는 커피 얼룩이, 바지에는 시커먼 기름자국이 그대로 있다. 그뿐인가? 머리는 까치집처럼 삐죽삐죽하고, 수염은 거칠게 자라있고, 피부는 꺼칠하다. 머리에 두건을 둘러 마치 ‘캐리비언의 해적’에 나오는 캡틴 잭 스패로우처럼 했지만 절대 멋있어 보이기 위한 것이 아니다.

해적선보다 더 지저분한 트럭에는 항상 먼지가 쌓여 있고 구석마다 봉지, 휴지, 돌멩이, 쓰레기가 널브러져 있는데다 옷가지는 여기저기 쑤셔 넣었고 양말이 처박혀 있다. 바닥엔 음식 찌꺼기가 말라붙어 있고 국물 흘린 자국이 여기저기 있다. 침대시트는 한 번도 털거나 개어 본적이 없다. 피곤하면 그냥 쓰러져 자고 아침에 그냥 몸만 빠져나오지 않았는가?

처음 트럭운전을 시작하였을 때는 안 그랬다. 옷도 밝고 깨끗한 색으로만 입고 트럭에 물 한 방울도 흘리지 않으려고 노력하고 매일 바닥을 쓸고 물걸레질까지 하면서 정리정돈을 잘했었다. 비록 트럭운전을 하지만 자존심을 갖고 품위를 지키는 고상한 그런 트럭 운전사가 되고 싶었다. 오죽하면 와이셔츠에 넥타이를 맬 생각까지 하였을까.

나는 변했다. 나도 모르는 사이에 왕창 변해버렸다. 게으르고 지저분하고 무식하고 사나운 아메리카의 트럭 운전사일 뿐이다. 변명하자면 셀 수 없이 많다. 깨끗한 옷을 입었다가는 금세 기름이 묻거나 커피 얼룩이 번져 몇 번 입지도 못하고 버리게 된다. 그러니 기름 묻어도 잘 표시가 나지 않는 시커먼 색만 입게 된다. 양말도 냄새나고 세탁하기 귀찮으니까 그냥 맨발로 버틴다. 음식도 먹다가 흘리면 그냥 툭툭 털어버리고. 머리가 부스스해도 거울을 보지 않는다. 이 모든 것이 시간에 쫓기고 좁은 트럭 안에서 오래 생활해야 한다는 이유로 점점 편 한대로 하다 보니 이 지경까지 오게 되었다.

미래가 없다. 내일이 없이 오늘에 묶여 사는 정체된 직업이다. 경찰들은 필요한 때는 절대 안 나타나고 꼭 필요 없는 경우에만 번개처럼 나타나 범죄자 취급하듯 심문하고, 공공의 안전을 위한다는 명목으로 화물검사소의 인스펙터들은 트럭을 몇 시간씩 묶어 두고 트럭 밑바닥까지 샅샅이 점검하면서 뭔가 불량한 사항을 찾아내기 위하여 눈을 번뜩인다.

마치 트럭운전을 하는 나는 공공의 적이라도 된 것처럼 범법자라는 느낌이 든다. 심지어 화물을 싣고 내리는 지게차 운전사들도 이래라저래라 강압적으로 명령한다. ‘휠 초크를 해라, 랜딩기어를 내려라, 에어라인을 뽑아 놓아라,’ 그것도 부족해서 에어라인에 자물쇠까지 채워 놓기도 한다. 심한 경우 트럭 키를 압수해서 가져가기도 한다. 화물을 싣고 내릴 때는 트럭에 앉아 있지 마라. 안전모에 안전복에 안전화까지 신어야 하고 귀마개 보안경까지 쓰라고 하는 엄격한 회사도 있고 머리털 떨어진다고 하얀 보자기를 머리에 둘러쓰게 하여 미장원에서 파마하는 아줌마처럼 만들어놓는다. 머리뿐 아니라 턱수염에 씌우는 보자기도 있는데 턱수염을 기르는 성의와 권리를 인정하고 보호해주는 것 같지만 그 꼬락서니는 우습기 짝이 없다.

어떤 화학 공장은 일하는 직원 모두 방독면을 쓰고 일한다. 운전사는 유독가스를 마시든 말든 관심 없다. 들어갈 때 정문에서 15분 간 안전교육을 하고 발싸개 한 벌만 준다. 신발을 감싸도록 고안 된 비닐봉지인데 신발을 보호하기 위한 것인지 자기네 공장이 더러워질까 봐 주는 것인지 아리송하다. 그런 화학 공장에 가면 괜히 숨 쉬는 것조차도 무섭다. 화물을 싣고 내리고 기다리는 동안 화장실도 못쓰게 하는 악질 회사도 있다.

이 모든 것이 스트레스로 쌓이게 된다. 트럭 운전은 먹이사슬의 밑바닥에 존재하여 가정과 건강 모두 파멸시키는 비인간적인 직업이다. 그래도 이런 트럭 운전사에게 인간적으로 대해주는 사람도 있다. 바로 트럭 스탑의 캐쉬어와 레스토랑의 웨이트리스들이다. 직원들 특히 여자들은 트럭 운전사를 "허니" "스위티" 라는 다정한 호칭을 부른다. 트럭 운전사에게 유일하게 친절하며 웃음을 주고 기쁨을 주는 그들이다. 때문에 비싸도 트럭스탑에 가는 이유는 단지 넓은 파킹 때문만은 아닐 것이다.

나도 트럭 스탑에 가면 내 집에 온 것처럼 마음이 푸근하고 평온해진다. 이미 아메리카 트럭커가 되었다는 뜻이다.

트럭 운전의 유일한 즐거움은 자유다. 한가한 하이웨이를 여유 있게 운전하는 순간만큼은 모든 것에서 벗어 난 자유의 시간이며 구속이나 속박이 없는 혼자만의 세계를 만끽한다. 남들이 가보지 못한 세계로 여행하는 기분이며 마음껏 상상의 날개를 펼칠 수 있고 좋아하는 음악을 즐기고 주변의 경치를 즐기면서 쉬고 싶을 때 쉬고 운전하고 싶을 때 운전하는 한가로운 여행자 같은 기분이다.

하이웨이를 운전하는 순간만큼은 트럭커만 누릴 수 있는 최고의 행복한 순간이다. 북아메리카 구석구석을 들여다 볼 수 있는 것 또한 일반 사람들이 하기 힘든 경험이다. 이런 즐거움도 처음 시작한 1, 2년의 일일 뿐, 웅장한 로키산맥도 자주 보면 신비감도 줄고 경이로움도 느끼지 못한다, 도리어 넘어 갈 때 걸리는 시간이 아깝다는 생각을 하게 된다. 더구나 겨울에는 눈길이 무섭고 지겹다. 복잡한 시내를 들어서거나 교통체증이 있거나 날씨가 나쁘면 이 또한 고생길이다. 거기에다가 오늘처럼 이렇게 재수 없는 놈을 만나 보복운전이라도 당하는 날에는 심신이 최악으로 치닫는다.

해가 갈수록 하이웨이 운전이 복잡하고 삭막해지며 운전자들은 더욱 더 난폭해지며 신경질적으로 변해가고 있다. 세상이 변하고 있다. 아니 내가 변하고 있다.


캐나다 국경에 도착하자 트럭들이 꼬리에 꼬리를 물고 길게 줄을 서 있다. 하이웨이를 달릴 때는 트럭이 몇 대 보이지 않다가도 국경에만 도착하면 이렇게 수십 대가 줄을 서서 통관을 기다리고 있다. 이 많은 트럭이 어디에 숨었다가 이렇게 동시에 나타나는 것일까? 짜증난다.

항상 운이 없는 걸까? 내가 줄 마지막에 서고 나면 내 뒤에는 트럭이 안 온다.

왜 나만 이렇게 재수가 없을까? 팀호톤스 커피샾만 가도 그렇다. 내가 문을 들어서면 앞에 줄이 길게 늘어져 서 있다. 끝에 서서 한참을 기다렸다가 내 차례가 되어 주문하고 나면 내 뒤로는 한 사람도 없다. 정말 세상은 불공평하다.

한대 빠져나가면 찔끔 앞으로 가서 정지하고 또 한참 기다렸다가 찔끔 앞으로 가고, 이 노릇을 수십 번 반복하고 나서 드디어 내 차례가 왔다.

통관서류와 여권을 준비해 놓고 있다가 세관원에게 서류를 건네주었다.

‘미국에 얼마 동안 있었는가? 술이나 담배 산 것 있느냐? 총기류나 무기를 소지하고 있느냐? 만 달러 이상의 현금을 가지고 있느냐?’

세관원은 의례적인 질문을 마치고 노란 종이를 꺼내드는 순간 뭔가 잘못되었다는 것을 직감했다.

"당신의 화물은 아직 세관 통과허가가 나지 않았습니다. 트럭을 주차하고 세관 브로커를 만나서 통관절차를 마친 다음 확인받으세요."

분명히 10시간 전에 서류를 팩스로 보냈기 때문에 틀림없이 통관 허가가 나와야 하는데 그게 안 나왔다. 세관 브로커의 여직원이 깜빡 빠트렸거나 문제가 발생한 것이 분명하다. 브로커는 큰 회사이고 그동안 한 번도 실수 한 적이 없어서 안심하고 왔는데 오늘은 이상하게 일이 꼬인다.

이제 절차를 마치려면 지금부터 한두 시간은 걸릴 것이다. 세관 주차장에 트럭을 세우고 브로커 사무실을 찾아 갔다. 그런데 얼마 전까지 있던 사무실이 텅 비었다. 이상하다 분명히 여기에 사무실이 있었는데……. 간판도 없고 사무실은 비어 있다. 다시 세관원에게 가서 물어보니 브로커 사무실이 얼마 전에 닫았다고 한다.

일은 한번 꼬이면 계속 꼬이는 법이다. 경기가 침체 되니 트럭운송업도 나빠지고 덩달아 관세사들도 일이 적어져서 바쁘지 않은 국경의 사무실을 철수 해 버린 것이다. 이제는 본사에 서류를 팩스로 다시 보내고 기다려야 한다. 오늘 내로 국경을 통과하기는 틀렸다. 내일 집에 갈 수 있다는 희망도 미루어졌다.

요즘 신경질 나는 일만 걸리고 제대로 되는 일이 한 개도 없다. 이상하게 일이 엉망으로 뒤틀리고 있다.

무릎이 시큰거리며 아프다. 지난번 트레일러 안을 청소를 마치고 뛰어내리다가 충격이 있었는데 무릎을 굽히면 시큰거린다. 마사지도 하고 안티푸라민을 발랐는데 좀처럼 낫지 않는다. 트럭 운전사들이 자주 다치는 것은 일종의 직업병이다. 특히 발목부상이 많은데 그것은 어이없게도 트럭에서 내려오다 다친다. 트럭이 좀 높기는 해도 발목이 삐거나 부러질 정도의 높이는 아니다. 그것은 트럭 운전사들의 절대적인 운동 부족으로 몸무게에 비해 발목이 약하다는 뜻이다. 손가락, 관절, 팔목, 어깨는 장시간 핸들을 붙잡고 있어야 하고 긴장된 상태로 근육이 경직되어 있어서 쉽게 통증을 일으킨다. 가끔 뭔가를 집기 위해 팔을 쭉 뻗다가 근육이 놀라 경련을 일으키는 경험을 한다.

트럭 운전사들을 어처구니없이 다치는 경우가 많다. 트레일러 밑에서 머리를 부딪혀 깨지고, 랜딩기어 돌리다가 허리가 삐끗해서 한 달 동안 꼼짝 못 하고, 팔이 부러지고, 볼트 커터로 실 볼트를 자르다가 갈비에 금이 가고. 항상 조심해도 수면부족에 불규칙한 식사에 운동부족까지 겹쳐 일어나는 잦은 부상은 어쩔 도리가 없다.

이도 많이 상했다. 이제는 부분 틀니를 해야 한다. 내가 인생을 사는 건지 뭘 하는 건지 모르겠다. 분명한 것은 나도 이제 지쳐 가고 있다는 것이다.

나는 국경 세관의 주차장에서 밤을 보내고, 다음 날 아침에 통관 수속을 마쳤고 예정보다 하루 늦게 집에 도착했다. 일을 하루 더 한 셈이지만 마일당 임금을 계산하므로 수입에는 변화가 없다. 소득 없이 하루를 손해 보는 것 또한 신경질 나고 화나는 일이다.

집에 도착하여 아파트 정문을 들어가고 있는데 아파트 경비원이 나를 불러 세웠다.

"어디 가십니까?"

인도계의 젊은 경비원은 전에 보지 못한 얼굴이니 새로 온 경비원임이 틀림없다. 오래된 경비원들은 이미 나를 알고 있으니까 인사를 하는 판인데 새경비원은 위아래를 훑어보며 위압적인 자세로 묻는다. 이 녀석이 정말 몰라서 물어보는 걸까?

"내 집에 간다." 퉁명스럽게 대답했다.

"몇 호에 사십니까?" 젊은 경비원도 쉽게 물러서지 않는다.

"20xx호에 사는데……."

"제가 따라가 봐야겠습니다, 괜찮겠지요?" 사뭇 사무적으로 말한다.

이 아파트에서만 벌써 10여 년을 넘게 살고 있는 나를 몰라보고 불청객 취급을 하다니 무시당하는 것 같아서 기분 더럽다. 경비원이 앞장서서 엘리베이터를 타고 20층 번호까지 누른다. 엘리베이터 안에서 서서 무심코 거울에 비친 내 모습을 보던 나는 그만 피식 웃고 말았다. 부스스한 머리에 수염은 더부룩하고 꾀죄죄한 몰골의 거지가 거울 속에서 나를 바라보고 서 있다. 구겨진 검은 자켓, 색이 바랜 작업복 바지 어깨엔 가방을 둘러메고 손에는 지난 3주 동안의 빨랫감이 든 큼직한 비닐 백을 들고 있는, 그야말로 노숙자 꼴을 하고 있는 나의 모습은 옆에 하얀 와이셔츠를 입고 서 있는 경비와 극과 극의 대비를 이루었다. 거지 아니면 보따리장수다. 좀 더 심하게 말하면 좀도둑처럼 보인다. 경비원이 의심할 만도 했다. 오기 전에 샤워하고 옷이나 갈아입을 걸 후회가 되었다. 내가 아파트 문을 열고 들어가는 것까지 확인한 경비가 "굿나잇" 인사를 하고 돌아갔다.

동료의 이야기가 생각났다. 그는 트럭을 회사에 세워 두고 비행기 타고 집에 간다. 뭐 거창한 것 같지만 4시간 운전 거리에 살고 있어서 비행기 타고 출퇴근하는 것이 편하고 경제적이다. 매일 출퇴근 하는 것이 아니고 한 달에 한두 번이니까 그렇다.

어느 날 그가 비행기를 타려는데 스튜어디스와 경비가 그를 불러 세워 공항 안의 사무실로 데리고 가더니 신원조사하고 보따리, 가방 모두 뒤지고 주머니 속까지 다 비워 조사하였다. 마치 마약범이나 테러범으로 취급되었다

그동안 여러 번 이 비행기를 타고 다녔으므로 그를 알아볼 듯도 한데 도대체 왜 그러는지 영문을 몰랐다가 한참 후에야 그 이유를 깨달았다. 그가 재킷을 뒤집어 입고 있었다. 비행기 시간에 맞추어 오느라고 허둥지둥 서둘러 오다가 그만 재킷을 뒤집어 입고 비행기에 올랐고 스튜어디스가 보기에 어떤 시커먼 거지 같은 놈이 보따리 들고 재킷을 뒤집어 입은 채로 비행기를 올라타니 정신 이상자로 의심한 것이다. 아메리카 트럭 운전사들의 웃지 못 할 비극이다.

트럭 안에서 자는 잠은 아무리 오래 자도 피곤하다. 집에 오면 피곤한데다 긴장이 풀려서 그런지 이틀 동안 계속 잠만 잤다. 3일째 되는 날, 아내의 성화에 겨우 일어나 정신을 차렸다. 치과와 가정의를 만나야 할 약속이 있는 날이다.

"잇몸이 많이 상했군요. 스케일링을 자주 해서 더 악화되는 것을 막아야 합니다."

치과의사가 엑스레이 사진을 보여주며 설명했다.

"의학이 급진적으로 발달하였는데도 잇몸에 염증 하나 치료 못하다니 이상하군요."

"치료를 못하는 것이 아니라 치료를 해도 자꾸 재발하는 것입니다. 이건 일종의 치주염인데 예전에는 풍치라고 하였지요. 여기서는 트렌치 마우스(Trench Mouth)라고도 합니다. 1차 세계대전 때 참호 속에서 적과 대치하던 병사들에게 많이 발생해서 그렇게 부릅니다. 병사들이 전쟁 중에는 이를 제대로 닦지 못하고 수면부족과 긴장된 상태로 오랫동안 지내므로 인해 발생하는 흔한 질병입니다."

"그건 맞는 말이네요. 트럭운전도 마치 전쟁터에 나가 싸우는 거나 다름없습니다. 24시간 긴장 상태로 일하고 제대로 씻지도 못하고……. 운전 중에 나도 모르게 어금니를 꽉 물고 있는 자신을 발견합니다. 턱이 아플 정도로 악물고 있어요."

"그것은 몹시 나쁜 습관입니다. 이에 아주 좋지 않은 영향을 주고 턱관절에 무리가 됩니다. 좀 더 편안한 마음을 갖도록 해 보세요"

"편안함이요? 하이고~ . 의사 선생님도 트럭운전 한번 해보세요. 성격 거칠어지고 더러워집니다. 더구나 요즘은 신경질이 팍팍 뻗쳐서 미칠 지경입니다. 화만 나고 일도 꼭 골치 아픈 일만 걸립니다. 운전도 초보 때는 얌전하게 잘했는데, 지금은 아주 거칠어졌지요. 이러다 사고를 일으키지나 않을까 걱정입니다."

"신경정신과 의사를 만나 상담해 보시는 게 어떠세요?"

"뭐요? 정신과 의사요? 아니 그럴 정도로 심각한 게 아니라 그냥 그렇다는 걸 뿐인데……."

정기적인 스케일링 하러 갔다가 치과의사로부터 엉뚱한 소리를 들었다. 치과의사가 나보고 정신과 의사를 찾아 가보라고 하다니, 기분이 언짢아졌다. 그런데 정작 틀린 말은 아니다. 요즘 슬럼프에 빠진 야구선수처럼 성적도 형편없고 되는 일 없이 피곤하고 무력해진 것 같다.

오후에는 가정의를 만났다. 트럭 운전사들은 3년에 한 번씩 신체검사를 해야 면허증이 유지된다. 그래서 3년에 한 번 가정의를 만난다. 혈압검사와 시력테스트를 마치고 신체검사 확인서에 사인을 받고나서 나는 가정의에게 질문했다.

"요즘 턱이 아플 정도로 이를 꽉 무는 습관이 생겼는데 괜찮은가요?"

의사가 내 기분을 알아차린 듯 부드러운 말로 덧붙였다.

"이를 꽉 무는 습관은 스트레스를 많이 받고 있을 때 흔히 일어나는 현상입니다. 아마 트럭운전을 오래 하신 것 같은데 어느 정도 휴식을 가질 필요가 있다는 뜻입니다."

"진짜로 미칠 노릇은 따로 있습니다. 보름 동안 운전하고 집에 와서 쉬는 날에는 꿈을 꿉니다. 그런데 그 꿈이 모두 트럭운전을 하는 꿈입니다. 악몽이라고 할 수는 없는데 기분 나빠요. 길을 잃기도 하고, 세워 둔 트럭을 못 찾고 헤매기도 하며, 또 어떤 곳은 길이 없어서 절벽으로 돌진하고, 트럭을 강탈당해서 콘크리트 속에 묻혀버리기도 합니다. 험악한 꿈을 꾸는데 신경과민인가요?"

"평소 느끼는 불안감이 꿈이란 형태로 나타나는 것입니다. 강박관념이죠. 신경정신과 치료를 받아야 합니다. 긴장에 따른 스트레스와 과로에 의한 불안감이 쌓여서 신경질적이거나 폭력적으로 변하기도 합니다. 사람에 따라 스트레스에 의한 반응은 아주 다양합니다만 대표적인 것은 우울증입니다. 소심한 성격은 대부분 우울증으로 나타나 점점 심해지게 됩니다. 유명 인사들은 이 우울증이 있어도 표현을 하기 어려워 남모르게 심해지고 최악의 경우 자살이라는 극단적인 결과를 초래하게 됩니다. 연예인들의 자살이 대부분 이 케이스입니다. 다음으로 나타나는 증상은 분노 폭발입니다. 경우에 따라서 분노 제어(Anger Management)가 필요하게 됩니다."

"그러고 보니 그런 충동을 가끔 느낍니다. 트럭을 질주하다가 고속도로 밖으로 내달리고 싶기도 하고, 숲속으로 돌진하고 싶을 때도 있고, 공사판에 죽 서 있는 안전배럴을 볼링 하듯 싹 쓰러뜨리고 싶고, 심할 때는 앞에 밀려 서 있는 차들을 깔아뭉개고 싶은 충동이 불쑥 들곤 합니다."

"현대인의 정신장애는 복잡하고 다양해서 원인과 증상을 구분하기 어렵습니다. 우선 겉으로 나타나는 증상만으로 구분해도 정신분열, 우울장애, 강박장애, 지적장애, 과민성장애, 양극성장애, 반사회성, 편집성장애, 외상성 스트레스, 신체형장애, 약물중독 및 공황성 장애 등이 있습니다."

"뭐가 뭔지 모르겠지만 모두 정신장애라는 소리 같습니다."

"지금 느끼는 충동은 바로 '수동 공격성 인격 장애'에 속한다고 할 수 있습니다. 분노 폭발의 증상입니다. 흔히 우리가 화가 나면 뭔가 때려 부수고 싶은 충동이 일어나는 것처럼 자연적이고 본능적인 반응입니다. 다만 우리가 어느 정도 분노를 제어하고 조절할 수 없는 경우가 문제를 일으키게 됩니다. 정신질환은 뇌에 이상이 있는 경우도 있지만, 신경전달물질의 이상으로 생기기도 합니다.”

"그만하시죠. 자꾸 듣다 보니 신경이 더 이상해지네요."

"하하하 그렇습니까? 말이 정신 질환이지 결코 어렵고 복잡한 것 아닙니다. 환경이나 분위기만 바꾸어도 증상이 없어지기도 하고, 정신과 의사와 간단한 상담만으로도 나아지기도 합니다. 또는 약물치료와 병행하여 그 효과를 높이기도 합니다. 필요한 경우라면 수술까지도 합니다."

"아니 정신병에 수술도 한다고요?"

"그렇습니다. 환자들이 꺼려서 그렇지, 수술의 효과는 정신과 학계에서 증명되고 보장하는 확실한 방법입니다. 선생님은 심각한 경우가 아니므로 일단 스스로 안정을 취하는 방법만으로도 치료가 될 것입니다만 순간적인 분노를 일으키면 운전하는 직업상 위험할 수 있으므로 처방을 하나 해 드릴 테니 필요하면 드시고 그렇지 않으면 드시지 않아도 됩니다."

"그러지요. 뭐."

"원하시면 지금 신경정신과 의사를 소개해 드릴 수 있습니다."

"그럴 필요는 없어요, 아직 괜찮습니다."

"일단 본인이 문제점을 자각하고 있다는 것은 좋은 일입니다. 걱정하지 않으셔도 됩니다. 별문제 없을 것입니다. 의학계에 보고된 자료에 의하면 현재 북미의 인구 중 40%가 신경성 장애를 겪고 있습니다. 트럭 운전사만 아니라 이민자들에게 흔히 있는 현상입니다."

가정의는 별일 아니라는 듯이 말하였지만 나는 결코 기분 좋은 이야기가 아니었다. 증세가 비록 미약하다 하더라도 스트레스, 과로, 우울증, 불안증, 신경성 장애. 분노 조절……. 그냥 한마디로 말해서 정신장애라니? 잘살아 보겠다고 여기 캐나다까지 이민 와서 트럭 운전을 하고 있는데 정신장애를 겪어서야 될 일인가? 기분이 더 착잡해졌다.

약국에서 처방 종이를 받아 든 약사가 나를 한 번 쳐다보았다. 평소에는 아무렇지 않는 일인데 오늘은 영 기분이 좋지 않다. 한참 후에 약사는 하얀 라벨을 붙인 주황색의 약통을 건네주었다. 나는 약통을 대충 읽어 보고 그대로 주머니 속에 집어넣었다. 처방 약을 받기는 하였지만 복용하고 싶은 생각은 전혀 없다. 어차피 약값은 전부 회사 보험으로 처리되므로 그냥 받아 두자는 생각이었다.

다시 장거리 트럭운전의 길을 나서는 날, 2주간의 예정이지만 3주가 될지 한 달이 될지, 마지막이 될지는 돌아오는 날 알게 된다. 요즘 들어 이렇게 떠나는 것이 싫어졌다. 정신없이 픽업과 딜리버리에 맞춰 달릴 때는 못 느끼지만 이렇게 이틀 삼일 쉬고 집을 나오는 날은 정말 전쟁터에 끌려가는 기분이다. 삼일 만에 다시 보는 트럭과 트레일러는 거대한 괴물처럼 더 커 보인다. 내가 이렇게 큰 괴물을 9년 동안이나 운전하고 다녔다는 사실이 믿기 어렵다. 그래도 첫날이니까 기운을 내자, 스스로 다짐한다. 열심히 일해야 아내와 자식들이 옷도 사고 외식도 할 수 있다.

"자기, 조심해서 잘 다녀와!"

아내는 그동안 수도 없이 이 같은 이별을 했건만 쉽게 돌아서지 못하고 머뭇거린다. 만날 때의 반가움 보다 헤어질 때의 안타까움이 더 큰 것은 왜 그럴까?

"그래, 잘 갔다 올게."

일부러 힘차게 대답하지만, 마음이 무겁기는 천근만근이다. 아내의 뒷모습을 보지 않으려고 내가 먼저 돌아섰다.

트럭을 점검하고 있는데 회사 안전부서에서 나를 호출했다. 인사복지담당 직원이 서류종이를 내밀었다.

"뭐냐?"

"울프, 너와 함께 운행 나간 신입운전자 중 한명이 불평 신고를 했다. 경위서를 작성했으니 읽어보고 서명해라."

"뭐라고? 어느 녀석이 내게 불평을 해?"

나도 모르게 언성이 높게 터져 나왔다. 사무실에 있던 다른 직원들이 모두 깜짝 놀라 나를 바라보았다.

"진정해, 울프!"

"진정하라니? 말이나 되는 소리냐? 내가 경력도 없는 신입운전자들을 가르쳐 준다고 나름 열심히 했는데 불만이라니? 어떤 놈이야? 아냐, 말 안 해도 누군지 알겠어. 치사한 녀석!"

나는 흥분해서 고함을 질렀다. 불끈 쥔 주먹으로 책상이라도 내려칠 기세였다.

신입운전자를 교육한다는 것은 정말 귀찮은 노릇이다. 처음 만난 남자와 함께 좁은 트럭 안에서 생활하는 것은 거북하고 또 사고에 대한 책임감은 부담이 된다.

그의 불평에 따르면 나는 친절하지 않고. 자세히 가르쳐 주지 않으며, 참을성 없이 화를 내고 윽박지르며. 양보와 배려가 없는 아주 이기적인 사람이라는 것이다.

트럭 운전은 사고의 위험이 매우 높으므로 처음부터 엄격하고 확실하게 배워야 서로에게 좋다고 것이 내 철학이다. 그런데 인격을 평가당하는 기분이 들어 화가 났고 불평을 그대로 받아준 회사는 더 야속했다. 내가 어찌 화가 안 나겠는가?

내가 큰 소리를 질러서 그랬는지 매니저는 일단 보류하고 본사 디렉터에게 넘기겠다고 했다. 그러라고 했다. 화가 솟구쳐서 사장이 와도 무섭지 않았다.

신입 운전사는 내가 위협적이고 강압적이라고 했다. 평생 처음 듣는다. 나는 160센티미터 키에 몸무게는 60킬로그램도 안 되는 작은 체격이다. 머리숱이 적고 이가 빠져 있어서 위협적이기보다는 오히려 바보 같아 보인다. 어처구니없는 것은 내가 클래식 음악만 듣는다고 이기적이라고 말했다니 그게 말이나 되는가?

물론 내 라디오는 위성방송의 클래식 채널에 24시간 고정되어 있다. 심포니에서 오페라, 비발디에서 번스타인에 이르기까지 모든 클래식 음악을 전곡 감상하는 것을 좋아한다. 클래식 음악을 모르는 것은 이해해도 클래식 음악을 불평하는 것은 영혼을 울리는 아름다운 음악에 대한 모독이다.

운행 첫날 아침부터 기분이 더 심란해졌다. 어쩐지 이번 운행은 예감이 좋지 않다. 회사 정문을 나서는 트럭은 다른 때보다 무겁게 느껴진다. 마치 끌려가지 않으려는 소를 억지로 잡아끌듯 힘이 들었다.

미지의 세상을 찾아 떠나는 기대감과 기대하지 않은 일이 발생하는 두려움이 합쳐져 묘한 설렘을 주는 것이 북미의 장거리 트럭운전이다. 항상 아무 탈 없이 돌아올 수 있기를 기대하였고 지금까지 어렵고 힘들고 고생스러운 우여곡절을 거치긴 했어도 지금까지는 무사히 돌아왔다.

그러나 오늘 출발하는 나는 트럭에 가득 실린 화물보다도 몇 배나 더 무거운 짐이 내 어깨를 짓누르고 있음을 느낀다. 오랜 트럭운전으로 피곤하고 지쳐서 그렇고, 의사가 신경 안정제를 처방 해 준 것도 거슬리고, 의욕을 상실하게 했지만 진짜 마음이 천근만근 무거운 이유는 따로 있다. 어제저녁에 아내와 말다툼을 한 것이 가슴 한쪽에 응어리져 있어서 좀처럼 풀리지 않는다. 그 감당하기 힘든 무거움이 내 인생의 바닥으로 나를 끌어내리고 있다.

사람은 참 이상하다. 나는 분명히 아내를 사랑한다. 아내도 나를 사랑하고 있음이 분명하다. 그런데 왜 말다툼을 하게 되는 걸까? 아내가 쫑알쫑알 말대꾸하다가 케케묵은 오래전 이야기까지 끄집어내서 속을 뒤집어 놓는 바람에 나도 모르게 버럭 폭발하였다. 급기야 험한 고성이 오고가고 결국 아내를 눈물을 흘리고 말았다. 아내와 나는 곁에 있던 딸이 눈물을 흘리는 바람에 싸늘한 냉전에 돌입하였다. 어쩌면 부부싸움 자체가 무의미한 것이고 부부라면 반드시 해야 할 일의 하나인지도 모른다. 중요한 것은 싸우더라도 서로 지켜야 할 선을 넘지 않아야 하는데, 내가 필요 이상으로 화를 낸 것 같다. 그런데 도대체 무엇 때문에 말다툼이 시작됐는지 기억나지 않으니 정말 미치고 환장할 노릇이다.

"당신 트럭 운전하더니 변했어!"

아내가 절규하듯 내뱉은 한마디가 귓전에서 떠나지 않고 깊숙이 박혀 있다. 어디서부터 일이 꼬이기 시작했는지 알 수 없지만 이제 인생 자체가 흔들리고 있다. 삶의 궤도가 행복으로부터 한참 벗어나 있다.

 

어디론가 멀리 떠나고 싶을 때가 있었지.

자, 지금이 기회다! 멀리 떠나자!

모든 상념 뒤로하고

앞으로 달려가자

갈 데까지 가자

아메리카 대륙을 미친 듯이 돌아다니다가

막상 더 갈 곳이 없을 때

가야 할 곳으로 가자.

그때는

뭔가…….

달라져 있겠지.



복잡한 시내를 벗어나 시원하게 쭉 뻗은 하이웨이를 달리기 시작하였다. 태양은 뜨겁게 내리쬐고 있지만, 에어컨의 시원한 바람은 서늘하게 해 주어서 기분이 한결 나아졌다. 갈 길이 멀다. 트럭 스탑에 들렸다. 정오를 막 지난 시간이라 트럭 스탑은 한가했다. 일단 트럭에 연료를 가득 채우고 유리창까지 깨끗하게 닦은 후 텅 빈 주차장 한가운데 주차했다. 아내가 싸준 도시락을 열었다. 언제 만들었는지 김밥이 두 줄로 나란히 차곡차곡 담겨 있다. 한바탕 싸우고 나서도 김밥을 말고 있었을 아내를 떠올리며 괜스레 울컥했다. 두 개째 집어 먹는데 갑자기 "콰르르릉~" 요란한 엔진 소리와 함께 트럭 한 대가 바로 옆자리에 들어오더니 "치이익" 에어브레이크를 하는 소리가 났다. 어느 놈인지 넓은 주차장을 두고 하필 내 옆에다 바짝 주차하는 심보가 내 신경을 건들었다. 조수석 쪽에 바짝 붙여 세운 트럭은 롱노우스 스타일(long nose)의 KW트럭이었다. 롱노우스 트럭은 트럭의 앞 엔진 후드가 높고 길게 앞으로 나온 오래된 모델로 한때 아메리카 트럭커들의 꿈의 트럭이요 선망의 트럭이었다. 하지만 내 눈에는 거칠고 무식한 고철 덩어리에 불과하다. 후드가 높고 길어서 앞이 잘 보이지 않는 데다 바람의 저항도 많고 필요 이상으로 크고 높아서 경제적이지 못하다. 요즈음 새로 나오는 트럭들은 디자인이 에어로다이내믹하고 짧은 후드로 바뀌었다. 그 위용이 대단하고 진짜 아메리칸 스타일의 트럭이라서 지금도 올드 트럭커들에게는 사랑받는 롱노우스 트럭이다. 그들의 특징은 트럭에 갖가지 장식을 많이 하는데 바로 옆에 주차한 트럭 역시 장식이 휘황찬란했다. 번쩍거리는 크롬 범퍼가 1피트나 되는 넓이로 전면에 장착되어 있고, 정면 유리창 위에 크롬으로 된 차양이 비스듬히 길게 내려와 앞 유리창을 3분의 1을 가리고 있으며, 또 빼놓을 수 없는 쌍 배기통이 양쪽으로 우람하게 솟아올라 있다. 역시 크롬이다. 지붕에는 두 쌍의 에어혼이 나팔처럼 길게 앞으로 튀어나와 있으며 문 옆에는 라이트로 장식된 커다란 통이 달려 있다. 빨간색의 스몰라이트가 양옆으로 10개 세로로 5개씩 화려하게 빛난다. 지붕에는 두 개의 창문이 비행기 조종석 창문처럼 돼 있고 그 아래로 스몰라이트가 여덟 개나 주르륵 달려 있다. 아마 밤에 보았다면 화려한 불빛이 휘황찬란하게 빛났을 것이다. 바로 옆에 주차해 있는 롱노우스 트럭은 터프한 아메리카 트럭커를 과시하듯 무지막지하게 큰 엔진소음을 갖고 있었으며 괴상한 장식을 하나 더 달고 있는 것이 특이했다. 창문 너머로 보이는 기어가 운전사의 키보다도 높게 올라와 있고 손잡이 헤드가 해골 모양의 크롬에다 눈은 빨간 돌이 보석처럼 박혀 있었다. 해골은 손잡이뿐 아니라 롱노우스 후드에도 있다. 그리고 엔진 라디에터 앞에는 스켈레톤이 마치 교수형에 처한 후 뼈만 남은 듯이 대롱대롱 매달려 있다. 대쉬보드 위에는 종이 커피 컵 플라스틱 음료수병 등 온갖 잡동사니가 지저분하게 쌓여 있었다. 운전사는 누구인지 모르지만 대단히 게으르고 괴팍한 성격의 소유자일 것이다. 그리고 엄청나게 큰 엔진 소음은 옆에 주차해 있는 내 트럭에까지 그 진동으로 전해 올 정도로 땅이 울린다. 이런 트럭쯤이야 북미대륙을 다니다 보면 자주 보니까 별일은 아니나 텅 빈 주차장을 놔두고 하필 내 옆에 바짝 주차해서 조용히 점심을 즐기려고 하는 분위기를 깨는 것은 짜증 나는 일이다.

조수석 창으로 그 트럭을 바라보고 있는데 마침 그 운전사가 얼굴을 내밀었다. 내가 말했다.

"왜 넓은데 놔두고 내 옆에다 주차 하냐?"

"그래서 뭐 어떻다는 건데? 지금 시비 거는 거야?"

듣기 좋은 대답을 기대한 것은 아니지만 신경질적인 그의 태도가 몹시 거슬렸다. 나도 트럭운전을 하지만 이럴 때는 정말로 트럭 운전사가 싫다. 녀석은 귀찮다는 듯 커튼을 치고 안으로 사라졌다. 빨리 점심을 먹고 다른 곳으로 가야겠다고 생각하다가 번뜩 머리에 뇌리를 스치는 게 있었다. 그의 트럭이 이상할 정도로 바짝 붙여 주차한 것이 수상했다.

‘혹시 연료도둑?’ 디젤 연료 절도는 최근 유류가격이 폭등하고 나서부터 부쩍 늘었다. 트럭의 연료통은 대용량으로 800리터가 들어간다. 무려 천 달러나 된다. 연료통은 잠금장치도 없는 데다 매일 밤 트럭 스탑에 나란히 주차한다. 잠든 사이에 간단한 호스 하나로 쉽게 빼 갈 수 있다. 전문 도둑들은 조그만 소형 모터가 달린 호스를 사용하여 순식간에 탱크를 비워버리고 사라진다.

지금까지 두 번의 연료 도둑을 경험하였다. 첫 번째는 전혀 눈치도 못 챘고 연료가 반이 없어졌다. 두 번째는 트럭 스탑에서 자고 아침에 일어나니 연료통이 완전히 비었다. 생각해보니 전날 밤에 바로 옆에 주차한 트럭이 조수석 문을 열기 힘들 정도로 바짝 붙여 주차했었다. 내가 잠자는 사이에 사이펀으로 연료를 몽땅 뽑아간 것이다. 연료를 가득 채우면 천 달러나 되니 일주일 수입이 고스란히 날아가고 훔쳐간 녀석은 며칠 동안은 일 안 해도 배부를 것이다. 첫 번째는 경험이라고 치고, 두 번째는 훔친 놈이 나쁜 놈이라고 말하지만 세 번째로 당한다면 내가 바보다. 세 번째는 결코 있을 수 없다. 나는 카메라를 들고 밖으로 나가 그 트럭과 내 트럭을 함께 번호판이 잘 보이도록 사진 찍었다.

"지금 뭐 하는 거야?"

트럭의 창문을 내리고 그놈이 고개를 내밀며 소리쳤다.

"사진 찍는다."

"왜 내 허락 없이 트럭 사진을 찍느냐? 찍지 말라! F..."

신경질적으로 거친 말투를 쏟아냈다. 대부분의 트럭 운전사들은 사진을 찍으면 좋아하는데 이 녀석은 이상할 정도로 과잉반응을 보였다. 사진의 효과가 먹혔는지 그놈은 요란한 엔진소리와 함께 다른 곳으로 갔다. 조용함은 되찾았는데 거친 쌍소리를 들은 기분은 가라앉지 않았다. 내가 연료를 가득 채우는 것을 지켜보고 나서 내 옆에 바짝 주차한 후 기회를 노리고 있는 것이라고 의심이 들었다. 틀림없이 연료를 훔쳐 가려고 했다가 내가 사진을 찍어 두니까 포기하고 다른 데로 가는 걸 거야. 다른 대상을 찾겠지. '지저분한 새끼, 상대를 보고 덤벼야지 감히 이 울프를 노리다니.'

기분 잡쳐버린 점심을 마치고 다시 하이웨이에 올랐다. 목적지인 텍사스까지 가려면 3일은 더 달려야 한다. 다시 하이웨이에 올랐다가 바로 샛길로 빠졌다. 좁고 언덕이 많은 숲길이기는 하지만 하이웨이보다 훨씬 지름길이라는 것을 알고 있기 때문이다. 나뿐 아니라 다른 트럭커들에게도 잘 알려져 트럭들이 줄을 이어 다닌다. 다만 차선이 왕복 한 개씩뿐이고 언덕과 커브가 많아서 사고가 나면 빠져나갈 길이 없다. 속도제한은 90kmh이지만 트럭들은 120kmh이상 과속하는 구간이지만, 나는 안전하게 90kmh를 유지했다. 지름길에 들어 선지 10분도 안 돼 내 뒤로 차량의 행렬이 늘어섰다. 내가 천천히 가고 차선은 한 개 뿐이라 추월하지 못하고 내 뒤를 따라 올 수밖에 없다. 트럭운전을 하다 보면 이런 경우는 수도 없이 많이 겪는다. 특히 언덕을 오르는 경우 무거운 중량 때문에 속도가 반 이상 떨어진다. 초보 시절에는 나도 과속으로 달렸지만, 산전수전 모두 경험한 지금은 천만의 말씀이다. 바짝 긴장해야 하고 경찰이 있는지 신경을 써야 하므로 피곤하다. 천천히 달리는 것이 익숙해진 나는 느긋하게 뒤따라오는 차의 수를 헤아려 본다. 내 뒤로 바짝 붙어 따라오는 승용차가 세대 그 뒤로 트럭이 두 대, 다시 픽업트럭, 그리고 공사 차량, 미니밴 승용차 다시 트럭이 세대 마지막에 또 승용차 이렇게 12대 정도가 뒤로 꼬리를 물고 이어져 있다. 가끔은 위험을 무릅쓰고 튀어나와 쏜살같이 반대차선으로 추월하는 용감한 승용차도 있지만 크고 긴 트럭들은 어림도 없다.

‘이놈들, 나 때문에 답답하지? 그러나 내 덕분에 사고 없이 안전하게 가고 있으니 모두 나에게 고맙다고 해라’

이때 CB 라디오 스피커에서 굵직한 음성이 들려왔다.

"ooo 드라이버, 길가에 세우고 기저귀를 갈아 차는 게 어때?"

제법 점잖은 말투이지만 천천히 가는 나를 어린애에게 비유하여 심하게 비꼬는 말이었다. 은근히 신경질이 솟구쳤다. 분명히 뒤에 따라오는 트럭 중에 한 놈일 텐데 어떤 놈인지 알 수 없었다. 중간에 있는 플랫베드가 의심스러웠다. 그는 아무것도 싣지 않고 있어서 가벼우니까 빨리 달릴 수 있을 텐데 천천히 가고 있는 나 때문에 답답할 것이다. 나도 CB 마이크에 대고 엄살을 부렸다.

"좀 봐줘라, 나 트럭드라이버 시작한 지 이틀밖에 안 됐다."

이번에는 다른 목소리가 들렸다.

"드라이버! 여기 임산부가 아기 낳고 있다. 빨리 좀 가자!. "

이어서 맨 처음에 말한 그 굵직한 목소리가 이 동조에 힘이 났는지 더 강력한 어조로 말했다.

"천천히 가려면 길가에 세워서 우리 모두를 지나가게 해라! 빌어먹을 운전사야!"

이번에는 나도 지지 않고 마이크를 잡고 응수했다.

"그럼 나를 추월한 다음에 네 기저귀나 갈아보지 그래, 왜 겁나냐? 닭대가리야!"

여러 대의 트럭이 뒤에 따라오고 있어서 누군지는 알 수 없었다. 그 후 CB 라디오에서 여러 번 욕하는 소리가 들려 왔지만 나는 대꾸하지 않았다. 핸들을 잡은 손이 떨렸다. 처음 트럭운전을 시작하였을 때는 이런 일이 없었다. 트럭커라는 동료의식이 강해 마치 형제들처럼 서로 이해하고 도와주었다. 돌이켜 생각해 보니 나도 많은 도움을 받았다. 눈구덩이에 빠져나오지 못하고 쩔쩔매고 있을 때 밧줄을 가지고 와서 끌어 내주고, 추운 아침 배터리가 방전돼서 덜덜 떨고 있을 때 두말없이 부스터로 시동을 걸어주었다. 모두 누군지 얼굴도 기억나지 않는다. 다만 아메리카의 트럭커라는 것밖에는……. 그러나 해가 갈수록 삭막해지고 서로 경쟁자들처럼 변해 버렸다. 아직도 트럭 스탑에서 서로 눈인사를 나눌 정도의 친근감은 있지만 하이웨이 위에서는 서로 욕하고 다투는 일이 종종 있다. 시간에 쫓기는 직업이다 보니 신경이 날카로워진 것이다. 특히 CB 라디오를 들어 보면 별 미친놈들이 많다. 누군지 모른다는 심리 때문인지 말도 함부로 하고 욕도 서슴없이 하며 천한 행태를 그대로 보여준다. 이럴 때마다 점점 트럭운전이 싫어진다.

좁은 샛길을 벗어나 하이웨이에 도착할 때까지 아무도 추월하지 못하고 내 뒤를 줄을 이어 따라왔다. 하이웨이 2차선에 들어서자마자 기다렸다는 듯 나를 추월하기 시작했다. 트럭이 추월할 때마다 나는 어떤 놈이 욕했는지 얼굴을 보고 싶어 살펴보았다. 손가락 욕을 할 거 같아 나도 마음의 준비를 했다. 그런데 추월하는 트럭마다 그냥 손을 흔들며 지나간다. 의심했던 플랫베드 트럭마저도 욕이 아닌 브이자 표시의 손을 보여주며 추월해서 지나간다. 분명 저놈들 중 한 놈인데……. 비열한 놈 같으니라고, 누군지 모를 때는 욕하더니 막상 얼굴이 보이자 웃으며 지나가다니 비겁하다. 다음 트럭스 탑에 들려 커피라도 한잔 마시며 분한 마음을 달래야겠다.

오늘 하루 900킬로미터는 가야 하는데 회사에서 늦게 출발하는 바람에 500킬로미터도 못 왔다. 여름이라 해가 길어서 날이 어두워지지는 않았지만 벌써 아홉 시가 넘었다. 오늘 트럭 스탑에서 자면 내일은 11시간 이상 최대한으로 운전해야 하는 부담이 된다. 밤에 운전하는 것도 싫었지만 오늘은 영 운전할 기분이 나지 않아 그냥 자기로 했다.

저녁을 먹고 나서 트럭 안의 커튼을 치고 침대에 누웠다. 마침 라디오에서 마스네의 타이스 명상곡의 아름다운 바이올린 선율이 은은하게 흘러나와 기분이 한결 좋아졌다. 전에 읽다 만 책을 꺼냈다 파울로 코엘료의 작품으로 딸이 추천해 준 것으로 매일 조금씩 읽고 있었다. 한 장을 읽고 막 다음 장을 넘기는데 갑자기 요란한 소음이 들려 왔다. 왼쪽 옆자리에 냉동 트럭이 주차한 것이다.

젠장, 조용히 잠들기는 틀린 모양이다. 엔진소리뿐 아니라 냉동 트레일러는 밤새 돌아간다. 창문을 열 수가 없다. 소음뿐 아니라 배기가스 냄새 또한 독해서 숨도 제대로 쉴 수 없고 아침에 일어나면 머리가 아프다. 한 동료는 아침에 일어나자마자 병원에 실려 간 적도 있다. 배기가스 중독 일산화탄소, 쉬운 말로 연탄가스 중독이다.

젠장, 70년대도 아닌 지금 연탄가스중독이라니, 북미의 트럭 운전사들은 불쌍하다.

해가 기울기 시작하는 이 시간이면 트럭들이 잠을 자기 위해 트럭 스탑에 모여든다. 밤 10시만 넘으면 주차할 자리를 찾기 힘들어진다. 소나 돼지를 싣고 다니는 트럭들이 옆에 주차하면 더 골치 아프다. 소 방귀 냄새가 얼마나 지독한지 살살 풍겨 오면 정말 미칠 노릇이다. 그런 데다 소들이 밤새 트레일러 벽을 차는데 그 소리가 요란해서 자다가도 깜짝 놀라 깰 만큼 경기를 일으키게 한다. 이럴 때는 정말 거꾸로 처박고 자고 싶어진다.

어렴풋이 잠이 들어가는데 이번에는 더 큰 엔진 소리에 눈이 떠졌다. ‘콰르르르릉...’ 얼마나 큰지 누워 있는 침대까지 진동이 울려온다. 골이 흔들리고 이가 맞부딪힌다. 또 다른 트럭이 오른쪽에 주차했다.

라디오 볼륨을 높이려고 침대에서 일어났다. 그런데 방금 들어 온 트럭의 엔진 소리가 어쩐지 귀에 익었다. 이상한 예감에 창문의 커튼을 열고 밖을 내다보고 대경실색했다.

‘헉! 해골바가지 트럭!’

방금 들어 온 트럭은 낮에 옆에 바짝 붙여 주차했다가 시비가 붙은 그놈, 바로 그 트럭이 또 내 옆에 주차한 것이다. 우연치고는 정말 대단한 악연이다. 우연이 아니라면 혹시 이놈이 일부러 따라온 걸까? 원수는 외나무다리에서 만난다지만 하필 그 해골바가지 놈이 두 번씩이나 내 옆에 나란히 주차하다니 믿을 수가 없었다. 그놈의 롱노우스 켄워스트럭은 이상하리만치 엔진소리가 요란했다. 잠이 확 달아나 버리고 속이 답답하여 운전석에 앉아 담배 한 대 꺼내 물었다. 그동안 아내가 잔소리에 담배를 수십 번 끊었다가도 운전 중 스트레스 받을 때마다 다시 피우곤 했다.

어떻게 해야 하나 궁리했다. 이놈이 진짜 연료 도둑이라면 잠 안 자고 지킬 수도 없는 노릇이고 다시 운전해서 가자니 법으로 규정된 제한 시간이 초과하고, 더구나 조금만 가면 트럭 검사소가 두 곳이나 있다. 규정된 운전 시간을 초과해서 운전하다 걸리면 10시간 운행정지는 물론 $500 상당의 벌금까지 물어야 한다.

생각 끝에 어차피 소음 때문에 잠자기도 틀렸고, 연료 도둑이 바로 옆에 있으니 불안하고 해서 역시 이 자리를 피하는 것이 상책이라고 결론지었다.

CB 라디오를 켜고 마이크를 집어 들었다.

"남쪽 방향 트럭 검사소가 열었는지 아는 드라이이버 있는가?"

"그들은 항상 열고 있다. 가려면 피해서 가는 게 좋을걸."

누군가가 대답하였다.

"피해 가는 길 좀 알려 주라."

"301번 하이웨이로 가면 돼. 하지만 301번은 산길에다 길도 나빠서 시간이 많아 걸릴 거야."

"고맙다. 드라이버."

“천만에, 행운을 빈다.”

운전석에서 자세를 고쳐 앉다가 바지 주머니에 뭔가 불룩한 물건이 만져졌다. 꺼내보니 엊그제 의사에게서 처방받은 주황색의 반투명한 약통으로 겉면에는 검은 글씨로 내 이름과 함께 읽어 봐도 무슨 뜻인지 알 수 없는 의학용어가 적혀있었다.

맨 위에 쓰여 있는 antidepressants라는 단어만 어렴풋이 신경안정제 또는 항우울제라고 짐작할 뿐이다. 감기약도 먹기 싫어하는 내가 신경안정제를 갖고 있다니 기가 막힌 노릇이다. 그래도 지금 같은 경우에 이 약을 먹어야 하는 건지 생각하지 않을 수 없었다. 한동안 약통을 만지작거리다 다시 주머니에 집어넣었다.

시동을 걸었다. 가야만 한다. 그런데 정작 갈 곳을 정하지 못했다. 일단 남쪽으로 가자……. 우선 이 자리를 피해야 한다. 가다 보면 어디 쉴만한 곳이 있겠지. 서서히 트럭을 출발시키며 그놈의 트럭을 향해 가운데 손가락을 내밀어 흔들어 주었다.

"잘 있거라! 해골바가지야, 나는 간다."

어두운 창문에서 커튼이 움직였다. 틀림없이 나를 노려보고 있었을 것이라는 느낌이 들었다. 보거나 말거나 이제 두 번 다시 만날 일이 없을 것이다.


트럭 스탑을 나와 하이웨이 301번으로 방향을 전환했다. 트럭커의 말대로 산길이었고 매우 한산했다. 오고가는 차선이 한 개씩뿐이고 길 양쪽으로 울창한 숲으로 우거져 있고 구불구불한 모퉁이들이 많았다. 자정이 가까운 늦은 밤이라서 그런지 오가는 차량이 하나도 없었다.

오랜만에 밤길을 한가하게 달리게 되어 오히려 기분이 상쾌했다. 둥근 달이 구름 사이를 헤치고 지나간다. 한쪽이 약간 이지러진 달의 모양을 보아 보름이 지났거나 곧 보름이 될 것이다. 언젠가 트럭 스탑에 주차하고 나서 밤하늘에 떠 있는 보름달이 유난히 크고 밝게 비추고 있는 것을 멍하니 바라보다 문득 그날이 추석이라는 것을 깨닫고 서글퍼져서 울컥 눈물을 쏟았던 기억이 있다. 고향을 떠나 이만리 먼 북아메리카 대륙에서 정신없이 운전하고 다니다가 어딘지도 모르고 아는 사람도 없는 곳에서 보름달을 외롭게 바라보며 향수에 젖는 자신이 처량하고도 서러웠다.

오늘 밤과 같은 야간운전은 온갖 상념과 환상을 자아낸다. 구름에 달 가듯이 가는 트럭, 은하계를 여행하는 우주선처럼 스쳐 지나가는 황홀한 분위기에 젖어 들기도 하고 무한한 어둠 속에서 고독을 느끼기도 하고 무아지경에 이른다. 지나는 차량이 없는 산속을 홀로 달릴 때는 나무의 그림자 속에서 신비한 환상을 경험한다. 트럭은 제자리에 가만히 있고 길이 움직이고 숲이 움직인다. 세상이 뒤로 간다. 별이 흐른다. 우주가 흘러간다. 밤을 통과하는 야간 운전에는 구스타프 홀스트의 관현악 행성 모음곡이 최고의 음악이다. 별에서 온 신비로운 음악은 우주 속으로 빨려 들어가는 풍부한 상상력으로 이끌어 준다.

갑자기 창 옆으로 시커먼 그림자가 나타나 화들짝 놀랬다가 돌아보면 아무도 따라오는 차량이 없고 나 혼자 달리고 있다. 그런데 마치 누가 트럭 옆에 바짝 붙어 따라오고 있는 것처럼 느껴진다. 구름 속에 있던 달이 튀어나오며 트럭의 그림자가 숲에 비쳐서 오르락내리락 따라오고 있다. 달이 구름 속으로 사라지자 따라서 오던 그림자도 사라졌다. 이번에는 유리창 밖에서 어떤 사람이 트럭 안을 들여다보고 있다. 질주하고 있는 트럭에 매달려 운전대를 잡은 나를 노려본다. 유령처럼 창문에 매달려 있다. 거기에는 또 다른 내가 나를 바라보고 있다. 가끔 어디서 나타났는지 한 줄기 빛이 트럭 위로 쏜살같이 지나가기도 한다. 길가에 사람으로 보이는 검은 그림자가 손을 흔든다. 달은 오른쪽에 있다가 왼쪽에서 나타나고 정면에 있다 싶었는데 어느새 뒤에 있다. 갑자기 트럭 주위가 환해져서 뒤에 누가 따라오나 거울을 보면 아무도 없다. 구름에서 벗어난 달만이 환하게 주변을 밝히고 있을 뿐이다. 유리창에 투영되는 불빛이 보이는데 도대체 어디에서 비치는 불빛인지 알 수 없다. 헤드라이트에 비치는 하얀 차선만 어둠 속으로 길게 이어져 있다. 암흑 속에서 아스팔트가 벌떡 일어나 절벽처럼 앞길을 가로막는다.

어느새 하이웨이 최면에 빠져들고 있다. 운전하고 있으면서 본인 스스로 운전하고 있다는 사실을 자각하지 못하고 본능적으로 습관대로 길을 따라 운전하는 하얀 선의 열병(White Line Fever)이다. 어느 지점에 도착해서 본인이 어떻게 어디를 운전하고 왔는지 기억나지 않는다. 이것은 졸음운전이 아니다. 마치 유체 이탈을 한 것처럼 다른 세계를 경험하고 운전은 기억하지 못한다. 또는 운전 중에 옆 사람과 대화하기도 한다. 물론 정신 차리고 보면 옆에는 아무도 없고 혼자 운전하고 있다. 이렇게 환각, 환시, 환청, 환상의 세계로 달리는 것이 바로 야간 운전이다.

사이드미러에 불빛 하나가 나타났다. 깜박 사라졌다가 다시 나타났다. 이 빛은 환상이 아니고 진짜였다. 정말로 불빛이 멀리에서부터 따라오고 있다. 왼쪽 오른쪽 번갈아서 여러 번 나타나더니 순식간에 트럭 뒤에 붙었다. 느낌으로 보아 엄청난 속도로 달려왔다. 당연히 추월할 것으로 생각했는데 일정한 거리를 두고 따라 왔다. 트레일러의 스몰라이트를 보고 트럭임을 알았다.

‘나와 비슷한 놈이 또 있군. 저 트럭도 나처럼 트럭 검사소를 피해 이 길로 가고 있는 것이 틀림없을 거야, 그렇지 않고서야 이 좁은 샛길을 한밤중에 들어올 이유가 없지‘

뒤에 따라서 오는 트럭의 불빛이 거울에 비쳐 운전의 환상이 깨졌다. 신경이 쓰여서 추월하라는 의미의 신호를 주고 속력을 낮추었다. 그러나 트럭은 내 뒤에 바짝 붙어 따라오기만 할뿐 추월하지 않는다. 갑자기 트럭이 좌우로 움직인다. 왼쪽으로 갔다가 오른쪽으로 그리고 다시 왼쪽으로 지그재그로 운전한다.

‘별 이상한 놈이군. 아마도 야간운전에 졸리든지 아니면 무지하게 심심했나 보다’

나는 CB 라디오를 꺼내 들었다.

"헤이, 드라이버 뭐 하는 거냐? “

아무 대답이 없다.

"드라이버! 내가 비켜 줄 테니 추월해라."

그래도 응답이 없다. 이상한 기분이 들었다. 이번에는 아예 속력을 낮추어 천천히 운전하였다. 이제는 추월하겠지, 생각했는데 내가 틀렸다. 그놈도 따라서 천천히 온다. 좁은 산길의 속도제한은 55mph이지만 보통은 65mph 이상으로 달린다. 그 길은 나는 45mph로 기어가고 있는데 뒤에 트럭도 그 속도로 엉금엉금 따라온다. 깊은 한밤중에 두 대의 트럭이 산속을 나란히 기어가고 있는 진풍경이 연출되고 있다. 나하고 함께 놀자고 하는 것이 틀림없다. 10여 분을 그렇게 따라오더니 갑자기 속력을 내서 내 트럭을 추월하기 시작했다.

‘그럼 그렇지! 답답했지? 진작 그래야지.’

내 의도가 성공했다. 그 트럭은 요란한 엔진 배기음을 울리며 나를 추월해서 지나갔다. 이제는 정상적으로 달릴 수 있겠다 싶어 나도 속력을 내기 시작하다가 급히 브레이크를 밟아야만 했다. 그 트럭이 갑자기 내 앞에서 속력을 줄여 느린 속도로 운전하였다. 이건 의도적인 보복운전이나 다름없다. 이제 순서만 바뀌었을 뿐 두 대의 트럭은 여전히 하이웨이를 천천히 기어가고 있다. 이제는 뒤에 있는 내가 답답해졌다.

“드라이버, 도대체 뭐 하는 거냐? 정신 나갔냐?”

CB 라디오에 대고 소리를 질렀다. 치익 칙 무전기의 잡음 소리만 되돌아올 뿐 아무 대답이 없다. 장난이라도 이건 너무 지나치다고 생각 들자 신경질이 났다. 이번에는 내가 차선을 바꾸어 추월하기 시작했다. 중간쯤 따라 추월하자 그 트럭은 속력을 내서 같은 속도로 달렸다. 그 트럭이 나보다 반쯤 앞선 채 나란히 달리게 되었다. 내가 속력을 줄이면 따라서 줄이고 속력을 내면 같이 속력을 냈다. 불안했다. 이것은 전적으로 내가 위험하다. 만약 반대쪽에서 오는 차가 있을 경우에는 정면충돌할 위험이 크다. 일부러 교묘하게 나를 그런 위험에 빠지게 하는 것 같았다.

‘이런 X 같은 놈이 있나?’

속이 뒤집히고 신경이 곤두섰지만 어쩔 수 없이 속력을 줄여 뒤로 물러섰다. 그리고 추월을 포기하고 멀찌감치 떨어져 일정한 거리를 유지한 채 따라가기만 했다. 한동안 느린 속도로 따라가느라 기어 10단에서 6단까지 변속했다. 실로 어처구니 없는 상황이었다. 갑자기 앞에 트럭이 속력을 내기 시작하더니 무서운 속도로 질주하여 순식간에 내 시야에서 벗어나 어둠속으로 사라졌다.

‘별 이상한 놈도 다 있네.’

미친놈 때문에 달아오른 분을 삭이며 운전하였다. 다시 어둠속의 하이웨이에 나 혼자만이 덩그러니 남았고 이제는 정상적으로 운전을 할 수 있어 다행이라고 생각 들었다.

어느새 달빛도 사라지고 별도 보이지 않았다. 단지 헤드라이트에 비치는 노란 차선을 따라서 운전하며 이런저런 상념에 빠졌다. 언덕을 넘어 내리막길에서 트럭의 속도가 빨라졌다. 언덕 아래 급하게 꺾어진 코너를 막 돌아서자마자 어둠 속에서 시커먼 장애물이 클로즈업되었다. 마치 콘크리트 벽이 길 한가운데서 갑자기 솟아오른 것 같았다. 기겁하고 본능적으로 브레이크를 밟았지만, 트럭의 달리는 속도와 관성력에 밀려서 멈출 수가 없었다. 헤드라이트에 비친 콘크리트 벽은 대형 트레일러의 뒷문이었다. 라이트도 켜지 않은 채 길 한복판에 서 있었다.

트레일러 꽁무니가 바로 눈앞에 다가와 추돌하기 직전, 급하게 핸들을 꺾었다. 트레일러의 중량이 오른쪽으로 쏠리며 뒤집힐 것 같았다. 아! 사고구나! 순간적으로 직감했다. 어떻게 해 볼 도리가 없이 온몸이 경직되어 버린 채 핸들만 꽉 붙들고 그대로 달렸다. 종이 한 장 사이만큼으로 아슬아슬하게 그 트럭을 스쳐지나 차선을 벗어나고 맨땅으로 치달렸다. 트레일러와 트럭이 나뭇가지를 우두둑 스치는 소리와 함께 몸이 의자에서 튀어 올라 공중으로 치솟았다. 몇 번을 더 출렁거리고 몹시 흔들렸다. 트럭은 포장된 도로를 벗어나 맨땅을 달려 길 가 쪽으로 뻗어 나온 나뭇가지들을 치고 100여 미터를 지난 후에야 겨우 멈추었다. 바람에 흙먼지가 뿌옇게 일었다. 트럭 안에 있는 물건들이 바닥으로 쏟아져 내려 뒤죽박죽 엉망이 되었다. 일단 추돌하지 않은 것만으로 안도의 한숨을 쉬었지만 잠깐뿐, 속에서 부아가 끓어올랐다.

‘아니 저런 멍청한 놈! 길 한가운데에 트럭을 세워 놓는 놈이 어디 있어? 트럭이 고장 났으면 도로 옆에 세워야지! 삼각대를 세워 놓든지 플레어를 사용하든지 해야지. 아니면 최소한 스몰라이트라도 켜야지. 하마터면 대형사고 날 뻔했잖아!’

뒤돌아보니 그 트럭은 어두컴컴한 하이웨이에 시커먼 그림자를 드리우고 그대로 서 있었다. 나는 참을 수 없는 분노가 머리끝까지 치솟았다. 나는 공구 상자를 열고 칼을 꺼내 들었다. 호신용으로 갖고 다니는 단도로 베는 칼이 아니라 찌르는 칼이다. 칼을 주머니에 넣고 트럭에서 내렸다. 트럭을 향해 성큼성큼 걸어갔다. 10여 미터 걸어갔는데 갑자기 트럭의 헤드라이트가 환하게 켜졌다. 눈이 부셔서 인상을 찌푸리고 손으로 라이트를 가렸다. 트럭 위에 주황색의 스몰라이트가, 옆면에는 세로로, 범퍼에도 나란히 모두 이십 여개의 스몰 라이트들이 휘황찬란하게 빛났다.

바로 그 트럭이다! 트럭 스탑에서 사진 찍었던 롱노우스 트럭! 좀 전에 내 뒤를 바짝 따라오며 약 올리던 바로 그 트럭이 틀림없다. 추월 못하게 장난치던 놈, 그놈은 해골바가지 트럭이다. 점심때부터 나를 쫓아오는 놈!

'응? 그렇다면 일부러 그런 거야? 위험한 커브에 트럭을 세우고 라이트까지 끄고 내가 충돌하기를 기다리고 있었던 거야?'

나는 극심한 분노에 치를 떨었다.

‘대형사고 날 뻔했어!  혼내줄 거야! 아니 죽여 버리고 말겠어!’

나는 하이웨이 한복판에 서서 칼을 손에 쥔 채 미친 사람처럼 흔들어대며 트럭을 향해 고함을 질렀다.

"꽈르릉! 꽈르릉! 과르르르르릉!"

트럭의 엔진 소리가 밤하늘을 정적을 깨고 우렁차게 울려 퍼졌다. 나뭇가지의 나뭇잎들이 흔들리는 소리가 음산하게 들렸다. 바람 소리였겠지만 마치 엔진 소리에 떨리는 것처럼 느껴졌다. 나는 그 길 중앙 한가운데에 그대로 멈추어 섰다. 뭔가 심상치 않음을 느꼈다. 갑자기 목 뒷덜미가 서늘했다.

"꽈르릉! 꽈르릉! 과르르르릉…….!"

그 트럭은 마치 출발 신호를 기다리는 경주용 차처럼 액셀러레이터를 마구 밟아댔다. 우뚝 솟은 두 개의 배기통에서 회색의 연기가 연거푸 뿜어져 나왔다.

‘설마 저 녀석이?’

끼이이이익! 트럭은 타이어가 찢어지는 파열음을 내더니 점점 속력을 내기 시작했다. 나를 향해 무서운 가속도로 내며 달려왔다. 마치 철로를 달려오는 디젤기관차처럼 나를 향해 똑바로 정면으로 질주해 왔다. 나는 뒤로 주춤주춤 물러섰다. 트랙터 트레일러의 중량은 20톤이나 되는 쇳덩어리이고 더구나 500마력의 괴력을 지닌 캐터필러 엔진은 하이웨이의 무법자다. 오백 마리의 말들이 짓밟고 지나가는 데 살아남을 장사는 아무도 없다. 그야말로 현장 즉사이다. 나를 깔아 버리겠다는 듯 무시무시한 굉음을 토하며 정면으로 달려왔다. 나는 도로를 벗어나 숲속으로 정신없이 도망쳤다. 트럭은 바람을 일으키며 아슬아슬하게 나를 스쳐 지나갔다. 빨간 후미 등만 남긴 채 어둠 속으로 질주하여 언덕 아래 나무숲 사이로 사라졌다. 적막한 고요가 어둠처럼 엄습했다. 모골이 송연한 소름이 돋았다. 두 번이나 죽을 뻔 했다. 장난이 아니다. 이건 절대 용서할 수 없다.

'이놈을 쫓아가서 혼내주겠다. 결판을 내고야 말겠다!'

즉시 트럭에 올라 시동을 걸고 출발했다. 트럭이 나뭇가지에 얼마나 긁혔는지 살펴봐야겠지만 지금은 오직 그놈을 쫒아가서 잡아야겠다는 일념뿐이다. 55mph가 제한 속도이지만 속도 계기의 바늘 끝은 75를 가리키고 있다. 중앙에 그어진 노란 경계선도 무시한 채 한복판으로 사정없이 질주하였다. 그동안 하이웨이 301번을 달리면서 마주 오는 차의 통행을 보지 못했으므로 오는 차가 없을 거라는 추정아래 액셀러레이터를 바닥까지 밟았다. 앞만 노려보며 운전대를 두 손으로 꽉 움켜쥐고 달렸다. 험한 산길을 과속으로 달리며 커브를 꺾을 때마다 트레일러가 휘청거렸다. 트레일러 안에 실려 있는 화물이 뒤죽박죽될 지라도 지금은 그 트럭을 추격해서 잡아야겠다는 마음이 더 컸다. 십여 분을 달렸으나 사라져버린 그 트럭은 보이지 않았다.

하늘이 시커멓다. 환하게 비추던 달도 검은 구름 속으로 숨어들어 보이지 않았다. 한바탕 비라도 쏟아지려는지 검은 구름이 하늘을 뒤덮고 있다. 30분 이상을 미친 듯이 달려왔지만 그놈의 트럭은커녕 아무 그림자도 볼 수 없었다. 이미 멀리 가 버린 게 틀림없다. 결국, 쫒아가는 것을 포기하고 도로 옆에 공터에 트럭을 세운 다음 플래시를 들고 나가 트럭을 샅샅이 비추며 살펴보았다. 안테나가 부러졌고 트레일러 상단이 심하게 긁혔지만 찢어지거나 구멍이 나지는 않았다. 천만다행이고 운이 좋았다.

이때 멀리 뒤쪽에서 헤드라이트가 나타났다. 멀어서 트럭인지 승용차인지 알 수는 없다. 어느 정도 거리에서 트럭이라는 확신이 들자 혹시 그놈일까? 생각했지만 그럴 리가 없다. 그놈은 앞으로 갔으니까 벌써 100킬로는 도망갔을 것이다. 다른 트럭이라고 예상하고 점점 다가오는 그 헤드라이트를 지켜보다가 소스라치게 놀라 소리쳤다. "앗, 그 트럭이다!"

요란하게 장식된 불빛으로 보아 틀림없는 그놈의 트럭이었다. 헤드라이트 불빛 그리고 지붕에 나란히 달린 주황색, 범퍼에 라이트를 보아 틀림없는 그 트럭이다.

이상한 일이다. 분명히 나보다 앞서 달려간 놈이 어떻게 뒤에서 나타나다니? 내가 쫓아 올 줄 미리 짐작하고 어디엔가 숨어서 나를 기다렸다는 말인가? 그렇다면 마침 잘 되었다. 그러지 않아도 붙잡아서 혼 내주고 싶었는데 단단히 마음을 먹고 얼른 트럭에 올라탔다. 그놈이 지나가는 즉시 쫒아가려고 트럭을 앞으로 비스듬히 내밀어 준비하고 있는데 눈이 부셨다. 그놈의 상향등은 할로겐램프보다 더 밝았다. 눈을 가늘게 치뜨고 달려오는 트럭을 노려보던 나는 내 눈을 의심했다. 그 불빛은 차선에서 벗어나 나를 향해 정면으로 맹렬하게 돌진했다. 이대로 있으면 내 트럭 운전석에 충돌하고 나는 박살 날 것이다. 출발하려고 넣었던 2단 기어에서 얼른 후진 기어로 바꾸어 넣고 액셀러레이터를 밟았다. 뒤로 5미터쯤 후진하였고 그 트럭은 기차가 스쳐지나가듯 먼지바람을 일으키며 바로 코앞을 지나 아슬아슬하게 비켜갔다. 만약 내가 후진을 1초라도 늦게 하였더라면 끔찍한 일이 벌어질 뻔하였다. 소름이 돋는다. 앞으로 충분히 지나갈 여유가 있는데도 아예 죽이기로 작정한 놈처럼 일부러 나에게 돌진하다니?

‘나하고 끝장을 보자는 거지? 그래 한번 해보자!’

나는 즉시 3단 기어를 넣고 액셀러레이터를 밟았다. 아까와는 달리 이번에는 바로 출발했으므로 금방 따라잡을 수 있을 것이다. 차선이고 뭐고 상관없이 액셀러레이터를 바닥까지 꽉 밟고 달렸다. 이번에는 속도계기를 보지도 않았다.

과연 얼마 지나지 않아 저 숲속 사이로 언뜻 비쳤다가 사라지는 트레일러 빨간색 후미 라이트를 볼 수 있었다. 오른발을 더 세게 밟았다. 구부러지는 길에서는 원심력에 의해 트럭이 길 바깥으로 튕겨 나갈 듯이 휘청거렸다. 그래도 속도를 낮추지 않고 그대로 달렸다. 가까스로 그 트럭의 뒤에 따라붙을 수 있었다. 그대로 들이받아 버리고 싶은 충동이 일었지만 그것은 현명한 방법이 아니다. 비슷한 속력으로 추돌할 경우 충격이 약하고 그놈이 갑자기 브레이크를 밟기라도 하면 오히려 내가 불리하다. 나는 트럭 엔진 부분이 망가지고 그놈 트레일러 뒷부분이 부서진다. 저놈보다 내가 더 큰 피해를 본다.

추월하기 위해 반대쪽 차선으로 나갔다. 그놈도 따라서 반대 차선으로 움직였다. 다시 왼쪽으로 방향을 바꾸었다. 그놈도 역시 왼쪽으로 가로 막아섰다. 차선을 이쪽저쪽 오가는 게임은 계속되었다. 좀처럼 추월할 기회를 주지 않았다. 놈의 운전 실력은 대단했다. 운전경력이 나보다 훨씬 많은 듯 교묘한 솜씨로 능숙하게 요리조리 잘 피하고 막았다. 드디어 기회가 왔다. 내리막 언덕에서 그놈의 속력이 약간 느려지는 틈을 타서 반대쪽인 오른편으로 파고들어 추월을 시작하였다. 차선을 반쯤 벗어나 오른쪽 갓길에 걸쳐서 달리기 시작하였다. 내가 조금씩 빨라지며 그놈이 주춤하는 사이에 반 이상을 추월할 수 있었다. 거의 추월하여 그 트럭의 창문을 볼 수 있을 때쯤 그 트럭이 내 앞쪽으로 방향을 틀어 좁혀 오기 시작하였다. 내가 오른쪽으로 움직이면 바로 길 밖 숲속으로 쳐박힐 것이고 그대로 달리면 충돌하기 직전이다. 할 수 없이 브레이크를 밟아 속력을 줄이는데 그놈은 거침없이 밀고 들어 왔다. 손을 내밀면 그놈의 트레일러가 닿을 정도로 바짝 붙여 왔다.

우당탕! 콰지직! 쾅! 그놈의 트레일러 오른쪽 뒷부분이 내 트럭의 왼쪽 앞 범퍼를 쳤다. 동시에 나는 급브레이크를 밟으며 오른쪽으로 핸들을 꺾었다. 이번에는 내 트럭의 오른쪽 범퍼가 하이웨이 가드레일에 부딪혀 찌이익 긁히며 요란한 굉음이 났다. 일은 순식간에 벌어졌다.

‘아뿔싸! 이제 일은 크게 터졌다!’

설마 하고 우려했던 일은 기어이 현실로 변해버렸다. 나는 트럭을 멈춰 세웠고 그놈은 그대로 유유히 사라졌다.

‘아니, 이럴 수가!’

트럭에서 내려 트럭을 살펴보는 나는 입을 다물지 못했다. 후드에 달려 있던 거울의 쇠로 된 프레임이 심하게 구부러졌고 거울은 반쪽이 깨졌다. 왼쪽 범퍼를 보고는 아연실색을 하였다. 범퍼가 심하게 안쪽으로 구부러져 앞 타이어에 닿아 있다. 오른쪽으로 돌아가서 보는 순간 대경실색을 하였다. 조수석 탱크에 장착된 계단 두 개가 파손되었다. 아래쪽은 아예 반쯤 떨어져 덜렁거렸다.

범퍼를 발로 차고 고함을 고래고래 질렀다. 그놈이 사라진 쪽을 향하여 온갖 욕설을 퍼부으며 주먹을 휘둘렀다. 그래도 분이 가라앉지 않았다. 어둠 속에서 혼자 미친놈처럼 발광 했다. 시커먼 하늘에서 빗방울이 후드득 떨어졌다. 설상가상으로 굵은 비까지 쏟아져 내리기 시작했다. 그동안 트럭운전으로 수많은 어려움을 겪었지만, 그 어느 때도 오늘 밤보다 더 나쁜 적은 없었다. 그야말로 최악의 상황이었다. 망치와 빠루를 꺼내 덜렁거리는 계단을 떼어 내버리고 굽어져 들어간 범퍼를 폈다. 범퍼는 좀처럼 펴지지 않아 간신히 타이어에 닿지 않을 정도만 벌릴 수 있었다. 어느새 쏟아지는 비에 흠뻑 젖어버렸다. 생각할수록 약 오르고 분통이 터져 견딜 수 없었다. 싸움에서 진 패배자는 할 말이 없다. 처량할 뿐이다. 주머니에서 담배를 꺼냈는데 이미 빗물에 젖어버렸다. 그래도 여기 이렇게 앉아 있을 수만은 없는 노릇이다. 트럭 스탑이든 휴게소든 찾아가서 날이 밝기를 기다렸다가 상황을 살펴봐야 할 것이다. 의기소침해진 나는 운전하는 것도 귀찮아서 아주 느리게 달렸다. 얼마 후, 도로 옆에 작은 주차공간을 발견하고 트럭을 세웠다. 휴게소가 아니라서 화장실도 없고 겨우 주차할 만한 공간만 있는 곳이었다. 역시 다른 차량은 하나도 보이지 않고 텅 비어 있다. 그래도 다행인 것은 외등이 하나 있어서 트럭을 살펴볼 수 있었다.

깨진 거울, 부서진 계단, 안쪽으로 꺾여져 들어간 범퍼는 보면 볼수록 기가 막힐 뿐이다. 그때 외등 아래 기둥에 설치된 전화박스가 눈에 들어왔다. 공중전화가 아니고 비상 전화로 사고 났을 때나 견인이 필요한 비상시에 사용하도록 설치해 놓은 것이다. 뚜껑을 열어 보았다. 수화기만 달랑 있고 다이얼 판도 없다. 아마도 수화기를 들면 자동으로 누군가가 응답하게 되어 있을 것이다. 911이든지 아니면 경찰 또는 하이웨이 순찰대에게 연결되어 있을 것이다.

지금 이 상황을 뭐라고 설명해야 할지 잠시 생각해 보았지만 적당한 말이 떠오르지 않았다.

'어떤 트럭이 나를 죽이려고 한다? 내 트럭을 치고 도망갔다?'

어떤 트럭이냐고 물으면 할 말이 없다. 증거라고는 부서진 미러, 찌그러진 범퍼, 떨어진 계단뿐이라 그냥 지나가는 트럭이 그랬다고 하면 믿어 줄까?

이때 하이웨이 저쪽에 불빛이 비쳐오기 시작했다. 지나가는 승용차겠지 생각했는데 불빛이 가까워질 무렵 엔진소리가 유난히 크게 났다. 승용차가 아니고 트럭이었다. 내가 서 있는 곳을 지나면서 속력을 낮추어 아주 천천히 서행하였다.

‘오! 마이 갓!’

맞은편에서 오는 차의 모습이 확연하게 드러나자 나도 모르게 비명을 질렀다. 비록 비가 내리는 어두운 밤이지만 그 트럭의 불빛은 내 기억에 확실하게 남아 있었다. 틀림없다. 바로 그놈이다. 그놈은 천천히 아주 천천히 지나갔다. 여전히 땅을 울리는 엔진 소음은 굉장했다. 아마도 내가 무엇을 하고 있는지 살펴보는 것 같았다. 나를 지나가더니 다시 속력을 내서 반대 방향으로 가버렸다. 나는 어찌할 줄 모르고 멀어져가는 트럭의 빨간 불빛을 우두커니 지켜보았다. 내리는 빗줄기 사이로 어른거리며 어둠 속으로 사라져 버릴 것 같던 트레일러의 제동 등에 빨간불이 들어오더니 그 자리에서 움직이지 않았다. 트럭이 멈추었다. 이상하다는 생각에 나는 도로 한가운데로 나가 트럭의 움직임을 계속 주시했다. 다시 불빛이 움직이기 시작했다. 그런데 가는 것이 아니고 회전을 하고 있다.

‘아니, 저놈이 도대체 뭐 하려고?’

그냥 가버릴 줄 알았던 트럭이 U턴을 해서 돌리는 중이었다. 좁은 하이웨이인데다 트럭은 길고 커서 한 번에 돌지 못하고 여러 번 꺾어서 회전하며 방향을 바꾸고 있었다.

‘아! 정말 끈질기고 악독한 놈이네!’

나는 다시 비상 전화박스로 달려와 얼른 수화기를 집어 들었다. 경찰이든 누구든 도움을 요청해야 한다. 한참 만에 발신음이 가는 소리가 났다. 여러 번 발신음이 울리는데도 응답은 없었다. 수화기를 귀에 댄 채 트럭이 돌리는 쪽을 살펴보았다. 헤드라이트가 비치는 것으로 보아 u턴을 거의 마친 것 같았다. 두 개의 불빛이 보이며 이쪽으로 달려오자 나는 마음이 다급해졌다. 그 트럭은 다가오고 있고 수화기에는 아직 대답이 없고 초조해졌다. 수화기를 내동댕이치고 트럭으로 올라와 바로 출발했다. 이번에는 내가 먼저 하이웨이에 올라설 수 있었다. 그놈은 내 뒤로 바짝 추격해 왔다. 추월하기 위하여 이쪽저쪽으로 움직였다. 그럴 때마다 나도 따라 움직이며 추월하지 못하게 막았다. 생각보다 쉽지 않았다. 도로는 좁고 커브가 많아 전속력으로 달리면서 앞만 보기도 바쁜데 뒤에까지 신경 써서 봐야 하는 운전은 내게 익숙하지 않았다. 더구나 비가 쏟아지는 어두운 밤이라 시야도 밝지 못해 위험천만하기 짝이 없었다. 와이퍼를 최대속도로 작동시키며 온몸에 신경을 바짝 조이고 이를 악물었다. 빗길이라 하이드롤릭 현상에 의해 미끄러질 수 있다는 것을 알고 있지만 거기까지 신경 쓸 수가 없었다. 일단 내가 앞에 있으니까 유리하다는 생각이 들었고 또 두 번이나 당한 수모를 복수하고 싶은 오기가 발동했다.

이때 갑자기 꽝! 하는 소리가 나고 트레일러가 중심을 잃고 왼쪽 차선으로 크게 흔들렸다. 놈이 내 트레일러의 꽁무니를 들이받은 것이다. 크게 왼쪽으로 밀려갔다가 다시 오른쪽으로 오고 다시 왼쪽으로 S자를 그리며 두 번을 흔들린 후 가까스로 중심을 잡을 수 있었다. 상대적으로 나의 트럭은 속력이 뚝 떨어졌고 이 틈을 타 그놈은 왼편으로 치고 들어와 옆에 바짝 추격해 왔다. 이제 그놈의 트럭과 나란히 달리게 되었다. 바야흐로 분노의 하이웨이에서 죽음의 질주가 시작되었다.

분노의 하이웨이 301번에서 벌어지는 죽음의 질주는 쏟아지는 빗줄기 속에서도 멈추지 않았다. 차선이 오는 선과 가는 선 각각 하나뿐인 좁은 하이웨이에서 나는 제 차선으로 그놈은 반대차선으로 나란히 질주하였다. 대형 트럭 두 대가 이렇게 나란히 경주하듯 질주하면 한 치의 움직임이나 찰나의 섣부른 판단이 엄청난 결과를 초래할 수 있다는 것을 그놈도 알고 나도 잘 알고 있다. 그래서 서로 추월을 하고자 전속력으로 달리고 있다. 커브 길에서는 아슬아슬했다. 온몸의 땀구멍에서 뜨거운 열기가 올라왔다. 비에 젖은 몸에서 김이 모락모락 피어올랐다.

어두워서 그놈의 얼굴을 볼 수는 없지만 나를 비웃고 있을 것이다. 카메라가 생각났다. 오른손을 뻗어 카메라를 꺼내 무릎에 올려놓았다. 옆에 나란히 달리고 있으므로 기회를 봐서 놈의 얼굴을 향해 플래시를 터트릴 수 있다. 곧 기회가 왔다. 곧은 도로에서 얼른 카메라를 들고 그놈을 향해 셔터를 눌렀다.

번쩍! 플래시가 터졌다. 동시에 '우당탕!' 끼기기기익, 트레일러끼리 부딪치는 소리가 났다. 그놈이 내 쪽으로 꺾은 것이다. 요란한 소리가 나고 몹시 흔들렸다. 오른 손에 들고 있던 카메라를 떨어뜨렸다. 흔들리는 트럭의 중심을 잡기 위해 두 손으로 핸들을 잡아야 했다. 카메라는 바닥에 떨어져 데굴데굴 굴러 구석에 처박혔다.

‘제기랄, 그래 오늘 너 죽고 나 죽자!’

모공이 뜨거워졌다. 머리칼이 치솟고 눈에 핏발이 섰다. 온몸에 피가 거꾸로 치솟고 부르르 떨었다. 입술에서 비릿한 피 냄새가 느껴졌다. 액셀러레이터를 밟은 발이 바닥에 닿고서도 계속 밟았다. 속도 계기의 바늘은 이미 130을 넘어서 바닥에 닿은 채 한일자로 누워버렸다. 두 대의 트럭에서 뿜어내는 요란한 엔진 소리가 세상을 흔들어 깨우듯 고막을 갈라놓았다. 놈도 지지 않고 옆에 나란히 달렸다. 비가 쏟아지는 밤에 북미대륙의 분노의 하이웨이에서 두 대의 트럭이 경주하고 있다. 광란의 두 트럭 드라이버가 죽음의 질주를 벌이고 있다.

이를 악물었다. 섬뜩한 전율이 온몸을 타고 짜릿하게 스쳤다. 불현듯 죽음에 대한 무시무시한 공포가 느껴졌다.

오 미오 바비노 까로

미 삐아체 에 벨로 벨로

보 안다레 인 뽀르따 로싸

아 꼼뻬라르 라넬로!

 

소프라노 가수 몬세렛 까벨의 아름다운 목소리가 잔잔하게 울리며 귓전에 파고들어 왔다. 갑자기 음악이 들리는 것은 이상한 일이었다. 그동안 라디오는 위성방송의 클래식 채널에 고정되어 있었지만, 음악이 귀에 들어오지 않았었다. 전혀 듣지 못하고 있었다가 하늘에서 들려오는 듯한 곱고 아름다운 음악에 빠져들었다.

‘오 미오 바비노 카로’ (O Mio Babbino Caro 오 사랑하는 나의 아버지)는 푸치니의 오페라 ‘지안니 스키키’에서 나오는 여주인공 라우레타가 아버지에게 사랑하는 리누치오와 결혼하게 해달라고 애원하며 허락하여 주지 않으면 물에 빠져 죽겠다고 애교와 위협을 하는 내용으로 애절하고 아름답고 감미로운 아리아 곡이다. 아름다운 클래식 음악은 영혼의 울림이고 치유와 힐링으로 운명을 바꾸기도 한다.

아내의 얼굴이 떠올랐다. 클래식 음악에 관심이 없는 아내지만 이 곡만은 잘 알고 있다. 나와 아내는 아버지의 반대를 무릅쓰고 결혼하였고 그러한 우리 둘의 입장을 잘 아는 친구가 결혼식 날 축가로 불러 주었기에 아내도 이 곡만을 잊지 않고 기억한다.

“당신! 트럭 운전하더니 변했어! ”

출발하기 전날 절규하던 아내의 외침 소리가 유리창에 내리치는 빗줄기 소리를 뚫고 들려 왔다. 정신이 퍼뜩 들자, 주위가 환하게 밝아지며 모든 것이 선명하게 시야에 들어왔다.

‘아! 내가 지금 뭐 하고 있는 거지? 알지도 못하는 어떤 놈의 트럭과 죽음을 무릅쓰고 질주를 하고 있잖은가? 미쳐도 아주 단단히 미쳤구나!’

잔뜩 긴장해서 움켜쥐고 있던 손이 스르르 풀리면서 꽉 밟고 있던 오른발도 힘이 빠졌다. 나의 트럭은 서서히 속력이 줄기 시작하고 그놈은 그대로 쏜살같이 앞질러 나갔다. 뿌연 물보라를 일으키며 어둠 속으로 멀어져 갔다.

"그래, 갈 테면 가라!"

그동안 광분해서 날뛰던 자신의 모습이 한심했다. 모든 것이 아무 의미 없는 부질없는 허상이고 마치 지금 달리고 있는 이 일이 꿈속의 환상처럼 느껴졌다.

물보라 속으로 아스라이 멀어져 가는 그놈의 트럭의 빨간 불이 춤을 추며 밤의 광기 속으로 빨려 들어가고 있었다. 트럭이 춤을 추고 있다. 춤을 추는 것이 아니라 심하게 흔들리며 요동쳤다. 그놈의 트럭이 이리저리 심하게 흔들리더니 커브길 너머로 사라져 버렸다. 느낌이 이상했다.

다가가서 보니 커브 길은 예상외로 급하게 굽어 있었고 놈의 트럭은 길에 없었다. 어둠 속에서 숲속으로 약 100미터정도 들어가 비스듬히 처박힌 트럭을 발견했다. 커브 길을 미처 보지 못하고 그대로 돌진하여 언덕 아래쪽의 숲속으로 굴러떨어진 것이 틀림없다. 나는 커브를 지나서 트럭을 세우고 길로 뛰어나와 언덕 아래를 향해 미친 듯이 고래고래 소리를 질렀다

"맛이 어떠냐? 이 새끼야! “

나는 신이 나서 어린이처럼 펄쩍펄쩍 뛰었다. 허공에 대고 주먹질을 하였다.

“감히 이 울프를 죽이려고 하다니! 천하의 몹쓸 녀석!"

빗속에서 미끄러져 언덕 아래 처박힌 트럭에 대고 주먹을 휘두르며 고함을 치는 나는 누가 보아도 미친 사람이었다.

‘그 운전사 놈은 죽었을까? 저 정도면 최소한 중상 이상으로 크게 다쳤을 텐데……. 가 봐야 하는 거 아닌가? 죽었을까? 아니면 멀쩡하게 살아서 걸어 나올지도 몰라!’

겁이 덜컥 났다. 저놈의 트럭 운전사 만약 살아 나오면 나를 죽이려고 덤벼들 것이다. 나는 얼른 트럭으로 돌아왔다. 그냥 그대로 도망치듯 운전해서 달렸다. 그곳에서 가능한 한 멀리 그리고 빨리 벗어나고 싶었다.

어느새 동녘이 밝아 오기 시작하였고 빗줄기도 그쳤다.

‘그 해골바가지 트럭은 어떻게 되었을까? 돌아가 봐야 하는 것 아닌가?’

운전하고 있으면서도 궁금해서 견딜 수 없었지만 선뜻 결정을 내지 못한 채 안절부절 못하고 운전에만 열중했다.

하이웨이 301번을 벗어나 인터스테이트 하이웨이와 만나는 교차로에 도착했다. 아직도 고민하면서 운전하고 있는데 경찰차가 불빛을 번쩍이며 빠르게 반대 방향으로 지나쳐 갔다. 잠시 후에는 구급차가 번쩍이며 달려가고 그 뒤에는 소방 트럭의 사이렌이 들렸다. 틀림없이 그 사고 현장에 달려가는 것으로 생각했다. 그놈은 어찌 되었을까? 생각하니 도저히 궁금증을 참을 수가 없었다.

‘그래, 경찰들이 있으니까 그놈이 살아 있다 하더라고 나를 어쩌지 못할 것이다. 가보자!’

나는 교차로에서 트럭을 돌려 소방트럭을 뒤따라 그 현장으로 되돌아갔다. 새벽이 밝아 오면서 비도 그치고 시커멓게 보이던 숲이 파랗게 생명의 활기를 비추기 시작했다. 나는 사고 현장에서 멀찍이 트럭을 세워 놓고 지켜보았다. 경찰이 내려가고 소방대원은 소방 호스를 꺼내 놓고 구급차에서는 구급요원 두 명이 나와 구급 장비와 들것을 꺼내 폈다. 그리고 조심조심 언덕을 내려가 숲속으로 갔다. 그들이 가까스로 트럭 문을 열고 운전사를 내려 들 것이 옮겨 싣는 것을 보고 나서야 그가 죽지는 않았지만, 중상일 것으로 짐작했다. 나는 트럭에서 내려 그쪽으로 갔다.

"내가 도울 수 있는 일이 있습니까?"

경찰을 보고 머쓱해진 내가 물었다. 경찰은 대답 대신 나에게 되물었다.

"당신이 전화 한 사람입니까?”

나는 속으로 뜨끔 했다. 비상 전화가 생각났다. 수화기를 들고 있다가 그 트럭이 되돌아서 오는 것을 보고 그대로 내던지고 왔기에 누군가가 늦게 응답을 하였다면 이상하게 생각했을 것이다.

"아니요. 나는 그저 그냥 지나가다 본 것뿐입니다."

나는 거짓말을 했다. 도로에서부터 언덕 아래까지 잡풀 사이로 흙을 파헤치고 길게 트럭 바퀴 자국이 나 있고 트럭은 언덕에 반쯤 파묻힌 채 비스듬히 기울어져 있다. 앞쪽으로 가보았다. 내 트럭하고 부딪혀서인지 아니면 나무에 긁혔는지 트레일러의 옆면은 크게 찢어져 있고 그 틈새로 보이는 트레일러의 안은 화물이 없이 비어 있었고 트럭 앞쪽은 처참하게 부서졌다. 켄워스KW 롱 노우스 트럭이 심하게 찌그러진 후드에 해골이 대롱대롱 매달려 있는 것을 보았다. 추격전을 벌일 때부터 그놈일 거라고 예상하였지만 이제 확실해졌다. 바로 어제 트럭 스탑에서 만난 그 트럭 운전사다. 연료를 훔쳐 갈 것으로 의심하였다가 시비가 붙었던 바로 그놈이 틀림없다. 트럭 스탑에서 내가 CB 라디오로 길을 묻는 것을 엿듣고 내가 이 길로 오는 것을 알고 뒤 쫓아 왔을 것으로 추측했다.

양쪽에 우뚝 솟은 배기통 중 오른쪽 것은 떨어져 나가 보이지 않고, 정면 유리창은 산산이 부서져 유리알처럼 쏟아냈고 사이드미러는 흔적도 없이 흉하게 찌그러졌다. 반쯤 열려 있는 문으로 안을 들여다보았다. 트럭 안은 그야말로 엉망진창이다. 각종 물건이 쏟아져 나오기도 하였지만 빈병, 과자 봉지, 담뱃갑, 꽁초, 비닐 백, 종잇조각,……. 냉장고 TV 선풍기가 바닥에 떨어져 깨졌고 옷 가지 등 온갖 잡동사니가 어지럽게 널브러져 있다. 아마도 1년 365일을 트럭 청소를 한 번도 하지 않은 것 같았다. 이때 대시보드에 있는 서랍이 덜컹 열리면서 그 안에 있던 물건들이 우르르 쏟아져 나왔다. 여러 개의 약병이었다. 그중 몇 개가 문밖에까지 굴러떨어졌다. 옆에 서 있던 구급요원이 약병 하나를 집어 들었다.

"아하! 여기 문제의 그 약이 또 있군."

그는 약병에 쓰여 있는 라벨을 보면서 고개를 좌우로 흔들었다. 그리고 나에게 들으라는 듯 눈길 한 번 주고 의학지식을 자랑이나 하듯 설명했다.

"이 약은 최근에 많은 부작용이 보고된 약으로 현재 집단 소송이 진행 되고 있는 중입니다. 일시적인 신경 안정 효과를 주지만 장기적으로 복용하였을 때 순간적으로 이성을 잃고 미치광이로 변해 버려 심하면 자살을 하기도 하고 또 분노를 억제하지 못 하고 감정이 폭발하여 아주 폭력적으로 변하기도 합니다. 최근 여러 교통사고의 원인이 바로 이 약의 복용에서 기인한다고 보고 조사 중에 있습니다."

나도 약병을 하나 집어 들고 라벨을 읽어 보았다. 순간 전기에 감전된 듯 짜릿한 충격이 온몸에 저며 왔다.

antidepressants SSRIs

얼른 주머니에서 약병을 꺼내 보았다. 약병에 쓰여 있는 이름이 내가 처방받아 가지고 있는 약 이름하고 똑같다. 가정의가 처방이 적힌 종이를 건네주면서 했던 마지막 말이 생각났다.

-혹시 복용 중에 조금이라도 이상한 기분이 들면 즉시 복용을 멈추세요!-

여러 개의 빈 약통으로 보아 상당히 오래 복용하였을 것이라고 생각되었다. 도대체 저놈은 얼마나 심각했기에 분노조절을 못하고 조그만 시비에 목숨 걸고 덤벼들었을까? 빈 트레일러로 본인이 가야 할 방향과 반대로 가는 나를 이틀 동안이나 쫓아오며 괴롭혔을까? 조금은 그를 이해 할 수 있을 것 같았다. 들것에 실려 누워 있는 그 트럭 운전사를 바라보았다. 피투성이가 되어 정신을 잃고 쓰러져 있는 그가 측은해졌다. 조금 전까지 죽이고 싶도록 미워했었지만, 막상 피를 흘리며 기절해 있는 얼굴을 보니 불쌍해 보였다. 그런데 그 피투성이가 된 얼굴이 많이 본 얼굴이다. 눈에 익은 얼굴이다.

바로 나! 울프, 나 자신의 모습이다! 내 얼굴이 피투성이가 된 채 들것에 누워 있다. 내가 바로 저놈이고 저놈이 바로 나 자신의 모습이다.

백만 마일을 향해 달려온 지난 9년 동안 쌓이고 쌓인 스트레스가 화산처럼 폭발할 것이고 어느 한순간에 미치광이로 변해 저와 같은 처참한 결과를 맞이할 것이다.

자신도 모르는 사이에 매사에 분노를 일으키고 신경질을 내며 부부싸움까지 하였고 죽음의 경주를 하였다. 단 몇 초의 차이로 서로의 운명이 뒤바뀌었을 뿐이다.

‘오 미오 바비노 까로’ 음악이 들리지 않았다면, 내가 먼저 이 지점에 도착하였다면 하고 생각만 해도 몸서리쳐 오는 끔찍한 일이다.

나는 손에 든 약병을 노려보다가 있는 힘을 다하여 야구공 던지듯 숲속을 향하여 힘껏 던져 버렸다. 숲속의 싱그러운 나뭇잎들이 아침 햇살을 받아 영롱한 보석처럼 반짝인다.

 

가자!

집으로 가자.

그리고 조용하고 아름다운 호숫가로 캠핑가자.

사랑하는 아내와 함께,

‘오, 미오 바비노 까로’를 들으며......

트럭,드라이버,미국,트럭커,캐나다,
이 블로그의 인기글

분노의 하이웨이 Raging Skull