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할머니 축하식♪
08/19/2018 08: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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할머니 축하식/오정순

 



11층 K는 지난해에 두 자녀를 결혼시키더니 올해 손자를 보았다.

집집마다 문화가 다르고 아기 있는 집의 손님 반기는 정도가 달라서 

어떻게 축하해야 할지 궁리하다가, 손자는 할머니가 알아서 사랑하라 하고 

우리는 할머니에게 관심을 보이기로 하였다.


돈 내고 손자 자랑하는 것이라고 이야기 자리를 깔게 하고, 

코스모스 길을 따라 8명이 가을 벌판을 달려가 밤이 익는 자연의 뜰에서 

음식을 앞에 두고 할머니 축하식을 가졌다.


“오늘 저흰 한 여성이 할머니라는 호칭을 얻은 것을 축하하기 위해 모였습니다. 

누구든지 태어나 개인 역사의 탑을 쌓으며 호칭도 바뀌어 갑니다. 

여자로 태어나면서 ‘딸’이라는 호칭을 얻었고, 학교에 들어가서 여학생이 되었고, 

대학에서는 여대생으로 불리며 그래도 이 땅에서는 축복받은 젊은 날을 보냈다고 하였습니다.

곧 이어 다시 하나의 이름을 얻었지요.그 환하고 아름다운 ‘신부’가 되었지요.
우리는 면사포 속에 그렇게 많은 여자의 애환이 숨어 있을 줄 몰랐습니다.

수가 많고 쉬운 일로 보여서 참으로 귀한 것이 귀하게 여겨지지 않는 ‘주부’라는 이름을 하나 얻고, 

얼마 지나지 않아 ‘어머니’라는 호칭을 얻게 되었습니다.

하느님의 첫번째 축복하심이 ‘번성하라’는 말씀이었는데, 그대는 그 몫을 해내셨습니다.
아픔과 불안의 언덕에서 곡예하듯 진통을 겪으며 세 아이의 어머니가 되셨습니다.
양육하며 기쁨을 선사받고, 욕망하며 아파하고, 다그치면서 분노하고, 말없이 참으며

 그 많은 세월을 보낸 줄 누가 압니까.

인생의 쓴맛 단맛을 보고 난 후, 그 아이들의 할머니를 거두고 이제 그대가 할머니가 되셨으니 

참으로 장하십니다.남의 이야기라도 마음 뿌듯한 일입니다.

우리는 여자의 삶을 축하하기 위해 여기 모여 앉았습니다.

서로에게 지지자가 되어주고 아낌없이 위로하고 서로 다독거리지 않는다면 

누가 나이 들어가는 우리를 부추기고 응원하며 격려하겠습니까.

축하합니다.

얼굴 맞대고 웃는다는 것이 얼마나 귀한 일입니까.
아무도 세월을 앞질러 걷지는 않을 것이나,
나이 순으로 간다는 보장을 받지 않았으므로 장담 못하는 세월, 

사랑하고 사랑받는 할머니로 앞서 걸으십시오.

늙음도 때로는 아름답지요.
아름다운 삶은 만들어 가는 것이지 누가 만들어 바치지 않습니다.

내내 행복하십시오”


돌아오는 길목의 강아지풀이 역광을 받으며 귀엽게 하늘거리고,

남한강의 물비늘이 반짝거리며 찬사를 보낸다.

산이 물 속 깊이 그림자를 적시고 지는 해를 받아 윤기를 내며 웃어준다.

비늘 빛으로 올라오는 갈대도 노을을 배경으로
우리에게 한 마디 거드는 것 같다.

“그대들 참 괜찮은 인생이요. 늙음을 멋지게 긍정할 줄 아는구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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