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포스팅 이벤트]인연
10/21/2015 18:2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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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립 목포 해양 대학교(Mokpo National Maritime University) 전경 




나는 서울에서 태어나

그곳에서 성장했다 

고등학교를 졸업하고 진로를 고민한 끝에

마도로스가 되겠다고 지원한 대학이

목포 해양대학교,

남자라면 흰 제복을 입고

오대양 육대주를 누비는 장면을  

누구나 한번쯤은 상상해 보았으리라. 


비린내 나는 선창가,

뱃고동 소리가 나직히 들려오는 부둣가,

구수한 사투리를 쓰는 사람들의 모습은

도시의 높은 잿빛 빌딩 숲에서 살아온 나에게

낯설기도 했지만 신비롭게 보이기만 했다. 

 

     마도로스가 되기 위해

전국에서 모여든 팔도의 사나이들은

유달산 기슭에서 그렇게 젊음의 의지를 불태우고 있었다.

재학생 모두 기숙사에서 군대식 생활을 했는데

  이것은 향후 상선사관으로서 갖춰야 할   

선내 규율을 조기에 터득하기 위함이었다


학과별로는 

항해과, 기관과 그리고 통신과가 있었는데 

 나는 통신과를 지원 했다.

통신과를 졸업하면 선박 통신사가 되어

본사 혹은 해안 기지국간 통신 및  

회계의 업무를 맡게 된다



입학 당시 통신과 정원이 50명이었는데

중간에 성적 불량(학군단 점수 포함), 

기숙사 생활 규칙 위반 등의 이유로 

  9명이 퇴교를 당해 41명 만이 졸업을 할 수 있었다.

Survival of the Fittest(적자 생존),

이 법칙은 졸업할 때 까지 철저히 적용 되었다. 

  국비 지원을 받는 학교이다 보니

엄격히 학칙이 적용되며 중도 탈락자는  

이후 군 소집 영장을 받게 된다.     


학교를 졸업하면 두가지 옵션이 따르게 된다.

하나는 졸업 후 5년안에 일정기간 승선 생활을 하든지

아니면 해군으로 차출되어 군복무를 해야만 한다.

해군에 차출되는 영광(?)은 극비로서

졸업식 이후 해군본부에서 개별 통보 하므로

누가 차출될지는 아무도 모른다. 


만일 해군에 차출되지 않았더라도

졸업 후 5년 안에 승선 생활을 하지 않으면 

5년 이후에 군입대 영장을 받게 된다

실제로 5년을 육상에서 보내다가 영장을 받고

뒤늦게 입대한 선배가 있었다.    


"너같이 착실한 녀석이 차출 안되면

누가 차출 되겠냐" 

재학시절 동기들이 이런 농담을 던졌었는데

이 농담이 사실이 될 줄 누가 알았으랴..


나는 졸업 후 해군에 차출되어

구축함(DD-917), 인양함(ARS-25)에서 함상 근무를 했다.

해군에서의 군경력은 나중에  

사회 진출 하는데 많은 도움이 되었다.    



인연(1)


군복무를 마친 나에게

선박 회사인 부산 범양 전용선 에서

통신 차석으로 일할 수 있는 기회를 주었으나  

아쉽지만 마도로스의 길을 접고

S전자에 공채로 입사하여 사회 생활을 시작 했다.

81년 겨울 어느날 첫 보너스를 받아 퇴근 하려고

빌딩 로비를 나오는데 나도 모르는 학교 후배가

제복을 입고 로비에 서 있는 것이 아닌가  

그 후배에게 다가가 물었다.


나는 25기 통신과 출신이며

만나서 반갑다고 인사를 했더니 

기관과에 재학 중이던 그 후배도 인사를 하면서 

지금 같은 빌딩에 있는 S물산에 근무하는

사촌 누나를 기다리고 있다라는 것이다.

겨울 방학을 맞이하여 서울 사촌 누나 집에 

잠시 놀러 온 것이라고 말하는 것이었다.

그 당시 나는 삼성본관 5층에.

그녀는 같은 빌딩 12층에서 근무하고 있었다  


주머니 사정도 두둑하겠다

목포에서 처럼 후배를 사랑하는 선배의 입장에서  

"그럼 기다렸다가 저녁이나 함께 먹으러 가자" 라는 제안에  

후배는 그러자고 했다.  

후배와 그의 사촌 누나와 식사를 한 그 날 저녁은 

주로 학교 생활에 대해 후배와 이야기를 나누고 헤어졌다.  


그런데 며칠 뒤 후배가 회사로 나를 찾아 왔다.

시골로 돌아가기 전 내게 인사를 하러 왔다는 것이다.

그러면서 커피 한잔 대접하고 싶다고 하는 것이 아닌가

퇴근 길에 후배와 근처 다방에 가서

이런 저런 이야기를 하고 헤어지려고 하는데

갑자기 후배가 사촌 누나의 전화번호을 내게 주는 것이었다 


"선배님, 우리 사촌 누나 좋은 분인데

혹시 시간이 나면 연락해 보세요" 라고 하는 것이었다.

첫 날 만남에서 나는 사촌누나에게

별다른 관심을 보이지 않았는데 

 후배는 나에게 후한 점수(?)를 준 것 같았다.

   

시간이 한참 흐른 어느날,

나는 그녀에게 전화를 걸었다.

 내 전화를 기다렸던 것일까.

그녀는 반색을 하는 것이었다. 

사실 후배와 헤어질 때 내 명함을 주었으니

내 연락처를 모를리 없었을텐데 

그 알량한 자존심 때문에

전화를 먼저 하지 않았던 것 같았다.


이렇게 해서

지금의 옆지기와의 인연은

사랑의 싹을 틔우기 시작 하였다.

우리는 점심시간이면 가끔 빌딩 로비에서 만나

이야기를 나누곤 했는데 

이 장면을 본 회사 동료들이

"와, 미스 오랑 결혼 해라, 결혼 해!!"라고 

농담을 던지기도 했다.     

사내 결혼은 종종 본 적이 있지만 

전자의 총각과 물산의 처녀가 만났으니

내 경우에는 그룹 결혼이라고 해야 하겠다.

  

인연(2) 

 

내가 켈거리에 이민 와서

졸업 후 30년만에 만난 동기가 한명 있다.

항해과를 졸업하고 외항선을 오래 탔었다는 병화,

소문 중에 그가 켈거리에 산다는 소식을 우연히 들었다.

그리고 이곳 한인 사이트에 병화를 찾는다는 글을 올렸다.


얼마후 병화의 연락처를 알아 냈고  그를 만날 수 있었다

30년 만에 만난 우리는 모습이 많이 변했지만

첫눈에 서로를 바로 알아 볼 수 있었다.

한국도 아닌 캐나다 켈거리에서 동기를 만나게 되다니

세상은 넓고도 좁은게 사실이다.

대인관계가 넓고 외향적 성격의 병화이지만

학창 시절의 순수함은 세월이 흘러도 변하지 않았다.

내 곁에 그런 친구가 있어 나는 언제나 든든하다.

 우리의 우정이 영원하길 바라며..  


         

병화(왼쪽)와 나



세상을 살아 오면서

때로 인연이란 참으로 묘하다는 생각이 든다.  

내가 목포를 가지 않았더라면

지금쯤 어떤 사람이 되었을까.

지인이라고는 아무도 없던 목포에

나는 나만의 인연이라는 한 그루 나무를

심었는지도 모른다.   


옷깃만 스쳐도 인연이라는데

전혀 모르는 후배를 통해  

평생의 반려자를 만나게 되었고 

그리고 30년만에 켈거리에서 동기를 만나

외롭지 않게 지내고 있다.  

병화를 만난 이후 몇년의 세월이 흘렀다.

나는 가끔 말한다. 


"병화야,

우리가 이렇게 타국에서 만난 것은 

인연이 아닌 천연(緣)이야.

나의 삶 속에 모든 인연은  

목포(木浦)가 만들어 준 

아주 특별한 천연이란 말이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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