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포스팅 이벤트]나의 멀고먼 이민길
10/31/2014 18:1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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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의 멀고먼 이민길



1997년 한국에서 발생한 IMF위기(금융외환위기)는

실로 많은 국민들의 삶의 방향을 바꿔 놓았다.

기업들은 "인력 극대화"라는 미명 아래 감원및 재배치로 경영 효율화를 시도 했지만

이로 인해 대규모 실직자가 발생 했으며 비정규직 양산, 자영업자 증가, 신불자 양산, 많은 회사의 부도등

사회 전반에 걸쳐 혼란이 일어 났다. 직장 생황를 하다 퇴사해서 이동통신 대리점을 운영하던 나도 

IMF 위기를 피해갈 수는 없었다. 대리점이란 휴대폰이나 호출기 판매 이익 보다 가입자를 많이 확보해서 

이동통신 본사가 주는 리베이트로 유지할 수 있는 사업인데 IMF가 터진 후 많은 가입자들이 해지를 하다보니 

수입이 줄어드는데다 우후죽순처럼 늘어난 이동통신 대리점간의 치열한 경쟁으로 수익이 악화돼 

결국은 대리점 운영을 포기하게 되었다.


삶의 방향을 잃어 버린 가운데 하루 하루가 흘러 갔다.    

한때는 회사와 국가를 위해 중추적 역활을 했었던 세대이었건만..

IMF 위기의 칼날 서린 바람은 사회 구석 구석에 매섭게 몰아치고 있었다.

그러던 어느날 남동생이 모 이주공사를 소개시켜 주면서 관심이 있다면 한번 가 보라는 것이었다. 

이주공사 직원은 나의 자격 검토 후 독립이민(기술이민)자격으로 이민을 갈 수 있는데 

영어점수를 최고점수로 했을 때 가능하며 영어를 집중적으로 공부해야 한다고 말하는 것이었다.

또한 이민 서류는 서울주재 캐나다 대사관은 이민 신청자가 너무 많이 몰려 

대기기간이 길므로 필리핀 마닐라로 해야 처리가 빠르다고 했다.

며칠을 심사숙고한 후 옆지기와 상의한 끝에

나는 이민을 가기로 결심 했다.


내가 이민을 신청할 당시 한국에는 이민 광풍(?)이 불어 

이민과 관련한 여러가지 모임이 있었고 몇몇 은행은 이민자들을 위한 무료 영어반을 운영하고 있었다.

이민 신청자들이 영주권을 받고 해외에 정착할 때 까지 환전이나 재산관리 그리고 이민정보등을 제공하고

영어능력도 향상시킬 수 있는 유용한 코스였다. 나도 그 모임에 참석하여 영어 공부도 하고 이민 정보도 얻었다.

회원 중 인터뷰를 면제 받고 불과 6개월만에 영주권을 받아 밝은 모습으로 떠나는 회원이 있는가 하면

마닐라, 홍콩까지 가서 인터뷰에 불합격한 회원들도 있었다.

그들 나름대로 준비를 많이 했을텐데 참으로 안타까운 마음이 들었다.

"나는 과연 인터뷰에 통과해서 캐나다로 갈 수 있을까...."       


전에 이주공사를 방문했을 때 직원은 

서류 접수 후 인터뷰 대기 기간이 1년 정도 걸릴 것이라고 말했다. 

나는 이 시간을 이민 준비 기간으로 정했는데 옆지기는 일식요리등 몇가지 기술을 배웠다.

그런데 1년이 지나도 마닐라 주재 캐나다 대사관으로 부터는 아무 레터가 없었다. 

이미 생계수단을 포기한 채 이민 준비에 메달린 나로서는 지루하고 초조한 나날을 보내야만 했다.   

그런데 2년이 가까이 되는 어느날, 마닐라에서 반가운 한통의 레터가 왔다.

인터뷰가 있을 예정이니 지정된 시간에 맞춰 인터뷰 장소에 출석하라는 것이었다.

 


인터뷰를 위해 마닐라로 가는 비행기를 타기 위해 도착한 저녁 무렵의 김포공항,

런데 왠지 분위기가 이상했다. 필리핀 항공사 직원이 기상악화로 인해 

우리 부부가 타고갈 비행기가 이륙할 수 없다는 것이었다. 

"이런 청천벽력 같은 소식이... "

나는 필리핀 항공사 사무실로 찾아가 나의 사정을 상세히 설명하고 최대한 빠른 비행기를 타게 해 달라고

간곡히 사정을 했다. 그랬더니 그 직원은 우리를 대기자 명단에 올려 놓을테니 걱정하지 말고  

하룻밤을 공항 부근에서 머물 수 있게 해 주겠다고 하는 것이었다. 

아울러 마닐라에 도착하면 현지 직원이 우리를 픽업해 

인터뷰 장소 부근 호텔까지 안내해 주겠다고 하는 것이다.  


예정에도 없던 김포에서의 하룻밤, 

인터뷰에 대한 긴장감은 더해만 갔으며 

밤새 새우잠을 자며 하룻밤을 보내야 했다.

그리고 다음날 아침 일찍 공항으로 간 우리는 

 마침내 마닐라로 향하는 비행기를 탈 수 있었다.


마닐라 공항에 도착하자 예정대로

 현지 한국인 직원이 우리를 기다리고 있었다.

그들은 우리를 캐나다 대사관이 있는 마카티 시티로 친절하게 안내 해 주었다. 

대사관 위치를 확인하고 우리 부부는 예약해 놓은 근처 호텔로 갔다.

영어반 회원들 말에 의하면 까다롭기 유명한 '슈잔'이라는 영사가 있는데 

이 여자 영사와 인터뷰에 걸리면(?)

 인터뷰 당사자들이 곤혹을 치룬다라는 말이 떠 올랐다.

"주님, 저희를 불쌍히 여기소서..."


인터뷰 당일 아침,

정장을 하고 옆지기와 함께 대사관으로 향했다.

대사관이 있는 건물 9층에는 인터뷰를 기다리는 수많은 필리피노들로 북적였다.   

대기표를 들고 순서를 기다리는 동안 인터뷰를 마치고 나오는 사람들을 보니 희비가 엇갈렸다. 

미소 짓는 사람은 합격한 사람이지만 그렇지 않은 어두운 표정의 사람은 불합격한 사람이리라...

이 때 옆지기가 뭔가를 먹으라고 알약을 주는데 그것은 바로 청심환이었다.

"여보, 긴장하지 말고 인터뷰 잘 해 "


드디어 내 차례가 왔다.

키가 큰 남자영사를 따라 그의 사무실로 들어가

우리는 그와 서로 마주보고 앉았다.

나의 신청 서류를 뒤적이며 나에게 여러가지 질문을 하는 것이었다.

마닐라에 오기 전, 이주공사에서 가상 인터뷰를 몇번 하긴 했지만

살얼음을 걷는듯한 긴장감은 어찌할 수 없었다. 

영사는 나의 전공, 자격 그리고 근무 경력에 대해 집중적으로 질문을 했다.

영겁의 20여분이란 시간이 흘렀을까..

영사는 인터뷰가 끝났다고 하면서 축하한다고 악수를 청하며 

영주권 및 관련 서류를 나에게 건네 주었다. 

우리는 영사와 인사를 나누고 사무실을 나섰다.

이제 캐나다로 가는 비행기를 타는 순간만 남은 것이다. 


2000년 8월 23일 오후 

우리 가족을 실은 비행기는 마침내 켈거리 공항에 도착했다.

착륙 순간 나와 옆지기는 하염없이 울었다.

2년 넘게 이민 준비해 온 지난날들이

추억의 주마등 처럼 스쳐가는 것이었다.

  


마지막으로 

이민 신청 부터 랜딩할 때 까지

 꾸준히 관심을 가져준 한마음 이주공사 김미현 사장,

영어능력 향상에 도움을 준 EBS "Morning Special" 진행자 이보영씨,

김포공항에서 부터 인터뷰 장소까지 친절하게 우리를 도와준 필리핀 항공사 직원들

암울했던 시절, 나의 삶에 전환점(turning point)을 마련해 주고,

우리 가족을  받아준 캐나다 연방정부 이민성 관계자들에게 ,

머리 숙여 감사를 드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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