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름♪
01/12/2019 06:2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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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름 / 전명희



 

 주름은 길이다. 

수없는 마음들이 오고 가고 수없는 사연들이 흘러가고 흘러오는 길,

 

 내 얼굴에도 숱한 길이 있다. 

가족과 친구와 이웃과 정을 나누고 더 크고 원대한 배움을 익히며 

타인과의 사랑과 이별을 겪으며 그 길은 세세 갈래로 나뉘고 다져졌다. 

동경과 꿈이 배어 있고 격정과 한숨이 녹아 있고 슬픔과 울분이 스며 있다. 

그 중 눈가의 주름은 내 얼굴의 군소의 길 중에 가장 마음에 들지 않는 길이다. 

그 길은 타인의 사연이 흘러오는 것을 일부러 막아서는 듯한 험한 둔턱을 끼고 있기 때문이다. 

자연히 평범한 이웃들은 그 길을 선호하지 않을 것이다. 

억세고 심술궂기까지 한 그 길에는 언제부턴가 타인의 발길이 뚝 끊긴 듯도 싶다.

 

  화장을 잘 하지 않는 내가 그래도 그 길만은 조금 시간을 들여서 

파운데이션이라도 펴 바르곤 하는데 마찬가지다. 

이미 나 있는 길은 기초화장에 색조화장을 아무리 정성껏 해도 

두툼한 심술의 장애물을 가려낼 길이 없이 도드라져 보인다. 

외출이라도 할 양이면 거울 앞에 서는 시간이 길어진다. 

아무리 해도 그 길 때문에 전체적인 인상이 좋아 보이지 않기 때문이다.


  “여보, 나 수술할까 봐요. 눈 밑이 너무 사나워 보여서 영 신경 쓰여요.”

 

  “생긴 대로 살지, 뭘.” 남편은 아내의 이 심각한 고민이 그저 우습고 하찮아 보이기만 하는 것일까.

 

  눈 밑 지방을 제거하는 수술이 있다기에 혹해 있다가 마침 얼마 전 미용실에서 펼쳐본 잡지책에 

수술 전과 수술 후의 비교 사진을 보니 사뭇 마음이 끌려서 넌지시 화두를 꺼내본 것인데 

역시 남편의 화법은 완곡하면서도 강하다. 

남편이 그러라고 해도 아마 평생 성형외과의 문을 두드릴 날은 오지 않을 것이다. 

하지만 말이라도 한마디 “그래? 나는 괜찮지만 그렇게 마음에 걸리면 한번 알아 봐요.” 했더라면 

두고두고 뿌듯해 하지 않았을까. 

뿐이랴, 남편을 자랑스러워하고 신뢰하는 마음이 그 전보다 몇 배는 두터워졌을 것이다.

 

  하기는 나도 이 ‘말 한마디의 진정!’을 소홀히 하고 남편을 서운하게 할 때가 종종 있다. 

남편의 속마음이 아내의 기탄없는 칭찬 한마디 듣고 싶어 하는 줄 뻔히 알면서도 

그 한마디에 끝내 인색하여 나보다 다섯이나 많은 점잖은 남편을 

삐돌이 아이처럼 만들어 버릴 때가 있었다. 

입장을 바꿔 생각해보니 그동안 남편이 너그럽지 못한 아내에게 

얼마나 조바심을 내고 심기가 불편했을지 짐작이 가고 많이 미안해진다.


  새삼 부부지정의 밀도를 되돌아보게 하는 눈 밑의 길은 언제부터 생긴 것일까. 

  십여 년 전 장애 아동들을 돌보는 직장을 다닐 때이리라. 

지금은 그 주변이 얼마나 번화하게 변했는지 모르지만 

그때엔 시골 마을에서 꽤 깊숙이 들어간 산 밑에 덜렁 그 건물 하나 있었다.

 주변으로 봄에는 진달래, 여름에는 보드란 자귀나무 꽃들이 지천에 흔하게 피었다. 

가을에는 감나무와 밤나무가 툭툭 열매를 내던지며 우리들을 유혹하던 곳이었다. 

그 중 어느 가을이 문제였던 것 같다. 

외출이 가능한 아이들 몇을 데리고 주변의 산을 산짐승 처럼 뛰어 다녔다. 

예쁜 나뭇잎도 따고 밤도 줍고 떫은 감을 따서 방안에 걸어둘 욕심으로 

자꾸 깊숙이 깊숙이 아이들을 몰았다. 

그 날 유독 커다란 잎에 원색의 붉은색 단풍물을 들인 나무들이 많았었다. 

그 색이 너무 강렬해 감히 잎을 따거나 만지지는 않았지만 

그 곁을 수도 없이 스치고 지나쳤던 게 결국 화근이었다. 

그날 밤부터 얼굴과 목에 붉은 빛이 돌며 좁쌀만한 돌기가 돋아 나오기 시작하더니 

이내 오른쪽 볼 쪽이 벌겋게 부어올랐다. 

주변에서는 병원에 다녀오라고 채근했지만 나름의 소신만 가지고 차차 괜찮아지려니 하고 말았다.


  지금 생각하면 왜 그토록 어리석고 무모한 태도를 고집했는지 스스로 아연할 지경이지만 

그 때로선 아마 그럴 수밖에 없었으리라. 

그 곳 아이들은 모두 장애아들이었다. 

정신지체 1급부터 뇌성마비 1급, 증상이 가벼운 아이들도 있었지만 

대부분 심각한 장애를 가진 중증 장애아들이었다. 

사지가 뒤틀린 채 평생을 누워서 살아야 하는 아이도 있고 제 몸을 학대하여 

하루가 멀다 하고 피를 보는 아이도 있고 눈만 끔벅끔벅 

누워서 떠주는 밥을 받아먹을 힘이 없어 임의로 입을 벌리고 먹여야 되는 아이도 있었다. 

고릴라 같은 큰 덩치에 문턱이고, 기둥이고 가리지 않고 꽈당, 꽈당 넘어져 

머리와 얼굴이 상처로 울퉁불퉁 길이 난 채 헬멧을 쓰고 사는 아이도 있었다.

 그 아이들과 함께 살면서 겨우 얼굴에 난 부종과 돌기 때문에 병원을 다닌다는 것이 

왠지 아이들에게 미안하고 스스로 낯이 서지 않았던 것이다. 

약국에서 바르는 약으로 며칠을 버티다 보니 그럭저럭 가라앉기는 했지만 

그 때 이후 눈 밑에 이상한 주름이 생겼다. 

살이 부었다가 갑자기 부기가 빠지면서 늘어진 피부가 주름으로 고정돼 버린 것이다. 

그날 그 유별난 원색으로 나를 유혹했던 나무는 옻나무였음을 나중에 알았다.


  눈가의 주름이 곱고 순한 사람들이 있다. 

이 사람들은 웃을 때 특히 이 주름이 진가를 발휘한다. 

두 눈을 중심으로 마치 은은한 꽃 두 송이가 살포시 피어나고 

동시에 얼굴 전체가 하나의 화사한 꽃처럼 피어난다. 

꽃 같은 고운 길로 닦이기까지 그들의 생애 또한 그렇듯 순정하고 포근하고 너그럽게 끌어안지 않았을까. 자신보다는 타인을 먼저 생각하고 가까이 있는 이웃들에게 보기만 해도 힘이 되고 

아름다운 자극을 심어준 삶을 살아오지 않았을까. 

눈가의 길이 순하고 섬세한 이에게는 알 수 없는 그런 믿음과 넉넉함과 고요한 포용력이 느껴진다. 

그런데도 이 소중한 주름을 일부러 돈을 들여 없애려고 안달을 하는 사람을 보면 마음이 답답해진다. 

현재의 자신을 부정함은 물론 애써 가꾸고 닦아온 연륜과 알뜰한 삶의 흔적까지 지우려는 

어리석음이 느껴지기 때문이다.


 주름은 인생이다.

 

내가 세상에 어떤 걸음으로 걸어 나갔는지를 뚜렷이 보여주며 

살아온 세월이 고스란히 묻어 있는 인생 자체다. 

주름이 유독 험하고 거칠고 크고 깊숙한 사람들에게는 

그 달려온 인생 또한 순탄하지 않았음이 느껴진다. 

그인들 타인이 쉬어 가고 싶은 아늑하고 평탄한 길을 만들고 싶지 않았으랴.

이따금씩 쉬어가며 돌아볼 여유도 없이 숨가쁘게 달렸던 

그들의 역경과 굴곡 많았던 삶에 경의를 표하며

이제라도 온유하고 다감하고 여유로운 일만 생기기를 간절히 기도할 뿐이다.


  웃으면 더 밉살스럽게 일그러지는 내 눈가의 주름. 

이제라도 살뜰히 보듬어 줘야겠다. 

누가 보면 참 심술궂다, 밉상이다 하겠지만 한때의 순수한 소명감으로 

불우한 이들과의 정을 나눴던 젊음의 흔적이 아닌가. 

거울을 볼 때마다 그때의 순수한 동기를 흠모하며 현재의 나를 돌아보리라. 

그 때 이후 특이할 만한 주름(길)이 생기지 않았음은 더 이상 뜨겁고 진솔함이 아닌 

적당 적당히 살아왔음을 의미함이 아니런가.


  이제는 주름이 생기는 것을 두려워하지 않으련다. 

주름은 나 자신을 이웃에게 데려가고 이웃을 나에게로 오도록 하는 정다운 길이기 때문이다. 

대신 크고 눈에 띄는 길보다는 작고 약해서 큰길에선 함부로 나다닐 수 없는 

연약한 마음들이 터놓고 오갈 수 있게 가능하면 좁고 가늘고 부드러운 길을 만들리라. 

그러기 위해선 지금보다 더 세밀한 마음의 정도(精圖)로 내 안을 재정비하고 

지금보다 더 투명하고 정갈한 축척으로 영혼의 지도를 기록해야 하리.

거울을 보며 내 삶이 배어 있는 주름들을 본다. 

어떤 의미로도 깊이와 연륜이 묻어나려면 아직 멀었다. 

그것이 아닌 데에야 삶의 어떤 한가함과 나태는 물론 

투정과 한숨조차 스스로 용납해서는 안 되리라.


수필가 전 명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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