vistamexico
마중물(vistamexico)
California 블로거

Blog Open 11.07.2008

전체     638907
오늘방문     99
오늘댓글     0
오늘 스크랩     0
친구     5570 명
  달력
 
인터넷 방송 416♥성막(聖幕)강의56♥번제단의 제물과 예수.♥성막을 통하여 예수 발견.
10/23/2018 12:57
조회  148   |  추천   1   |  스크랩   0
IP 108.xx.xx.66

인터넷 방송 416성막(聖幕)강의56번제단의 제물과 예수.성막을 통하여 예수 발견.M.T.M.구경평 Rev Dr Th D

 

번제단(燔祭)의 제물과 예수님

27:1~8

너는 조각목으로 장이 오 규빗 광이 오규빗의 단을 만들되 네모 반듯하게 하며 고는 삼 규빗으로 하고단은 널판으로 비게 만들되 산에서 네게 보인 대로 그들이 만들찌니라.

예수 그리스도는 사랑이십니다.

성막으로 들어 가는 길은 오직 성막 문을 통하여 들어 갑니다. 성막 문은 오직 동쪽에 하나만 있습니다. 지난 시간에 성막 문에 대하여 자세히 공부하였습니다. 성막 문을 열고 들어 가면 먼저 번제단을 만나게 됩니다. 그 번제단을 집중적으로 공부하는 시간을 가지겠습니다.

 

 (속죄하신 구세주 찬양)

성막을 통하여 예수 그리스도를 발견하는 놀라운 은혜의 시간이 되시기를 축원합니다.

 

(성막 시물레이션)

하나님께서는 성막을 만들게 하신 이유가 있습니다.

왜 무엇 때문에 성막을 만들게 하셨을까? 의문을 던지면서 생각해 보는 이시간이 되어 봅시다.

그 이유는 범죄한 자가 죄 용서함을 받게 하기 위함입니다.

제사를 통하여 죄 용서함을 받는 것입니다.

 

한문으로 보는 제()자를 자세히 살펴 봅시다.

이 글자는 고기 육()자가 있습니다. ? 제사에는 고기가 사용되는 것입니다.

제사 제= 고기月()+또 우() 이글은 다른 글과 함께 쓴 때에는 오른 손 우()로 해석한다.+보일 시()

이렇게 3개의 글이 결합하여 제사 제() 가 되는 것입니다.

그렇다면 하나님께 고기를 손으로 받들어 드리는 행위입니다.

 

즉 제사에는 육체의 고기를 가지고 드렸습니다.

아담이 범죄 하였을 때 스스로 부끄러운 수치를 가려 보았지만 그것으로는 해결이 아니 되었습니다. 하나님께서 가죽 옷을 지어 입히 셨던 것입니다. 가죽 옷을 만들기 위하여는 분명히 어떤 생명이 희생된 것이 분명합니다.

성막을 통하여 소나 양을 잡아 제사하게 하셨습니다. 예수님께서는 온 인류의 죄를 담당하시고 제물이 되어 십자가에서 죽으셨습니다.

 

계속하여 성막의 희생 제물인 소나 양을 잡아 제사를 하게 하신 것입니다.

결국 예수님께서 제물이 되어 십자가에서 죽으심은 온 인류를 위하여 제물이 되신 것입니다.

 

1:29 ?“…보라 세상죄를 지고 하는 하나님의 어린 양이로다

세례요한은 예수님을 가르쳐 하나님의 어린 양이라고 하셨습니다.

고기를 가지고 드리는 제사의 목적은 용서를 위한 것입니다. 이것은 하나님께서 행하시는 일이며 하나님과 관계를 회복하는 것이었습니다.

바로 이것이 제사입니다.

 

우리가 예배를 드리는 것은 하나님께 드리는 것입니다. 즉 하나님과 회복하는 일입니다. 그러기를 위하여 내 몸을 산 제물로 드리는 희생 양이 되어야 합니다.

 

이미 예수님께서 희생양이 되어 주셨으니 나는 그냥 가만히 예배에 참석하면 되는 것이 아닙니다. 내 몸을 드려야 합니다. 예수님께서 직접 본을 보여 주신 것입니다.

내가 너희를 사랑한 것 같이 너희도 서로 사랑하라고 예수님께서 말씀하셨습니다.

이것이 제사입니다. 즉 예배 입니다.

 

오늘 성막의 많은 것들을 간략하게 열거해 봅시다. 성막 뜰에는 성막문, 번제단, 물두멍이 있습니다.

성소에는 떡상, 일곱 금 촛대, 향단이 있습니다.

지성소에는 법궤가 있습니다. ? 법궤 속에는 2개의 돌비, 아론의 삯난 지팡이, 만나가 담긴 항아리가 있습니다.

성소와 지성소 사이에 있던 휘장을 예수님께서 운명하실때 위로 부터 아래로 찢어졌습니다.

 

오늘은 번제단에 관하여 상고하면서 은혜를 받고져 합니다.

번제단에 사용될 제물은 양이나 숫 송아지 입니다.

 

성도는 하나님 앞에 드려진 제물입니다.

제물은 드리는 자를 위하여 순종 아니면 복종만이 있을 분입니다.

제물로 선택된 것은 죽어야 재물의 가치가 있는 것입니다. 살아있는 동안은 제물이 되기 위하여 준비된 것 입니다.

제물이 살아서 퍼덕인다면 제물이 아닙니다.

너희 몸을 하나님이 기뻐하시는 거룩한 산 제사로 드리라 이는 너희의 드릴 영적 예배니라

(12:1)

죄 용서를 위하여 필히 제사를 해야 하는가?

피 흘림이 없으면 사함이 없다고 하셨습니다. ? 하나님께서 아담에게 가죽 옷을 입히시기 위하여 이미 피를 흘리는 일이 있었습니다.

그때 하나님은 아담과 하와를 용서하셨습니다. 그러나 그 죄의 값은 치루어야 했던 것입니다.

 

고기를 사용하기 위하여 생명을 죽여야 했습니다. 그리고 용서하시기 위하여 생명을 사용하신 것입니다. 이 모든 것은 하나님이 보시는 것입니다.

 

제사는 반드시 고기를 가지고 해야 합니다.

그렇다면 제사란 무엇입니까?

1.     제사의 방법은 고기를 가지고 희생 제물을 드려야 하는 것입니다.

2.     제사의 목적은 용서를 구하기 위함입니다.

3.     제사의 대상은 하나님입니다.

우리가 예배하는데 예배의 대상은 하나님이십니다. 그리고 나 자신이 희생 제물이 되어 하나님과 화목하는일이 되어야 합니다.

그런데 복을 받기 위하여 어떤 내 필요을 간구하기 위한 것이 예배의 수단이 되어 있는 현실을 볼때 안타까운 마음 금할 길이 없습니다.

 

제사의 정통성을 기독교에서 보여 주고 있습니다.

초대 한국 기독교를 향하여 제사를 지네지 아니한다고 하여 불효자라고 하였습니다.

진정한 제사의 정통성을 모르고 되어진 일입니다. 그리고 한국 초대 기독교인들 자신도 확실한 이해 부족이 있었던 것은 사실입니다.

 

번제단의 제물과 예수님

성막 문을 열고 들어 서면 먼저 만나는 곳이 번제단 입니다.

이것은 먼저 하나님께 나오는 자는 회개하는 일로 하나님의 용서를 구하는 일이 있어야 한다는 것입니다. 즉 하나님과 회복되는 일이 우선이라는 것입니다.

번제단을 만드는 재료는 광야에서 자생하는 나무입니다. 즉 조각목이라고 부르는 싯딤나무 입니다. 이 조각목으로 만든 후에 놋으로 씌웠습니다.

1)    놋으로 씌운 이유가 있습니다.

왕상 4:13 ? 빗장을 사용하였습니다.

삼상17:5~6 ? 머리에 투구를 썼고, 몸에는 어린 갑을 입었고, 다리에는 경갑을 쳤습니다. 어깨 사이에는 단창을 메었습니다.

이것은 견교성을 말하고 있습니다.

2)    제단에 뿔이 있는 이유는 불순종으로 받는 멸망을 의미하고 있습니다. 28:22~24

 

제단에 제물은 1년되고 흠이 없는 양이어야 합니다.

이 양은 예수 그리스도를 상징하고 있습니다.

그리고 제물은 반드시 죽어야 하고, 불태움을 입어야 합니다.

 

죄 용서를 위하여 반드시 제사를 해야 합니다.

피를 반드시 흘려야 합니다.

피혈()은 그릇에 생명이 담겨진 것입니다. ?피가 생명이라는 말입니다.

17:11 “육체의 생명은 피()에 있음이라 내가 이 피()를 너희에게 주어 단에 뿌려 너희 생명을 위하여 속하게 하였나니 생명이 피()에 있으니 피()가 죄를 속한다라고 하셨습니다.

 

()를 흘림은 희생(犧牲)을 말하고 있습니다.

희생(犧牲)은 소()나 양()을 잡는데 흠이 없는_빼어날 수() 즉 많은 가운데서 골라 내어짐을 말하니 흠이 없는 것으로 골라 내는  것이며 창에 찔려야 합니다.

 

자신의 죄를 대속하기 위하여 희생될 제물 즉 흠이 없는 소나 양을 잡아야 하는 것입니다.

 

먼 후일 예수 그리스도가 희생양으로 제물이 되어 십자가 위에서 창에 찔리고 물과 피를 모두 흘려 주셨던 것입니다.

이 대 구속사를 위하여 창세기에서 부터 성막에 이르기 까지 보여 주시고 확실하게 예수 그리스도가 이루어 주신 것입니다.

 

제단의 불은 사람이 피우는 것이 아니였습니다.

갈멜산의 엘리야의 제단도 불이 하늘에서 내려와 제물을 태웠던 것입니다.

다윗이 거기서 여호와를 위하여 단을 쌓고 번제와 화목제를 드려 여호와께 아뢰었더니 여호와께서 하늘에서 부터 번제단 위에 불을 내려 응답하시고” (대상21:26)

(찬송 : 나행한것 죄뿐이니…)

 

1. 번제단의 구조

(1) 규격번제단은 장이 5규빗(2.28m), 광이 5규빗(2.28m), 고가 3규빗(1.37m)으로 네모 반듯하게 제작하였습니다( 27:1).

번제단의 규격은 하나님의 ‘공의’를 상징합니다. 하나님께서는 독생자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에 죽으심을 통해 인류의 죄 값을 치르게 하심으로 공의를 이룩하셨습니다. 이는 하나님의 극진한 사랑입니다.( 3:16, 5:8).

(2) 재료번제단은 조각목(싯딤 나무)으로 만들고( 27:1) 놋으로 쌌습니다. 놋이 녹는 온도는 섭씨 1,085도로 불에 매우 강하기 때문에 놋으로 싸인 번제단은 아무리 수많은 제물을 반복하여 태워도 결코 손상을 입지 않았습니다. 또한 놋은 죄에 대한 하나님의 진노와 공의로운 심판을 상징합니다( 26:19, 60:17).

(3) 단 안의 놋그물번제단 안에는 놋그물이 있었는데, 이 그물 위에 번제의 제물을 태워 드리게 하였습니다( 27:4-8, 38:4-7). 이는 희생 제물이 잘 타고 또 타고 난 재가 번제단 아래로 떨어져 재를 쉽게 제거할 수 있도록 한 것입니다

(4) 테두리가 없는 번제단번제단에는 그 성물의 아름다움을 더해 주는 화려한 테두리가 아예 없습니다. 이것은 예수 그리스도의 생애가 세상에서는 영광을 얻지 못하고 순전히 고난뿐이나, 그 고난을 통과한 후에는 지극히 큰 영광을 받으실 것을 보여 줍니다

(5) 운반을 위한 ‘채’ : 번제단의 채는 그 몸체가 아니라 안에 들어가는 놋그물의 모퉁이에 채를 꿸 고리를 만들어 채와 놋그물이 일체형으로 되게 하였습니다

(6) 번제단의 네 뿔번제단의 네 모퉁이 위에는 뿔을 하나씩 만들어 단과 연하게 하고 놋으로 쌌습니다( 27:2, 38:2).

이 뿔은 ① 제사장이 속죄제를 드릴 때 제물의 피를 바르는 곳이었으며 ② 죄인들이 제단 뿔을 잡으면 죽음을 면할 수 있었습니다. 이스라엘 백성에게 제단의 뿔은 사죄의 뿔, 용서의 뿔, 생명의 뿔이었습니다

(7) 번제단을 올려놓은 토단제사장은 번제단과 비슷한 높이의 토단에 올라 번제단 위에서 제물을 태워 하나님 앞에 바치고, 희락의 날, 정한 절기, 월삭에 번제물과 화목 제물의 위에 나팔을 불었을 것입니다

2. 번제단의 특징

(1) 단 위에 ‘불’을, 그 위에 ‘나무’를, 그 위에 ‘제물’을 두고 불살랐습니다( 1:7-8, 12, 17, 3:5). : 불과 나무와 제물을 쌓아 놓는 순서는 제물을 완전히 소각하되, 그 연기가 지속해서 ‘위로’ 피어 올라가게 하여 여호와께 향기로운 냄새(화제)가 드려지게 하기 위한 방법이었습니다

(2) 번제단에서 처음 예물을 드린 것은 아론과 그 아들들의 제사장 위임식을 마친 후였습니다( 9:7, 23-24).

(3) 번제단에는 언제든지 제물을 태울 수 있도록 항상 불이 붙어 있었습니다( 6:9, 12-13). : 번제단에 불이 끊이지 않도록 하신 것은 죄인들에게 언제든지 속죄의 길이 열려 있으며, 예수 그리스도를 통하여 영원한 속죄를 완성하기까지는, 결코 속죄 사역이 중단될 수 없다는 것을 보여 줍니다( 9:11-12).

(4) 시내 광야에서 만든 놋단은 주전 1445년부터 솔로몬이 성전을 완공한 주전 959년까지 대략 486년 동안 사용되었습니다(대하 1:5-6, 7:7).

3. 번제단의 구속사적 교훈

(1) 번제단에서 끊임없이 타오르던 불은 죄를 소멸하는 그리스도의 복음의 능력을 상징합니다. : 예수님은 이 땅에 복음의 불을 붙이러 오셨습니다. ( 12:49).

이 복음의 불길은 예수님께서 십자가에 달려 죽으시고 부활, 승천하신 후 보혜사 성령의 불을 통해 제자들의 가슴속에 점화되어 비로소 본격적으로 타올랐습니다.( 2:1-4, 4:1-22). 

(2) 번제단에서 수많은 제물이 희생된 것은, 예수님께서 십자가에서 희생 제물이 되어 이루실 영원한 속죄를 예표합니다. : 놋 번제단은 희생 제물의 피로 물들지 않은 곳이 없습니다. 예수님께서는 십자가에 달려 머리부터 발끝까지 온통 피로 물드셨고, 그 피는 십자가 나무를 적시고 골고다 언덕을 붉게 물들였습니다. 이스라엘 백성들이 드린 제물은 일시적인 속죄였으나 예수님께서는 우리를 위한 영원한 속죄 제물이 되어주셨습니다.( 9:12).

(3) 번제단의 네 모서리의 뿔은 동서남북 네 방향을 향하여 나갈 구속 복음의 권세를 상징합니다

(4) 번제단을 운반할 때 자색 보자기를 사용한 것은 예수 그리스도의 왕권을 가리킵니다. : 자색은 왕의 의복색입니다. 번제단을 옮길 때 자색 보자기를 편 것은 예수님께서 십자가에 달리시기 직전에 입으셨던 자색 옷을 생각나게 합니다. 예수님은 십자가에서 죽으시는 최후의 순간까지 인류 구속을 위해 하나님의 뜻에 온전히 복종하신 제물이셨습니다. 그러나 예수님께서는 마침내 생명의 부활로 사망 권세를 깨뜨리시고 만왕의 왕 만주의 주로서 하늘에 있는 자들과 땅에 있는 자들과 땅 아래 있는 자들로 모든 무릎을 그 이름에 꿇게 하셨습니다( 2:9-10).

번제단 불을 꺼지 말아야 할 이유가 있습니다.

“여호와께서 모세에게 일러 가라사대 아론과 그 자손에게 명하여 이르라 번제의 규례는 이러하니라 번제물은 단 윗 석쇠 위에 아침까지 두고 단의 불로 그 위에서 꺼지지 않게 할 것이요.(6:8,9)

레위기 6 8-13절에서 여호와께서 모세에게 번제를 어떻게 드릴지 가르쳤습니다. 그 짧은 내용 가운데 단 위의 불이 꺼지지 않도록 세 번이나 신신 당부했습니다.(9,12,13).

단순히 제물이 다 탈 동안만이 아닙니다. “단위의 불은 항상 피워 꺼지지 않게 할찌니라.(12) “불은 끊이지 않고 단 위에 피워 꺼지지 않게 할찌니라.(13) 제물이 없을 때도 하루 24시간 계속 피워두어야 했습니다

그 이유가 무엇입니까? 하나님은 자신의 백성들로 마음과 성품과 힘을 다하여 하나님을 사랑하라는 것입니까? 일생 동안 하나님의 뜻에 순종하며 전적으로 헌신하라는 것입니까? 물론 그러합니다. 번제를 드리는 목적이 바로 하나님과 정상적인 관계를 유지하면서 자신을 온전히 드리는 것입니다. 이스라엘 백성 모두를 위해 “일 년 되고 흠 없는 수양을 매일 둘씩 상번제”(28:3)로 드리라고 요구한 까닭도 그것입니다

그런데 단은 번제뿐 아니라 속죄제, 속건제, 화목제의 희생제물을 태우는 곳입니다. 예물로 곡식을 드리는 소제도 번제나 화목제와 함께 드려야 했기에(9:17, 7:11-14) 단은 모든 제사에 다 사용됩니다.

그리고 희생제물을 바치는 첫째 이유는 자신의 죄를 씻어서 하나님 앞에 거룩하게 구별되기 위해서입니다. 따라서 단의 불을 꺼지지 않게 하려는 첫째 이유도 백성들의 죄를 씻는 성별의 절차를 결코 멈출 수 없다는 것입니다. 역으로 따지면 인간의 죄가 끝이 없기에 그 죄를 깨끗케 태울 불도 도무지 끌 수 없다는 것입니다.

당시 이스라엘이 하나님께 제사 드리는 곳은 성막, 솔로몬 이후로는 성전 한 곳뿐이었습니다. 성전 마당 한복판에도 번제단이 자리 잡고 있었습니다. 이스라엘 백성들의 죄는 끝없이 생겼을 것이며, 헌신과 화목의 제사도 자주 드렸을 것입니다. 아침저녁으로 두 번씩 상번제도 드려야 했습니다. 거기다 제물이 다 타려면 상당한 시간이 걸립니다. 현실적으로도 단의 불은 꺼질 새가 없었을 것입니다. 이스라엘의 성막이나 성전에선 종일 제물 타는 연기가 하늘로 향해 올라갔을 것입니다. 사람들은 항상 그 연기를 볼 수 있었고 냄새도 맡았을 것입니다. 자신들이 얼마나 많은 허물과 죄 중에 있는지 실감했을 것입니다.

그 단의 불이 영원히 꺼지지 않는다는 것은 인간의 죄가 끝없기에 하나님 앞에 회개하고 용서를 구하는 일이 끝이 없다는 것입니다. 이 또한 역으로 말하면 끝이 없기에 완전한 속죄는 영원히 이뤄질 수 없다는 뜻입니다. 자신의 모든 죄를 희생 동물의 머리 위에 안수하면서 온전히 전가했고 그 제물을 다음날 아침까지 다 타도록 했는데도 그랬습니다.  

그럼 율법이, 특별히 제사법이 이스라엘 백성에게 실제로 행한 역할이 무엇이었습니까? 끝없는 제사로 인해 자신들의 끝없는 죄의 본성을 깨닫게 해주었습니다. 더 중요하게는 그 죄를 씻을 방도가 자기에게 도무지 없다는 사실도 절감케 해주었던 것입니다

성전 제사가 나중에는 진정한 회개는 수반되지 않은 채 형식적, 의무적 절차로만 전락해버린 첫째 이유는 물론 그들의 하나님에 대한 헌신과 사랑이 크게 부족했기 때문입니다. 그와 동시에 역설적으로 따지면 그렇게 많은 제사를 드렸지만 자신들의 영혼에 온전한 속죄가 임하지 않았다는 반증입니다. 하나님이 자신을 깨끗이 용서하고 받아주었다는 확신이 생기지 않았던 것입니다. 마음에 안식과 평강과 자유는 생기지 않고 도리어 앞으로 범죄하면 또 제사를 드려야 한다는 번잡함만 염려됐을 것입니다

“율법은 장차 오는 좋은 일의 그림자요 참 형상이 아니므로 해마다 늘 드리는바 같은 제사로는 나아오는 자들을 언제든지 온전케 할 수 없느니라 그렇지 아니하면 섬기는 자들이 단번에 정결케 되어 다시 죄를 깨닫는 일이 없으리니 어찌 드리는 일을 그치지 아니 하였으리요 그러나 이 제사들은 해마다 죄를 생각하게 하는 것이 있나니 이는 황소와 염소의 피가 능히 죄를 없이 하지 못함이라.(10:1-4)

그 많은 이스라엘 백성들이 죄를 지을 때마다 비싼 제물을 바치며 번제를 드릴 현실적 방도는 없었습니다. 그랬더라면 제단이 수천 개라도 모자랐을 것이며 이스라엘 안에 가축은 금방 다 사라졌을 것입니다. 하나님은 대신에 백성의 모든 죄를 대속하기 위해 하루 두 차례 상번제를 지내게 했고, 또 일 년에 일차 대속죄일에 대제사장이 지성소에서 어린 양의 피로 용서를 간구하게끔 했습니다. 그럼에도 그 제사는 해마다 죄를 생각게 할 뿐이었으며, 완전한 속죄가 이뤄지지 않았기에 드리는 일을 그칠 수 없었다고 성경은 확언합니다.  

그래서 히브리서의 상기 구절은 곧바로 시편 40:6-8절의 인용으로 이어집니다. “하나님이 제사와 예물을 원치 아니하시고 오직 나를 위하여 한 몸을 예비하셨도다. 전체로 번제함과 속죄제는 기뻐하지 아니하시니 이에 내가 말하기를 하나님이여 보시옵소서 두루마리 책에 나를 가리켜 기록한 것과 같이 하나님의 뜻을 행하려 왔나이다.(5-7)

동물 희생을 바치는, 그것도 “전체로” 드려지는 제사로는 속죄가 이뤄질 수 없기에 하나님은 당신을 위해 바쳐질 한 몸을 예비하셨다고 합니다. 또 바로 그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 대속사역을 두루마리 즉, 구약성경 중에 모세오경에 예언해 놓았다고 합니다. 앞으로 올 메시야가 모세 같은 선지자일 뿐 아니라, 율법의 제사법도 바로 그분의 그림자라는 것입니다

번제단의 항상 꺼지지 않는 불은 마지막 심판 날까지 인간은 죄에 찌들어 살 수 밖에 없는 위에, 인간의 어떤 노력으로도 완전한 속죄를 이룰 수 없음을 의미합니다. 단 한 가지 방법 외에는 말입니다. 번제단의 의미 그대로 죄인이 그 위에서 완전히 타 없어지는 것입니다. 그 일을 이제 당신께서 예비하신 예수님이 모든 인간을 위해서 대행할 것입니다

바꿔 말해 하나님은 번제단을 통해서 인간의 온전한 헌신을 끝없이 요구하기보다는 하나님 자신의 꺼지지 않는 긍휼을 당신 백성들로 알게 되기를 더 원했다는 것입니다. 구약백성들에게 끝없이 희생제물을  바치라고 과도하게 요구하는 욕심쟁이가 아닙니다. 그 제물을 완전히 태워 바치지 않으면 죄를 영원히 용서하지 않겠다는 심술쟁이는 더욱 아닙니다.

모든 인간으로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 은혜로 인도하시겠다는 하나님의 의지이자 열심의 표식이 번제단입니다. 죄인들로 예수님의 십자가 앞에 겸비함과 진정성을 갖고 서게 하는 것입니다. 천부여 저에게는 정말로 아무 의지 없으니 나를 박대하지 마시고 이 추하고 더러운 모습 그대로 받아서 하나님의 자녀로 삼아 달라는 간절한 소망을 품게 만드는 것입니다

아론의 아들인 제사장 나답과 아비후가 “여호와의 명하시지 않은 다른 불을 담아 여호와 앞에 분향하였더니”(10:1) 불이 여호와 앞에서 나와 그들을 삼키어 그 자리에서 죽여 버렸습니다. 너무나 가혹한 심판인 것 같습니다. 하나님의 규정을 제대로 따르지 않고 진정과 열의 없이 건성으로 불을 준비했기 때문입니다.

그런데 지금은 제사장 직분을 받아 이스라엘 전 회중이 보는 앞에서 7일 동안의 엄숙한 위임예배(8)를 드린 직후입니다. 성막 안의 향단에 아침저녁으로 불을 붙이려면 반드시 번제단의 꺼지지 않는 불씨를 향로에 담아와 사용해야 했습니다. 그들이 그런 규정을 몰랐을 리는 없습니다. 그런데도 다른 불을 담아왔다면 번제단의 불이 꺼졌거나, 그 불이 너무 약했을 가능성이 있습니다

어쨌든 그들이 번제단 외의 다른 불을 가져왔다면 번제단 자체가 존재할 목적과 기능이 몽땅 부인되는 셈입니다. 하나님 앞에서의 속죄, 헌신, 화목, 친교 등이 이뤄질 방도가 전무하게 됩니다. 거기다 번제단의 불이 절대로 꺼지지 않아야 할 하나님의 의도도 완전히 실종됩니다. 인간 쪽에서의 끝없는 회개와 헌신으로도 진정한 구원은 불가능하고 오직 예수님의 십자가 보혈의 공로로만 이뤄질 수 있다는 그 의도 말입니다

십자가가 부인되면 인류의 소망은 완전히 사라집니다. 모든 인간이 죄와 사탄과 사망의 노예로 묶여 있는 절망의 상태가 끝까지 지속되는 것입니다. 이 사건은 단순히 제사절차를 어긴 것이 아닙니다. 인간의 어떤 죄라도 번제단의 꺼지지 않는 불, 즉 예수님의 십자가 복음 외에는 하나님께 용서 받을 수 있는 방안이 없음을 실제로 예표한 것입니다. 바울이 “만일 누구든지 너희의 받은 것 외에 다른 복음을 전하면 저주를 받을찌어다.(1:9)라고 선포한 그대로입니다. 오늘날에도 교회나 목회자가 유사 혹은 거짓 복음을 전하거나 복음 대신에 다른 가르침을 전한다면 바로 나답과 아비후와 같은 징벌이 기다리고 있다는 것입니다.

번제단의 꺼지지 않는 불은 죄악과 흑암의 세력에 대한 하나님의 꺼지지 않는 영원한 저주를 상징했습니다. 그러다 예수님의 골고다 언덕 이후로 그 불은 죄인에 대한 하나님의 꺼지지 않는 영원한 사랑도 함께 상징하게 되었습니다. 정확하게 말해 사실은 처음부터 그랬지만 성령이 와서 그 완전한 의미를 깨닫게 되었던 것입니다. 예수님의 십자가 은혜 이후로 제사법은 물론 성전 자체도 다 폐기 되었지만 하나님이 시내산에서 모세에게 제사법을 수여하실 때 율법 안에 숨겨두신 주님의 십자가는 은혜는 태초부터 영원토록 단 한 치의 변개, 수정, 가감, 포기, 취소가 없는 것입니다

성막이나 성전에서 매일 끊임없이 피어오르는 제물이 타는 연기를 바라보는 이스라엘 백성에게 죄와 죄 값에 대한 두려움은 분명 생겼을 것입니다. 다른 한 편으로는 언제든 저 번제단에 희생제물을 바치면 자기 죄가 용서된다는 안도감도 가질 수 있었을 것입니다.

마찬가지로 예수님의 십자가는 지금도 신자의 영혼의 내면에 구약의 번제단처럼 자리 잡고 있어야 합니다. 또 그 불은 절대 꺼지지 말아야 합니다. 자신의 모든 실패, 허물, 죄악을 바로 잡아주시는 이는 십자가의 예수님뿐임을, 스스로는 아무리 해도 불가능함을 잊지 말아야 합니다. 어떤 큰 잘못을 저질러도 있는 모습 그대로 주님 앞에 자기 모든 것을 내려놓고 엎드려야 합니다. 영원히 꺼지지 않는 참 빛이신 예수님은 언제 어디서 무슨 형편이든 긍휼을 베풀려고 신자의 가슴 속에 내주하고 계시기 때문입니다

 

나의 죽으심은 죄에 대하여 단번에 죽으심이요 나의 살으심은 하나님께 대하여 살으심이니.” (6:10)

 

 

Shalom

감사합니다.













이 블로그의 인기글

인터넷 방송 416♥성막(聖幕)강의56♥번제단의 제물과 예수.♥성막을 통하여 예수 발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