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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살하는 자.♥피치 못할 사정에.♥자살은 허용하는가.♥자살자를 보는 시각.♥창조주는 자살을 허용하는가
12/23/2019 10:0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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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살하는 자.피치 못할 사정에.자살은 허용하는가.자살자를 보는 시각.창조주는 자살을 허용하는가.M.T.M.구경평.Rev Dr Th D

 

신앙을 고백하고 예배당에서 누구 보다 더 열심하던 자가 자살을 하였습니다. 그는 주님의 말씀이라고 하면 믿고 따르던 자이고 천국을 소망하면서 살았습니다. 자살을 하였지만 천국은 가겠지요?

이러한 질문을 받은 나는 자살에 대한 견해를 성서적으로 풀어야 하겠다라고 마음을 먹고 오늘 이렇게 글을 쓰고 있습니다.

 

아래 통계표를 보면서 알아봅시다.

*한국에 지역별 자살을 보면 자살하지 아니하는 곳이 없다 할 정도입니다.

*그리고 자살한 현황을 보면 2008년부터 2018년의 10년을 놓고 보면 거의가 자살 율이 줄어 든 것 같지 않습니다.

*자살자의 나이 성별을 보면 80세의 남성이 가자 높은 편입니다.

*세계에서 대한민국이 자살이 3위이라는 사실에 놀라지 않을 수 없습니다.

세계보건기구(WHO) 발표에 따르면 2012년 한국인 10만명당 28.9명이 자살하였다고 합니다.

남미 가이아나(44.2)이 가장 많고 다음으로 북한(38.5)에 이어 자살률 세계 3위를 기록한 것으로 드러났습니다.

한국이 자살률 세계 3위이지만 자살 증가율은 세계 2위라는 통계 조사 결과를 보고 있습니다.

이것은 한국의 자살 문제가 심각하다는 것을 적나라하게 드러내고 있습니다.

자살은 사회에서나 가정에서 심각한 문제이라는 사실을 우리 모두는 감지하고 있습니다.

자살은 위험한 불장난이라고 어떤 분은 말을 하고 있습니다.

스스로 목숨을 끊는 것은 자신의 육체이든지 영적으로 심각한 문제에 도전하는 행위입니다.

 

자살하는 사람은 말을 합니다.

내일의 희망이 없다고 말을 합니다.

삶의 빛이 보이지 않는다고 말을 합니다.

내일은 고사하고 오늘의 현실에 감당할 수 없는 고통과 고통의 연속이다. 라고 말을 합니다.

내가 말을 해도 네 말은 들어줄 사람이 없고 믿어 주지 아니한다고 말을 합니다.

하루하루 산다는 것이 고통의 전부이라고 말을 합니다.

 

어떤 사람은 자살하는 사람의 심정을 조금이라도 헤아려 본다면 왜 자살하는가? 라는 말을 하지 아니할 것이라고 말을 합니다. 하지만 이 말은 맞는 말까요? 저가 질문해 봅니다.

 

이런 사건이 있었습니다.

자살자 유서을 보겠습니다.

자살자는

죽는 게 사는 것보다 낫다

세상과 결별한다

자살하면 고통에서 벗어난다식으로 죽음을 잘못 이해하고 있음을 제시하고 있습니다.

또 프랑스의 장 아메리(1912-1978)는 자살을 찬양하기 위해 자유죽음론”(1976)을 저술하고 자살한사건이 있습니다.

그는 자유 죽음론을 발표하였습니다. 이 책에서 그는 자신의 삶과 죽음에 대해 스스로 결정할 권리를 주장하고있습니다.

자살은 인간만은 고유 권한이다

자살을 통해 최고 형태의 자유가 실현된다

자살은 비인간적 삶에서 인간성을 지키는 유일한 행위다

이와같은 그의 주장을 생사학의 관점에서 철저히 재검토함으로써자살찬양이 얼마나 잘못된 죽음을 이해하는데 근거하고 있는지를 구체적으로 밝히고 있습니다.

심지어 자살 애찬론 자들이 어떻게 하면 자살을 잘 할 수 있는지를 그 방법을 말하는 싸이트까지 있다는 말을 우리는 들어서 잘 알고 있습니다.

자살은 세상에서 가장 불행한 죽음이라고 오진탁씨가 쓴 자살이란 책에서 말하기를 죽음을 알면 자살하지 않는다고 말을 합니다.

우리는 다음 사항을 보면서 고통에 대한 이해를 먼저 하는 것이 좋겠습니다.

모래 사장에 조개 껍질이 많이 있는 것을 보신 분들이 있을 것입니다.

조개는 태풍에 밀려 모래 사장으로 쓸려 와서 죽었기 때문에 모래 사장에 조개 껍질이 많이 있는 것입니다.

그런데 모래에 입은 상처를 조개는 진액을 내 놓아 그 모래알을 쌓고 쌓게 되면서 만들어진 것이 진주라고 합니다.

그러지 못하면 모래로 인하여 죽음을 맞이하는 것입니다.

나를 죽이려고 몰려오는 온갖 고난과 역경 그리고 원수 같이 여겨지는 일들이 나를 괴롭히는 고통이라도 그것에 씨달려 죽으면 아무른 소용이 없습니다.

그러나 그 모든 것에 참고 견디어 승리하면 진주 조개같이 진주 보석 같은 믿음의 사람이 됩니다.

중요한 것은 사람이 기억해 주기를 바라는 삶이 아닙니다. 오직 창조주가 기억하는 삶이 되어야 합니다.

삶에 극심한 고통으로 인하여 삶을 포기하고 싶은 자에게 말씀을 부탁합니다.

창조주의 이름으로 약속합니다.

창조주는 당신에게 더 나은 삶의 길이 주셨습니다. 그리고 그분은 더 나은 삶을 살기를 기대하고 계십니다.

지금 자살을 고려하는 여러분은 스스로 속고 있습니다. 그 현실에 있다는 것을 감지하시기를 원합니다.

하나님은 지금 당신을 위하여 다른 길을 예비하고 제시하십니다. 지금 당신의 그 생각에서 돌아 서십시요.

그리고 결론적인 말을 먼저 드리겠습니다.

자살하는 자는 자신의 생명을 사랑하지 않는 자입니다.

이웃을 사랑하고 식구들을 사랑하고 동료를 사랑하면서 자신을 사랑하지 않는 것입니다.

 

자살에 대하여 성서는 어떻게 말씀하고 있는지 알아보아야 하겠습니다.

성경은 살인에 대하여 매우 심각하게 말씀하십니다.

그 형제를 미워하는 자마다 살인하는 자니 살인하는 자마다 영생이 그 속에 거하지 아니하는 것을 너희가 아는 바.” (13:5)

십계명 제6계명에 살인하지 말라. (20:13)

살인하지 말라고 엄중하게 경고하셨습니다.

살인(殺人, 영어: homicide)은 다른 사람의 목숨을 빼앗는 행위를 말합니다라고 사전에서 말을 하고 있습니다.

나는 말을 합니다. 살인은 남의 생명을 빼았는 것 죽이는 것을 살인이라고 말을 합니다.

스스로 자기 목숨을 끊는 것도 살인입니다.

내 목숨을 내가 스스로 끊는데 어찌 살인이라고 말을 합니까? 라고 질문하실 것입니다.

자살은 자살이지 어찌 살인이라고 말을 할 수 있는가? 즉 자기 목숨을 자기가 해결하는 것이 살인이라고 말을 할 수 있는가? 라고 말을 합니다.

그런데 그 자신의 목숨의 주인은 당신 자신의 것이 아닌 것입니다. 그 목숨의 주인은 창조주의 것입니다.

사람을 만드시고 코에 생기를 불어넣어신 분이 창조주입니다.

여호와 하나님이 흙으로 사람을 지으시고 생기를 그 코에 불어넣으시니 사람이 생령이 된지라.” (2:7)

그러니 생명의 주인은 당신의 것이 아닙니다. 내 것이 아니 것을 가지고 나의 것인 줄 알고 함부로 사용하는 것은 잘못입니다. 특히 스스로 목숨을 끊는 것은 남의 목숨을 내가 끊는 것입니다. 그러니 살인입니다.

앞서 말씀을 보신 것 같이 살인하는 자는 영생이 그에게 없다고 말씀하심을 우리는 보았습니다.

그러므로 살인으로 생을 마감하려고 생각하는 사람은 영생이 그 속에 거하지 못한다는 말씀을 다시 강조하여 말씀드립니다.

영생과 살인은 한 영혼 속에 들어 갈 수 없습니다.

그리스도 인이라고 하는 자도 자살하고 있습니다. 목회하시는 목사님 가운데에도 자살하는 사람이 있습니다.

워렌 목사가 세우고 목회 활동을 해왔던 미국 캘리포니아주 남부 새들백밸리커뮤니티 교회는 성명을 발표하고 워렌 목사 아들 매튜 워렌(27)이 전날 자살했다고 발표하였습니다. 그는 오랫동안 정신질환을 앓아왔고 우울증과 자살 충동에 시달렸던 것으로 밝혀졌습니다.

목사의 아들도 자살하였습니다.

서머나교회측은 목사의 사망원인을 심장마비로 공식 발표하였지만. 〈본지 2013 37일자 A-18> 목사는 알려진 것과는 달리 목을 숨졌고 부검 절차를 거쳐 자살한 것으로 최종 확인됐습니다.

[목사 자살 표를 보라]

목사의 아들도 자살하고, 목사도 자살하는 현 주소를 보면서 그리스도 인이라고 하는 자가 자살하는 일에 충격을 받고 혼란해하는 성도들이 있음을 보면서 이글을 쓰게 된 것입니다.

비록 자살하여 죽었지만 천국에는 입성하였을 것이라는 유권해석도 있으니 말이 나오지 않습니다.

성경에서 무엇이라고 말씀하시는 가를 찾아보지 않고 해석하는 일은 다음 말씀을 기억하시기를 소원합니다.

내가 이 책의 예언의 말씀을 듣는 각인에게 증거하노니 만일 누구든지 이것들 외에 더하면 하나님이 이 책에 기록된 재앙들을 그에게 더하실 터이요

만일 누구든지 이 책의 예언의 말씀에서 제하여 버리면 하나님이 이 책에 기록된 생명 나무와 및 거룩한 성에 참예함을 제하여 버리시리라” (요한계시록 22:18~19)

하나님의 말씀에 더하기와 빼기를 잘하는 자는 필이 이 말씀을 기어하시기를 소원합니다.

하나님의 말씀을 가감하지 말고 말씀하신 그대로 듣고 믿고 가르치는 지혜로운 자가 되어야 할 것입니다.

즉 자살이라는 말을 유권해석하는 일 보다는 성경에서 무엇이라고 말씀하시는 가를 말하여야 할 것입니다.

목회하던 목사도 자살하면 천국에 입성 못하는 것이 자명 한 일입니다.

만일 자살한 교인의 장레식에서 설교를 하게 된다면 무슨 말씀을 해야 하겠습니까?

자살하였으니 천국에 입성 못하였다고 말을 하기도 그렇고

하는 말이 하늘 나라에서 남은 유가족들을 보살피며 지켜보실 것이라고 말을 할 것입니까?

그 말하는 나라는 소나 개도 가는 그런 하늘 나라입니까? 불교인도 가고 천도교인도 가는 누구나 가는 하늘 나라 말입니까? 죽은 자를 향하여 말하기 좋아 하늘 나랄 갔다고 하는데 그런 하늘나라 라고 한다면 나는 아니 갈 것입니다.

결코 천국은 그런 종류의 하늘 나라가 아닙니다.

창조주가 살아 역사하시는 하나님께서 영원히 영존하시는 영생하시는 하늘 나라입니다.

그 천국에는 자살한 자는 갈 수 없습니다.

왜냐 하면 살인한 자는 영생이 그에게 함께 공존할 수 없기 때문입니다.

자살한 자의 장례식에는 유족들이 있습니다. 그들에게 확실한 그리스도의 복음을 전할 수 있는 좋은 기회가 되어야 할 것입니다. 그리고 남은 유족들이 남은 삶에 용기를 잃지 않고 살아 갈 수 있도록 말을 하심이 좋으리라 봅니다.

 

성경에서는 스스로 죽은 자에 대한 기록을 보게 됩니다.

구약에서 한 사건이 있습니다. 그리고 신약에서 한 사건이 있습니다.

먼저 구약의 사건을 보겠습니다.

아히도벨이 자기 모략이 시행되지 못함을 보고 나귀에 안장을 지우고 떠나 고향으로 돌아가서 자기집에 이르러 집을 정리하고 스스로 목매어 죽으매 그 아비 묘에 장사되니라.”

(삼하17:23)

압살롬은 아버지 다윗을 몰아내고 스스로 왕이 되어 다윗을 처단하려는 묘략을 꾸미는데 아히도벨이 묘략을 내 놓습니다. 이때 후세라는 사람을 불러서 묘략을 듣게 되는되 압살롬은 후세의 묘략을 택하였습니다.

이때 아히도벨은 자기의 묘략이 시행되지 못하는 것을 보고 결단 내린 것입니다.

하나님께서는 이미 압살롬을 처단하려고 하였던 것입니다. 하나님께서는 다윗과 함께 하시는 중이었습니다. 비록 다윗이 잘못하는 일이 많았지만 즉시 회개하는 다윗을 본 하나님께서는 다윗과 함게 하셨습니다.

아히도벨의 묘략 대로라면 압살롬은 다윗을 처단하게 되는 것입니다.

압살롬에게는 아히도벨의 묘략이 완벽한 것이었습니다.

그런데 하나님 편에서 볼 때에 아히도벨의 묘략은 잘못된 것이었습니다.

아히도벨의 묘략이 성사되면 다윗는 죽게 됩니다.

하나님 편에서는 아히도벨의 묘락이 묵살되어야 했습니다. 다윗이 죽으면 아니될 일이었습니다.

결국 아히도벨은 자기의 계략이 묵살되는 일로 인하여 스스로 목숨을 끊었던 것입니다.

하나님은 다윗을 지키고 계셨습니다. 다윗 편에 계시는 하나님은 아히도벨의 묘략이 실행되지 못하게 하신 것입니다.

아히도벨의 이름의 뜻은 다음과 같습니다.

형제는 어리석다. 어리석다. 는 뜻입니다. 어리석은 인간은 어리석은 짓을 하게 마련인 것입니다.

이름은 참 중요한 것 같습니다. 이름을 지은 그대로 이루어지는 모습들을 많이 봅니다.

아히도벨은 압살롬이라는 사람 앞에서 인정함을 받지 못하였습니다. 우리는 신앙 생활을 할 때에 사람 앞에서 인정함을 받고 똑똑한 사람이라는 칭찬을 받는 자가 될 것이 아닙니다.

하나님 앞에서 똑똑함을 받는 자가 되어야 합니다. 하나님께서 인정하는 인물이 되어야 합니다.

자기의 의를 나타내는 어리석은 자가 되어서는 아니됩니다.

그리고 하나님께서는 아히도벨이 스스로 죽는 일에 내버려 두셨습니다.

하나님께서는 말씀하십니다.

그런즉 너는 이 백성을 위하여 기도하지 말라 그들을 위하여 부르짓어 구하지 말라 내게 간구하지 말라 내가 너를 듣지 아니하리라.”

(7:16)

하나님의 백성이 하나님의 말씀과 법도를 지키지 아니하고 따르지 아니하는 자를 위하여 기도하지 말라고 하시면서 내버려 두신 것을 봅니다.

만일 아히도벨이 하나님의 백성이며 하나님의 뜻을 따르는 자이었다면 스스로 죽도록 내버려 두시지 아니하셨을 것입니다.

하나님께서는 아히도벨이 스스로 죽는 그 일에 관여하지 아니하셨습니다. 그대로 두어 두셨습니다.

그리고 하나님은 생명의 주관자 이십니다. 곧 생명은 하나님의 것입니다.

하나님은 자기 백성이라도 따르지 않고 불순종하는 일에도 그들을 위하여 기도하지 말라고 하시는데 하나님의 뜻을 이루는데 순종하지 않고 거역하는 자의 죽음을 그대로 두어두신 것입니다. 즉 스스로 죽게 두어두신 것입니다.

결과는 살인자로서 처형을 받아야 하기 때문입니다.

교회에 나와서 출석하고 찬송 부르고 말씀듣고 각종 봉사와 헌신하던 사람이 자살을 하는 일을 보고 충격에서 혼란해하는 일들이 있음을 종종 봅니다. 이러한 일들을 보면서 혼란해하는 사람이 많습니다. 그리스도인이라고 보이던 자가 자살하는 것은 잘못된 행동입니다. 하나님께서는 그렇게 행동하도록 막지 아니하십니다. 내버려 두십니다.

왜냐하면 하나님의 말씀에 순종하는 백성이 아니기 때문에 그 생명을 지키지 아니하십니다.

교회에 나와서 열심히 충성 봉사한 것은 인정하지만 하나님의 말씀에 순종하는 하나님의 백성이 아니기 때문입니다.

사람은 인정하였지만 하나님께서는 인정하지 아니하셨습니다.

 

신약에서 스스로 목을 매어 죽은 자가 있습니다.

유다가 은을 성소에 던져 넣고 물러가서 스스로 목매어 죽은지라.” (27:5)

가룟 유다의 이름의 뜻을 봅니다.

교살하다. 목매어 죽다. 질식시키다.

가룟 유다는 그 이름의 뜻과 같이 스스로 자신의 생명을 질식시키고 목매어 죽었습니다.

예수님께서는 가룟 유다를 향하여 말씀하신 것이 있습니다.

인자는 자기에게 대하여 기록된 대로 가거니와 인자를 파는 그 사람에게는 화가 있으리로다. 그 사람은 차라리 나지 아니하였더면 제게 좋을 뻔하였느니라.” (25:24)

유다는 이 말씀을 듣고 자기가 스승을 팔자라는 것에 지적함을 들었습니다. 자기의 행동을 알고 계심을 느겼습니다.

예수를 파는 유다가 대답하여 가로되 랍비여 내니이까?” (25:25)

예수님께서는 바로 대답하셨습니다.

“…네가 말하였도다.”

이렇게 명백하게 예수를 팔 자가 누구라는 사실을 밝히었지만 이미 양심에는 화인 맞은 모습이었습니다.

가룟 유다는 이미 예수님의 12제자의 반열에 있었습니다. 그러나 그에게는 그 사명이 예수님의 제자의 사명이 아니었습니다. 그는 전도대 파송을 받았을 때 이적 기사를 행사하였던 사람이었습니다. 귀신을 쫓아내고 병고치는 능력을 행사하던 인물이었습니다.

그러나 그는 스스로 목매어 죽었습니다.

오늘날 목회하던 목사가 자살하는 것 보다 못한 위치가 어디에 있습니까?

가룟 유다는 예수님의 12 제자 가운데 있었습니다. 예수님께서 주신 능력 행하심을 직접보고 자기도 행사한 사람이었습니다.

이미 예수님께서 인자를 파는 자의 출생에서 나지 아니하였더라면 저에게 좋을 뻔하였다는 말씀은 창세전부터 하나님의 백성이 아니었다는 증거입니다.

곧 예수 그리스도 밖에 있는 자는 스스로 목을 매든지 죽든지 그 일에 관심이 없다는 것을 알 수 있습니다.

하나님은 자기 백성이 아닌 자에게 관심이 없습니다. 어떤 면에서 사용하시고 버림을 받는 일이 된 것입니다.

혹시 이시간 하나님께서 사용하시고 버림을 받는 인물이 있습니까? 베드로와 같은 철저한 회개가 있기를 소원합니다.

누군가 성경을 이루기 위하여는 예수님을 파는 자가 있어야 하는데 하나님의 백성이 예수님을 파는 일은 있지 않고 하나님의 백성이 아닌 자를 들어서 성경을 이루게 하시는데 사용하시고 버리신 것입니다.

가롯 유다 자신을 위하여는 태어나지 말았으야 하는 인물이었습니다.

만일 가룟 유다가 하나님의 백성이었다면 예수님을 파는데 순종한 인물로서 성경을 이루시고 난 후에 스스로 목매어 죽도록 하나님은 두어두시지 않고 철저하게 회개할 수 있는 길을 열어 주셨을 것입니다.

베드로는 예수님을 모른다고 세번식이나 부인하던 자이었지만 닭 울음 소리에 회개하는 일이 되었던 것을 봅니다.

 

그리스도인이라고 보이는 믿음의 사람이 자살하였다고 할 때 그 믿음 생활을 보고 천국에 갔다. 라고 말을 할 수 있습니다. 하지만 사람이 보는 관점에서 믿음 생활이 좋았을 뿐입니다.

하나님께서 보시는 관점에서 하나님의 백성으로서 말씀에 순종하며 하나님을 따르는 자이었던가를 보아야 할 것입니다.

우리는 확실하게 구분해야 할 것입니다.

내가 교회 다니는 교인입니까?

내가 교회 성도입니까?

성도와 교인은 다른 것입니다.

교회 출석하고 교회에서 행사하는 행위를 일체 잘 순응한 모법적이라고 성도라고 부를 수 없습니다. 그는 교인은 됩니다.

즉 아히도벨과 가룟 유다는 교인은 되지만 성도는 아니었습니다.

이제 우리는 자살하는 자는 하나님의 백성이 아님을 확실하게 알았습니다.

하나님의 백성은 스스로 죽도록 내버려 두지 아니하십니다.

 

다음 성경 구절을 소개하면서 말씀을 끝맺겠습니다.

죄를 짓는 자는 마귀에게 속하나니 마귀는 처음부터 범죄 함이니라 하나님의 아들이 나타나신 것은 마귀의 일을 멸하려 하심이니라.

하나님께로 난 자마다 죄를 짓지 아니하나니 이는 하나님의 씨가 그의 속에 거함이요 저도 범죄치 못하는 것은 하나님께로서 났음이라.”

(13:8~9)

자살하는 자는 자기 생명인 줄 알고 스스로 해치는 것이지만 그 생명의 주인을 무시한 처사로서 남의 생명을 자기의 것인 줄 알고 스스로 처단하는 살인 행위 즉 살인한 것입니다.

하나님께로 난 자 곧 하나님의 백성은 이러한 살인 즉 자살을 못하게 하나님께서 막으시는 것입니다.

 

살인하는 자마다 영생이 그속에 거하지 아니하는 것을 너희가 아는 바라.” (13:15)

 

Shalom

살아 역사하시는 하나님 아버지의 은혜와 축복이 이 말씀을 듣는 모든 자에게 임하시기를 소원합니다.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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