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앵커 정미홍은 왜 女전사가 됐나
12/03/2016 23:30
조회  2692   |  추천   17   |  스크랩   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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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와~ 정미홍 대표! 얼굴만 예뿐 줄 알았더니 내면도 아주 올바르고 타의 귀감이 되실 대한민국 바로세우기 여전사이시다. 얼라 '뇌무성'이는 이 글을 꼭 읽어보거라. "새누리 지지자들은 극우를 버리고 중도보수로 가야 한다"고 했는데, '극우'에 대한 명쾌한 설명이 있기 때문이다. 정 대표의 말을 대입해보면 너는 어중간한 빨괭이다. 명박이가 5년동안 자기는 중도라며 이념논쟁을 피한 것이 엄청난 좌빨세상을 만들고야 말았다는 설명도 했다. 이른바 '노명박' 시대였다는 얘기다. 그래서 TV조선에선 친이계를 패널이나 앵커로 출연시키는 것 아닌지 싶다. 

누구 정 대표와 '신의 한수' 신혜식 대표의 이메일 주소나 핸폰번호 아시는 분 안 계시나. 계시면 제게 알려주시면 좋을텐데. <오늘도 약 2시간반에 걸쳐 작성했던 글이 양치질하고 오니까 날아가버려 몹씨 속이 상했다. 이게 몇번째인지 수도 헤아릴 수 없는 실정이다.>-

나바모 생각

-인터뷰 기사-

앵커 정미홍은 왜 女전사가 됐나


"내가 강경 극우라고요?  난 그냥 상식적인 이야기를 하고 있을 뿐"

⊙“폭언과 저질, 거짓과 선동이 없는 세상을 만들고 싶다”
⊙ 종북제거와 법질서 회복 없이는 선진국 진입 불가능
⊙ 종북과 싸우기 위해 회사 영업까지 중단
⊙ 루프스라는 희귀병 극복과 국제결혼 그리고 딸의 입양

글 | 이상흔 인터넷뉴스부 기자 사진 | 영상미디어
필자의 다른 기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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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진 영상미디어

올해 우파진영의 논객으로 혜성처럼 등장한 정미홍(55) 에릭슨코리아(舊 더코칭그룹) 대표. 현재는 ‘논객’ 차원을 넘어 TV토론에서, 거리에서, 강연장에서 ‘종북척결’의 기치를 내걸고 종횡무진 누비고 있다. 지난 11월 1일 정미홍 대표는 “향후 최소 몇 년 동안 제 삶의 미션과 모토는 이 나라의 정체성 바로 세우기와 종북세력 척결”이라는 글을 트위터에 올렸다. 무언가 비장한 결심을 하지 않으면 공개적으로 하기 어려운 발언이다.
대중의 기억 속에 정미홍은 방송인으로 남아 있다. 1987년 KBS 9시 뉴스를 진행했고, 88서울올림픽의 메인 앵커를 맡았던 그야말로 당대 가장 잘나가던 아나운서였다. 정 대표는 1997년 말부터 MBC의 ‘정미홍이 만난 사람’이란 프로그램을 2년간 진행한 후 홀연히 방송계를 떠났고, 이후 사업가로 변신해 지금까지 ‘조용하게’ 지내왔다.
그러던 그가 올해 초 인터넷 실시간 검색순위 상위에 오르내리며 화제의 인물로 급부상했다. 정 대표는 1월 19일 자신의 트위터에 “서울시장, 성남시장, 노원구청장 외 종북(從北) 성향의 지자체장들 모두 기억해서 내년에 있을 지방선거에서 반드시 퇴출해야 합니다”라는 글을 올렸다. ‘종북’으로 지목된 지자체장들은 발끈했고, 성남시장과 노원구청장은 민형사 고소를 하고 나섰다.
"나는 갑자기 등장한 보수우파 논객아냐"
지난 11월 15일 광화문 근처 빌딩에 있는 에릭슨코리아 사무실에서 정미홍 대표를 만났다. 직접 만나본 정 대표는 TV에서 상대를 말로써 압도하는 차분하고, 강한 이미지와는 상당히 다른 모습이었다. 인터뷰 도중 어린이 학대 문제를 이야기하다가 감정에 격해져 울컥하기도 하고, 종북 좌파들의 행태를 고발하는 대목에서는 흥분하며 목소리가 높아지기도 했다.
그는 “지난 4개월 동안 매주 종북 척결을 위한 애국시민단체의 길거리 강연과 집회에 참석하고 있다”는 말로 인사를 건넸다. 그에게 “왜 갑자기 종북 문제에 관심을 가지게 되었냐”고 묻자 “절대로 ‘갑자기’가 아니다”고 강조했다.
“사람들은 모두 제가 갑자기 종북문제를 이야기하며 나타난 것으로 알고 있지만, 갑자기가 아닙니다. 저는 지난 총선과 대선 과정에서 계속해서 정치적 사안에 대해서 트위터에 글을 올려 왔습니다. 총선에서는 새누리당을 돕기 위해 직접 현장을 뛰었고, 대선 때는 박근혜 대통령을 돕기 위해 종편의 패널로도 많이 참여했습니다. 그러다가 올해 1월 ‘종북 지자체장 뽑지 말자’라는 뜻의 글을 올리면서 종북주의들자이 선동하는 마녀사냥식의 비난과 폭언을 받으면서 본의 아니게 주목을 받은 것이죠.”
김성환 노원구청장이 제기한 소송 건에 대해서 서울중앙지법은 지난 10월 ‘어떤 사람이 종북성향의 인사로 지목될 경우 사회적 평판이 크게 훼손될 것이 명확하기 때문에 종북이라고 표현한 것은 명예훼손’이라며 '정미홍 대표는 김 성환 구청장에게 800만원을 배상하라'는 판결을 내렸다. 이에 대해 정 대표는 “절대로 승복할 수 없다”며 “자유민주주의 헌법 가치를 수호하기 위한 공적 인물과 공적 관심사에 대한 비판은 폭넓게 허용되어야 하며 표현의 자유에 해당한다”고 밝혔다.
“처음에 누가 이기든 어차피 끝까지 가야 결판이 나는 재판이라고 생각했기 때문에 별로 놀랄 일이 아니고, 결국 정의가 승리하게 될 것이라는 믿음은 변함이 없습니다. 우리처럼 이념으로 분단된 나라에서 자기 사상으로 편향된 행정을 하는 공직자는 공직자 자격 없다고 생각합니다.
그는 이적단체인 한총련의 전신인 전대협 출신으로 자본주의를 부정하는 서적, 공산주의 서적을 공무원들에게 강제로 읽힌 후 논술로 인사고과에 반영하고, 이적단체 진보연대의 한 위원장을 인수위원장으로 임명했습니다. 무엇보다도 ‘김일성이 민족의 영웅이며, 한반도에서 국가의 정통성은 북한에 있다’라고 주장하는 명백한 종북교수(한홍구 성공회대 교수)를 동원해 주민들에게 왜곡된 역사를 주입하려고 한 구청장이 종북이 아니면 누가 종북입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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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진 영상미디어

회사는 '개점휴업'··· "종북세력과 싸움에 올인"
정 대표는 “현재 두 지자체장들에 대한 민형사 맞고소를 포함해서 11건의 고소ㆍ고발 건이 진행 중”이라며 “종북세력과 싸우느라 회사 운영도 잠시 중단한 상태”라고 말했다.
“제가 트위터에 올린 글을 두고 종북좌파들이 마녀사냥식으로 달려들어 욕설을 하고, 전화를 해서 일을 못할 지경이 됐어요. 저도 각종 소송 준비와 재판 때문에 정신이 없어서 정상적인 회사 운영이 불가능한 상태입니다. 그래서 이왕 이렇게 된 거 앞으로 3~4년은 회사 일을 잠시 접어두고, 본격적으로 싸우려고 각오하고 있습니다. 2010년 설립한 더코칭그룹은 2011년에 세계 최대의 코칭회사인 캐나다의 ‘에릭슨 컬리지 인터내셔널’과 제휴해서 그 쪽의 탁월한 코칭프로그램을 보급하기로 하고, 회사 이름까지 ‘에릭슨코리아’로 바꾸어 다시 출발하려 했는데, 완전히 ‘개점휴업’ 상태가 된 거죠.”
-종북세력이 없어질 때까지 싸우시겠다는 건가요.
“종북이라는 뿌리는 60년을 넘게 살아남았습니다. 김대중-노무현 좌파정권 10년 동안 비료와 영양제를 주어 엄청나게 키웠고, 이명박 정권에서는 이들을 방관하는 바람에 뿌리가 아주 튼튼해졌습니다. 이제 사회의 각 민간 섹터는 물론, 국회, 정부, 사법기관까지 그 뿌리가 뻗쳐 있습니다. 건강한 비판세력들에 스며들어 국민을 혼란시키고, 진보나 민주인사처럼 자기들을 포장하고 있죠. 우리가 선진 시민사회로 발전하기 위해서 이 종북의 뿌리를 반드시 제거해야 합니다. 국민소득 3만 달러를 바라보는 시대에 나라의 중요한 선결과제가 그것이라는 게 참 안타까운 일이긴 하죠.”
-그래도 고소ㆍ고발은 적당히 피해갈 수 있는 것 아닌가요.
“어떻게 피해가요? 방법이 있다면 좀 알려주세요. 대한민국을 부정하는 세력의 실체를 있는 그대로 이야기할 뿐인데 소송을 걸어오고, 터무니없는 거짓말로 저를 무차별 매도하니까 저도 대응해야죠. 자신을 지키는 일은 누가 해주지 않고, 또 그냥 방치하면, 저만 엄청나게 피해를 봅니다.
인터넷에는 저를 두고 ‘이당 저당 옮겨가며 권력을 추구하는 여자’라거나, ‘과거 한나라당의 저격수 역할을 하던 사람이 변절’했다는 둥, 쓰지도 않은 글, 하지도 않은 말들을 했다는 둥 온갖 명예훼손과 허위사실, 또 모욕적인 욕설이 돌아다닙니다. 이런 악성 유언비어에 대해 제가 가만있으면 그게 진실이 되어버리고, 앞으로 점점 더 심해지며, 결국 회복하기 어려워질 건 뻔한 것 아닌가요.”
-지난 8월에는 변희재 미디어워치대표, 황장수 미래경영연구소 소장 등과 ‘애국 5인회’를 결성하셨더군요.
“사실 저는 작년 4ㆍ11 총선 전까지 변희재라는 사람의 존재를 몰랐어요. 그런데 제가 트위터에 정치적인 글을 올리자 여기저기서 ‘여자 변희재’라는 소리를 하기에 변희재가 누군가 하고 찾아보면서 알게 된 거죠. 결국 활동의 목적이 비슷한 사람들이 애국 5인회를 결성하자며 저를 불렀고, 나라의 법치와 원칙을 세우는 활동을 하기로 한 거죠.”
'나꼼수'와 '전교조' 문제의 심각성을 깨닫고 현실정치 관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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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2년 5월 15일, 지난 4.11 총선기간 동안 불법 선거운동 혐의를 받고 있는 '나는 꼼수다'의 김어준씨가 소환 조사를 받기위해 서울지방경찰청으로 들어서고 있다./조선 DB

-언제부터 종북문제에 관심을 가지게 되었나요.
“사실 시사와 정치에 다시 관심을 갖게 된 것은 2011년 하반기에 <나는 꼼수다>(이하 나꼼수)라는 인터넷방송을 우연히 알고부터입니다. 들어보고 정말 경악을 금치 못했습니다. 저질 막말에 욕설은 기본이고, 사실이 아닌 의혹을 ‘아니면 말고’ 식으로 확산시키고 있더군요. 우선 사실이 아닌 의혹이 많아지고, 문제가 침소봉대되면 이 사회가 불신과 불안이 증폭되고, 사회에 대한 반감이 커집니다. 문제가 있으면 해결방법에 집중해야 해결이 되는 건데, 문제만 턱없이 키우면 사회가 혼란스러워집니다.
또한 욕은 폭력의 전 단계라고 생각해요. 욕을 하다 보면 서로 악감정이 상승해서 쉽게 주먹이 나가게 되고 결국 사회의 폭력을 양산하는 데 아주 큰 일조를 하거든요. 결국 나꼼수는 사회의 건전한 발전에 엄청난 해악을 끼쳐 사회적 비용을 증가시키고, 사회불안을 일으키는 ‘사회의 악’이라고 생각했어요.
그런데 사회를 이끌어야 할 정치인들이 이런 자들에게 박수를 보내고, 손잡고 돌아다니니 국민들이 무엇이 옳은지 분간할 수 없게 됩니다. 그래서 먼저 이런 저질 세력이 활개치는 것부터 멈추어야겠다고 생각하게 된 거죠.”
-<나꼼수>가 등장하면서부터 종북문제에 관심을 가졌다는 말씀이시군요.
“그에 앞서 전교조의 실체를 알게 된 것이 종북에 대해 알게 된 주요 계기가 되었어요. 저는 아이들의 품성 교육에 관심이 많았어요. 요즘 청소년들의 언어가 너무 폭력적이고, 험하고, 거칠기 때문에 이것을 어떻게 하면 고칠 수 있을까를 많이 고민했어요. 그래서 청소년들의 의식 변화를 이끌 수 있는 품성 훈련 방법을 연구하고 프로그램도 만들었죠.
이것을 일선 학교에서 가르칠 방법을 찾다가 선생님들, 특히 전교조가 문제라는 것을 생각하게 되었습니다. 전교조란 단체는 우선 어떤 분노에 찬 사람들이 움직이는 단체입니다. 선생님이 분노를 품고 아이들을 가르치면 절대로 안 되거든요. 세상을 객관적으로 보는 눈이 결여된 사람들이 어떻게 아이들에게 바른 시각과 긍정적인 태도를 가르치고, 분노에 차서 욕설을 해대는 자들이 좋은 품성과 감정 조절을 훈련할 수 있겠습니까?
교육 프로그램을 아무리 잘 만들어도 아이들을 현장에서 직접 가르치는 선생님이 제대로 정신이 박혀 있지 않으면 모두가 허사입니다. 그래서 선생님들을 교육하기 위한 프로그램을 연구하게 되고, 그 과정에서 전교조를 더욱 깊이 알게 되었죠.”
정 대표는 “특히 전교조가 아이들에게 북한 세습왕조를 칭송하고, 대한민국은 친일파가 지배한 정의가 사라진 역사이며, 한반도의 정통성이 북한에 있다는 식의 반(反) 헌법적 교육을 펼치는 사실을 알고 큰 충격을 받았다”고 말했다.
“전교조 선생님들이 학생들을 광우병 시위에 내몰고, 교실에서 현직 대통령에게 욕설을 퍼붓고, 주한미군과 미국에 대한 반감을 갖게 하고, 빨치산 추모제에 아이들을 데려가는 등 문제가 심각했습니다. 나꼼수도 나꼼수지만 전교조는 더 심각한 문제죠. 아이들은 선생님들의 말을 믿고 따라야 하잖아요. 이런 환경에 노출되어 있으면 대한민국의 미래가 어떻게 되겠어요. 전교조는 아이들에게 사회의식이나 질서를 가르치지 않고 방종을 자유로 포장해서 아이들을 망치고 있습니다.
학생 인권조례만 해도, 섹스의 권리, 임신 출산의 권리를 담고 있는데, 청소년 시절에 더 중요한 것, 즉 건강한 삶을 창조해나가기 위해 지켜야 할 원칙과 절제에 대해 신념을 가잘 수 있도록 가르쳐야합니다. 부모님의 보호를 받는 시기에 무조건적인 자유와 권리만 주장하게 하는 게 옳은 교육입니까?
결국 자유로 포장한 방종은 불법을 낳고, 이는 사회적 혼란과 비용을 증가시길 수 밖에 없습니다. 시민의식과 질서, 절제와 관용을 가르치지 않고, 법을 지키지 않은 풍토가 만연하면 나라는 언젠가 망하게 되어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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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5월 한 종편방송에 출연한 정미홍 대표는 윤창중 전 청와대 대변인의 성추행 의혹에 대해 "아직 수사 중이고 지극히 경범죄로 신고된 사안인데, 성폭행을 해서 그 사람을 목 졸라 죽이기라도 한 분위기”라며 "이게 미친 광기가 아니고 무엇인가?"라고 비판했다. 정 대표는 "확실히 밝혀진 것도 없는 상황에서 언론이 지나치게 선정적인 보도를 하는 행태를 비판 한 것에 대해 마녀사냥 식의 일방적인 폭언과 비난이 쏟아졌다"고 말했다./ 사진은 당시 정미홍 대표가 출연했던 채널A 방송 포로그램의 캡쳐화면.

1995년 민주당 조순 후보의 서울 시장 선거 캠프에 합류
-지난 총선과 대선은 우려하신 저질과 막말에 더해 통진당 같은 종북세력까지 합쳐졌는데요.
“대한민국의 국회의원이라는 자가 저질 막말을 하는 김용민 같은 사람들과 어울려 낄낄거리고, 대통령 후보로 거론된 자가 그들과 같이 다니면서 선거운동하고, 박수 치고 있었으니 얼마나 한심스러운 일입니까. 저는 저러한 저질 세력들이 국회의 다수 석을 확보하고 나아가 대통령까지 된다면 이사회는 바른 가치와 판단력이 실종된, 속된말로 ‘깽판’이 되고 회복되기 힘든 병에 걸리게 된다는 확고한 신념을 가지고 있었습니다.
솔직히 총선 전에는 종북이라는 말은 들어봤지만, 우리 사회에 종북이 이 지경까지 뿌리 깊게 퍼져 있는지는 저도 잘 몰랐어요. 그러다 총선 때 통진당(당시 민노당)의 공약이나 당의 강령같은 걸 보고, 이게 도대체 어느 나라 정당인가 의심스러웠고, 이들이 하는 말과, 전력들이 심각한 문제가 있다는 생각을 하게 됐습니다.
이어서 대선 때 종편 방송에 논객으로 나가면서 이슈에 대해 공부하다가 종북세력에 대한 숨겨진 진실과 불편한 현실을 깊이 알게 되었고, 이러다 나라가 큰 일나겠다는 생각을 한 겁니다.”
-1995년에 민주당 조순 후보의 서울 시장 선거 캠프에 합류하셨는데 야당에 몸을 담았던 겁니까?
“그게 저에 대해 가장 잘못 알려진 부분이에요. 인터넷에서 저를 헐뜯는 사람들이 ‘제가 이당 저당 옮겨다니며 무슨 권력을 쫓아 다녔다’고 음해를 하는데, 저는 작년 전까지 야당을 비롯 어떤 정당에도 가입한 적이 없습니다. 1995년 당시엔 야당도 큰 선거에서 이겨봐야 민주주의가 발전한다는 정말 단순하고 순수한 마음으로 도와달라는 부탁을 받아들인 거죠.”
정 대표는 “그런데 민주당에서 입당을 하라고 해서 ‘난 정치할 생각 없다. 입당하라면 돕지 않겠다’ 고 해서 그냥 도와주게 된 것”이라며 “정당 역사상 유일한 비 정당원 대변인이었고, 최초의 선대본부 여성 대변인으로 활동했다”고 말했다.
정 대표는 “선거 후에는 책을 쓰고, 다시 유학을 준비하고 있었는데 조순 시장의 권유로 서울시 홍보담당관으로 들어가 시 공무원 생활을 2년간 했다”고 말했다.
“서울시에 있으면서 서울시의 인터넷 홈페이지를 최초로 만들어 세계 200대 공공 사이트로 상도 받고, 새로운 CI 사업을 기획해 지금의 서울시 로고를 만들었고, 문화재 외관 조명사업을 처음 시작했죠. 정말 많은 것을 바꾸었다고 자부합니다. 또 어쨌든 저 때문에 여성대변인 시대도 활짝 열려서 각 당에서 추미애, 김영선 같은 여성 대변인을 활발하게 영입했잖아요. 그 당시만 해도 정치를 대한민국 전체를 보는 관점으로 객관적으로 봤고, 개인적인 정치 욕심은 없었죠.”
“종북세력 방치한 이명박 대통령 비난받아 마땅”
-지난 총선 때는 본격적으로 새누리당을 도왔죠.
“나꼼수와 전교조 문제를 보면서 사회문제에 관심을 가지고 있던 차에 새누리당에서 적극적인 공천 제의가 들어와서 받아들였어요. 그런데 선거 임박해서 원래 공천 준다는 곳은 다른 사람을 주고, 다른 지역에 나가라고 해서 포기했습니다.
출마는 포기했지만 종북세력과 손잡은 민주통합당이 다수당이 되면 무슨 일이 벌어질지 모른다는 생각이 들었기 때문에 힘 닿는 데까지 도와야겠다는 순수한 마음으로 선거를 도와준 거에요. 엄격히 말하면 새누리당을 도운 게 아니라, 종북세력을 떨어뜨리는 목적으로 선거운동을 한 거죠. 그래서 뜻있는 사람 두 어명이 500만원씩 돈을 내서, 전국을 다니며 새누리당 의원들을 도왔습니다. 총선기간 동안 3,700키로 정도 다녔는데, 우리가 도와준 12명 중에 7명이 당선되었습니다.”
-당시 총선은 이명박 대통령의 실정으로 야당이 거의 압승할 것이라는 것이 중론이었는데요.
“전 이 세상을 움직이는 어떤 거대한 진리같은 게 있다고 생각합니다. 더 크고 옳은 가치를 향해 가는 사람이 반드시 이긴다고 믿습니다. 사람들은 무의식적으로 긍정에 더 깊게 반응하고, 더 크고 옳은 가치에 결국은 마음이 움직이게 되어 있습니다. 또한 이 세상은 긍정의 힘으로 움직입니다. 혼란과 분열, 부정과 선동은 잠시는 승리할 수 있을지는 몰라도 영원히 승리할 수는 없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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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미홍 대표는 "지난 4.11 총선에서 종북주의자들의 제도권 입성을 막기 위한 일념으로 사비를 털어 전국을 다니며 새누리당을 도왔다"고 말했다.
-소위 우파정권이라는 이명박 정권을 5년이나 거쳐 왔는데 아직까지 이렇게 종북세력과 싸워야 하는 현실에 대해서는 어떻게 생각하세요.
“답이 뻔한 질문이네요. 하하하. 그 우파정권이, 나라가 깊이 곪았는데도, 중도실용을 내세우면서 아무 일도 하지 않았잖아요. 지금 새누리 의원들 중에도 종북들과 싸울 줄 모르고, 개념 없는 사람들이 많다고 생각합니다. 실례로 지난 5ㆍ18 기념식에서 <임을 위한 행진곡>을 부르는 데 무려 40여 명의 새누리당 의원들이 동의했잖아요.
임을 위한 행진곡에서 ‘님’은 김일성을 지칭하는 겁니다. 이 곡은 원래 5ㆍ18 때 도청에서 마지막으로 죽은 윤 모씨를 영혼 결혼식시키며 만들어진 장송곡 풍이었습니다. 이 것을 독일에서 오길남씨 가족을(간첩 송두율과 함께) 유인해서 월북시킨 작곡가 윤이상이 행진곡풍으로 만들었고, 월북해서 김일성을 7번이나 만나고 공작금을 받아 감옥에 갔던 소설가 황석영이 개사한 겁니다.”
정 대표는 “그동안 종북좌파들이 대한민국을 부정하는 행사에서 공식적으로 불러왔던 노래이기 때문에 국가 원수가 참여한 자리에서는 절대로 불러서는 안되는 데도 새누리당에서 이 노래를 부르는 데 동의한 것은 문제”라고 말했다.
-지금 박 대통령이 벌이는 '종북세력과의 싸움'은 이명박 대통령 때 했어야 하는 일이라고 보시는군요.
“맞습니다. 좌파 정권 10년 동안 국가의 정체성이 흔들리고, 간첩들이 사면 복권되어 심지어 민주화 유공자가 되기도 했는데 하나도 바로잡지 않았습니다. 그런 점에서는 이명박 대통령은 마땅히 비난을 받아야 하죠. 그분이 5년간 종북 좌파들의 눈치만 보고 직무를 유기한 '덕'분에 종북들의 뿌리가 더 튼튼해져 국회의원이 등장하고, 지자체장이 나오고, 사법기관까지 종북세력이 발을 뻗치는 상황이 될 수 있었다고 봅니다. 정치한다는 사람들이 국가관, 가치관, 역사관이 없이 오직 출세를 위해 정치에 뛰어들기 때문에 이런 일이 발생한 것이죠.”
미국 유학과 동시에 찾아온 희귀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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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80년대 중반 TV뉴스와 라디오 DJ로 활동하던 시절.

인터뷰를 하면서 정 대표가 지난 총선과 대선을 거치면서 확고한 자기 체계를 구축해 왔다는 것을 느낄 수 있었다.
그런데 잘나가던 KBS 아나운서가 왜 방송계를 떠나 코칭회사를 설립했을까? 여기에는 정미홍의 ‘아픈 과거’와 연관이 있다. 그는 한 때 루프스(Lupus)라는 희귀병을 앓았다. 루프스는 신체의 여러 부분에 만성적인 염증을 일으키는 자가 면역 질환이다. 이 병에 걸리면 바이러스나 세균 등 외부의 침입자가 없어도 항체가 형성돼 건강한 자기 조직을 공격해 염증과 조직손괴, 통증을 유발한다. 원인도 불분명하고 완치도 어렵다.
이화여대 법학과를 졸업한 정미홍 대표는 1982년 KBS 10기 아나운서로 방송계에 입문했다. 하지만 아나운서의 길은 순탄하지 않았다고 말했다. 그가 KBS 9시 뉴스를 진행을 맡은 것은 입사 6년 만이었다. 정 대표의 말이다.
“저는 정말 피나게 노력해서 뒤늦게 앵커 자리에 올라간 사람입니다. 정말 뉴스 진행을 잘할 자신이 있었고, 하고 싶었지만 시켜주지를 않았어요. 그래서 남들이 하지 않으려는 해외 교포에게 보내는 뉴스를 자발적으로 지원해서 하게 됐고, 아무도 보지 않는 그 방송을 상당히 오랫동안 했습니다. 그렇게 혼자 노력하는 과정에서 아침뉴스를 진행할 기회를 얻게 된 거에요.
하루는 9시 뉴스를 맡고 있던 젊은 후배 아나운서가 자꾸 실수를 해서 문제가 되니까, 아침뉴스를 진행하던 제가 9시 뉴스를 갑자기 맡게 되었는데 오래 하지 못했어요. 당시 같이 진행하던 선배 아나운서가 저를 눈엣가시처럼 생각했는데 신입 아나운서가 들어와 3개월 연수가 끝나자마자 저를 내보내고, 어린 후배를 앉히더군요. 그래서 8개월간 KBS 9시 뉴스를 진행했습니다.”
이듬해 88올림픽 메인 MC로 모든 기운을 쏟아 부은 정 대표는 1989년 여름 홀연히 미국으로 유학을 떠났다. 미국 시카고대 대학원의 윌리엄벤튼 펠로우쉽 방송전문가 연수과정에 아시아 최초의 장학생으로 선발되었다고 한다. 그는 미국에서 정보 공개법을 배워 방송에 접목해 우리나라 민주주의에 기여하고 싶었다고 한다.
1990년 1월 유학 중에 갑자기 몸이 아파 병원에 가니 루프스라는 진단이 내려졌다. 듣지도 보지도 못한 병이었다. 투병생활은 힘들었고, 목숨이 위태한 고비도 있었다. 약으로 버티며 단기 석사과정을 수료했지만, 몰골은 말이 아니었다.
한국에 돌아왔지만 심신이 지쳤다. 이 무렵 미국에서 투병생활을 할 때 옆에서 도와주던 미국인 남자에게 프러포즈를 받고 국제결혼을 했다. 그의 남편은 현재 국내 대형 로펌에서 국제변호사로 활동하고 있다. 정 대표는 1997년 '루프스를 이기는 사람들' 협회를 설립해 지금까지 이 협회를 이끌 고 있다. 그는 현재 병에서 완전히 벗어난 지 10년째라고 했다.
“자가 면역질환은 환자들의 생각이 변하지 않으면 잘 낫지 않습니다. 저 자신도 그걸 깨닫고 지금은 병에서 완치했지만, 대부분의 환자는 입원과 퇴원을 반복하면서 생활하는 게 무척 안타까웠어요. 그래서 환자들의 생각을 어떻게 하면 바꿔줄 수 있을까를 늘 생각했고, 그래서 상담심리나 강의법들을 공부해 보기도 했죠.
그 과정에서 ‘코칭’이란 것을 접하게 되었고, 사람을 변화시킬 수 있는 건 내적 동인(동因) 생겨야 하고, 이 내적 동인을 일으키는 데 코칭이 가장 효과적이란 것을 알게 됐어요. 수천만원을 써가며 코칭을 3년간 외국에 가서 프로그램도 이수하며 배웠고, 코칭을 배우다 보니 이게 환자뿐 아니라 우리 사회의 정치인과 리더들에게 꼭 필요한 중요한 것이라는 생각이 들더라고요. 그래서 리더의 변화를 위해 코칭회사를 설립해서 본격적으로 시작한 거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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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97년 10월 '정미홍이 만난 사람들'에서 1994년 한국인 최초 메이저리거인 박찬호 선수가 LA현지에서 출연했다. 당시 시청률이 50%가 넘을 정도로 폭발적인 반응을 불러일으켰다.
“종북좌파들의 사생결단식 투쟁이 시작됐다
-일부 언론이 정 대표에게 ‘강성발언을 하는 보수우파’라는 수식어를 붙이는데요.
“솔직히 저는 욕도 할 줄 모르는 사람이에요. 심지어 일부에서 나를 보고 ‘극우’라고까지 하는데 극우는 일본의 적군파처럼 자기의 정치적 신념을 위해 남을 해치는 것도 당연하게 생각하는 사람들입니다. 나는 지극히 상식적인 사람이고, 대한민국을 위해 필요한 이야기를 했다고 자부해요. 잘못된 것을 잘못되었다고 하니까 잘못을 한 사람들이 절 두려워하는 거죠.
헌법적가치, 법질서 회복 등 지극히 상식적인 이야기를 하는 내가 '극우'라고 욕을 먹는다는 건, 이 사회가 좌(左) 나 우(右)의 정확한 개념이 없고, 가치관이 혼란하기 때문이라고 생각합니다. 전 좌든 우든 먼저 대한민국이 바로 선 후의 문제라고 보고, 그걸 방해하는 소위 '진보'라 자칭하는 세력 속에 섞여 있는 종북세력을 솎아 내어야 한다고 믿습니다”
-또다시 신야권 연대를 하자는 목소리가 나오는데, 어떻게 생각하세요.
“지금 솔직히 정통 민주화 세력이 민주당에 남아 있나요? 다 쫓겨나고 친노나 주사파출신이 장악하고 있잖아요. 지금 좌파들은 사생결단이에요. 집권 초기에 2008년 광우병 사태처럼 한번 흔들어 보려 했는데 도저히 안 먹히니까 이제는 엄청난 위기의식을 느끼고 ‘부정선거’를 들먹이며 대통령 퇴진하라고 총력을 집중하는 형국이에요.
이런 상황에서 민주당이 '신야권 연대' 운운하면 민주당은 진짜 답이 없는 정당이 됩니다. 통진당과 연대해서 종북의 숙주 역할을 한 게 민주당 아닙니까. 이에 대해서는 한마디 반성도 없이 또 야권연대를 한다고요? 안철수씨는 ‘요즘 세상에 간첩이 어디 있느냐’고 했던 사람이고, 여러 반국가단체가 포함된 범야권 시민단체들과 연대를 하면 과연 국민의 지지를 받을 수 있을까요?
이젠 국민들이 어떤 단체, 어떤 자들이 종북인지 알게 되었기 때문에 과거와는 다른 반응을 보일 겁니다. 신야권 연대를 한다는 면면을 보니 광우병 때 적극 앞장섰던 분들이던데, 그 사람들 주장이 허위로 밝혀졌지만 한마디 대국민 사과라도 한 적이 있었나요? 이런 사람들이 이제 다시 모여 정권 퇴진 운동을 한다는 꼴인데, 어떤 공작을 해도 예전 같지 않을 거라 봅니다. 우파진영은 이런 선동용 정치 꼼수를 막기 위해 애국 여권 총연대를 구성해서 맞서야 할 것입니다.”
“여성부는 여성을 망치는 부서··· 이제는 불필요”
-여성 대통령이 나왔는데, 여성의 리더십에 대해서 어떻게 생각하세요.
“저는 여성의 리더십이 더 정직하다고 봐요. 여성의 리더십은 배려의 리더십이고, 무엇보다 정직과 신뢰의 리더십이라고 봅니다. 이 사회에 가장 필요한 게 현재 정직과 신뢰에요. 그래서 더 많은 여성지도자 나와서 거짓과 정략, 꼼수가 판을 치는 정치문화를 정화할 필요가 있습니다.”
-그래도 우리나라가 ‘가부장 사회’라고 비판하는 여성운동가들이 많은데요.
“이제 그런 이야기 할 때는 지났습니다. 여성이 핍박받는 사회라는 피해의식에서 벗어날 때가 되었어요. 현재 모든 공직시험에서 여성이 상위권을 차지하고, 언론사와 법조계는 물론, 남성의 전유물이었던 사관학교에서까지 여성이 수석으로 졸업하는 시대입니다. 아직도 여성이 핍박받는 존재를 부각하려는 것은 앞서가는 여성들을 잘 활용하지 못하기 때문입니다.
저는 여성부라는 것이 여성을 돕는 것이 아니라, 여성을 더 망치는 부서라고 생각해요. 지금 여성이 끼지 않고 진행되는 일이 있을 수가 있나요? 이제는 어떤 사업이든 여성부가 따로 떼어내어 일할 수가 없는 시대에요. 행정, 교육, 복지 부문에서 여성 업무를 따로 떼어내면 오히려 혼란과 불편, 비효율을 가져오고, 행정 자체가 불평등해집니다. 여성부가 있어서 여성이 사관학교에 입학이 가능해진 것이 아니잖아요. 어쩔 수 없는 추세와 여성들의 열정이 있었기 때문에 시대가 그렇게 변해 온 것입니다. 지금까지는 여성부가 필요했을지 몰라도 앞으로는 아닙니다.”

-그런데 정치인 중에는 그런 이야기를 하는 사람이 없죠.
“표가 떨어질까 봐 두렵고 여성계와 싸우기가 싫은 거죠. 저는 할 말은 하는 사람이니까 하는 거고. 예전 여성부가 만들어지고 핵심인사들이 죄다 좌파운동권 출신 여성들로 채워졌습니다. 우파여성운동가들은 그동안 입을 다물고 살았고, 그 목소리가 미미하다 보니까 운동권 여성들이 하는 이야기가 여성계 전체의 목소리인 것처럼 왜곡되었어요. 그러다 보니 여성운동, 여성문화운동 등 전체가 좌파적인 시각으로 왜곡된 겁니다. 뭐 민주화 운동 자체가 왜곡된 마당이니까 따로 할 말은 없지만….
군(軍) 가산점은 남북이 대치된 상황에서 죽음이나 부상의 위험을 무릅쓰고 군 복무한 남성들에게 주는 국가에 헌신한 시간에 대한 보상입니다. 이것을 남녀 불평등으로 몰아 폐지한 것은 좌파 여성들이 주도한 것이 아닌가 생각합니다. 국가가 처한 상황과 시대적 상황에 대한 인정이 없는 것도 문제라고 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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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북과 싸우다 보니 정치를 해야 한다고 생각이 들어”
-따님을 입양하셨다면서요.
“딸아이가 지금 고등학생인데 친구들한테 당당하게 이야기해요. 입양을 감추는 것보다 공개해서 입양에 대한 사회적인 편견을 없애는 활동을 하는 것이 오히려 딸에게도 좋다고 생각했어요. 부모가 얼마나 믿음과 사랑을 주느냐에 따라 아이들의 정체성이 결정되는 것이지 입양을 했다는 사실을 공개하고 숨기고에 따라 달라지는 게 아니에요. 입양으로 문제가 생긴다면 사랑이 부족하기 때문이라고 생각합니다.”
정 대표는 우리나라의 입양문제 대목을 이야기하면서 울컥하며 눈물을 보였다.
“아니 김대중 대통령이 해외 입양에 대해 ‘안타깝다’고 한마디 하자 ‘아기 수출국’이라는 국내외적인 비판을 벗어나자며 해외입양을 자제정책을 폈어요. 국내에서는 아이들을 보호하기 위한 아무런 시설과 여건도 마련해 놓지 않고, 단지 그깟 체면 하나 때문에 아이들의 일생을 막나요? 미국에 입양 가면 최소한 여기에서보다 더 나은 삶이 펼쳐집니다.
저도 남편이 미국인이라, 얼마나 까다롭게 입양심사를 받았는지 모릅니다. 입양은 미국에서도 교육수준이 높고 여유가 있는 가정에서 합니다. 여기에 남아서 국내 입양도 안 되어 보육원에서 자라면서, 그게 수용소 아닙니까? 교육과 보살핌을 제대로 받지 못하고 자란, 그 아이 인생은 누가 책임질 거에요? 왜 아이들이 제대로 살 기회를 막는 거죠? 무슨 권리로? 우리가 못 키우면 원하는 사람들에게라도 키우게 해야 하지 않나요. 아이가 건강하게 자랄 수 있도록 도와주어야죠.“
-아버지가 미국인이면 딸을 미국에서 공부를 시키지 그랬나요.
“왜 떨어져 살아요. 대학 다니기 전까지는 최대한 곁에 두고 살아야죠. 대학은 자기가 원하는 곳에 보내고 싶고, 유학을 시킬 생각이에요. 하지만 저는 중ㆍ고등학교 때가 아이들이 가장 흔들리고 불안한 시기이기 때문에 이 나이에는 정서적인 안정을 주는 것이 무엇보다 중요하다고 생각해요. 그래야 건강한 사회인으로 자랄 수 있어요. 아직 정서와 가치관이 정립되지도 않았을 때 혼자 고생시키는 것은 학대라고 봐요.”
-조기 유학과 기러기 아빠에 대해서는?
“한마디로 가치관의 부재인 시대죠. 부부가 있고 자녀가 함께해야 가정이 성립하는 것인데, 교육 때문이라고 다 떨어져 지내면 어떻게 가정이 제대로 유지가 되겠어요. 교육적이지도 않고요. 또 한편으로는 우리나라에서 미래에 대한 강한 비전을 갖지 못하기 때문에 아이들을 보내는 것이 아닌가 하는 생각도 들어요.
결국 정치하는 사람들이 문제라고 봅니다. 정치는 타인의 삶에 영향을 미치는 중요한 행위에요. 그런데 정치인 스스로 왜 정치를 하는지, 국가관이 뭔지, 자신과 국가의 비전이 뭔지 이런 데 대한 질문과 대답을 전혀 해보지 않고, 공부도 하지 않고 무턱대고 정치하겠다고 나오잖아요. 그러니 교육도 소홀해 지고, 교육이 부실하니 외국으로 보내고.”
-후배 아나운서들에게 한마디 하신다면.
“후배 아나운서가 아니라, 우리나라 아나운서 제도에 문제가 있다고 봅니다. 미국에서는 방송 뉴스 진행을 하려면 공정하고 치열한 경쟁을 거치는 과정에서 실력을 쌓아야 가능해요. 우리는 입사해서 아나운서실에만 일단 들어가면 특별한 경쟁이 없어도 신분의 보장을 받으면서 정년까지 가거든요. 아나운서실 자체가 공정한 경쟁을 저해하고, 실력으로 승부를 거는 풍토를 막고 있는 면이 있다고 봅니다.”
-기회가 되면 방송을 하시고 싶으세요.
“당연하죠. 지금은 그냥 어쩔 수 없이 종북세력과 싸움을 하는 꼴이 되어 버려서 좀 그렇지만, 늘 멋진 방송을 하는 제 모습을 생각하죠. 특히 뉴스를 다시 제대로 진행해보고 싶은 생각이 있습니다.”
-앞으로 계획은 무엇인가요.
“정치를 해야 한다고 생각하게 되었습니다. 뭐, 이미 지금도 정치를 하고 있는 셈이지만요. 그동안엔 여러 번 권유와 유혹이 있었지만, 루푸스재단과 사업에만 전념했었습니다. 코칭을 통해 사람들의 변화와 성장을 돕는데 성과를 내는 걸 목표로 몇 년간 많이 노력도 했지만, 사회가 가치관이 혼란하면, 코칭이 발전하고 확산되기 어렵다는 걸 깨달았습니다. 또 어떤 신념과 주장이 있어도 외곽에서 아무리 외친들 어쩔 수 없는 한계가 있다는 걸 느껴요.
그래서 좀 더 많은 영향력과 실천력을 가질 수 있는 곳에서 일하는 게 필요하다는 생각을 하게 됐습니다. 정치에 대한 나쁜 선입관도 변해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한 컵의 더러운 물을 정화하기 위해서는 수 백 리터의 맑은 물이 필요합니다. 우리나라 정치가 아무리 혼탁하고 후진적이라도 깨끗하고 정직한, 바른 국가관과 가치관을 가진 사람이 많이 정치에 참여해야 변화를 가져올 수 있다고 믿습니다. 정치가 썩었다고 외면하면 점점 더 오염되고 타락할 것이고, 국민의 삶은 더욱 불편해질 뿐입니다.”
정미홍 대표는 지난 6월 ‘정의실현국민연대’ 모임을 주도해 만들고 상임대표직을 맡았다. 박근 전 유엔대사 조남풍 예비역 육군 대장 등이 자문위원을 맡고 있으며, 대법관을 지낸 정기승 변호사, 조순 서울대 명예교수, 이동복 전 청와대 안보특보 등이 고문단으로 참여했다. ‘정의실현국민연대’ 대한민국 정체성 수립, 헌법가치수호, 법치주의 확립을 통해 아릅답고 정의로운 선진국을 만들겠다는 목표를 내세웠다.
그는 “오늘날 우리 사회가 방향을 잡지 못하고 혼란에 빠진 것은 결국 법치가 제대로 안 되기 때문이 아니겠냐”며 “마음에 들지 않으면 법을 무시해도 된다는 생각이 만연한 것부터 바로 잡아야 제대로 된 나라로 발전할 수 있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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등록일 : 2013-11-29 15:07 | 수정일 : 2014-01-25 19: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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