vistamexico
마중물(vistamexico)
California 블로거

Blog Open 11.07.2008

전체     706886
오늘방문     11
오늘댓글     0
오늘 스크랩     0
친구     5558 명
  최근 방문 블로거 더보기
  달력
 
십자가상의 7 언.♥아버지여 저들을 용서 하소서 2.♥왜 십자가를 택하셨나.♥그의 십자가는 누구 때문인
01/21/2020 16:45
조회  343   |  추천   4   |  스크랩   0
IP 177.xx.xx.165

십자가상의 7 .아버지여 저들을 용서 하소서 2.왜 십자가를 택하셨나.그의 십자가는 누구 때문인가.십자가의 사형.M.T.M.구경평.Rev Dr Th D

 

1

아버지여, 저들을 사하여 주소서

 

1. 아버지여 저들을 사하여 주옵소서

 

“아버지여 저들을 사하여 주옵소서 자기들이 하는 것을 알지 못함이니이다”( 23:34).

 

예수님이 고통스럽게 최후를 맞는 저주스러운 자리에서 드리는, 용서를 구하는 기도였다. 그것은 동정을 구하는 것도 어떤 탄식의 소리도 아니었다.

자기를 십자가에 달아 죽이는 자들을 용서해 달라는 기도였다.

무자비하게 때리고, 욕설을 퍼붓고, 거짓 증언으로 재판에 회부하는 저들, 육중한 십자가 형틀을 메고 가다 쓰러지면 때리고 끌고 가던 저들을 원망하지 아니하셨다.

자신들의 행위가 왜 잘못인지 알지 못하는 무지몽매한 저들을 용서해 달라는 기도였다.

오늘 나를 향하여 증오하고 비웃고 괴롭히는 자를 위하여 기도하시는 예수님을 닮아야 할 것이다.

  

“아버지여 저들을 사하여 주옵소서 자기들이 하는 것을 알지 못함이니이다.

예수님만 드리는 기도가 아니라 오늘 나의 기도가 되어야 한다.

 

이는 자기를 십자가에 매달고, 못을 박고, 욕하고, 온갖 저주와 악담하는 자들을 용서해 달라는 중보기도이다.

예수님께서 네 원수를 네 몸과 같이 사랑하라고 하신 말씀을 몸소 실천하신 것이다.

 

“나는 너희에게 이르노니 너희 원수를 사랑하며 너희를 박해하는 자를 위하여 기도하라”( 5:44).

 

예수님께서 평소에 말씀하시던 대로 자신을 해치는 자를 위하여 기도하신 것이다.

 

“네 원수가 주리거든 먹이고 목마르거든 마시게 하라……”( 12:20).

 

예수님이 가장 고통스러운 곳에서 가장 고통스러운 순간에 외치신 말씀이었다. 예수님께서도 말씀 한마디로 천군 천사를 불러내릴 수도 있으셨지만 그렇게 하지 않으셨다.

 

말씀 한마디로 천지 만물을 창조하신 분이 그 능력을 사용하지 않으시고 오히려 기도하셨다. 평소에 말씀하신 것같이 행하셨다.

이 저주스러운 순간에 오히려 기도하셨다.

 

우리는 어떤가? 나를 해치려는 자를 만나면 저주와 악담을 하는가, 아니면 예수님처럼 그를 위하여 기도하는가?

 

예수님께서 “내가 너희를 사랑한 것같이 너희도 서로 사랑하라”고 하신 말씀을 바꾸어 말하면 ‘내가 나를 배신하고 죽이고 괴롭히는 자들을 위하여 기도한 것같이 너희도 기도하라’는 뜻일 것이다.

 

나를 해치는 자를 위하여 기도하는 것은 쉬운 일이 아니다. 하지만 예수님께서 기도하라고 하셨으니 기도해야 한다.

 

2. 절박한 순간에 드리는 기도였다

 

예수님은 절박한 순간에 아픔과 고통에 집착하지 않고 기도하는 분이셨다.

 

악마의 시험이 있기 전 40일간 기도하시던 예수님, 버림과 배신이 있기 전에 겟세마네 동산에서 기도하시던 예수님, 최후의 십자가 위에서도 기도하시던 예수님이시다.

 

삼손이 최후에 죽음을 앞에 놓고 하나님께 기도하였다.

 

“삼손이 여호와께 부르짖어 이르되 주 여호와여 구하옵나니 나를 생각하옵소서 하나님이여 구하옵나니 이번만 나를 강하게 하사……”( 16:28).

 

삼손은 이스라엘의 13번째 사사이며, 단 지파 소라 출신으로 마노아의 아들이다.

그는 20년 동안 사사로 지내며( 15:20) 블레셋으로부터 이스라엘을 구했다. 소라 땅에서 그의 어머니는 잉태하지 못하는 여자였으나 하나님의 사자가 그녀에게 나타나 아들을 낳게 될 것을 전해 주었다( 13:2-3).

 

평소에 예수님께서는 원수를 위하여 기도하라고 말씀하신 그대로 본을 보여주셨다

 

스데반(참조글④)

④ 스데반(Stephen)

초대 교회 최초의 순교자이다( 7:59-60). 그는 성령과 지혜가 충만한 사람으로, 교회 안에서 구제 사역을 맡을 일곱 집사 중 한 사람으로 뽑혔다( 6:3-6). 은혜와 권능이 충만하여 기사와 표적을 많이 행하였으며( 6:8), 지혜와 성령 충만함으로 여러 사람과 변론하여 이겼다( 6:9-10).

은 돌에 맞아 죽어가면서 “주 예수여 내 영혼을 받으시옵소서”( 7:59) , “주여 이 죄를 그들에게 돌리지 마옵소서”( 7:60)라고 기도했다. 예수님께서 행하신 그대로, 스데반 역시 자기를 향하여 돌을 던지는 자들을 위하여 속죄의 기도를 드린 것이다.

 

고통으로 절박한 순간 그 고통을 보는가? 그 고통을 보면서 얻은 것이 무엇인가?

건강을 잃고 죽음의 문턱을 넘나드는 절박한 순간에 죽음의 그림자를 보면서 무슨 위로를 얻는가?

 

돌을 던지는 자를 바라보면서 원망의 눈을 뜬 것이 아니라 하늘을 우러러보면서 하늘이 열리는 광경을 보던 스데반같이, 고통을 주는 자를 볼 것이 아니다. 잃은 건강을 볼 것이 아니다. 하나님의 놀라운 모습들을 보면서 기도하는 사람이 되자.

 

3. 예수님의 이 기도는 응답 받았다

 

“아버지여 저들을 사하여 주옵소서 자기들이 하는 것을 알지 못함이니이다”라는 예수님의 기도는 온 인류가 죄를 자복하고 회개할 때 이루어지는 기도의 응답이다.

 

베드로의 설교를 듣고 3천 명이 회개하는 일이 있었다. 예수 그리스도를 구주로 믿고 구원 받는 역사는 지금도 계속되고 있다.

 

예수님이 십자가 위에서 이 기도를 드린 것은 복음을 듣고 거듭날 때를 위하여 하신 것이다.

 

예수 닮기 원합니다.

진심으로 진심으로

예수 닮기 원합니다.

진심으로 진심으로

예수 닮기 원합니다.

진심으로.

-Traditional Spiritual의 가사.

 

예수님을 닮아 예수님의 말씀 따라 행하고 사는 자가 되어야 하겠다.

예수 그리스도가 십자가에서 죽임 당하신 일은 하나님께서 인류를 사랑하신다는 보증으로 보여주신 것이다. 그러기에 그 길을 막으려는 순간적인 베드로의 사상과 말을 단 한마디도 인정하지 않으신 예수님이시다. 즉시 “사탄아, 내 뒤로 물러가라”고 하신 것이다. 그리고 “나를 따라오려거든 자기를 부인하고 자기 십자가를 지고 나를 좇을 것이니라”라고 말씀하셨다(참조글⑤).

십자가(참조글⑥)

⑥ 십자가(Cross) - 고대 페르시아나 애굽, 앗수르에서 죄수를 고문하고 사형에 처하기 위해 나무로 만든 형틀을 말한다. 페르시아 사람들에 의해 로마에 전해졌고, 노예나 죄수를 사형에 처할 때 흔히 사용되었다. 십자가의 모양은 두 개의 막대기를 교차시킨 X자형, T자형과 두 개의 막대기 중 긴 세로의 막대기가 짧은 가로 나무 막대 위로 튀어나온 십자 모양의 형태가 있다. 예수님은 세번째 모양의 십자가 형틀에 매달리셨다. 그 튀어나온 부분에는 죄목이나 죄수의 이름이 기록되었다( 27:37).

십자가 형벌은 죄수의 양팔을 사람의 키보다 약간 큰 나무에 못 박아 고정시켜 매달리게 하였다. 이렇게 되면 피가 몸의 밑으로 몰리고 혈액 순환이 제대로 되지 않아 호흡이 빨라지고 심한 고통을 겪게 된다.

죄수의 죽음을 앞당기기 위해 십자가에 매달기 전에 심한 채찍질도 하였다. 말로 표현할 수 없는 고통으로 며칠을 보내며 죄수들은 서서히 십자가에서 죽어갔다.

한편 십자가의 처형 방법은 너무 가혹하고 치욕적이어서 로마 사람들에게는 행하지 않았다.

유대인들도 나무에 매달린 자는 저주를 받은 자라고 생각하였다( 21:22-23). 그러나 예수 그리스도는 인류 죄를 대속하기 위하여 대신 저주를 받으셨으며, 십자가의 극한 고통과 수치를 참으셨다( 27:32-44; 23:26-43; 19:17-24). 그래서 십자가는 그리스도의 대속과 구속을 상징하는 용어로 사용되었다(고전 1:17; 6:12; 2:16; 1:20, 2:15).

예수님은 그리스도의 십자가를 믿는 자들에게 자기를 부인하고 자기 십자가를 지고 주님을 따라오라고 명령하셨다( 9:23). 이것은 그리스도의 고난에 참여하는 것을 말씀하신 것이다.

-《비전성경사전》에서.

 

의 사랑은 하나님이 우리를 향한 사랑의 극치이다. 따라서 하나님과 나와의 수직관계를 잘 이루어야 할 것이다.

 

십자가의 사랑은 서로가 서로를 사랑하는 것이다. ‘내가 너희를 사랑한 것같이 너희도 서로 사랑하라’고 하셨다.

 

서로 사랑하는 것은 십자가를 통해 이루어진다. 예수님은 하나님과 나와의 관계 개선을 위한 중매자이다. 이는 수직관계를 이룬다.

그리고 십자가에는 수평관계가 있다. 그것은 이웃과 이웃을 잇는 것이다. 역시 예수 그리스도가 중매자가 되어야 할 것이다.

예수 그리스도는 하나님과 나 사이에 그리고 이웃과 이웃을 잇는 중매자이시다.

십자가는 죽음을 향한 최후의 신앙이다. 그리고 이것은 사형틀이다. 죽음을 각오한 예수님을 따르는 믿음의 행위를 말한다. 십자가는 희생이다. 예수님께서 인류를 위한 대속물로 십자가 위에서 제물이 되셨다.

이같이 우리도 인류를 위하여 희생하고 봉사하는 자가 되어야 한다. 기독교의 상징은 십자가이다. 그리스도의 향기를 풍겨, 표면적 기독인이 될 것이 아니라 내적인 영적 삶을 살아야 한다.

 

일본 전투기 조종사 후치다 미츠오는 하와이 진주만에 정박하고 있는 미 태평양 함대를 습격하기 위하여 1941 12 7일에 항공모함 아카기 호를 이륙시켰다.

그는 몇 년 후 이런 이야기를 들었다. ‘전쟁 중에 부모님이 일본군에 의하여 학살당한 젊은 그리스도인 여성이 일본군 포로들에게 복음을 전하겠다는 결심을 하였다’는 것이다.

이 이야기에 감명을 받고 그는 성경을 읽기 시작하였다.

그는 누가복음 23 34절의 “아버지여 저들을 사하여 주옵소서 자기들이 하는 것을 알지 못함이니이다”라는 예수님의 간구를 읽게 되었다.

어떻게 자기를 해치고 죽이는 자를 위하여 저런 말을 할 수 있는가? 결국 그는 마음문을 열고 예수 그리스도를 구주로 믿게 되었다.

 

“아버지여 저들을 사하여 주옵소서”라는 예수님의 기도는 나의 죄를 회개하고 자복할 때 이루어지는 것이다.

  

누가 예수님을 십자가에 못 박았는가?

유대인들의 거짓 증언의 함성이?

성경 학자들의 잘못된 해석으로?

바리새인들의 시기와 질투로?

로마 군인들이?

빌라도의 오판으로?

 

나 같은 죄인을 구원하여 살려 주시려고 예수님이 성경 말씀대로 죽어 주신 것이다.

 

“하나님이 세상을 이처럼 사랑하사 독생자를 주셨으니 이는 그를 믿는 자마다 멸망하지 않고 영생을 얻게 하려 하심이라”( 3:16).

 

예수님께서는 십자가에서 죽으시기까지 죄인 된 나를 사랑하셨다. 내가 지금 회개하고 자복하여 용서받기 위하여 용서의 기도를 드린 것이 응답된 것이다.

 

하나님께서는 회개한 나의 죄를 기억하지도 않으신다.

 

“나 곧 나는 나를 위하여 네 허물을 도말하는 자니 네 죄를 기억하지 아니하리라”( 43:25).

 

“작은 자로부터 큰 자까지 다 나를 알기 때문이라 내가 그들의 악행을 사하고 다시는 그 죄를 기억하지 아니하리라 여호와의 말씀이니라”( 31:34).

 

“그러나 악인이 만일 그 행한 모든 죄에서 돌이켜 떠나 내 모든 율례를 지키고 정의와 공의를 행하면 반드시 살고 죽지 아니할 것이라 그 범죄한 것이 하나도 기억함이 되지 아니하리니 그가 행한 공의로 살리라”( 18:21-22).

 

아버지의 품을 떠난 아들은

아버지에게로 돌아와 고백했다.

“아버지여

내가 하늘과 아버지께

죄를 얻었나이다.

지금부터는 아버지의 아들이라고

부르심을 감당치 못하겠나이다.

 

여기 한 아들은

아버지의 품을 떠나왔다.

그리고 죽음의 현장에서 아버지를 찾는다.

“아버지여 저희 죄를 사하여 주옵소서.

 

“온 세상 죄를 지고 가는 하나님의 어린양을 보라.

 

그를 향한 증오의 소리 하던 자.

그를 향한 채찍을 내리치던 자.

그를 향해 거짓 증언하던 자.

그를 사형 판결하던 자.

그에게 못을 박던 자.

 

그는 범죄자가 아니었는데

그 아들이 나의 죄를 용서해 달라고

아버지께 부르짖고 외친다.

내가 용서받아야 하겠기에

그가 외치고 부르짖었다.

“아버지여 저들의 죄를 사하여 주옵소서.

 

“…나는 스스로 온 것이 아니오 아버지께서 나를 보내신 것이니라.”(8:42)

Salom

그가 찔림은 우리의 허물을 인함이요 그가 상함은 우리의 죄악을 인함이라 그가 징계를 받음으로 우리가 평화를 누리고 그가 채찍에 맞음으로 우리가 나음을 입었도다

(이사야 53:5)

살아 역사하시는 주 하나님 아버지는 자신의 뜻을 이루시기 위하여 역사하시는 가운데 그분이 사용하시고 귀한 역사를 이루는 그 일에 등반 되는 인물이 되시기를 소원합니다.

 

감사합니다.

 


 

 

 


이 블로그의 인기글

십자가상의 7 언.♥아버지여 저들을 용서 하소서 2.♥왜 십자가를 택하셨나.♥그의 십자가는 누구 때문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