vistamexico
마중물(vistamexico)
California 블로거

Blog Open 11.07.2008

전체     702826
오늘방문     35
오늘댓글     0
오늘 스크랩     0
친구     5558 명
  최근 방문 블로거 더보기
  달력
 
십자가상의 7 언.♥아버지여 저들을 용서 하소서 1.♥왜 십자가를 택하셨나.♥그의 십자가는 누구 때문인가
01/13/2020 10:13
조회  198   |  추천   2   |  스크랩   0
IP 108.xx.xx.66

십자가상의 7 .아버지여 저들을 용서 하소서 1.왜 십자가를 택하셨나.그의 십자가는 누구 때문인가.십자가의 사형.M.T.M.구경평.Rev Dr Th D

 

1

아버지여, 저들을 사하여 주소서

 

그들이 예수를 끌고 갈 때에 시몬이라는 구레네 사람이 시골에서 오는 것을 붙들어 그에게 십자가를 지워 예수를 따르게 하더라 또 백성과 및 그를 위하여 가슴을 치며 슬피 우는 여자의 큰 무리가 따라오는지라 예수께서 돌이켜 그들을 향하여 이르시되 예루살렘의 딸들아 나를 위하여 울지 말고 너희와 너희 자녀를 위하여 울라 보라 날이 이르면 사람이 말하기를 잉태하지 못하는 이와 해산하지 못한 배와 먹이지 못한 젖이 복이 있습니다 하리라 그 때에 사람이 산들을 대하여 우리 위에 무너지라 하며 작은 산들을 대하여 우리를 덮으라 하리라 푸른 나무에도 이같이 하거든 마른 나무에는 어떻게 되리요 하시니라 또 다른 두 행악자도 사형을 받게 되어 예수와 함께 끌려 가니라 해골이라 하는 곳에 이르러 거기서 예수를 십자가에 못 박고 두 행악자도 그렇게 하니 하나는 우편에, 하나는 좌편에 있더라 이에 예수께서 이르시되 아버지 저들을 사하여 주옵소서 자기들이 하는 것을 알지 못함이니입니다. 하시더라 그들이 그의 옷을 나눠 제비 뽑을새 백성은 서서 구경하는데 관리들은 비웃어 이르되 저가 남을 구원하였으니 만일 하나님이 택하신 자 그리스도이면 자신도 구원할지어다 하고 군인들도 희롱하면서 나아와 신 포도주를 주며 이르되 네가 만일 유대인의 왕이면 네가 너를 구원하라 하더라 그의 위에 이는 유대인의 왕이라 쓴 패가 있더라 (23:26~38)

 

예수님께서 십자가 처형을 받은 곳이 ‘갈보리’ 산이라고 우리는 알고 습니다. 갈보리는 ‘골고다’라고 하는 곳입니다.

왜 예수님은 피할 수도 있었는데 죽음을 택하셨는가 하고 우리는 의문을 던질 수 있습니다.

갈보리는 저주의 장소처럼 보이는 곳입니다. 그러나 실상은 축복의 장소이었습니다.

 

갈보리는 인간이 보기에 가장 비천한 곳이었습니다. 그러나 그곳은 귀한 영광의 장소이었습니다. 바로 이곳이 가장 으뜸이신 하나님을 보는 곳이었기 때문입니다.

 

갈보리는 하나님의 어린 양이 죽임을 당한 곳이며, 생명을 바치신 곳이었습니다.

갈보리는 당신과 나를 위하여 가장 으뜸이신 하나님의 아들이 생명을 잃고 죽음으로 인하여 새 삶을 얻게 된 곳입니다.

 

갈보리는 하나님의 사랑이 실천된 곳입니다. 그 사랑의 극치를 보여주신 곳입니다.

이 갈보리의 십자가가 있었기에 부활이 있었던 것입니다.

 

이 갈보리를 생각하면서 예수님이 이곳 십자가 위에서 말씀하신 일곱 마디 중에 그 첫 말씀을 듣고자 합니다.

 

갈보리 산 위에 십자가 섰으니

주가 고난을 당한 표라

험한 십자가를 내가 사랑함은

주가 보혈을 흘림이라

최후 승리를 얻기까지

주의 십자가 사랑하리

빛난 면류관 받기까지

험한 십자가 붙들겠네

-찬송가 150 1

 

골고다(Golgotha, 참조글①), 예수님께서 십자가에 못박히신 곳입니다

골고다라는 말은 아람어 또는 히브리어의 ‘길갈타’(gilgalta) 또는 ‘굴골트’(gulgolte)를 헬라어로 음역한 것입니다. 두개골’ 혹은 ‘해골’이라는 뜻을 지니고 있습니다. ( 27:33). 이런 이름을 갖게 된 이유는, 이곳에 시체를 버려 해골이 많이 있었기 때문이기도 하고, 해골 모양의 언덕이기 때문이기도 합니다.

흔히 사용되는 ‘갈보리’(Calvary)는 해골을 의미하는 라틴어 ‘칼바’(Calva)에서 파생된 것입니다.

이곳의 위치에 대해서는 알려져 있지 않으나 요한복음에는 성에서 가깝다고 하였다( 19:20). 오늘날의 성묘교회(Church of the Holy Sepulchre)에서 가까운 곳으로 추정됩니다.

 

예수님께서 십자가를 택하신 이유는 무엇인가?

갈보리의 십자가가 있었기에, 영광과 부활이 있기에 그분은 스스로 택하신 것입니다. 십자가의 고난이 없이는 부활의 영광이 없기 때문입니다.

 

“이를 내게서 빼앗는 자가 있는 것이 아니라 내가 스스로 버리노라 나는 버릴 권세도 있고 다시 얻을 권세도 있으니 이 계명은 내 아버지에게서 받았노라 하시니라”( 10:18).

 

많은 사람들은 고통보다는 평안을 원하고 있습니다. 슬픈 일보다는 기쁜 일을 원하고 있습니다. 잃는 것보다는 얻는 것을 원합니다. 주는 것보다는 받는 것을 원합니다. 이것이 인간의 심리입니다.

“아이고 죽겠다”고 말하는 자도 죽음을 바라보지 않고 더 살고 싶은 것이 사실입니다.

어느 날 할머니가 손자가 있는데서 “아이고, 죽겠다”라고 말을 하니까 손자가 “할머니, 죽고 싶으세요?”라고 물었습니다. 그때 할머니는 “그래, 몸도 아프고 다리도 쑤시고, 아이고 죽겠다”라고 하였습니다. 그 말을 듣던 손자가 잠시 밖에 나갔다 돌아왔습니다.

“할머니, 이것 마시면 죽게 될 거예요.

“그게 뭔데?

“쥐약입니다.

“야 이놈아, 그래 할머니더러 그 쥐약 먹고 죽으라고.

“할머니, 죽고 싶다고 하셨잖아요?

“야, 이놈아 못된 놈.

 

할머니가 정말 죽고 싶어서 그런 것이 아니라는 사실을 우리는 잘 알고 있습니다. 삶에 대한 강한 애착이 그렇게 부정적인 말로 표현된 것입니다. 그리고 누구든지 죽음은 싫어합니다. 삶을 힘들어하면서도 죽음을 택하는 일은 원하지 않는 것입니다. 물론 삶을 포기하고 자살하는 이들도 있지만 말입니다.

자살하는 자가 죽을 힘을 다해 산다면 잘 살아갈 에너지가 생길 것입니다. 독하게 마음먹고 삶을 영위한다면 활기찬 삶의 소유자가 될 것입니다.

 

예수님도 완전한 육신을 가지신 하나님으로서 육체의 고통과 아픔도 알고, 힘들어하는 사람들의 모든 것을 아시는 분입니다. 그분은 내가 고통스러워하는 모든 것을 외면하고 하나님의 아들로서만 구속 사역을 감당하신 분이 아닙니다. 내가 힘들어하고 괴로워하는 모든 것을 경험하고 느끼고 아시는 분입니다.

“말씀(참조글②) ② 말씀-“태초에 말씀이 계시니라 이 말씀이 하나님과 함께 계셨으니 이 말씀이 곧 하나님이시니라”( 1:1). 로고스는 하나님이시며( 1:1), 생명이시며, 그의 생명은 사람들의 빛이시며 만물의 창조자 입니다.

-《성서원어대사전》 p.135.

이 육신(참조글③) ③ 육신-구체적인 물질로서의 사람의 몸을 말한다. 히브리어는 주로 ‘쉐에르’(sher)와 ‘바샤르’(basar), 헬라어는 ‘사르크스’(sarx)가 육체를 지칭하는 데 사용되었다. 개역성경에서는 ‘몸’( 2:24), ‘혈육’( 6:12; 17:5), ‘살’( 2:21), ‘골육지친’( 18:12), ‘조상’( 4:11) 등으로 번역되었습니다.

이 되어 우리 가운데 거하시매 우리가 그의 영광을 보니 아버지의 독생자의 영광이요 은혜와 진리가 충만하더라”( 1:14).

하나님의 독생자 예수는 완전한 육신을 입으셨기 때문에 우리의 고통과 사정을 정확히 알고 계십니다. 그러므로 예수님은 죽음에 대해서도 우리와 똑같은 느낌과 감정을 가지셨습니다. 하나님이시기에 이런 것을 초월하시는 것이 아닙니다. 육신을 입고 탄생하신 것은 인간의 모든 것을 그대로 느끼고 경험하기 위해서였습니다.

 

십자가의 처형, 곧 멸시와 천대를 받으며 죽어야 하는 사실을 모르시는 분이 아닙니다. 그렇다고 이 부분을 초월하시는 것도 아닙니다. 그러한 극한 고통이 있을 것을 아셨기에 예수님은 아버지께 기도하셨습니다.

 

“아빠 아버지여 아버지께서는 모든 것이 가능하오니 이 잔을 내게서 옮기시옵소서……”( 14:36).

 

아버지께서 십자가의 고통과 수모를 면하게 하실 수 있습니다.는 점을 잘 알고 계셨습니다. 그리고 그 고통이 어떠할지도 잘 아셨던 것입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스스로 죽음을 택하신 것은 무엇 때문인가?

 

육신의 생각은 고통과 괴로움을 외면하고 평안을 선택하기 원하지만 예수님은 육신의 생각을 버리고 다시 말씀하셨습니다.

 

“그러나 나의 원대로 마시옵고 아버지의 원대로 하옵소서”( 14:36).

 

예수님은 이 끔찍한 십자가에서 벗어나고 싶어하셨지만 육신의 생각을 벗어 던지고 아버지가 원하시는 바를 택하셨던 것입니다.

예수님께서 제자들에게, 예루살렘에 올라가 장로들과 대제사장들과 서기관들에게 많은 고난을 받고 죽임을 당하게 될 것을 말씀하실 때 베드로는 강력하게 만류하였습니다.

 

“베드로가 예수를 붙들고 항변하여 이르되 주여 그리 마옵소서 이 일이 결코 주께 미치지 아니하리입니다.( 16:22).

 

이때 예수님은 사랑하던 제자 베드로에게 사탄이라고 하시면서 “사탄아 내 뒤로 물러가라 너는 나를 넘어지게 하는 자로다”( 16:23)라고 말씀하셨습니다.

예수님은 고난을 받고 죽게 될 이 엄청난 사건에서 사람의 뜻을 생각하지 않으셨습니다. 육신을 가지신 예수님은 육신의 생각, 육신이 원하는 것들을 모두 버리고 하나님의 뜻을 생각하신 것입니다.

 

“네가 하나님의 일을 생각하지 아니하고 도리어 사람의 일을 생각하는도다”( 16:23).

 

예수님께서 스스로 이 죽음을 선택하신 것은 하나님의 사랑을 실천하기 위해서이었습니다.

 

“하나님이 세상을 이처럼 사랑하사 독생자를 주셨으니 이는 그를 믿는 자마다 멸망하지 않고 영생을 얻게 하려 하심이라”( 3:16).

 

하나님께서 인간을 사랑하시기를 독생자를 보내 주신 것으로 만족하지 않으시고, 예수를 믿는 자가 멸망하지 않게 하시려고 죽을 수밖에 없는 자를 대신하여 스스로 죽음을 택하신 것입니다.

그 예수님께서 우리에게 새 계명을 주셨습니다.

 

“새 계명을 너희에게 주노니 서로 사랑하라 내가 너희를 사랑한 것같이 너희도 서로 사랑하라”( 13:34).

 

내가 죽어야 할 자리에서 대신 죽어 구원 얻게 하시려고 스스로 죽음을 택하신 예수님께서 이렇게 사랑을 우리에게 보여주셨습니다. 이제 주를 위한 사랑에 내 생명을 다하여야 할 것입니다.

 

“내가 내 목숨을 버리는 것은 그것을 내가 다시 얻기 위함이니 이로 말미암아 아버지께서 나를 사랑하시느니라”( 10:17).

 

예수 그리스도의 고난과 죽음, 십자가 처형으로 끝난 것이 아닙니다. 십자가를 통하여 부활의 승리와 영광이 있는 것입니다.

 

예수 그리스도가 찔림을 받음은

나의 허물 때문이었습니다.

그가 상함을 입은 것은

나의 죄악 때문이었습니다.

 

그가 징계를 받은 것 때문에

나는 평화를 누리게 되었습니다.

그가 채찍에 맞음으로

내가 나음을 입었도다.

나는 양 같아서

잘못 행하여 갔지만

여호와께서 나의 죄악을

그에게 담당시키셨다.

 

나의 허물과 죄악을 용서하시기 위하여 예수 그리스도는 십자가에서 죽임당하실 것을 스스로 택하신 것입니다.

 

“…나는 스스로 온 것이 아니오 아버지께서 나를 보내신 것이니라.”(8:42)

Salom

그가 찔림은 우리의 허물을 인함이요 그가 상함은 우리의 죄악을 인함이라 그가 징계를 받음으로 우리가 평화를 누리고 그가 채찍에 맞음으로 우리가 나음을 입었도다

(이사야 53:5)

살아 역사하시는 주 하나님 아버지는 자신의 뜻을 이루시기 위하여 역사하시는 가운데 그분이 사용하시고 귀한 역사를 이루는 그 일에 등반 되는 인물이 되시기를 소원합니다.

 

감사합니다.

 

 

 

 


 

 


이 블로그의 인기글

십자가상의 7 언.♥아버지여 저들을 용서 하소서 1.♥왜 십자가를 택하셨나.♥그의 십자가는 누구 때문인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