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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도신경 강의15 ♥빌라도와 예수님의 수난 ♥Mission Track Mexico ♥구경평 ♥Rev.Dr.Th.D
05/15/2018 11:2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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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도신경 강의15 빌라도와 예수님의 수난  151~5인터넷 방송 88 Mission Track Mexico 구경평 Rev.Dr.Th.D

 

영원한 삶이 우리 앞에 있습니다. 그러나 영원한 미래는 다음에 오는 것이고 현실은 그렇지 않다고 말을 하는 자들이 있습니다. 빌라도의 권좌는 영원할 것으로 보지만 그의 권좌는 한정된 기간에 있습니다.

오늘 보는 예수님은 고난과 수난이 시작되는 현실을 직면합니다. 이러한 현실을 앞에 놓고 감당하기에는 무리가 아닌가? 라고 생각하고 후일에 이 일을 하면 좋겠다.라고 생각 할 수 있습니다. 그러나 예수님은 오신 목적이 우리의 영원한 생명을 이루어 주시기 위하여 시작 된 일을 다음에 미루어 놓을 수 없는 일이었습니다.

그러나 그는 우리의 범법들로 인해 부상을 당하고 우리의 불법들로 인해 상하였노라, 그가 징벌을 받음으로 우리가 화평을 누리고 그가 채찍을 맞음으로 우리가 고침을 받았도다.” (53:5)

왜 그는 그렇게 당하셨는가? 그 이유는 우리가 영원한 생명을 얻어야 하기 때문입니다. 이 땅은 잠시 지나가는 나그네의 길과 같은 곳입니다. 영원한 삶에 비교하면 너무나 짧은 한 순간의 삶이 이땅 위에서 살아가는 여러분과 나 입니다.

스테반은 확실한 역사적인 말씀을 직설적으로 외치었습니다. 바울은 신실하였습니다. 침례 요한도 신실하였습니다. 예수님은 진실하고 많은 것을 제공해 주셨습니다. 주기철 목사님은 강직한 일사각오의 신앙으로 살았습니다. 그리고 그 외에 많은 앞서간 순교자들이 있습니다. 모두 한결 같이 고난을 당하고 감옥에 투옥되고 죽임을 당하였습니다.

이분들이 왜 무엇 때문에 그렇게 하였습니까?

지금 여러분과 내가 이 땅위에서 살아온 세월을 10번을 더 산다고 할지라도 이땅에서는 이별이라는 말을 해야 합니다. 그리고 나면 영원한 삶이 우리를 기다리고 있습니다. 그때에는 영원한 지옥의 삶인가? 아니면 영원한 천국의 삶인가? 입니다. 이 둘 가운데 한 곳을 택하여 가는 것입니다.

이때 많은 사람들이 지옥이라고 하면 모두 싫어 합니다. 그러면서 하나님을 섬기고 예수 그리스도를 믿는 일을 외면하고 있습니다.

예수믿고 천국입니다. 지옥이라는 단어가 싫은 이유는 그곳의 삶이 너무나 끔찍하기 때문일 것입니다. 그렇다면 예수 믿고 천국을 향하여 가는 여러분과 내가 되어야 하겠습니다. 예수님은 이 일을 위하여 빌라도의 법정에 서신 것입니다. 영원한 천국이 있기 때문에 예수님께서는 수난을 받기 시작하신 것입니다. 이일은 지금 여러분과 나때문입니다.

그러한 나는 성령님의 도움을 받으면서 살아 가는 가운데 있습니다.

오늘 사도신경 신앙고백 부분은 본디오 빌라도에게 고난을 받으사 십자가에 못박혀 죽으시고입니다.

지금 우리는 사도 신경으로 신앙을 고백하는 시간을 가지겠습니다..

전능하사 천지를 만드신 하나님 아버지를

내가 믿사오며

그 외 아들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를 믿사오니

이는 성령으로 잉태하사 동정녀 마리아에게 나시고

본디오 빌라도에게 고난을 받으사

십자가에 못 박혀 죽으시고

장사한지 사흘 만에 죽은 자 가운데서 다시 살아 나시며

하늘에 오르사 전능하신 하나님 우편에 앉아 계시다가

저리로서 산 자와 죽은 자를 심판하려 오시리라

성령을 믿사오며

거룩한 공회와 성도가 서로 교통하는 것과

죄를 사하여 주시는 것과 몸이 다시 사는 것과

영원히 사는 것을 믿사옵나이다. 아멘

먼저 본문을 읽겠습니다.

아침에 수제사장들이 즉시 장로들과 서기관들과 온 공회와 협의하고 예수님을 결박하여 끌고 가서 빌라도에게 넘겨주니

빌라도가 그분께 묻되, 네가 유대인들의 왕이냐?하매 그분께서 대답하여 그에게 이르시되, 네가 그렇게 말하는도다. 하시니라.

수제사장들이 많은 일로 그분을 고소하나 그분께서 아무 것도 대답하지 아니하시므로

빌라도가 다시 그분께 물어 이르되, 네가 아무 것도 대답하지 아니하느냐? 그들이 너를 대적하려고 얼마나 많은 것을 증언하는지 보라. 하되

예수님께서 여전히 아무 것도 대답하지 아니하시니 이에 빌라도가 이상히 여기더라.” (15:1~5)

예수님은 만왕의 왕으로서 하늘 보좌를 뒤에 두고 세상에 탄생하신 예수님입니다. 곧 장차 그분은 온 세상을 심판하실 심판의 주님으로 오실 분입니다. 그러한 분이 세상 법정에서 심문을 받는 다는 것이 인간적으로 볼 때 가사로운 일입니다. 하지만 그분은 아무른 말씀을 하시지 아니하셨습니다. 자기를 변호하는 말씀을 하시지 아니하셨습니다. 영원한 만왕의 왕으로서 심판하실 분이 영원하지 못한 자 앞에서 심판을 받는 일입니다.

예수님을 비하하는 말을 듣고도 답변하지 아니하셨습니다.

예수님께서 이 모든 것을 참고 견디고 감당 할 수 있었던 것은 영원한 생명이 앞에 있기 때문이었습니다. 이 땅위에서 더 이상 좋은 꼴이 없다는 것을 아셨습니다. 영원한 생명을 보는 자는 어떠한 수몰과 수난이 있어도 감당 할 수 있습니다. 스데반이 하늘이 열린 것을 보고 던지는 돌 팔메질에 맞으면서 얼굴은 환하여졌습니다. 이제 나는 저곳에 간다는 것이 눈앞에 보여졌기 때문입니다.

한번 상상은 해 볼 일입니다. 천국에 입성하였을 때 이루어질 일들을 상상해 보시기를 원합니다.

이렇게 좋은 곳을 두고 무엇 때문에 저곳에서 아등바등하면서 좀더 가지고 더 살겠다고 그 야단을 치고 살았는가?

이렇게 좋은 곳에서 영원한 삶이 주어지는 것을 두고 한 순간 살고 올 것에 한 생을 그렇게 살면서 고민하고 그것이 영원한 것으로 생각하였던가?

예수님은 이것을 우리에게 주시려고 하셨습니다.

 

1.    본디오 빌라도는 어떤자 인가?

빌라도는 장차 예수님이 만주의 주님이시요 심판자로 오신다는  것을 모르고 있던 자 이었습니다.

빌라도는 예수님을 수난케한 대표적인 인물이었습니다.

그리고 어떤 의미에서 볼때 예수님을 수난케한 장본인이 나와 여러분이 아니었던가? 예수님을 십자가에 못박고 죽인 장본인은 나와 여러분입니다.

예수님은 영원한 형벌에 처하여진 나와 여러분을 위하여 구속하시기 위하여 이땅에 오셨습니다. 지금 그 일을 위하여 받으시는 수난입니다. 그분은 영원한 생명의 은인입니다.

하나의 질문을 하겠습니다.

우주에 인간은 나 한 사람이라고 한다면 그러한 나를 위하여 예수님은 십자가를 지실 수 있겠는가? 대답은 입니다. 그분은 온 세상죄를 지고 가는 하나님의 어린 양이었습니다. 왜 그렇게 하셨을까? 그답은 인류를 사랑하셨기 때문입니다.

여기 빌라도는 온 세상 죄인 전체의 하수인입니다.

1)    빌라도란 이름은 라틴어로서 Pillers 입니다. 이 말은  두건 (머리수건)입니다. 연극, 제사, 노예 해방 때에 사용한 것입니다.

2)    빌라도는 AD26~62년까지 36년동안 유대를 통치한 제5대 로마 감독이었습니다.

3)    빌라도는 유대 역사에 의하여 보면 완고하고 가혹하고 부패하고 잔인아면서 포악한 총독으로 민중을 괴롭히는 자이었습니다.  유대 역사가는 말을 합니다. 유월절에 유대인을 3천명 ~2만명까지 학살하였던 인물이 빌라도라고 합니다.

4)    빌라도는 예수님이 무죄함을 확인까지 하였습니다. 그리고 무죄한 자라고 선언도 하였습니다. 그리고 자기 부인으로 부터 충고를 받았습니다. 그러나 올바른 소리에 귀를 귀우리지 아니하고 유대 군중들의 시위 소리에 두려워하고 그 소리를 들었습니다. 

빌라도가 저들에게 이르되, 너희가 그를 데려다가 십자가에 못 박으라. 나는 그에게서 아무 잘못도 찾지 못하였노라,” (19:6)

5)    카이사르 황제에게 아첨하여 예수님을 십자가에 죽이게 하였습니다. ? “이때부터 빌라도가 그분을 놓아주려 하였으나 유대인들이 소리를 지르며 이르되, 당신이 만일 이 사람을 놓아주면 카이사르의 친구가 아니니이다. 누구든지 자기를 왕으로 만드는 자는 카이사르를 대적하여 말하나이다.” (19:12)

6)    빌라도는 오늘 수천대를 내려 오면서 성도들의 입에서 외치는 말이 본디오 빌라도에게 고난을 받았다고 고백하고 외치고 있습니다. 그가 예수님을 십자가에 못 박았다고 말을 하고 있습니다. 천추에 씻지 못할 오점을 남긴 인물입니다. 오늘 여러분과 나의 삶이 끝나고 난 뒤에 이런 오점을 남기는 인물의 역사 주인공이 되지 않기를 원합니다.

? 아마 빌라도는 지금도 성도들이 신앙고백하는 순간 엄청나게 두려워하고 후회할 것으로 보입니다.

성도들이 신앙고백하는 순간 그는 그 한 순간의 결정을 후회할 것이 분명합니다.

2.    예수님의 수난을 어떤 것인가?

1)    예수님의 탄생이 수난이었습니다.

절대자가 상대자가 되신 것부터 수난의 시작이었습니다. 의로우신 하나님이 죄인이 지닌 인간의 몸으로 입으셨다는 것이 수난이었습니다.

예수님께서 탄생하시던 시기는 유대국은 로마식민 이었습니다. 한 시골 촌에서 출생하였습니다. 주택은 여인숙이지만 출생한 장소는 동물의 구유이었습니다. 탄생과 함께 무서운 피비린내 나는 살육과 울음이 뒤 범벅이 되었습니다. 이유는 헤롯이 2세 이하 모든 어린 아이를 죽이라는 어명이 내려졌기 때문입니다. 그 일로 인하여 망명길을 택하여 애굽으로 갔습니다. 예수님은 탄생 부터 순교의 길을 걸어야 하는 수난이었습니다.

2)    예수님의 생애가 수난이었습니다.

대 헤롯의 어명이 2세까지 베들레헴에 살고 있는 어린 아이가 죄명도 없이 사형에 처하여 졌습니다.

아기 예수님은 애굽으로 피난이 아닌 망명길로 가셨습니다.

그들이 떠난 뒤에 보라. 주의 천사가 꿈에 요셉에게 나타나 이르되, 헤롯이 어린아이를 찾아 그를 죽이려 하니 일어나 어린아이와 그의 어머니를 데리고 이집트로 피하여 내가 네게 말을 전해 줄 때까지 너는 거기 있으라.하매”(2:13) 기록은 마태복음 2:13~23을 참고하시기를 원합니다.

어린 나이에 양부의 요셉을 잃고 아버지의 목수업을 전수 받아 어머니와 남동생과 누이와 함께 생계를 이어 갔습니다.

출생에서 유년기와 성장하여 공생에 이르기 전 까지는 그 삶이 수난의 연속이었습니다.

3)    예수님의 공생애가 수난이었습니다.

예수님은 공생애가 30세쯤에서 3년동안의 삶이 수난 이었습니다.

(1)  40 40야의 특별 금식기도는 사생 결단의 기도 이었습니다. 마귀의 시험이 하나님의 능력이 아니었다면 인간으로서는 감당 할 수 없는 시험이었습니다. 시험하는 자에게 역시 하나님의 말씀으로 그 모든 시험을 승리로 이끌게 된 것입니다. 기록은 마태복음 41절에서 11절을 참고하시기를 원합니다.

(2)  멸시와 천대와 배반과 모독함을 받았습니다. ? 때로는 유대인의 군중으로부터 열광적인 지지와 환호를 받기도 하였습니다. 임금 삼으려는 일도 있었습니다. 이 모두는 군중이 자기들의 욕망과 그들이 추구하는 목표점을 향한 일이었습니다. 예수님은 그 모든 것을 받아 주시지 아니하였습니다. 결국 유대인들은 자기들의 욕구가 충족 되지 아니할 때 예수님을 부인하게 되고 죽이는 일이 된 것입니다. ? 오늘 우리는 예수 믿는다는 목적이 내 어떤 이익의 추구하는 일에 목표점이 되면 한 순간 예수님을 버리는 일이 될 것입니다. 대표로 가룟 유다를 봅니다.

(3)  십자가의 죽음이 공생애로서 마지막 수난이었습니다. ? 이 십자가는 로마 정부에서 파렴치한 흉악법이나 국가 반역범에게 집행하는 사형도구 이었습니다. 보기에 가장 극형에 처한 사형입니다. 예수님은 그 극형에 처함을 입었습니다.

누구 때문에 입은 것입니까? 그답은 나 때문입니다. 내가 구원을 받아 영생을 얻게 위하여 그분이 받으신 것입니다. 그분이 이 질고를 지심으로 나는 나음을 입었습니다.

그가 죽임을 당하심으로 나는 영생을 얻게 된 것입니다.

예수님께서 공생애에서 엄청난 고난은 하나님 아버지께 기쁨을 드리기 위한 것이었습니다.

네 마음을 다하고 목숨을 다하고 뜻을 다하여 주 너의 하나님을 사랑하라 하셨으니 이것이 크고 첫째되는 계명이오라고 예수님께서 말씀하신 것 같이 자신이 하나님 아버지께서 파송하신 사명을 다 완수하시기 위하여 아버지의 뜻을 이루셨습니다. 자신이 말씀하신 그대로 자신이 그렇게 살았습니다.

예수님께서 말씀만 하신 것이 아니고 그 말씀대로 삶을 보여 주셨습니다. 아버지를 기쁘게하신 예수님이었습니다.

우리는 삶의 본을 보여 주신 예수님을 믿는 우리는 그의 삶을 본 받아야 하겠습니다.

지금 불의 전차라는 영화(Chariots of Fire)에서 나오는 올림픽 선수이었던 에릭 리들이라는 자가 말을 하였습니다.

하나님이 나를 만드신 목적은 나를 빠르게 달릴 수 있는 사람으로 만드셨습니다. 그러한 내가 뛰는 것을 포기하면 하나님을 모욕하는 것이 될 것입니다.” 라고 말을 하였습니다.

하나님은 우리 각인에게 허락한 재능이 있습니다. 이것을 하나님께서 가장 기뻐하실 수 있도록 최선을 다하여야 할 것입니다.

음악을 들을 수 있는 귀는 하나님의 음성을 들어야 합니다. 아름다움을 볼 수 있는 눈으로 하나님의 영광을 볼수 있어야 합니다. 나의 모든 행위는 하나님께 감사와 찬양을 드리는 삶이 되어야 합니다.

지금 여러분은 무엇으로 하나님을 기뻐게 할 것입니까?

내가 곧 생명의 빵이니 내게 오는 자는 결코 주리지 아니할 것이요 나를 믿는 자는 결코 목마르지 아니하리라.” (6:35)

Shalom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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