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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도 만난 인생이세요? (누가복음 10장 25절 ~37절)
09/24/2016 21:1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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당신은 무엇을 하여야 구원을 받을 수 있다고 생각하시나요?  “내가 무엇을 하여야 영생을 얻으리이까?” 물었던 율법학자는 율법에 하나님을 사랑하고 이웃을 네 몸처럼 사랑하라고 기록되었다고 스스로 답을 합니다. 그리고 누가 나의 이웃입니까? 묻습니다. 예수님은 비유로 예루살렘에서 여리고로 가다가 강도 만난 사람의 이야기를 들려주십니다. 하나님께서 때를 마쳐 보낸 제사장과 레위인은 피하여 도망갔습니다. 그러나 사마리아 사람만이 그 강도만난 자를 도와주었습니다. 예수님께서 이 비유를 말씀하신 후 누가 강도만난 자의 이웃이 되겠느냐?” 물으시고 너도 가서 이와 같이 행하라말씀하셨습니다. 오늘은 같은 본문으로 강도 만난 인생을 향한 하나님의 마음을 살펴보기를 원합니다.

예수님께서는 내 이웃이 누구냐는 질문에 예루살렘에서 여리고로 내려가다가 한 사람이 강도를 만나 옷을 빼앗기고 맞아서 거의 죽게된 사람의 이야기를 들려주셨습니다. 인생을 살면서 강도 만난 경험을 한번이라도 겪지 않은 사람은 없을 것입니다. 사기 당하기도 하고, 버림받기도 하고, 누명을 쓰기도 하고, 억울한 일을 겪기도 했습니다. 열심히 최선을 다해 살았음에도 불구하고 사업에 실패를 하기도 하고 빼앗기기도 했을 것입니다. 인생에 불행이라는 강도를 만나 모든 건강, 재산, 명예, 사랑하는 이, 살아갈 소망마저 빼앗겼던 경험도 있으실 것입니다.

지쳐 쓰러져 있을 때, 벼랑 끝에선 심정일 때, 사방팔방이 막혔다고 느껴졌을 때, 죽음의 그림자가 손짓 할 때, 외로워 눈물 흘릴 그때에 가장 절박하게 필요했던 것은 무엇이었나요? 나의 억울한 사연을 들어주는 사람, 상심해 희망을 놓친 손을 잡고 기도해 줄 사람, 외롭게 죽어가지 않도록 죽음의 자리를 지켜봐 주는 그 한 사람이 절실히 필요하지 않았던가요?

강도 만난 사람은 거반 죽게 되어 살 소망이 없을 때, 마침 제사장이 나타납니다. 살라달려 외칠 힘은 없지만 그가 와서 자신을 살펴주고 죽기 전에 자신의 영혼을 위해 하나님께 기도해 주기를 바랬을 것입니다. 그런데 그렇게 존경했고 종교의식대로 산다고 믿었고, 하나님의 말씀을 전한다는 제사장이 모른체 하고 피해갑니다. 그때 그가 느꼈던 심정은 얼마나 절망이었을까요? 그런데 희망의 불꽃이 꺼져가려는 순간 또 한 사람의 발자국 소리가 들립니다. 예배의식을 돕는 레위인이었습니다. 그 사람도 신앙심이 깊으니 자신을 외면하지 않고 도와줄 것이라는 한 가닥의 희망이 다시 피어나려는 순간 그도 피하여 가버립니다. 이젠 완전히 절망입니다.

완전 포기한 그때에 평소 적대시하고 무시했던 사마리아인이 오는 모습이 보입니다. 제사장과 레위인 조차 자신을 피해 도망갔는데 그가 나를 도울리 없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도와달라는 말할 염치도 없습니다. 그런데 어찌된 일일까요? 그가 자신에게 다가와 상태를 살피고 가진 기름과 포도주를 상처에 붓고 옷을 찢어 상처를 싸매어 주었습니다. 얼마나 고맙고 감격스러웠는지 눈물이 날 지경입니다. 그런데도 제대로 고맙다는 인사조차 할 힘이 없습니다. 그 사람은 자신이 탔던 나귀에 힘겹게 땀을 뻘뻘 흘리며 강도만난 사람을 태웁니다. 자꾸 쓰러지려는 그의 몸을 부축해서 한걸음 한걸음 나아갔습니다. 겨우 여관에 도착했습니다. 그도 지쳤을텐데 밤새 돌보아 주었습니다. 그의 정성과 헌신적인 돌봄으로 인해 이제 죽어도 여한이 없지만 그래도 한줄기 살 소망이 빛이 비쳐옵니다. 다음날 사마리아인은 여관주인에게 강도만난 자를 부탁하고 떠납니다. 돈을 맡기고 더 들면 돌아올 때 주겠다고 약속까지 합니다.

이 비유를 말씀하시고 예수님께서는 누가 강도 만난 자의 이웃이 되겠느냐 물으셨습니다. 율법학자는 자비를 베푼자라고 답합니다. “너도 가서 이와같이 행하라!” 고 예수님께서 말씀하셨습니다. 이를 통해 율법학자, 제사장, 레위인은 율법은 알았지만 실천에는 부족했던 것 같습니다제사장과 레위인을 통해 보여주길 원했던 하나님의 긍휼과 사랑을 베푸는데 실패하고 떠나는 그들의 뒷모습을 바라보셔야 했던 하나님은 어떤 마음이셨을까요? 도움을 필요로 하는 사람을 보고도 외면하는 우리의 모습을 보실 때도 동일한 마음을 갖고 계시지 않을까요? 사마리아인의 이웃 사랑의 실천을 지켜 보시는 하나님의 눈에 감격의 눈물이 흐르지 않으셨을까요?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는 하나님 사랑에는 완전하지 못했습니다. 결국 율법만으로도 선행만으로는 구원받을 인생이 없음을 알게 됩니다.

그런데 강도만난 사람에게 사마리아인이 찾아 왔듯이, 강도 만난 인생도 강도로 살아가야 하는 인생을 위해서도 찾아 오신 분이 계십니다. 고통과 절망과 거의 죽게 된 우리를 모른체 외면하지 않으시고 다가와 상처를 치료하고 안전한 곳으로 데려가 돌보와 주기 위해 하나님께서는 예수 그리스도를 보내주셨습니다. 그래서 모든 인생에게는 예수님이 필요하지 않을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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