violeta2525
꿈꾸는여자(violeta2525)
California 블로거

Blog Open 06.09.2009

전체     237369
오늘방문     13
오늘댓글     0
오늘 스크랩     0
친구     10 명
  최근 방문 블로거 더보기
  달력
 
은폐하는 죄악
12/31/2010 21:10
조회  354   |  추천   1   |  스크랩   1
IP 69.xx.xx.211
마음속에 숨은 속사람의 치유
내 마음 밭의 가라지

 주서택 목사 (청주 주님의교회 담임, 내적치유사역연구원장)

 

어느 날 전혀 예상치 않게 직면하게 된 우리의 죄성과 추함은 우리를 혼란과 두려움과 회의에 빠뜨린다. 우리는 내 마음 밭에 아름다운 곡식만 있기 원하고 또 그렇게 믿으며 살다가 어느 날 놀랍게도 가라지가 함께 자라고 있음을 보게 된다. 중요한 것은 내게 가라지가 있느냐 없느냐가 아니라 이 가라지를 어떻게 이해하며 어떻게 처리해야 하는가이다.

 

40대 초반의 B목회자의 고백이다.

 

“나는 여자를 보면 욕정이 올라온다. 하지만 신앙의 힘으로 이것을 참기에 문제를 일으킨 적은 없다. 그런데 내가 목회하는 교인수가 십여 년이 지나는데도 늘지를 않게 되면서 나는 정죄감에 빠지기 시작했다. 처음 목회를 시작했을 때 내가 가진 능력이나 여러 조건들을 보았을 때 5년 정도면 어느 정도사이즈의 목회를 하겠다는 그림이 그려졌고 주변에서도 모두 인정했다. 하지만 백방의 노력을 해도 교인 수가 늘지 않자 결국 나의 문제 때문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특히 나보다 여러 면에서 떨어진다고 생각했던 신학교 동창들이 나보다 더 큰 교회를 하는 것들을 볼 때 이런 생각은 더 굳어졌다. 그래서 사십일 금식기도에 들어갔다. 내가 이런 욕정을 가지고 있기에 하나님이 나의 사역을 축복해주시지 않는다는 생각이 들었기 때문이다. 금식 10일이 지나가니 정말 내 안에 여자에 대한 생각이 완전히 없어진 것을 느꼈다. 이제야 해방이구나 하는 생각에 금식의 고통도 잊을 수 있었다. 무사히 사십일을 끝내고 섭식을 시작한지 일주일이 못되어 나는 절망할 수밖에 없었다. 내 안에 여자에 대한 욕정은 전혀 줄어들지 않고 오히려 더 강하게 내속에서 끓고 있음을 느낀 것이다. 나는 도대체 어떻게 해야 하는가?”

 

사역자 S의 고백이다.

 

“아내와 나는 신학교에서 만나 하나님의 뜻임을 확신하고 결혼했다. 그리고 우리 두 사람은 예정대로 선교지에 나가 열심히 사역을 했다. 그런데 그곳에서 나는 아주 어린 한 자매를 만났다. 그 자매를 만난 순간 지금까지의 모든 것들이 흔들리기 시작했다. 내 이성은 절대로 이러면 안된다고 나를 다그치지만 내 마음은 온통 그 자매뿐이었다. 대학부터 지금까지 오직 하나님 안에서 살아온 내가 이렇게 무너지는 것을 보며 하나님에 대한 나의 믿음도 허구였지 않나 하는 회의가 들었다. 더욱 무서운 것은 나를 말리는 아내에게 도저히 내가 상상할 수 없는 폭행과 잔인한 말들을 서슴지 않고 하고 있다는 사실이다. 이렇게 무서운 면이 나에게 있다는 것이 스스로 놀랄 정도다. 나는 이제 내 자신을 모르겠다. 내가 구원을 받았는지도 의심이 간다. 하나님은 나에게서 너무나 멀리 떠나 버렸다.”

 

이런 고민은 비단 목회자들만 가진 것이 아니다. 하나님에게 가까이 가고자 하는 모든 성도들이 겪는 혼란이다. 전혀 예상하지 못한 자신의 너무도 추한 죄성 그 가라지를 어느 날 직면하게 되는 것이다. 그러면 가라지를 보면서 사람들은 외친다. ‘내가 이럴 리가 없는데.... 나는 이래서 안 되는데....이것은 결코 나일 리가 없어. 악마가 나를 꼬인 거야. 내가 무엇에 홀린 거야.’

 

우리가 많은 죄악 가운데서 예수님을 영접하고 성령을 경험하고 난 후 그 삶을 돌이켜 볼 때 실로 많은 변화가 있었음을 보게 된다.

담배를 피웠던 자가 이제는 담배를 멀리하고 술을 멀리하며 주일이면 산으로 들로 술집으로 돌던 사람이 이제는 교회에 나와 주차관리하며 설교를 듣고 있다. 회사의 물건들을 아무 거리낌 없이 슬쩍 하던 사람이 이제는 종이 한 장도 함부로 쓰지 않는다. 실로 수많은 변화가 일어난 것이다. 인생의 목적이 없이 산 젊은이가 예수님을 만나고 자신을 목회자로 헌신하며 성경을 읽고 신앙훈련을 한다. 세상 사람과 다른 말을 하고 다른 시간을 보낸다.

 

그런데 어느 날 자신 안에서 다른 사람들을 향해 손가락질 했던 그 죄악이 자신 안에 있음을 발견한 것이다. 이제는 이런 죄악과는 상관없을 정도로 변화되었다고 은근히 자신했는데 여전히 자신의 한쪽에 건재하고 있는 죄악의 속성을 본 것이다.

 

이럴 때 우리는 어떻게 해야 할까? 우리는 우리보다 먼저 하나님을 믿었던 신앙의 선배들의 진솔한 이야기 속에서 그리고 주님의 말씀 속에서 그 답을 찾아내야 할 것이다.

사도바울은 어떤 자보다도 자신의 경건함에 대해 자신이 있었다. 하지만 그가 성령의 사람이 되어 자신을 예수님의 종으로 온전히 헌신했을 때 즉 더 깊이 하나님에게 나아갔을 때 그는 자신 안에서 엄청난 죄악의 힘을 발견하게 된다. 그 죄악의 힘은 자신의 신앙수행으로도 결코 해결할 수 없는 힘이며 자신이 죽기 전까지는 자신과 함께 공존할 것이라는 것을 그는 알았다. 그래서 그는 이렇게 탄식한다.

 

“나는 내가 원하는 선한 일은 하지 않고, 도리어 원하지 않는 악한 일을 합니다. 내가 해서는 안 되는 것을 하면, 그것을 하는 것은 내가 아니라, 내 속에 자리를 잡고 있는 죄입니다. 여기에서 나는 법칙 하나를 발견하였습니다. 곧 나는 선을 행하려고 하는데, 그러한 나에게 악이 붙어 있다는 것입니다”(롬7:19-21 표준새번역).

 

그는 자신이 자신의 악을 없애고 가라지를 없애는데 완전히 무력한 존재임을 시인하고 있다. 우리 안에 있는 악은 우리가 생각하는 것보다 훨씬 더 깊은 뿌리로 우리를 휘감고 있다. 이 세상의 어떤 지도자도 자신 안에 있는 악을 스스로 없앤 자는 없다. 하지만 놀라운 사실은 사도 바울은 자신의 무력을 절감하는 그 순간 즉, 자신을 의지할 없게 된 그 순간부터 온전히 하나님을 기다릴 수밖에 없게 되었고 자신을 만나시는 하나님의 새로운 변화의 법칙, 생명의 법칙을 이해하게 되었다고 고백한다.

 

하나님을 만나기 위해(자신이 원하는 것들을 타내기 위해서가 아니라) 조용한 골방으로 들어간 자는 하나님을 만나기 전 반드시 자신의 추함을 만난다. 자신에게 가라지가 있다는 사실을 받아들인다는 것은 너무 힘이 든다. 나 자신이 다 무너져 버리는 고통을 느낄 수도 있다. 하지만 이것 또한 나의 실상이라면 이것 또한 하나님에게 감사함으로 보여 드릴 수밖에 없다. 나의 실상을 보는 것을 두려워하고 부인으로 일관할 때 우리는 점점 우리의 참모습을 볼 수 있는 힘을 상실하게 된다.

 

자신을 바로 알지 못한 채 신앙의 행위로 자신의 정체성을 삼을 때 그들은 자신의 내면의 가라지는 보지 못하고 남의 티만 찾아내는 무서운 비판과 고발자가 된다.

우리는 내 안의 가라지를 처리하시기 위해 세우신 주님의 계획을 신뢰해야 한다. 주님은 내게 있는 가라지를 알고 뽑을 계획을 가지고 있다. 그러므로 자신 안에 가라지를 보았다면 야단 들을까 감추려고 급급해하지 말고 사실대로 상황을 보고해야 한다. 하나님께서 하나님의 방법대로 처리해 가실 것이다.

 

우리는 천사가 아니다 온전한 자도 아니다 잉태되는 그 세포 안에 이미 죄악성이 유전되어 있었다. 이런 우리를 부르신 하나님 앞에서 내가 할 일은 순간순간 나를 정직하게 보이고 하나님의 행하신 계획에 나를 맡기는 것이다. 하나님은 나에게 가라지가 있다는 것을 책망하시는 것이 아니라 인정하지 않기 위해 합리화하고 은폐하기 위해 다른 자를 걸고 넘어지는 죄악의 태도를 책망하신다(창3:12, 요일1:3-9). <계속>

 

이 블로그의 인기글

은폐하는 죄악