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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주일 밤낮 회개한 구국기도회…3일 후 기적 같은 인천상륙작전
04/20/2020 18:2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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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주일 밤낮 회개한 구국기도회… 3일 후 기적 같은 인천상륙작전


        
         1950년 8월 말부터 부산 초량교회에서 시작된 통회자복기도회에는 250여명의 목사 장로가 모여 절체절명의 나라를 위해 기도했다. 

 

1950년 6·25전쟁 발발 후 40여일 만에 낙동강 이남인 대구 부산 마산 등 몇몇 지역을 제외한 남한의 전 지역이 북한 공산군에 의해 점령당했다. 대한민국은 낙동강 방어선만 뚫리면 지구상에서 영원히 사라지는 절체절명의 위기에 놓여 있었다.

        

        1950년 9월 구국기도회가 열린 구 경남도청 건물.


이때 한국교회는 하나가 돼 부산 초량교회 중앙교회 항서교회 광복교회, 구 경남도청, 부산 구덕운동장, 해운대 백사장 등 여러 장소에 모여 위기에 처한 나라를 구원해 달라고 하나님께 간절히 기도했다. 
특히 초량교회에는 전국에서 피난 온 250여명의 목회자와 장로들이 모였다. 이들은 한상동 박형룡 박윤선 목사를 중심으로 8월 말에서 9월 중순까지 2주 동안 국난 극복을 위한 구국기도회를 열었다. 설교와 기도로 이뤄진 첫째 주간의 집회 가운데 회개의 은혜가 임하기 시작했다.

회개 기도는 일주일을 밤낮으로 계속 이어졌고 간절한 마음으로 하나님께 부르짖었다고 한다. 특히 “신사참배를 통해 우상숭배의 죄를 범한 것을 회개했으며 성도들과의 간음죄, 양 떼를 버리고 먼저 도망 나온 비겁한 마음들을 회개하오니 부디 나라와 민족을 구원해 주십시오”라고 통곡하며 기도했다.

이 회개기도에 참가했던 초량교회 강월남 집사는 “당시 목사와 장로들의 회개는 참으로 진지했고 그 기도회가 얼마나 간절하고 뜨거웠던지 기도회가 끝날 무렵엔 모두가 기진맥진한 상태였다”고 증언했다.

당시 절박한 심정으로 기도한 어느 목회자는 이렇게 증언했다. “초량교회 마룻바닥에서 놀라운 회개운동이 일어났습니다. 목사님들이 과거 신사참배를 했던 죄부터 개인의 죄, 민족의 죄를 있는 대로 다 털어놓으니 예배당 마룻바닥이 목사님들의 눈물과 콧물로 범벅이 됐습니다. 어느 목사님은 눈물로 범벅돼 깊게 외치는데 인민군을 압록강까지 쫘악 밀고 올라가는 것 같더랍니다. 그렇게 회개하고 기도하고 울부짖은 후 인천상륙작전이 이뤄진 겁니다. 역사적으로 나타난 것은 인천상륙이지만 영적인 발동은 기도하고 찬미하는 초량교회 마룻바닥에서 먼저 시작된 겁니다. 하나님의 백성들이 한자리에 모여 합심하여 기도하고 찬미할 때에 예상하지 못했던 엄청난 기적이 나타났습니다.”

그렇게 초량교회에서 밤낮없는 회개기도가 있은 지 3일 후 인간적으로 볼 때는 성공할 확률이 5000분의 1도 되지 않는다는 인천상륙작전이 성공했다.
인천상륙작전은 전쟁 역사에 길이 빛날 전투로 ‘독 안에 든 쥐’가 된 공산군은 낙동강 전선에서 혼비백산해 퇴각하기 시작했다. 전세는 역전됐고 9월 28일에는 빼앗겼던 서울을 되찾았다.

맥아더 장군은 29일 낮 12시, 수도 서울의 환도식(還都式)에서 이승만 대통령에게 “하나님의 은혜로 인류의 가장 큰 희망의 상징인 유엔 깃발 아래서 싸우는 우리 군대는 한국의 수도를 해방하게 됐습니다”라고 말했다.

장군은 또 이렇게 선언했다. “대한민국 수도 서울을 이승만 대통령 각하가 영도하는 대한민국 정부에 돌려드립니다. 오늘의 승리는 오로지 하나님의 도우심이 없었다면 불가능했을 것입니다. 이제 서울시민들은 공산군의 압제에서 해방돼 자유와 인권을 되찾았습니다.” 이승만 대통령도 맥아더 장군의 손을 잡으며 “대한민국을 되찾게 도와주신 하나님께 감사드린다”며 감격의 눈물을 흘렸다.

박윤선 목사는 훗날 이렇게 고백했다. “9·28 서울 수복이 있기 전 초량교회당에서 열렸던 피난 교역자 부흥회를 나는 잊을 수 없다. 사흘째 되던 날 새벽으로 기억되는데, 그 시간에 참석한 교역자들 거의 대부분이 크게 통회하며 자복하는 회개를 시작했다. 그 뼈아픈 회개는, 각자가 과거 일제의 핍박 시에 신사참배를 한 그 죄로 인한 것이었다. 나도 단 한 번이지만 신사참배를 한 범과가 있으므로 언제나 그 일로 인해 원통함을 금할 수 없었는데, 이때 그 죄를 회중 앞에 고백했던 것이다. 우리 하나님께 감사와 찬송을 드리는 것은, 이처럼 교역자들의 통회 자복의 회개가 있은 후에 유엔군이 승리하고 공산군은 38선 이북으로 물러가게 된 사실이다. 회개의 사건에 뒤이어서 승전한 것은 참으로 우연한 일이 아니라 하나님께서 그의 능력으로 도와주신 결과다.”

6·25전쟁은 단순한 전쟁이 아니라 기도로 승리한 영적 전쟁이었다. 하나님은 6·25전쟁 발발 이후 휴전협정이 맺어진 1953년 7월 27일까지 3년 동안 계속된 전쟁의 와중에서 이 나라를 위해 기도한 교회의 간구에 응답하셔서 마침내 대한민국을 지켜주셨다.

우리는 6·25전쟁의 역사를 통해 대한민국을 공산화하기 위해 기습 남침한 북한 공산군들과 싸우다 전사한 수많은 이들의 희생과 함께, 위기에 처한 나라를 위해 생명을 다해 하나님께 부르짖었던 수많은 성도의 기도가 있었음을 결코 잊어서는 안 된다.

/김재동 목사 kukminusa Apr 16.20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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