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카르도수 前 브라질 대통령...룰라(후임 대통령)도 따라와"
01/07/2012 18: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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IP 68.xx.xx.50

 

중앙 블러그에 전 브라질 대통령 룰라를 칭송하는글이 가끔가다 올라오는데 

이번에 이기사가 가장 정확하게 본것임으로 펌했습니다.

 

***********************

 

 

"재정개혁으로 경제 체질 개선… 政敵 룰라(후임 대통령)도 따라와"

 

카르도수 前 브라질 대통령


헤알貨의 아버지… 재무장관 시절 화폐개혁
네 자릿수이던 물가 상승률, 4년 만에 5% 미만으로
"룰라도 야당 지도자 시절엔 개혁정책 사사건건 반대


정부가 투자할 돈 없으면 국영기업 팔아서라도 마련"
"경제는 정확한 과학이 아니라 암초·파도 헤쳐나가는 항해"

 

 

 

 

 

"룰라브라질을 일으켰다고요? 천만에요. 룰라는 카르도수 덕을 봐서 성공한 겁니다."

 

 



브라질 대통령 하면 보통 룰라 전 대통령을 많이 떠올린다. 그러나 정작 브라질 사람들은 룰라의 전임인 카르도수 전 대통령(1995~2002년 집권)을 더 높이 평가한다. 그들은 브라질 경제를 재건한 사람으로 카르도수를 꼽는 데 주저하지 않았다.

남미 경제 개혁의 상징으로 통하는 페르난두 엔리케 카르도수(Cardoso) 전 브라질 대통령은
상파울루 시청 옆의 평범한 건물 6층에 개인 연구소를 두고 있었다.

 



 

 
페르난두 엔리케 카르도수 전 브라질 대통령은 “브라질 경제를 정상 궤도에 올려놓은 걸 자랑스럽게 생각한다”고 말했다. 브라질 사람들은 세계적으로 유명한 룰라 전 대통령보다는 브라질 경제를 재건한 카르도수 전 대통령을 더 존경한다. /상파울루=김영진 기자
 

그는 81세 나이에도 체크무늬 재킷이 잘 어울렸다. 그는 각계 인사들을 초청해 경제 토론회를 자주 열고, 상파울루대학 명예교수로 강의도 나간다고 했다. 그는 질문이 끝나면 미리 답변을 준비한 것처럼 속사포처럼 대답했다.

"내가 대통령으로 있을 때 야당 지도자였던 룰라는

내가 추진하던 정책을 건건이 반대했지요.

하지만 막상 대통령이 된 뒤에는 내 정책을 그대로 따랐고

결국 성공한 대통령으로 남았습니다."

카르도수 전 대통령은 후임인 루이스 이나시우 룰라(Lula) 다실바 전 대통령에 대해 "대통령에 당선되기 전과 후가 크게 달랐다"고 말했다. 2002년 10월, 룰라가 시장주의자인 카르도수를 비판하며 새 대통령에 당선됐을 때만 해도 서구 자본가들은 좌파 정권이 들어섰다며 아우성쳤다. 하지만 룰라가 꺼낸 정책 카드는 재정 안정과 물가 안정, 수출 다각화 등 카르도수 정책과 판박이였다.

카르도수 전 대통령은 1997~1998년의 아시아 외환 위기와 2001~2002년 아르헨티나 외환 위기 여파로 브라질 경제가 위기에 빠지자 고금리를 통한 물가 안정과 긴축 재정에 나섰다. 경제의 근간을 지키기 위한 조치였지만, 살림살이가 궁핍해진 국민은 카르도수에게 불만을 터뜨렸고, 룰라는 카르도수 정부를 비판한 덕에 정권을 잡을 수 있었다. 하지만 집권 후 룰라는 카르도수의 정책을 이어받았다.



화폐개혁으로 물가 잡은 '헤알화의 아버지'

카르도수는 재무장관이던 1994년 7월 화폐개혁을 단행했다. 2750크루제이루헤알(구 화폐)을 새 화폐인 1헤알로 바꾸고, 헤알화를 미국 달러화와 1대 1로 만들어 미 달러 가치가 떨어지지 않는 한 화폐 가치가 하락하지 않도록 했다. 브라질의 고질병이었던 초(超)인플레이션을 잡기 위한 고육책이었다.

물가를 잡고 지지도가 높아지자 그해 말 대선(大選)에 출마해 룰라를 누르고 대통령에 당선됐다. 네 자릿수 물가 상승률은 1995년 100%로 떨어졌고 1998년에는 5% 미만으로 급락했다. 그를 '헤알화의 아버지'라고 하는 이유다.

그는 "1993년 재무장관 취임 당시 치솟는 물가가 너무 무서웠다"며 손사래를 치며 웃었다. 당시 브라질은 인플레 등 경제난을 해결하지 못해 7개월 만에 재무장관 7명이 줄줄이 옷을 벗은 참이었다.

"인플레를 일으킨 주된 원인인 방만한 공공 재정에 손을 댔습니다. 각 주와 도시가 연방정부에 진 빚을 모두 갚도록 했지요. 그래서 인플레가 잡히고 재정이 안정되자 비로소 외국 자본이 브라질로 들어오기 시작했고 투자가 일어났습니다. 불안정하긴 했지만 성장에도 속도가 붙었습니다."

그는 이어 국영기업 민영화에 힘을 쏟았다. "브라질 정부는 어디에 투자하고 싶어도 돈이 없었고 민간 기업도 마찬가지였어요. 또 국영기업을 다국적기업으로 키우기 위해서는 경쟁이 필요했고요. 민영화는 불가피한 선택이었습니다." 브라질은 1991년부터 2005년까지 120개가 넘는 국영기업을 매각해 870억달러를 마련했고, 이 돈으로 정부 부채 170억달러를 털어냈다. 카르도수는 "그때처럼 국고가 바닥나 있거나 그리스처럼 재정 위기를 맞는다면 민영화는 어쩔 수 없는 선택"이라며 "정부가 투자할 돈이 없으면 국영기업을 팔아서라도 재원을 마련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그는 외국 자본에 대한 거부감이 없었다. 카르도수는 "가난을 이기려면 고용이 늘어야 한다. 해외에서라도 자본을 들여와 투자를 해야 일자리가 늘어나지 않겠는가"라고 했다.

 

 



"아르헨티나는 거품 속에 살고 있다"

 

카르도수는 이웃나라 아르헨티나에 대해 "정치권이 포퓰리즘 정치가 괜찮다는 착각을 하고 있다"며 "아르헨티나는 지금 거품 속에 살고 있다"고 말했다. 아르헨티나는 자원도 많고 제조업도 발달하고 있어 중국처럼 성장할 수 있는 잠재력이 크지만, 이를 살리지 못하고 있다는 것이다. "(농산품 중국 수출 등이 차지하는 비중이 큰) 아르헨티나는 언제든지 중국 때문에 거품이 사라질 수 있습니다. 중국이 언제 그 거품을 훅 불어버릴지는 모르겠지만…."

요즘 한국 정치권도 포퓰리즘적 정책을 쏟아낸다는 비판을 받고 있다고 기자가 말하자, 그는 잠시 생각에 잠긴 뒤 입을 열었다.

 

 "포퓰리즘 정책인지 아닌지는 과정에 달려 있지요. 복지 정책을 통해 정치권이 어떤 이득을 취하려 한다면 포퓰리즘이라고 봐야 합니다. 반면 국민의 합의를 바탕으로 합리적인 정책 결정 과정이 뒷받침된다면 포퓰리즘이 아닙니다."

카르도수 전 대통령은 자신의 최대 치적 중 하나로 꼽히는 '재정책임법'을 추진할 때 가장 큰 장애물이 정치권이었다고 했다. 당시 지방정부 재정이 부실하면 연방정부가 돈을 찍거나 국채를 발행해 돈을 내줬고, 이는 물가 상승과 정부 부채를 늘리는 요인이 돼 브라질 경제의 아킬레스건으로 지목됐다.

그가 대통령에 재선된 직후인 1999년 1월, 아시아 금융위기 여파로 국제 자금이 신흥국으로부터 급격히 빠져나가는 상황에서 브라질에서 가장 잘 사는 미나스 제라이스주(洲)가 디폴트(채무불이행)를 선언했다. 카르도수 전 대통령은 바로 이때 연방정부가 지방정부의 재정을 지원하지 못하게 하는 내용의 재정책임법을 내놨다. 국회에선 '경기를 살리려면 소비를 늘려야 한다'는 논리를 펴면서 이 법에 일제히 반대했다. 그는 "금리가 오르고 물가가 크게 치솟은 상황에서 소비를 억제하지 않을 수 없다"고 주장하면서 정치권 압력에 버텼다. 결국 법은 시행됐고, 1990년대 이후 적자 행진을 거듭해온 지방정부의 재정이 2000년에 기적 같이 흑자로 돌아섰다. 2007년에는 GDP 대비 지방정부의 재정 흑자가 8%로 높아졌다.

"소비를 활성화하자는 얘기는 지금도 정치권에서 줄기차게 나옵니다. 룰라 전 대통령도 소비를 과도하게 늘려 결국 투자가 부진해지는 결과를 초래했고요." 그는 "현 지우마 대통령의 최대 과제도 소비를 늘리자는 정치권 요구를 어떻게 무마시키느냐는 것"이라며 "이를 극복하지 못하면 초 인플레이션이 언제든지 부활할 수 있다"고 경고했다.

 

 



"경제는 과학이 아니라 항해"

카르도수 전 대통령은 세계 경제의 위기 상황에서 경기 부양과 인플레 통제 중 어떤 것이 우선인지를 묻자 "경제는 정확한 과학이 아니라 항해와 같다"고 말했다. 상황에 맞는 대책이 필요하다는 의미로 받아들여졌다.

 

"지금은 앞을 가로막는 암초와 강한 파도를 헤쳐나가야 할 때"라는 표현도 썼다. "금리도 마찬가지입니다. 경제를 살리는 이상적인 방법은 금리를 낮추는 것이지만, 인플레 위험이 있으면 금리를 낮춰선 안 됩니다. 그야말로 항해지요."

그는 2008년과 2009년은 물가가 안정돼 있어 금리를 낮추기 쉬웠지만 지금은 사정이 다르다고 했다. "지금은 인플레 위험이 도사리고 있기 때문에 금리 인하는 위험한 전진입니다. 외부의 큰 위기가 발생하면 금리를 낮추는 게 낫지만, 지금은 앞뒤를 재가면서 나가야 할 때이지요."

그는 브라질 경제의 취약점으로 빈약한 인프라와 낮은 교육 수준을 꼽았다. "고속도로, 항구, 공항 등 부족한 게 한둘이 아닙니다. 해결책은 교육의 질을 높이는 겁니다. 교육은 인프라 개선뿐 아니라 혁신을 통한 경제 도약의 핵심입니다."

 


☞카르도수 前 대통령은

1931년 리우데자네이루의 부유한 군인 가정에서 태어났다. 브라질 최고 명문 대학인 상파울루대에서 사회학 박사 학위를 땄다.

그는 원래 종속이론의 대가였다. 젊은 시절 카를 마르크스의 자본론 3권을 완벽하게 분석해 명성을 얻었고, 다국적 자본주의의 제3세계 착취를 강하게 비판했다.

1964년 쿠데타로 집권한 군부 정권으로부터 박해를 받다가
칠레, 미국, 영국, 프랑스 등지로 망명을 떠났다. 1969년 프랑스 망명 생활 중 마르크스와 단절을 선언했다. 이후 그는 중남미도 사회 개혁을 통해 자본주의적 발전을 이룰 수 있다는 신념을 갖게 되고 종속이론에서 전향했다.

 


1980년 망명 생활을 접고 귀국한 그는 1983년 상원의원에 당선된 후 민주화 운동에 나섰다. 1985년 군사정권이 막을 내린 뒤 1988년 민주사회당을 창당했다. 이어 1992년 외무장관에 올랐고 재무장관을 거쳐 1994년 대선에 출마, 경쟁 후보 룰라를 꺾고 집권했다. 1998년 룰라를 다시 이기고 재선에 성공했지만 아시아 외환 위기 여파로 경제 위기에 봉착, 2002년 룰라에게 정권을 내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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