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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th - 미션 샌 루이스 오비스포와 안자 내셔늘 히스토릭 트레일
01/16/2017 16: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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꿈은 영원한 기쁨이자 결코 다 써버릴 수 없는 재산이고,

해가 갈수록 활력을 주는 행운이다.

- 재클린 케네디 오나시스 - 


캘리포니아 중간에 위치한 도시 - 샌 루이스 오비스포(San Luis Obispo)

아메리카 원주민인 츄마시 인디언이 평화롭게 잘 살고 있던 시기인 16세기 초반 유럽 열강의 식민지 쟁탈 시절에 이곳에 처음 도착한 이들은 스페인 사람들이었다. 샌 루이스 오비스포 라는 도시 이름과 날씨마저 해양성 기후인 이곳은 온통 스페니쉬 풍의 색깔을 가지고 있다는 도시란다.

101 프리웨이를 달리다보면 샌 루이스 오비스포 카운티를 지나게 되는데, 이 카운티엔 올드 미션이 무려 두 곳이나 된다. 관심 증폭일 때 방문하는 것이 좋을 듯하여 이번엔 미션 샌 루이스 오비스포 데 톨로사(Mission San Luis Obispo De Tolosa)를 ~~...,

Mission San Luis Obispo de Tolosa

먼저 지도를 보니 샌 루이스 오비스포 다운타운 북쪽으로 캘리포니아 폴리테크 스테이트 유니버시티가 보이고 서쪽으로는 모로 베이가 보인다. 샌 루이스 오비스포는 향기가 난다는데, 주위엔 와이너리가 많다. 101프리웨이를 북쪽으로 가다보니 파소 로블레스가 바로 위다.




미션 샌 루이스 오비스포 데 톨로사에서 미션 샌 미겔까지는 37.5마일  Mission San Miguel - blog.koreadaily.com











샌 루이스 오비스포 미션은 21개의 올드 미션 중 다섯번 째로 후니페로 세라 신부님이 세웠는데, 미션 외관에 새겨진 1772는 설립을 한 해이고 완성은 1794년이다. 현관은 1820년에 추가되었다.

현재 미션안에는 예배를 드리는 성당과 박물관, 기프트 샵 등이 있다. 

샌 루이스 오비스포(San Luis Obispo)의 미션은 종탑과 현관의 조합이 캘리포니아 선교 가운데 어디에서도 발견되지 않는다는 점에서 독특하다. (광장에서 미션 정면을 올려다 보면 보이는 3개의 종과 옆면에 2개) 뉴 잉글랜드 스타일이라 한다.


* 정면 사진이 없어서 Google에서 가져옴.



종마다 이름들이 부여되어 있다.




주된 본당은 짧고 좁다(다른 선교 교회와 마찬가지로). 특이한 점은 샌 루이스 오비스포 미션에는 제단 오른쪽에 거의 동일한 크기의 2차 본당이 있어 유일한 "L"모양의 미션이다. 

21개의 올드 미션 중 14개의 미션을 돌아보았다. 지역마다 독특한 미션의 특징이 있는데, 이 샌 루이스 오비스포의 미션은 내게는 가톨릭의 엄숙하고 정갈한 모습은 보여지지 않고 토속신앙처럼 느껴지는게 약간 떨떠름한 기분이 들었다.




예배당 위쪽으로 오르간도 보이고....,



16세기 스페인은 한때 전 세계적 패권을 이룩했던 역사상의 제국이기도 했다. 

[대항해 시대에 스페인은 카리브제도에 정착했으며, 정복자들은 남아메리카 본토의 아즈텍과 잉카같은 토착 제국들을 무너뜨렸다. 이후 원정대들이 오늘날 북아메리카와 남아메리카의 티에라델푸에고 제도까지 진출하여 제국을 세웠다. 스페인의 세계 일주 탐험대는 1519년 페르디난드 마젤란(Ferdinand Magellan)이 시작하여, 1522년 안 세바스티안 엘카노(Juan Sebastian Elcano)가 마치면서 콜롬버스가 바라던 아시아로 가는 서쪽 항로를 개척했으며, 극동 지역에도 관심을 가지게 되어 괌, 필리핀과 주변 섬들에 식민지를 세웠다. 이 황금 시대에 스페인은 아메리카의 거대한 땅과 더불어 네덜란드룩셈부르크벨기에이탈리아 대부분, 독일 일부, 프랑스 일부, 아프리카와 아시아, 오세아니아 영토를 차지하고 있었다.]


그러나 스페인은 확장된 영토에 대한 모든 소유권을 관리하는 것이 어려웠으며 영국과 러시아가 캘리포니아의 상류 지역의 자원에 관심을 가지게 되었을 때 스페인 정부는 이 먼 땅에서 보다 확고하게 자리를 잡을 방법을 모색하기 시작했다.

그 방법으로 선교 제도는 많은 희생없이 전초 기지를 세우는데 대한 해답이 되었다. 이 일은 멕시코와 캘리포니아를 포함한 다른 스페인 영토에서 사용되기도 했다.

프란시스칸은 후페로 세라의 열정적인 지도력하에 캘리포니아 해안을 따라 일련의 선교를 시작했다.

미션 샌 루이스 오비스포 드 톨로(San Luis Obispo de Tolosa)는 위에서도 언급했듯이 현재 캘리포니아주 샌 루이스 오비스포 (San Luis Obispo)에 후니페로 세라(Junipero Serra)신부가 1772년에 설립한 스페인의 미션이다. 

톨로즈의 주교인 안주 (Anjou)의 세인트 루이스(Saint Louis)의 이름을 딴 이 미션은 샌 루이스 오비스포(San Luis Obispo)라는 도시와  루이스 오비스포 카운티(San Luis Obispo County)의 이름을 만들었다.

첫번째 수사였던 프란시스칸 루이스 안토니오 마르티네즈(Fr. Luis Antonio Martinez)는 사명감있고 관대한 성격의 소유자로 매우 합리적으로 34년 동안 미션을 이끌었다고 한다.


현지 토착인이었던 츄마시(Chumash)인디언의 도움으로 나무가지와 기둥이 임시 건물을 만들기위해 설치되고, 점점 공동체가 성장함에 따라 워크샵, 병사가 기거하는 병영 및 의무실 등 다른 건축물이 세워졌다.

그러나 1810-1822년 멕시코는 스페인 지배에 반기를 들고 독립을 쟁취하려 했다. 이때는 선교사들이 외부로부터 조금의 도움도 받지 못하고 스스로 미션을 꾸려나가야 했다. 1822년에 멕시코는 스페인에게서 독립을 얻었고 캘리포니아는 멕시코 통치하에 들어갔다. 새 정부는 많은 문제를 안고 있었기 때문에 선교 기지를 다루는 것이 주요 관심사는 아니었다. 선교 시스템의 원래 목표는 인디언을 스페인 제국의 시민으로, 선교 공동체를 자치 도시로 전환시키는 것이었는데, 스페인은 이 목표가 10년 만에 완료되기를 바랬으나, 그들의 바램은 캘리포니아에서 성취되지 않았다.

인디언들은 질병으로 희생되었고 미션의 공동체는 약화되었다. 실패한 선교에 더 많은 시간과 돈을 투자하지 않고 멕시코 정부는 세속화 법령을 통과시켰다. 미션을 세속화함으로써, 멕시코 정부는 자유롭게 토지를 매각 할 수 있었다. 미션은 63년 동안 지속되다가 멕시코 정부에 의해 약 500달러에 팔렸다.

여러개의 방들이 감옥이나 법원으로 사용되었다가 1848년에 캘리포니아는 미국의 일부가 되었다. 

이때 미션으로 돌아온 알레마니(Allemany) 대주교는 미션을 반환받기 위해 미국 정부를 지지했다.

1850년대에 미션은 가톨릭 교구로 돌아왔다. 그 이후로 이 미션은 샌 루이스 오비스포 교구에서 점차적으로 성장해 왔다. 그러면서 미션은 여러번의 건축 수정을 거쳐 첨탑으로 완성된 뉴잉글랜드 스타일의 교회같은 지금의 모습이 되었다. 1930년대에 이 선교부는 초기 선교 스타일로 복원되어, 오늘날 보여지는 것처럼  미션은 캘리포니아의 기원과 역사를 상기시켜주고 있다.


'곰들의 계곡La Canada de los Osos(Valley of the Bears)'에 있는 올드 미션성당.

캘리포니아에서 회색곰은 지금은 멸종되었지만, 예전에는 흔하게 발견되었다. 1769년 유럽인으로는 최초인 스페인 탐험가 포르톨라 원정대는 샌 루이스 오비스포를 발견하면서 이곳을 '라 카냐다 드 로스 오소스(곰의 계곡)'이라고 불렀다. 

선교사와 그들의 군대가 가져온 총은 인디언들에게 곰으로부터의 위험에서 벗어나게 해주었다. 그래서 인디언들은 처음에는 그들에게 매우 호의적이었다고 한다. 그러다 시간이 지나면서 수사들의 선교사명보다는 저변에 깔려있는 그들의 정복에 대한 야욕과 인디언들을 무시하고 노동력의 착취를 절감하며 군인들과의 갈등이 깊어졌다고 한다.





미션 뮤지엄에는 예전에 이 지역에 거주했던 아메리카 원주민인 츄마시(Chumash) 인디언에 대한 생활상이 전시되어 있다. 1804년부터 1832년까지 미션 샌 루이스 오비스포는 밀, 보리, 옥수수, 완두콩 및 렌즈콩 등을 167,000 부셀이나 생산했다는데, 상대적으로 적은 인구였음에도 불구하고 미션 전체에서 밀 생산량이 네번째로 높았다. 미션은 심지어 자체 제분 공장까지 가지고 있었으며, 미션의 사거리에 포도원이 있었고, 북동부에는 정원이 있었다. 1776년에 이교도 인디언이 불이 붙은 화살을 발사하여 샌 루이스 오비스포 미션의 여러 건물을 거의 다 태워버린 화재가 발생하였다. 이 피해는 바로 타일을 만들기 위한 실험으로 이어져, 1790년까지 대부분의 미션은 공격에 취약하지 않은 기와 지붕을 가지게 되는 계기를 만들어주기도 했다.












곰의 머리가 분명하다~~~!




정교한 솜씨로 만든 인디언들의 공예품.




바구니나 그릇을 만들었던 잎의 종류. 곡식대부터 소나무 잎들까지 ...,








와인을 만들기 위한 것들인지, 흔하지 않은 장비들이다. 벽돌도 보이고, 그런데 중간엔 빨래판같은 것도 보인다.^^




너무 오래 사용해서 앉는 면의 가죽이 다 닳아버린 의자며...,이곳에 도움을 주었던 수사나 지역의 인사들의 사진도 전시되어 있고.., 아래는 수사복과 당시의 리빙룸.









미션의 가운데 정원. 버려진 큰 솥이 이곳에 많은 이들이 상주했음을 보여주고 있다.








녹슨 잎을 가지고 있는 마른 포도나무와 지금도 바퀴가 둥근 나무수레.





종들도 오래 사용하면 소리가 울리지 않는가보다. 아마 깨지거나 금이 간 것 종들인지소리, 사용하지 않는 종들을 매달아 놓았다. 기쁨의 종과 은혜의 종, 슬픔의 종이라 이름지어져 있다.




미션의 회랑.. 회랑의 바로 앞쪽은 미션 플라자라서 타운의 여러 행사가 열린다고 한다.




미션 플라자 밑으로 흐르는 시냇물.. 다운타운 중심부를 흐른다.




미션 플라자에 있는 Juan Bautista de Anza National Historic Trail 안내. 

"Vayan Subiendo!"( "Everyone mount up!")는 Juan Bautista de Anza의 신세계로 이주하자는 호소력있는 울림이다. 1775-76 년에 Anza는 약 240명의 남녀와 어린이들을 멕시코에서 데리고 와 샌프란시스코 만에서 최초의 비원주민 정착촌을 설립했다.





스페인 국가의 대항해 시대의 끝무렵이라 할 수 있는 1700년 후반에 당시 신대륙인 뉴스페인(멕시코)을 통치하던  Juan Bautista De Anza Bezerra neito 라는 스페인 사람이 캘리포니아 남쪽에서 샌프란시스코까지 프란시스칸 신부의 군대를 이끌고 탐험을 나섰는데, 이때 바다사자 사냥을 하기 위해 북쪽에서 내려오는 러시아 사람들을 발견하고 스페인 국왕에게 그 사실을 알려 더 많은 신부와 군대가 이곳으로 오게 되면서 1800년도 초반까지 미션은 계속 지어진다.

그의 이름을 딴 역사적인 트레일은 그가 1774년에 모집부터 시작하여 1775년에 출발, 1776년 도착까지 Anza 원정대라 불리우며 멕시코 컬리아칸부터 호르카시타스를 지나 샌프란시스코까지 30여 가족과 함께 서쪽 해안가를 따라 처음 육로로 식민지 원정을 기리는 역사적인 길로 Anza 원정대는 사람들과 가축의 무리가 움직이는 소도시와 같았다고 한다. 그들이 탐험을 하던 그 시기의 길들은 다양한 문화를 연결시키며 오늘날 후세에게 물려진 역사적인 한 부분이 되었다.

Juan Bautista de Anza 국립 역사 트레일은 미국 국립 역사 트레일 및 전국 밀레니엄 트레일 (National Millennium Trail) 프로그램에서 1,210 마일 (1,950km)의 국립 공원 서비스 부분이다.

이 트레일 경로는 멕시코 국경에 있는 Nogales에서 미국의 애리조나 주와 캘리포니아 남부의 사막에서 부터 캘리포니아 해안 지역과 샌프란시스코의 중앙 해안 지역을 통과한다.






올드 미션이 다운타운에 있는 이유로 다운타운에 있다는 샌 루이스 오비스포를 오면 꼭 봐야 한다는 풍선껌 골목(BubbleGum Alley) 벽.. ㅋ~(냄새가 어찌나 나는지 원- ) 1950년 부터 씹던 껌을 붙여놨다니..,

샌 루이스 오비스코에 가서는 문화인처럼 껌을 휴지에 싸서 버리지 말고 꼭 저기에 붙여야 합니당~~~!



꿈은 영원한 기쁨이자 결코 다 써버릴 수 없는 재산이고,

해가 갈수록 활력을 주는 행운이다.

                                      - 재클린 케네디 오나시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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