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좌절된 정조의 친위쿠데타
05/02/2012 12:1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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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800년 즈음 장용영은 정조가 창설한 직속 경호부대였다.

정조 이전까지 조선군의 중심은 수도를 방위하는 훈련도감이었다.

훈련도감은 실질적인 군사력으로서 도성에 상주하는 군병들의 대부분을

통솔하고 있었을 뿐만 아니라, 무과시험을 주관하고 , 일년에 두 번

서울 인근에서 행해지는 대규모 군사훈련도 관장하고 있었다.

 

그러나 훈련도감과 어영청에 외척을 비롯한 노론벽파의 영향력이 속속들이

스며 있음을 간파한 정조는 그 규모를 대폭 축소하고 그 대신 국왕을 경호하는

친위부대, 즉 금군을 확대개편하여 '장용영'이라는 새로운 부대를 조직했다.

이 과정에서 이장오, 윤태연, 장지항, 구선복 등 노론 벽파에 속했던 훈련대장들은

'척신들에 부회하여 반란을 기도했다'는 죄명으로 차례 차례 주살되었다.

 

그리하여 1793년에 이르면 이전까지 500명에 불과하던 국왕의 금군은

내영직할군, 외영입방군, 외영협수군으로 증편되어 1만명이 넘는 군단급 부대로 재편되었다.

이로써 수도권 일원의 군 통수권을 장악한 정조는 1796년 수도권 방어를 명분으로 장용영의

외영 본부에 화성이라는 새로운 도시를 건설하였는데, 이것이 오늘날의 수원이다.

 

화성 신도시가 완성되자 노론벽파에 대한 국왕의 친위 쿠데타는 조야가 다 아는

공공연한 소문이 되었다. 정조는 세자의 혼인과 더불어 보위를 물려주고,

스스로는 상왕으로 수원행궁에 물러가 군을 장악하고, 조정의 아들로 하여금

벽파토멸의 어명을 내리게 하리라는 것이었다.

 

체제공, 이가환, 정약용등 남인 탕평타들은 '천토'라고 부른 이 계획의 주동자들이었다.

수원유수가 맡아야 할 수원성 건설을 당대의 명재상인 체제공이 맡고,

당시 좌부승지이던 정약용이 자기 업무를 제쳐두고 기중기까지 발명해 가며

수원성 건설에 혼신의 정열을 기울인 것에는 이런 내막이 있다고들 했다.

 

지난 8년간 정조가 심혈을 기울여 추진한 장용영은 이미 본 궤도에 올라섰고

왕세자 책봉도 끝났으며 몇 달 안으로 왕권파인 노론시파의 젊은 영수 김조순의 딸이

세자빈으로 간택될 것이었다. 외척과 노론벽파의 집요한 공작에도 불구하고

왕세자는 스스로 세자빈을 선택했고 이는 정조의 의도와 정확히 맞아 떨어졌다.

 

이제 정조의 양위 발표는 실로 오늘 아니면 내일의 일이었다.

그동안 사리사욕과 축재에 어두웠던 특권세력들은 남김없이 숙청되고

어떠한 신분의 차별도 철폐된 새 세상이 도래하고, 현명한 군왕 아래

만민이 평등하고 행복한 새 시대의 꿈이 실현 될 것만 같았다.

 

그러나 외척과 함께 아직까지 권력의 중심부를 장악하고 있던 

노론벽파 일당은 이에 순순히 물러서지는 않았을 것이다. 

결국 1800년 1월 19일, 정조의 측근들이 의문의 죽음들을 당하기 시작하면서

정조도 갑자기 병으로 눕게되고 얼마후 의문의 죽음을 맞이한다.

이로써 일제가 조선을 침탈할때까지 약 100년 동안 이런 세도가들은

끊임없이 왕권을 약화시키고 조선의 국력을 갉아 먹게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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