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운전병의 고백은 진실일 수 밖에 없다 살아 있는 블랙 박스 (Black Box) 삭제 불가능
05/17/2019 14: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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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두환 '반란군 수괴' 는 광주에 헬기 사격 뿐만 아니라 

전투기도  대기 시켜서 쑥대밭으로 만들 뻔했다




운전병의 고백은 진실일 밖에 없다


살아 있는 블랙 박스 (Black Box) 삭제 불가능


보안을 지킨답시고 경호차와 경호원도 없이


몰래 공군 헬기 타고 광주가서 아무도 모른다고


모든 것을 모르쇠로 일관했지만


전두환의 서울 출발 증언은 예상치 못한 곳에서 나와


매우 중요한  사안이 차내에서 이루어져


가장 신임하는 사람을 기사로 삼아


심지어 친동생을 기사로 삼기도


북한에   상사가 출근 않아 주위에서  묻는 질문에


제주도 출장 갔다 둘러댄 기사분


웃음이 나오는 막으려고 힘들었다고

 

 

어제 오원기 1980 5 21 전두환이 8 헬기 장에서 공군 헬기를 타고 광주에 가는 것을 자신의 눈으로 확인했다고방송 (JTBC  TV) 출연하여 증언하였다. 시간 관계로 간단히 기술했기 때문에 분이 말한 비밀을 아는 사람은 10이라고 지적한 부문을 설명 드리고, 운전 기사와 관련된 가지 일화를 소개 드리고져 한다.


전두환 당시 보안 사령관은 직명과 계급과는 무관하게 사실상 군부 독재자 (Military Dictator) 였다.그가 그토록 막강한 권력을 찬탈하게 되는 것은 해에 있었든 12.12 사실상 쿠데타 사변 때문이 었다.


그는 그때 박정희가 사살당한 뒤에 권력의 공백을 틈타서 게획적으로 직속 상관인 당시 계엄 사령관인 육군 참모 총장을 무력으로 납치했다.


이어서 그는 정권을 잡는 것을 합법화하기 위해 대도시에 소요 사건을 이르켜 자신들의 시나리오 대로 진압 과정을 거쳐서 박정희 식으로 체육관 대통령 자리를 획책 했다.


소요 대상 도시로 부산, 마산등도 검토했으나, 광주 학생 사건으로 이름나고, 또한  폭동의 수괴로 지목한 김대중씨와도 연계가 되는  광주로 낙점을 찍었다 한다.


광주에서의 반대 시위가 너무 온건하고 조용하자 편의대까지 내려보내 데모대를 과격한 행동을 하도록 부추기고 빠져 나갔다. 그들이 조작한 폭동 계획된 시간표대로 빨리 진행되지 않자 전두환은 초조한 심경에 무력으로 신속히  끝낼 마음으로 측근에게까지 비밀로 삼고 단신으로 육군 헬기가 아니라 공군 헬기를 것도 8 헬기장에서 타고 갔다 한다.


오원기 씨가 말한 비일을 아는 10 누구 일까?


서울에서는 공군 핼기를 8 헬기장으로 대기시키고 현장에서 전두환을 맞은 오씨의 상사인 신용만 공군 보안 대장, 오원기씨, 핼기 조종사, 부조종사, 그리고 정비사가 있다. (여기까지 다섯명)


그리고, 광주에서는 전투 비행단 단장실에서 시간에 걸친 회합에서는 정호용 특전 사령관, 이재우 505 보안 대장이 동석한 것으로 알려졌고, 안내 등을 맡은  분들이 2~3 있었을 겻으로 보인다.


오원기 씨는 자신이 외에 비밀을 알고 있는 분들도 상황를 증언해주시기를 간절히 바라고 있다.

적어도 오씨의 상사인 용만씨는 오씨의 증언을 부인하지 않았기 때문에 조만간 자신의 입장을 밝힐 으로 보인다.


그러나, 벌써 세명이 (한분은 서울 출발을 다른 두분은 광주 도착을) 증언한 이상 전두환이 광주로 가서 사살명령을 내린 것은 거의 확실하다. 광주 이야기는 오늘은 정도로 그치고, 기사분들과 관련된 일화들을 몇개 소개하려 합니다.


대기업에서 관료들이나 정치가들에게 뇌물을 전달할 대부분의 경우 운전 기사를 통해서 하는 경우가 많은 것은 알려진 사실이다.


뿐만 아니라, 있고 행세께나 하는 분들 집안에서는 심지어 어린애들까지 운전 기사를 마치 이조시대의 종처럼 하대하는 경우가 많아서 사회 문제가 되는 것을 종종 수있어서 안타깝게 생갈할  때도 많다.


필자가 남북 적십자 회담 사무국에 근무하는 동안에 생긴 가지를 말씀 드리려 한다. 가지는 후락 중앙 정보부장이 1972 5월에 최초로 방북하여 김일성 수상과 면담하기에 앞서 회담 운영부장인 홍진씨가  먼저 평양에 다녀왔다. 믈론 일은 당시에는 비밀에 붙여져 있었다.


부장은 사무실에 출근하지 않은데, 그분의 운전 기사는 매일 츨근해서  다른 기사들이 부장님이 출근을 하지 않느냐는 질문을 자연스레했다. 때마다, 운전 기사는 제주도에 출장 가셨다 얼버무렸다. 

남북 회담에 열중이실 분이 이시점에서 하필 제주도에 출장 가셨는지 합리적인 의심을 밖에 없었고, 그분이 평양 출장에서 돌아 와서도 사실이 당장 밝혀지지 않았다.


부장의 평양행은 이후락 정보부장이 7.4 공동 성명을 발표하고 나서 전모가 알려졌다. 부장의 운전 기사인 모씨는 부장이 평양 갔다 오는 기간동안 제주도 출장가셨다고 남들의 질문을 때워 나가는데 한참 힘이 들었다면서, 동안 참아온 웃음을 한꺼번에 크게 터트렸다.


개인 적으로 그분은 필자의 백형님과 부산 고등학교 동기 동창이셨고, 서울대학교 문리대 선배 이셨다. 후일 정보부로 원대 복귀하시고  동부의 기조실장과 차장보까지 오르시고 퇴임이후에도 대북 전문가로 활동하시다 2015 11 11  83세로 별세하셨다.


다음으로는 사무국의 부장 가운데 다른 한분은 자신의 운전 기사를 자신의 동생을 기용하여 화제가 되기는 하였으나 모두 모른척하고 지냈다.


이분은 매우 유능하신 분이었으나, 가정 형편 때문에 학업을 마치고 사주가 자신이 대학을 나오지 않았기 때문에 대학을 나오지 않은 분들에게도 문호를 개방한 신문사에 입사하여 정치부 기자로 활동하시다 사무국에 오셔서 맹활동을 하셨다. 


그러한 가정 형편을 미루어 보아서 계씨도 대학에 못가고 군대에서 운전병으로 근무하다가 제대한 다음  운전 관련 일을 보고 있었는데, 마침 자신의 운전 기사가 전직을하여 자리가 비게되자  그자리에 계씨를 불러서 일하게 것으로 보인다.


그분의 직책이 그리 비밀을 요하는 자리가 아닌데도 굳이 동생에게 자리를 것은 쉽게 말하면 정실 인사이지만, 기왕이라면 다홍치마라고 운전 기사 자리가 고위직도 아니고, 매일 주어진 거리를 안전하게 오가게 해주기만 하면 되는 단순 직종이라서 아무도 시비거는 없이  없었다.


필자가 미국 이민을 위해 퇴사 할때까지 그대로 근무한 것으로 알고 있다. 필자가 분에 대해서도 몇자 보태고 싶으나 현재 생존해 계시기 때문에 여기서 그칩니다.

 

과거를 되돌아보면 미래를   있다(관왕지래觀往知來)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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