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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 재규 의 박정희 대통령 암살 배후에 미국이 있다/ 없다? 엄청난 정황 증거 있으나 확증은 없다?
10/28/2019 19:3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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현장 검증하는 김 재규내 뒤엔 미국이 있   주장

 

인권 전도사 지미 카터 한국에서 미군 철수 공약


야당과 노조 인권 탄압 박정희 자주 국방 내세우고


개발 추진에 강한 의혹


미측 평화적 정권 교체 어렵다고 영구 독재 우려


박정권하에서 김재규만 미측 우려에 공명해


주한 미국 대사와 자주 첩촉 당일 (10/26)에도 만나


사망 며칠전엔 CIA 지부장과도 회동


카터 동행 CIA 요원 250 박  까지 한국 주재


가장 중요한 증언: 박정희 임기 끝낸다: 그레그 ( 대사)


글라이스틴  대사의 애매한 증언


명확한 증거 없으나 미국 연계 정황 넘쳐


장충 체육관 취임식 국기봉 넘어져 깨진 흉조


백운학   20 가겠다그후는?  질문엔  침묵


종필 다시 가서 , 그뒤엔 돌아 가실 아요

 

 

필자가 이박사의 자진하야와 자진망명이 허구였고, 미국의 강권에 의한 사직이었으며,하와이 교포가 성금을 모아 보낸 전세기 (CTA) 날아간 것이아니고, 미국측의 공작에 의한 사실상 CIA 비행기로 하와이로 납치 당해 갔다는 기사를 발표하여 센세이션을 일으킨 바가 있는데,  ( 1)       글을 읽으신 분들가운데 필자에게 박정희 대통령의 암살 사건에 미국이 간여한 것도 알아보는 것이 좋겠다고 권고하시는 분들이 있었다.

그러나, 필자는 한놈만 패라 격조 높은 어느 중진 의원의 명언이 생각이나서 필자는 분의 얘기로 만족하고, 이상 탐색 기사를 쓰지 않기로 작정하였다. 대통령 관련 사항은 필자가 아니라 후학들이 많은 자료를 분석해서 다룰 있다고 보았기 때문이다.

필자가 대통령에 관해서 글을 쓴다면 필자가 간여했든 1 남북 대화와 관련된 것에 국한하고 싶고, 더구나, 필자의 상사들이 생존하시는데, 그들에 대한 예우 차원에서 쓰기를 삼가하고 싶다.

지난 한국 방문 중에 회담에 같이 참여한 S 대사를 만나서 당시를 회고하고 마침 그가 저술한 평화와 통일: 박정희에게 묻는다라는 책도 한권 받았다지내고 보니 대통령의 남북회담은 실질적으로 봐서 평가하자면, 종신 집권을 위한 하나의 사기극이었을 뿐이었다.

오늘 박정희 암살 ( 2) 미국 관련에 대해서 몇자 적지 않을 없는 것은 이번 박정희 암살 40 주기를 맞아 북한의 대남 매체인 우리 민족끼리 미국은 박정희를 더는 쓸모없는 존재로 인정하고 남조선의 식민지 체계가 뒤집히는것을 사전에 막기 위하여 그를 사살하도록 조작(사주)하였다”고 주장하는 기사를 발표하고 도하의 모든 매체가 이를 보도했다.

따라서 당시 한미 관계를 다시 조명해볼 필요가 있다.

그 무렵 미국 대통령은 지미 카터 (Jimmy Carter) 였는데, 그는 독실한 기독교인으로 전세계에 인권전도사를 자처하였는데, 한국의 박정희 정권은 여당과 노조를 강압적으로 탄압하여, 카터 대통령은 월남 패망에 따라 다시는 아시아에서 전쟁을 치룰 수 없다는 뜻에서 주한 미군 철수를 공약으로 내세웠다.

이에 박정희 대통령은, 창원 공단 등지에  “ XX 정밀이라는 이름을 가진 각종 군수 업체들을 창설하여 자주 국방의 길로 나서겠다며, 핵 개발도 은연중 추진하였다.

미국이 박정권에 대해서 가장 신뢰하지 못할 것으로 본 점은 박정희의 유신 체제하에서는 민주적 방식으로 정권 교체의 길이 막혀 있다는 점으로 그대로 두면 미국이 한국의 종신 독재체재를 두둔한다는 비난을 받게 될 것이라는 점이다.

이처럼 한미간의 갈등이 심각한 상태에서 미국측 입장을 가장 잘 이해한 한국 정부내 인사는 김재규 중앙 정보부장 밖에 없었다.

그래서, 당시 주한 미국 대사인 글라이스틴은 김 부장과 자주 만났고, 심지어 그가 1979년 미국에도 다녀 왔다는 기사를 읽은 적이 있다. (3)

더군다나 김부장은 그라이스틴 대사를 사건 당일 (10 26) 2시 경에 만났다고 한다

가장 주목할 것은 나중에 주한 미국 대사가되고 전에 한국 주재  CIA 지부장이었든 도널드 그레그 (Donald Gregg) 는 박 대통령이 그의 임기를 못마칠 것이라는 예견도 한 것으로 나타났다.  (3)

더 기가막힐 노릇은 지미 카터의 방한 때 같이 왔든 CIA 요원 250 명이 박대통령 서거 때까지 한국에 주재하고 있었다는 사실이다.

그렇지만, 똑 부러지게 박정희 암살에 미국이 개입했다는 문장이 어느 문서에도 없다고 조갑제 옹은 미국 연계설을 부인하고 있다.

그런데, 필자가 미국의 연계를 찾든 가운데 위키 피디아의 박정희 암살과 미 CIA 의 연계 가망성이라는 항목에서 다음과 같은 구절을 발견하였다.

 In 1999, Gleysteen said that the U.S. became unwittingly involved in Park's assassination without explaining further. (직역하면, 1999년에 글라이스틴 대사는 자세한 설명 업시 미국은 부지불식간에 박정희 대통령의 암살에 연루되었다”) 라는 알쏭 달쏭한 말을 남겼다. 그는 이미 타계하여 물오 수가 없다.

또한 김재규는 자신의 배후에는 미국이 있다고 주장했다.

우리가 살인 사건을 보면, 아무런 확실한 물증이 발견되지 않았드라도, 주변에서 벌어진 여러 정황 증거만으로 유죄 판결을 내린 경우가 많았다.

마찬 가지로 한미간의 어느 문서 (외교 문서 포함)에도 미국이 명시적으로 이승만 박사를 압박해서 퇴진시키고, 하와이로 납치했다는 것을 발견할 수 없다. 그러나, 필자는 당시 미 대사관의 실질적 행동가 였든 마샬 그린 (Marshall Green) 의 회고록에서 자신의 행적을 과시한 스모킹 건을 찾아내서 4-19이후 이박사를 실질적으로 사직시키고, 나아가 국외로 추방해 사실상 납치한 인사는 마샬 그린이어서 그가 미 국무성내에서 쿠데타 고수 (CoupMaster) 라고 명성을 날리게 된 것을 발굴해냈다.

위에서 수많은 정황 증거를 펼쳐 놓았으니까, 어느 관심 있는 후학이 나타나서 집요하게 파고든다면, 10-26 사태의 진실을 캐낼 수 있다고 본다그리고 그날이 하루 빨리 닥쳐오기를 바랄 따름이다.

언제나, 거목이 쓸어질 때 조짐이 나타나는데, 박정희가 장충 체육관에서 100 % 신임을 받고 대통령이 되어 종신 대통령의 시작을 알릴 때 국기봉이 넘어져 깨져서 담당 총무처 국장이 해임되었으나 식장 준비를 위해 애썻다는 동정론으로 그는 복직 되었다. 그렇지만, 이는 확실히 흉조여서 그의 앞날에 어두운 그림자를 드리웠다 하겠다.

5-16 이후 당시 중앙 정보부장이든 김종필이 당시 군사 혁명  거사준비중 석정선을 따라 백운학을 찾아갔을 때, “혁명 성공을 예견해준 것에 감사햐여 박정희 의장을 모시고 다시 백운학 선생을 모셨는데, 그를보고, ” 20년은 가겠다고 말해서 그후는?” 하고 물으니 답이 없었다.

박의장이 먼저 나간 다음에 김 부장이 다시 백 선생에게 재차 물으니,  그뒤엔 돌아 가실 같아요라고 했다 한다. 그러나, 부장은 박의장에게 그말은 전하지 않았다고 한다.

18 후에 대통령이 돌아 가시고나서 일을 생각하니 운학 선생의 앞을 내다보는 수를 다시 감탄 밖에 없었다 한다. ( 4)

 

필자

 

1: 이박사는 내가 하와이로 축출했다 그린

       http://blog.koreadaily.com/teddykim/1059910

 

2: 당시 언론에서는 정희의 죽음을 시해  (弑害)” 라고 표시 했는데, 이는 왕조 시대에서나 사용되는 용어이고 엄연히 민주 공화국에서는 사용 되면 안되는 용어이다. 따라서 암살이 가장 적합하다고 생각되어서 용어를  씁니다.

 

   3: 위키 피디아 등지에 등재된 사실들 가운데, 많은 기사들이 Edit 등을 통해서 지워진 사례가 너무 많아서 놀랠 따름입니다. 지워진 기사 가운데 가장 대표적인 사건은 박사 퇴진 후에 국고에서 2천만 불의 행방이 묘연하다는 당시 과도 정부의 김용갑 재무 차관 발표가 송두리채 없어졌읍니다.  그러나, 이와 같은 내용이 이박사가 하와이 도착하든 하와이 애드버타이져라는 일간지에 실려서 이박사를 맞이 했다고 월간 조선의 이동욱 기자가 썼읍니다.


“”李박사가 하와이에 도착한 1960 529일자 하와이 애드버타이저 紙()承晩 박사가 호놀룰루로 망명했다는 사실과 함께 한국의 김용갑 재무부 차관이 李承晩 박사가 집권 12년 동안 1990만 달러를 유용했다는 내용으로 李承晩 박사를 기소했다는 사실를 보도하고 있었다. 모두 한국의 언론에 보도된 내용들이었다.

출처
https://wildkim.tistory.com/496 [wildrose]


4: 백운학 입에서 튀어나온 "혁명" … 거기서 민심을 읽었다백씨, 박정희에게 "20년은 갑니다" … 내가 " 후는?" 묻자 침묵
                https://news.joins.com/article/1735964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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