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LA 촌놈 서울 방랑기 3 친절한 민원관련 공무원 가방두고 나갔다 다시 와도 제자리 있어 놀랐다
10/02/2019 23:2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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민원 청구를 담당하시는 분들이 매우 친절히 대해서 감명 받았읍니다



한국 공무원들 생각보다 친절하고 능력 있어


같은 일 못대는가 하면  시계 넓혀 척척 처리


두고 나온 가방 아무도 손 안대고 그대로 있어 


사회가 풍요러워져서 남의 물건 손 대지 않는 듯


할 수 있는데까지 미국 많이 알고 올수록 일  수월


하급 공무원 친절하나 올라갈 수록 까다롭다? 

 

공무원들도 너무 틀에 박히지 말고 


창조성 융통성 있어야   빨리 승진할 듯                         



                                                                                                                                    필자가 이번에 생각지도 않은 한국 여행을 하게 된 것은 선친의 항일 독립 유적을 찾아내기 위해서이다. 작년 12월에 한국 보훈처는 일제 때 중등학교를 다닐 때 일제나 조선인 학생들에 대한일본인 선생들의 부당한 처우에 대항해 동맹 휴학을 주도하거나, 적극적으로 참가하여 학교로부터 처분을 받은 학생운동가들을  독립 유공자로 대우하고 관련자들을 발굴하고 있다는 기사가 나왔다.


그런데, 이와는 별개로 바로 아래 동생이 아버님의 유업을 찾아내어서 이를 세상에 알려야 겠다는 일념에 마침 한국 모 대학에 강의를 하면서 그 방법에 대해 생각하든 참에 가까운 선배님이, 그당시 동맹 휴학에 가담하셨다면, 그 때 언론에 기사가 나왔을 터이니 이를 찾아 보라는 제의를 들었다.


이에 고무된 동생이 현재 글이나 쓰고 은퇴 생활을 하는 필자에게 한국에 가서 선친 관련 학생 동맹 휴학 사건에 대한 신문 기사를 리서치 해보는 것이 어떻겠느냐는 권고를 받아 들이게 되었다.


필자는 동맹 휴학이 일어난 학교의 학적부를 찾아보는 것이 최우선으로 생각하고, 선친이 다니셨든 대구 상업을 위키피디어에 검색을 하니 현재는 대구 상원 고등학교로 변신을하였다고 나왔읍니다.


*** 마침 필자의 K 고교 동기인 Y 모 회장의 선친이신 S 그룹의 창업공신께서 필자의 선친과 절친이셨다는 사실을 알게 되었고 그분이 대구 상업 5 기이셨다는 사실을 알게 되었지요.  이정보가 뒤에 들려드릴 학적부 찾기에 큰 도움이 되었읍니다.


필자가 동교의 웹사이트에 들어 가서 일제 때 학적부가 아직도 있는지를 확인하기위해서 동 사이트에 접속을 여러번 시도 했으나 되지 않아서, 대구 상업 동창회에 대신 좀 알아 봐 달라고 이메일을 보냈읍니다.


그랫드니, 고맙게도 동창회에서 알아 보시고, 일제 때 학적부는 모두 국가 기록원에서 가져 가서 보관하고 있으니 그곳에 가서 알아 보라고 했읍니다. 동창회 분들 덕분에 대구 방문은 필요가 없게 되었읍니다.


그 다음에 필자는 어렵사리 국가 보훈처에 이메일로 보훈처에 대구 상고 학적부가 있는지를 문의했읍니다. 필자가 보훈처에 묻게 된 것은 앞에 언급한 기사에 경북/대구 지역 4개 학교 학적부를 보관하고 있다는 기사가 생각났기 때문입니다.


예상대로, 보훈처가 보관하지만 대외적으로 공개는 할 수 없으며, 국가 기록원을 통해 청구하면 받아 볼 수 있다는 답을 받아서 다시 국가 기록원 의 어느 곳을 통해야 되느냐고 문의한 결과 대전에 본부가 있으나 서울의 부속 기관인 서울 기록 정보 센터에서 발급 받을 수 있다고 친절히 알려 주셨읍니다.


이리하여 필자는 미국에서 이미 필요한 사전 정보를 입수하여 서울 시간으로 월요일 새벽에 인천 공항에 도착하였고, 즉시 급행 열차로 서울역에 도착해 정부 청사 뒷쪽에 있는 기록 정보 센터를 찾아가서 선친의 학적부 발급 신청을 했읍니다.


담당자는 필자와 선친과의 관계를 증명할 서류를 만들어 오라면서 가까이 있는사직동 주민 센터를 알려 주었읍니다. 


한국에서는 호적등 인적 사항에 관한 모든 문서가 전산화되어서 어느 주민 센터에 가든지 자료를 발급 받도록하여 아주 편리해 졌읍니다. 그러한 문서 처리 시스템 선진화 덕분에 사직동 주민 센터에서 호적 등본을 발급 받았읍니다.


필자는 미국으로 나올 때 받은 대한 민국 여권과 머리 속에 기억하는 본적지만 대었는데, 이리저리 여러 곳을 검색한다음 호적 등본을 만들어 주었읍니다.


너무 신기하고 좋아서 그 근처에 있는 한식점에서 점심을 먹고 일어나서 보니 바퀴 냇 달린 러기지 (Luggage) 가 안보여서 깜짝 놀랐읍니다. 그곳 여주인에게 혹시 필자가 바퀴 달린 가방을 가지고 들어 왔는지 물으니까, 아니라고 해서 겁이 덩컹 났지만, 그까짓 것 직전 방문지에 가서 찾아 볼 요령으로 사직동 주민 센터로 뛰듯이 달려갔읍니다.


그곳에 가보니 필자의 바퀴 달린 가방이 "주인님, 왜 저는 두고 혼자 나가셨어요?" 라고 원망 스럽지만 다시 찾아 줘서 안심하는 듯한 눈초리로 필자를 바라보는 듯 했읍니다.  담당자에게 가방을 찾았다고 인사를 하고 나왔읍니다.  아마 예전 같았으면, 가방을 두고 갔다면 벌써 없어졌겠지요.  아마 요즘 한국 사회가 전보다 더 풍요러워져서일 지도 모르지요.


그 이튼날 다시 기록원에 가서 호적 등본을 제출했드니, 선친의 생년월일이 나오는 조항이 있어야하니 선친의 제적 등본을 다시 떼어 오라고 했읍니다.


동 사무소에 갔드니, 어제 도와주신 분이 없어서 다른 분도 할 수 있겠지 하고, 새로운 분에게 신청서를내자, 이분은 저의 주민 등록 번호가 없다고 할 수가 없다고 하는 구먼요.  그러면서, 어제 해준 분은 지금 식사하러 갔으니 기다리는 동안 식사부터 하는 것이 좋겠다고 해서 점심부터 먹고 와보니 어제 도와 주신분이 와 있어서 일단 안심이 되었읍니다.


저의 호적에 선친이 빠져 있었든 것은 큰 형님이 분가를 하셨기 때문에 필자의 큰 집 장손 호적에 아직 있을 것으로 말하고 큰집 장손 이름을 대니 조사해보시고 있다면서 두툼한 본가의 호적 등본을 빼주셨읍니다.

이를 두고보면, 같은 곳에서 같은 일을 하지만, 쉽게 해낼 수 있는 사람이 있는가 하면, 전혀 엄두도 못내는 분이 있군요.  처음부터 기권한 분 얘기로는 몇년 한곳에서 일하다가 다른 곳으로 발령내고, 그기서 일 할만하면 다른데로 보낸다고 불평을 토로하드군요. 인적 자원 활용에 약간의 문제가 있는 것 같습니다.  호적 등본을 만들어 준 분은 일을 너무 잘 처리해서 종로구청장에게 감사의 글을 미국에 돌아간다음에 보낼 생각입니다.


호적 등본을 가지고 기록원 담당자에게 제출하니 선친의 생년월일 등을 확인한다음에 선친의 학적부를 주셨읍니다. 찬찬히 살펴 보니 4장의 학적부에 "대구 상업"이라는 표지가 없어서 이를 지적했드니 그 서류가 대구 상업 학적부의 일부에서 발췌했다는 표식이 들어 있는 한 페이지를 첨가해 주었읍니다.


그런데, 선친의 학적부에 "일신상 사정에 의해서 전학 (자진 퇴학/자퇴)" 으로만 기재되어 있어서"동맹 휴학" 과는 무관한 듯이 보여서 선친이 동맹 휴학 주모자였지만, 평소에 모범생이었기 때문에 다른 학교에서 학업을 계속할 수 있게 편의를 봐준 것이므로, 선친 자퇴 전후로 퇴학자가 얼마나 있는지 알아 봐 달라고 부탁했으나 타인에 관한 정보를 제3자에게 보여 줄수 없다면서 국가 기록원 본청에 온라인상으로 원하는 바를 신청하라면서 웹사이트를 알려 주었읍니다.


그런데, 호텔에 돌아 오니까 "국가 기록원"에서 다섯번이나 전화가 왔다면서 다시 전화할 것이라고 했읍니다.  예상대로 저와 마지막 대화를 나눈 기록원 중견 간부가1930년 부터 1932년 사이 약 3년간 대구 상업에서 퇴학 처분 당한 학생들의 이름은 가리고 성만 보이는 자료를 만들어 주겠다고 하였읍니다.


그분 말씀이 본청에 대한 추가 자료 요청과 아울러 기록원에서 만들어 주는 자료를 합쳐서 그 당시 대구 상업에 동앵 휴학이 있었다는 확실한 증빙 자료가 될 수 있을 것이라면서 미국에서 나와서 선친의 유업을 확인하려는 노력에 감동했다는 말씀을 하셨읍니다.


아무튼, 주민 센터 직원 뿐만 아니라, 기록 정보 센터 담당 직원들도 맡은 바 직무를  충실히 그리고 친절하게 수행하시는데 감사와 경의를 표하며, 시민들의 요구에 신속 정확하게 자료를 작성해서 제공함으로써 날로 대한민국이 발전하고 있음을 내 눈으로 확인 할 수 있어서 너무 기쁨니다. 


과거를 되돌아보면 미래를   있다 (관왕지래觀往知來)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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