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eddykim
Ike Is Best(teddykim)
California 블로거

Blog Open 06.30.2017

전체     146580
오늘방문     211
오늘댓글     0
오늘 스크랩     0
친구     27 명
  달력
 
66년전 휴전 협정 조인으로 전투 행위 중단 이듬해 제네바 협상 한국문제 합의 없어 가장 긴 휴전 계속
07/26/2019 16:44
조회  457   |  추천   3   |  스크랩   0
IP 99.xx.xx.28


휴전 조인된지 어언  66년      아직도 평화 없는 휴전 계속

 


지금부터 66년전 휴전 협정 조인으로 전투 행위 중단했으나


이듬해 제네바 협상 한국문제 합의 없어 가장 휴전 계속


변영태: 한국 최초로 14개조 평화 통일안 제안


미국은 애초에 통일에 관심 없어 현상 유지 고집


박사 협상 결과 없자 7 미국 가서


아이크에게 조그만 전쟁  허하소서읍소


아이젠하워 이박사에게 조그만 전쟁이 3 대전 일으켜


인류문화 파멸시킨다고 이박사 훈계


이박사 휴전 동의하고 한미 방위 조약얻었으나


미군 영구주둔 보장  4-19 계엄군 거느릴 없어


권좌에서 축출되고 권토중래꾀하다 하와이로 유배됨

 

 

반공 포로 석방으로 오히려 중공군의 최대 공세를 맞아 3만여명의 전사상자를낸 금성천 전투를 마지막으로 드디어 1953 7 27 상오 10 휴전 문서에 쌍방이 서명하고 그날 하오 10 부터 휴전이 효력을 발생하여 3 1 개월에 달하는 전쟁에서 총성이 멈췄다. ( 1)


그러나, 아무도 당시에는 66년이라는 긴세월동안 휴전이 계속되리라고는 예상도 못했을 것이다휴전 협정 4 60항에 휴전조인 3 개월 이내에 평화적 해걀을 위한 고위급 관계국간의 정치회의를 개최할 것을 교전 쌍방 정부에 건의한다 규정에 따라 1954 4 26 부터 6 1 까지 스위스의 제네바에서 한국전 참전국과 남북한, 그리고, 중국과소련 대표들이 참석한 제네바 회의가 열렸다.


(이와 함께, 프랑스의 디엔 비엔 전투 참패로 월남에서 발을 뒤의 월남 문제 토의도 있었는데, 북위17 이북은 비엣민이 차지하고, 이남은 비엣남으로 분할 되었다. 이부분은 관심사가 아니므로 여기서 그칩니다.)


당시 냉전이 첨예화해서 토의에서 아무 것도 이루어진 것이 없었다남한 정부는 선거를 북한 지역에서만 실시하자고 고집을하다가, 우방국들 조차도 통일을 위한 선거인데, 남한과 북한에서 동시에 실시해야한다는 여론이 높자, 남측 수석대표인 변영태 외무장관이 본국(이승만 대통령) 협의한 다음 아래와 같은 14개항을 제의하였다. ( 2)


그전까지는 대한민국에서 평화통일안 이라면 말만해도, 색안경으로 보고 잘못하면 감옥행을 수도 있는 요경계 용어로 이단시 되었다.


이승만 박사는 제네바협상이 무의로 끝나자, “휴전은 문자 그대로 전투 행위가 잠시 중단된 상황이니까, 옳다 좋다 미국 형님에게 북진을 개시합시다 하고 조를 요령으로 7월에 미국에 아이젠하워 대통령의 초정을 받아 워싱턴을 방문한 김에 (공교로게도 휴전 조약 1주년 기념일인 1954 7 27) 아이크에게 이렇게 요청을 했다.


휴전 조인을 하고 정치회담까지 치뤘으나 조국의 통일 문제가 아직도 해결책을 찾지 못했읍니다. 허락만 하신다면, ‘조그만 전쟁 통해서 조국의 통일을 달성 있겠읍니다.” 라고 읍소하였다.


그러나, 그말을 듣고난, 아이젠하워 대통령은 각하께서 조그맣다 생각하시는 전쟁이 바로 소련이 참가하는 세계대전으로 벌어져서 핵전쟁으로 발전하게되면, 지금까지 인류가 쌓아온 문화가 모두 잿더미가 것입니다.”라고 아이크는 이박사를 소학교 학생에게  훈계하는 교장 선생님 처럼 타일렀다.


그래도, 이박사는 한사람 믿는 인사가  있었다. 바로 국무장관 덜레스였다. 그는 유명한 반공인사가 아니든가그러나, 이박사는 아연실색했다그렇게도 믿었든 덜레스 장관마저 아이크에 동조하여 자그만전쟁의 위험성을 설파했읍니다. (이부분은 어느 한국 매체에서도 언급한 적이 없었읍니다.---FRUS (미국무부 외교문서철 1954 한국 ) 상세히 나와 있음.)


이후 이박사는 틈이  날때마다,”북진통일 마치 고장난 유성기처럼 뇌까렸읍니다. 이러한 이박사의 잠꼬대 같은 소리에 진절머리를 내든 아이크는 가장 늦게 기록된 1959 6 25일에 열린 411 NSC 회의에서, 이박사가 북진 되뇌이는데, 그들의 엉뚱한 장난을 어떻게 빨리 있겠소? 하고 묻자, 한국에서 유엔군 사령관을 지낸 렘니처 대장, “한국군은 탄약과 기름을 우리 (미군)한테서 일주일 단위로 보급을 받는데, 이상의 분량을 요구한다면, 우리가 금방 알아 차릴 있읍니다.’ 라고 대답하자, 아이크는 일단 안도했다.


아이크는 그래도 마음이 놓이지 않는 , “만일에라도, (이박사) 북진 획책하는 기색이 보이면, 그를 당장 체포하고, 한미방위조약을 폐기하고, 미군을 철수시킨다 소리 높여 말했다.


***이박사가 외교에 능하다고 많이들 뻥까지만, 이박사는 아이크에게는 체포나 축출의 대상이었을 뿐이고, 한미동맹도 한순간에 날아가 버릴  존재에 불과했다.***



아이크에 눈밖에난 이승만은 조봉암 법살, 경향신문 폐간, 보안법 통과 강행등을 보다, 그가 노망에 들렸다는 보고를 받고, 박사와 친근한 월트 져드 하원의원을 비밀 특사 파견하여 하야를 종용했다그러나, 이박사는 아이크의 선의적 권고를 웃어넘겼다. (1959 10 하순)


이듬해 4.19 일어나자, 당시 미대사관 차석이었든 마샬 그린 (Marshall Green) 아이크가 이박사를 이미 용도 폐기처분한 것으로 파악하고 매카나기 대사를 움직여 그의 퇴출에 성공하고, 이화장에서 다시 중토권래를 꾀한다고 판단하여 박사와 가까운 하와이 동지들을 꾀어서 전지 요양하는 형식을 취해서 하와이로 사실상 납치해 갔다. (하와이 동포들의 성금으로 전세기를 발린 것이아니라, 배행기의 주인은 놀랍게도 미국 CIA 였다.


노망들린 그는 (하와이로) 때는 눈치채지 못했으나, 한달후 돌아가려 했으나, 본국에서 허가를 해주지 않아서 귀국할 없음을 알았을 (미국이 막지 않았다면, 감히누가 이박사 귀국을 막을 있었을까?) 비로소, 그가 하와이에 납치된 것을 눈치챌 있었다. 그토록 많은 악정을 베푼 이박사는 그렇게도 애타게 바라든 고국으로 돌아가지 못하고 하와이에서 영면했다.

 

필자


1: 그냥 그대로 두었어도 석방될 반공 포로 미리 석방해 애궂은 우리 장병 3만여 전사

        http://blog.koreadaily.com/teddykim/1110749

 

2: 변영태 한국 외무 장관이 제의한 평화 통일을 위한 14 조항

이러한 우방국 대표들의 견해를 접한 변영태 장관은 522일 한반도 문제의 평화적 해결 가능성을 증진시키기 위해 남북한 동시 총선거를 포함한 ‘한국 통일 14원칙’을 제안했다. 그 내용은 다음과 같다.

1. 통일되고 독립된 민주주의 한국을 수립하기 위해 이전의 모든 유엔 결의에 의거해 유엔 감시하에 자유총선거를 실시한다.

2. 자유총선거는 그동안 실시가 불가능했던 북한에서 실시될 것이며, 남한에서는 대한민국 헌법 절차에 의거해 실시된다.

3. 총선거는 이 제안이 채택된 후 6개월 이내에 실시된다.

4. 총선거 준비와 진행, 이후에 관련 있는 모든 유엔 인원은 선거운동을 감시하고 전 선거구역에서 자유로운 분위기를 구성하기 위해 시행 시책 및 언론 등의 완전한 자유를 향유한다. 지방 당국자들은 그들에게 가능한 모든 협조를 해야 한다.

5. 총선거 준비와 진행, 이후에 입후보자와 그들의 선거운동원 및 가족들은 이동, 언론, 연설 등 민주주의 국가에서 인정되고 보호받는 모든 인권의 완전한 자유를 향유한다.

6. 총선거는 비밀투표와 보편적인 성인 참정권에 근거해 실시된다.

7. () 한반도 국회에서의 대표권은 한반도 전체인구에 비례해야 한다.

8. 선거구에서의 정확한 인구비례 대표제를 할당하기 위해 유엔 감시하에 인구조사를 실시한다.

9. 전 한반도 국회는 총선거 후 서울에서 소집된다.

10. 특히 아래의 문제들은 전 한반도 국회가 결정한다.

     . 통일된 한반도의 대통령을 새로 선출할지 여부

     . 현존 대한민국 헌법의 개정 여부

     . 군대의 해체 여부

11. 전 한반도 국회가 개정하지 않는 한 현행 대한민국 헌법은 유효하다.

12. 중국군은 총선거 실시 1개월 전까지 철군을 완료해야 한다.

13. 유엔군의 철군은 총선거 실시 이전에 개시할 수 있으나, 통일된 정부가 한반도 전체를 장악하고 또한 그 사실을 유엔이 확인할 때까지는 철군을 완료해서는 안 된다.

14. 유엔은 통일되고 독립한 민주주의 한반도의 영토보전과 독립을 보장한다.


3: 이박사는 내가 하와이로 축출했다 그린 증언

     http://blog.koreadaily.com/teddykim/1059910

 

과거를 되돌아보면 미래를   있다 (관왕지래觀往知來)

 

Copyright 2019 Teddy Kim  All Rights Reserved

 

추기 글을 읽어 주시는 독자 제위께 항상 감사하는 마음으로 주말을 제외하고 매일  편의 글을 올립니다.   혹시 제글 <필명(Ike Is Best (teddykim)>   보이지  않으면  테마별

새글 밑의  박스   뒤에 있는기타” 항목을 누르시면  글을 보실 수있읍니다

 글은 모두 테마별 선택을 “기타”  잡고 있읍니다. 

 

다른 방법으로는 http://blog.koreadaily.com/view/myhome.html?med_usrid=teddykim 으로 들어 가셔서,  왼쪽 칼럼  아래 있는 “달력”  밑금이 있는 날짜를 누러셔서 최근 

기사를 접하실  있읍니다.

 

오늘도  글을 애독해 주셔서 다시   감사를  드립니다. --- Teddy


66년전 휴전 협정 조인으로 전투 행위 중단, 이듬해 제네바 협상 한국문제 합의 없어 가장 긴 휴전 계속
이 블로그의 인기글

66년전 휴전 협정 조인으로 전투 행위 중단 이듬해 제네바 협상 한국문제 합의 없어 가장 긴 휴전 계속