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런던의 대 역질 (1665~66) 10만 사망
02/16/2018 15:4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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런던에서 괴질로 죽은 사람을 수레에 담고 있다.   이처럼 죽은이가 10만


런던의 역질 (1665~66)


대도시에 화재 다음으로 많은 인명 피해


위생 시설  미비가 최대의 원인


당시 괴질의 원인도 몰랐고


온갖 괴상한 방법으로 치료


환자가 생기면, 그집을 완전히 격리시켜


런던에 불이 나서 괴질 발병 중단


불이 쥐를 박멸시켰기 때문


 독감 유행중   예방주사 맞도록

 

도시 생활을 하다보면 가장 위험이 아무래도 화재이다.그러나, 도시라는 것이 원래 인구가 밀집해서 살다보니, 역병이 발생하면 빨리 전파되어 많은 인명 피해가 발생한다. 보건 위생 상황이 상당히 개선된 현재도 근년 한국에서 메르스 사태로 생각지도 못한 피해가 있었다. 최근에는 미국에서 독감이 유행하여 건강한 사람도 걸린지 오래되지 않았어도 급작히 죽는 경우가 심심찮게 일어난다는 보도에 접한다.


오늘은 중세 영국 런던에서 십여만명의 인명을 앗아간 대역병에 대해 설명 드리려합니다.


흑사병이라 불리운 역질이 유럽을 휘쓸 영국의 런던에도 몰아쳐서 1348년에 7만명의 사망자를 발생시켰다 이후 간헐 적으로 병이 런던을 침범해서 1603년에 3만명을, 1625년에 3 5천명을, 그리고, 1636년에도 1만명을 앗아 갔다.


1664 겨울에 밝은 혜성이 나타나서, 불길한 조짐이라고, 런던 시민들은 무슨 변고가 일어날가 하고 전전긍긍하였다 당시 런던은 테임스 북쪽에 성벽을 쌓고 교외와는 대문을 통해서 나가야했고, 중심에 런던 다리 (London Bridge)가테임스 남쪽으로 연결되어 있었다


무렵, 런던의 빈민들이 사는 구역에는 좁은 땅에 많은 인구가 밀집해서 살고 있어서 위생 상태가 말이 아니었다지금 우리가 알고 있는하수도 처리가 없어서 길가로 하수가 흘러내려갔고,  조약돌로 포장된 보도는 짐승 , 쓰레기, 그리고 집에서확 던진 꾸정물 등으로 미끄러웠다.


런던시는 갈쿠리꾼들을 고용하여 길거리에 쌓인 가장 역겨운 쓰레기들을 수레에 담아서 성벽 밖에 있는 얕은 언덕에 내버리는데, 그대로 썩어나갔다.   근처를 지나려면 냄새가 너무 심해서 손수건으로 코를 막고 지나가야 했다


성벽 밖에 상인들과 장인 (匠人) 들이 몰려 사는 교외가 형성되었는데, 모두 판자촌이었고, 여기도 위생시설은 전무하였다런던시내로 몰려든 이주민들을은 공화정 시대에 도망간 왕당파들이 살든 저택에 입주했는데, 방마다 다른  가구가 들어서서, 한집에 여러 가구가 살았다. 그래서 이러한 저택들이  함부로 사용되어 파손 되고 따라서 쥐들이 끓는 빈민가가 되었다.


이상은 당시 런던 시의 형편 없는 위생 상태 가운데 일부만 뽑은 것으로 당시 발생한 역질이 비위생적 상황에 기인한다는 점을 부각시키는 것입니다 당시에는 역질이 빨리 퍼졌지만,  발병 요인을 알지 못했읍니다.


당시에는 역질의 원인에 대해서 온갖 해괴한 억설과 주장이 생겼는데, 땅속으로부터 전염성 악취 분사되느니 , 이상 기후 탓도하고, 가축이 들은 병에서 전파 된다, 동물들의 이상한 행동 때문이다또는 개구리, ,  파리, 두더쥐가 많아서 그렇다는등이었다. 그러나, 정확한 원인은 1894년에서야 알렉산더 여신 (Alexandre Yersin) 쥐벼룩 병원균을 옮겼다는 점을 알아냈다그리고, 설은 2016년에 와서 DNA 검사를 통해 완전히 확인되었다.


역사가들은 괴역이 처음 네델란드에서 시작된 것으로 본다 암스테르담에서 목화를 실고 오는 화란 배를 통해 이병이 영국으로 전해 졌다고 믿을 있었다. 화란에서 1663~64 사이에 병으로 5만명이 죽었기 때문이다.


영국에서 처음 발병지가 런던 부둣가 근처였고, 이지역에서 빈한한 근로자들이 밀집해서 살았으며, 첫번재로 죽은 사람은 레베카 앤드루스로 기록되었다. 1665 7월에는 런던 시내에도 괴질이 돌아서, 여유가 있는 사람들은 시골로 떠났다영국왕 챨스 2세는 가족과 근신들을 데리고 옥스포드셔 (Oxfordshire) 옮겨갔다. 그리고 부유한 상인들과 전문가들도 런던을 떠나서 상점들이 모두 문을 닫았다괴질이 맹위를 떨치자 많은 시민들이 런던을 떠나서 시내가 빈듯하여 길가에 잡초가 나기시작했다.


그렇지만, 런던 공무원들은 런던시장 로렌스 (the Lord Mayor of London, Sir John Lawrence) 함께 그대로 남아 있었다그리고 소수의 성직자, 의사 약제사만 남았으며, 돈이 없어 시골로 없는 빈곤층은 어쩔 없이 남았다.


런던에 남은 시민들은 원인도, 전파 방식은 물론 치료 방법도 몰랐지만 어떻게 해서든지 병자를 고치거나, 병의 전파를 막아보려 노력했다 일환으로 악역으로 죽은 시체를 구덩이를 파서 한꺼번에 매장했는데, 좋은 예로, 런던의 동네에 길이가 50 피드나 되고, 폭이 20 피트나되는 구덩이를 파서 1,114 구의 시체를 같이 묻었다.


괴질이 기승을 부리자, 병자의 가족을 돕기를 중단하는 지경에 이르렀다하인이 병이 들면 곳이 없다는 것을 알지만 집에서 나가라고 말하고, 심지어 어느 가구에 환자가 발생하면, 식구들이 밖으로 나오지 못하세 하고, 그집 대문에 주여 우리 가족에게 자비를베푸소서!” 라는 표말을 붙였다.


정부 관리들은 방역을 위해 다음과 같은 조처를 취했다:


*의사들을 채용했다.

*공기를 정화시킨다고 믿어서 불을 밤낮 계속해서 태웠다. 그리고, 후추나 , 호프 같이 강한 냄새를 발생시키는 물질을 태웠다.

*악역을 방지시킨다며 담배를 피우는 것을 권장했다  


*짐승들이 악역을 전파한다고 믿어서 길고양이와 개를 죽이라고 해서 4 마리의개와 20 마리의 고양이를 죽였다그당시 몰라서 그렇게했겠지만 쥐를 잡아 죽이는 고양이를 죽이는 바람에 악역이 창궐하게 되었다.


그래서 1665 9  19~26 1주간이 최절정에 달했는데,  7,165명이 주간에 죽었다 이후로는 사망자 수가 줄어들었다 이듬해 (1666) 2월에 영국 왕과 왕실은 런던에 돌아 것을 결정했다. 이후로도 9 까지는 간헐적으로 괴질에 걸려서 죽었으나, 그때부터 괴질이 전파되지 않았다.

이때 런던의 화재가 발생해서, 아마도 불이 괴질의 전파에 종지부를 찟게했을 것으로 본다.


런던의 악역으로 십만 명의 시민이 죽었다. ,  인구의 4분의 1 희생되었다.   이렇게 많은 사람이 죽은 것은 1 2 세계 대전 죽은 사람들 보다 더많은 사상자를 것이다. 처럼 도시에 악역이 돌면 많은 인명 피해가 발생한다


과거를 되돌아보면 미래를 알 수 있다(관왕지래觀往知來)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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