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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끼낀 바위(supernaturalma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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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미여행(3) - 마추픽추 입성의 꿈, 드디어 이뤄지다.
04/10/2014 22:1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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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우리는 비탈에 납작 붙어서 아래로 흙이 무너지지 않도록 땅에 손가락을 찔러 꽂은뒤

   미끄러운 풀을 밀어 헤치면서 몸을 위쪽으로 끌어 올렸다.  아득한 낭떨어지 저 아래에서는

   우리가 밧줄을 잡고 건너온 우르밤바강이 성난 급류로 하얀 거품을 일으키고 있었다.

   인디언 안내인이 이 근처에는 사냥감을 뒤에서 공격하는 페르드란스 독사가 많다고

   신음하듯이 일러주었다,'

  '우리는 인적이 전혀없는 숲쪽으로 길을 잡았다.  갑자기 폐허가 된 집들의 벽이 눈에 들어왔다.

   잉카 최고의 석조기술로 지은 집들이었다.   (중략)   정교하게 다듬은 마름돌들이 정확하게 맞물린

   벽들은 경이로움 그 자체였다.'


   잉카제국의 최후항쟁장소인 수도 빌카밤바를 찾으러 1911년 페루를 찾아 토착인디언의 안내를 받으며

   피사로를 피해 망코2세가 탈출한 길을 더듬어 나가다가 드디어 가파른 산허리에서 한도시를 발견했을때

   적은 예일대 고고학교수이며 역사학자인 하이람 빙햄(Hiram Bingham 1875-1956)의 글입니다.












   공중도시, 하늘도시.

  MACHUPICCHU는 INKA의 수도였던 쿠스코시에서 우르밤바강(아마존강의 원류)을 따라 북서쪽으로

  114km 내려간 해발 2400m 지점에 건설되었으며 숲과 험한산세들로 인해 산허리에서는 보이지 않으므로

  잃어버린도시라는 이름으로도 불립니다.

  총면적이 5제곱킬로미터로 도시 절반가량이 경사면에 세워져있는데 한쪽면은 만년설로 덮혀있는

  살칸타이(Salcantay)산에 인접해있어 험준하며 유적주위는 성벽으로 견고하게 둘러싸여 완전한

  요새의 모양을 갖추고 있습니다. 

  마추픽추는 잉카인들의 이중성(상과하, 좌와우, 남과여, 등)이라는 믿음을 토대로하는 절묘한 위치에

  건설된 도시로 마추픽추(Machu Picchu 케추아어로 늙은 봉우리)는 와이나픽추(Huayna Picchu 젊은 봉우리)라는

  원뿔모양의 봉우리와 마주보고있는데 와이나픽추는 잉카인들이 토템으로 신봉하는 두가지 동물의 형태를

  갖고있습니다.  앞에서보면 그봉우리가 마치 퓨마의 형상으로 보이며 좌측에있는 세개의 작은 봉우리는

  마치 콘돌르가 날고있는 모습으로 보이는데 잉카인들에게 와이나픽추는 지상과 천상의 세계를 보여주는

  신성한 산으로  그곳에서 바라보이는 대지에 신성한 도시를 건설한 것입니다. 와이나픽추에서 내려다보이는

  이 도시의 모습은 날개를 활짝펴서 날고있는 콘도르의 형상이라고 합니다.







 



  ㅌㅐ양의 후손으로 생각하며 자처한 잉카인들은
태양을 최고의 신 창조주로 숭배하였으며 9대 파차쿠티 황제시대에는 인구가 천백만 명이나 되었고
서부의안데스산맥과 태평양사이의 해안에 남북으로 3200km이상 뻗어있고 면적은 100만 제곱킬로미터에 달하는
대 제국이 되었지만 읽고 쓰는 문자없이 노끈의 빛갈이나 매듭짓는 방법등을 사용하여 여러가지 뜻을 표시하는
'키이프(quipu)라는 결승문자를 사용했습니다. 놀라운것은 다른문명에서 기본이라고 볼수있는
동물이나 바퀴를 사용한 도구를 활용하지 않았다는점, 그럼에도 불구하고 도로, 계곡을잇는 적교, 농업용수로,
거대한 성채를 비롯하여 궁전과 신전을 건설하였으므로 현대인들이 놀라는것입니다.
의술도 상당한 수준이어서 절단수술, 두개골에 구멍을 뚫는 수술도 감행했으며
고대 이집트인들의 미라 만드는것에 버금갈 정도로 미라제작술도 완벽하게 터득하고 있었읍니다.
특이한것은 제국안에서 나오는 금으로 마치 구리나 놋쇠를 쓰듯이 금을 사용하면서 찬란한 황금문화를 꽃피우고 있었고
종교적인 건물에는 태양신의 상징으로 황금을 아낌없이 사용했읍니다.








1532년 스페인의 황금사냥꾼 피사로는 현대무기로 무장한 178명의 군대를 이끌고 들어와

아타왈파왕을 포로로 잡고 7x5x3m 크기의 방안에 피사로가 올린 손높이 만큼의 황금을 채워주면

석방해주겠다고 약속했지만 막상 황금을 받아쥔후엔 살해해버림으로

잉카제국의 멸망을 가속화했습니다.








    마추픽춘는 스페인에 정복된이후 5세기동안이나 정글안에 파묻혀 있었음에도

    지붕을 제외하고는 거의 훼손되지 않았는데 그것은 울창한 수림과 뾰족한 봉우리들이

    마추픽추를 외부세계와 격리시키고 있는데다 신성한 계곡으로 불리며

    우기에는 통과할수도 없을정도로 지형이 험한 보에니케의 골짜기때문입니다.













     마추픽추를 건설한 기원에 대해서는 분명치 않습니다.

     높은 건축지식으로 건설된 것으로 사용된 돌들을 600m아래에있는 깊은 골짜기로부터

     채취한것들인데 어떻게 운반해 왔는지 - - - ?

     커다란 돌들을 다듬는 솜씨가 정교하여 각변의 길이가 몇미터나되고 모양도 제각각인 돌들을

     정확하게 잘라 붙혀서 성벽과 건물을 세웠으며 특히 중요한 건물의경우 돌의 표면을

     젖은 모래에 비벼서 매끄럽게 만들었기 때문에 종이하나 들어갈 틈도없이 연결되어 있습니다.








  마추픽춘는 고지에 위치함으로 물을확보하는것이 가장 중요한 일이었는데

  잉카인들은 식수와 농사에 필요한 물을 끌어오기위해 지하수가 나오는곳으로부터

  돌을 다루는 뛰어난 솜씨를 이용하여 고랑을 만들었습니다.






  공동마당에는 커다란 맷돌, 부피가 큰 농기구, 연료로 사용하는 리마의 배설물 저장소가 있으며

  그리고 추녀(잉카인들의 주식으로 감자 말린것)를 만들기위해 태양과 서리에 번갈아 노출되도록

  감자를 널어 놓았습니다.













    마추픽추는 제례의식의 중심지로 약 천이백명이 거주한것으로 추정되며

   '포소세코'라 불리는 배수로를 따라  크게 두 지역으로 구분되어 있습니다.

    유적의 북쪽은 종교와 의례시설 및 주거지역으로 이루어져있는데

    남쪽에는 층층이 조성한(3m씩 오르는 계단식밭이 40단이 있어서 약 3000개의

    계단으로 연결) 계단식 밭인 '안데네스'가 자리하고 있습니다.

    북쪽의 주거지역은 다시 서쪽의 '아난'과 동쪽의 '우린'으로 나뉘어지는데

    아난구역은 왕궁 탑 신전등 조형성이 뛰어난 종교적인 건축물로 구성되어있고

    우린지역의 대부분은 대중을 위한 주거와 작업공간 창고가 차지하고 있습니다.



  








     200여개의 건물로 이루어진 유적지의 대부분은 가옥이나 저장고로 지형의 장점을 최대한 이용하여

     화강암으로 건설했는데 출입문은 사다리꼴이고 지붕은 3000m이상의 고지대에서만 자라는

     이추(ICHU)짚으로 만들어 덮었으며(현재 복원된 건축물의 지붕도 이추로 덮었음)

     정방형의 공동마당을 두고 열개씩 무리지어 지어진 2층집들은 좁은도로나 돋은골목으로 연결되어 있습니다.













          종교건축은 주광장둘레에 축조했는데 정교한 부조가 세워져있는데

          반원형의 탑이 있는 태양신전, 3개의 창문이 있는 신전,일명 제1신전, 왕의묘 등입니다.

          왕의묘는 잉카 최고의신에게 헌정된 숭배의 장소로 추정하며

          잉카인들의 믿음을 표현하는세계단이 있는데 이는 지하(죽음) 지상(현생) 하늘(신)을 의미합니다




.

         




















     눈에 띄는것은 천문관측을 위해 특별히 고안된 시설로 성 중앙의 '신성광장'에 거대한 해시계가 있는데

     잉카인들은 그것을 이용해 시간을 잿던것으로 생각되며 또한 하나의 거대한 돌을 깍아만든

     인티와타(Intihuatana 케츄아어로 태양을 끌어들이는 자리)는 해시계와 유사한데

     동짓날(남반구에서는 여름) 하루동안  사제들은 그곳에서 제물을 바치며 태양신에게 제를 지냈다고 합니다.

     또 태양을 묶는 기둥이라는 뜻도 가진 이 돌기둥은 높이 1.8m 너비36cm로

     이 돌기둥 바로위에 뜬 태양을 붙잡아 둔다는 의미로 돌기둥에 끈을매는 의례도 지냈다고 하는군요.

     또 동서남북을 가리키는 방위석을 만들어 흐린날에도 동쪽을향해 제사를 올릴수 있도록했고

     콘돌신전을 만들어 희생제물의피를 콘돌머리부분에 뿌려 콘돌에게 제를 지냈습니다.


       잉카인들은 태양이 두개의 '의자'를 갖고있다고 믿었는데

       북쪽의 주의자와 남쪽의 보조의자가 그것인데

       태양이 남쪽의자에 자리잡을때인 하지가 한해의 시작이었습니다.




 






             빙햄은 장의석이 있는 제단구역에서 많은 인골을 발견하였는데

             그들 대다수는 태양신에게 제물로 바쳐지기 위해 선택된 여자들로

             발견된 175구의 미라중 80%가 여자였으며

             나머지 20%는 사제와 아이들이었습니다.
















     2001년 일본 교토대학 방제연구소는 마추픽추 유적지의 뒷쪽 경사면이 한달에 1cm씩 아래계곡으로

     흘러 내리고있어 언제 붕괴될지 모를 정도로 지반이 취약한 상태라고 경고한바 있는데

     마추픽추는 두 개의 산(마추픽추와 와이나픽추)능선 사이,  더 높은 산(마추픽추)정상에서 흘러내린

     퇴적토양위에 자리잡고있어 물을얻기쉽고 곡식을 경작할수 있지만 지반은 취약합니다.

     실제 대신전의 동쪽벽이 기울며 무너져 내리는것을 보면서 지반에 영향을 주어 신전의 일부분이

     무너지고있다고 판단, 유네스코(마추픽추는 1983년 세계문화유산으로 등재)가 우려하여

     관광객 숫자를 제한 하루 2500명으로 통제하고 있습니다

           이 마추픽추를 통하여 일년에 6억불이상의 관광수입을 벌어들이고있는

           페루정부는  이 통제로 인하여 난감해하고 있다는군요.










                    2007년 7월에

                  *새로운 세계 7대 불가사의*중 하나로 선정된 마추픽추가

                    긴 잠에서 깨어난지 어느새 100년이 다 되어가지만

                    아직도 이 wonderful city는

                    미궁속에 존재합니다.


                        잉카인들이 첩첩산중 산꼭대기에

                        어떻게 이런 도시를 세웠는지,

                        왜 이 도시를 놔두고 사라졌는지,

                        그렇다면 그들은 어디로 갔는지 - - -.


                             여전히 이곳은 수수께끼로 남아 있습니다.















     PS; 우리가 막 정상에 올라

           사진으로 수없이 봐왔던

           그 실상 마추픽추를 보면서 감격하고 있을 때

           시꺼먼 구름이 오른쪽 산허리에서 몰려오고 있었읍니다.

           간단한 설명과 함께 사진을 찍고

           마추픽추시내로 들어가기위해 가파른 돌계단을 내려가는데

           장대같은 소나기가 쏟아지기 시작해

           대충 설명을 들으며 TOUR를 거의 끝낼때까지 그치지 않았답니다.

           그런고로 카메라는 꺼내지도 못했고 - - -.

           우리의 몰골은 물에 빠진 - - -.

           지금까지도 커다란 아쉬움으로 남는 부분입니다.


           보충사진들은 REFERENCE BOOK에서 구해 삽입해 보았는데

           그렇게 좋아보이지는 않는군요.

           양해를 구합니다.






 


















ㅇㅡㅁ   악 ;  둥지 에서
글 과  사진 ;  이끼낀  바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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