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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성봉(sungblee200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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빌리 그래함 목사
03/06/2018 10:1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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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늘나라로 십자군 운동 떠났다!

한국 신문에  올려진 제목이다.

애도 한다고 

학처럼 고고(?)하게 살다 간

빌리 그래함을

이렇게 똥통에 쑤셔 박았다.

웃어야 하는가?

울어야 하는가?

 

황진이는 당대의 석학의 한 사람이던 

서경덕(徐敬德) 파계시키는 것은 실패했지만 

생불(生佛)이라 불리던

천마산 지족암의 지족선사(知足禪師) 

유혹하여 파계시키고 지옥에 빠뜨렸다.

 

‘돌대가리’ 라 굴리고 굴려도 답을 못 찾았다.

지금도 대가리 굴리고 있다.

 

요즘 야홰가 사는 천국

예수가 사는 천국

얼마나 개판 오분 전이 되였기에

빌리 그래함이 세상 인연을 끊고 찾아가

‘십자군 운동’을 해야 하는가?

 이쯤 되는가? 


십자군 운동?

자다가 봉창 뚫는다!

좀 야한 이야기이지만 이 말처럼 맞는 말이 없다.

남북이 단일팀으로 뛴 여자 아이스하키

연습경기 생각하나?

 

세상 사람 모두 치매에 걸린 것 같다.   

잊었는가?

'운동이라 쯪쯪~~

십자군 전쟁

죽이고 죽이는 

'운동이 아니고 '전쟁이다.

 

십자군 전쟁은 인간이 역사를 기록하기 시작한 후  

가장 긴 300 + 년 전쟁이며

믿는 방법이 다르다는 이유로

마나 많은 사람이 죽고 다쳤는가?

 

조선의 역사는 석가 가 망쳐 놓았고,

유럽은 야홰 잡신이 망쳐 놓았다.

 사가들 정의이다.

 

빌리 그래함은 ‘천국’으로 떠났다.

‘개신교 도’ 아니 대다수 미국국민이 믿고 있는 것 같다.

요즘 100 세 인생이라지만 99 세 면 손해 보는 장사는 

아니었기 때문일 것이다.

 

천막 교회에서 시작 개신교 교황(?)대우를 받았다면

인간적으로 출세를 한 것 맞다.

좋은 일 많이 했다.

 

빌리 그래함은 12 명의 미국 대통령에게 

카운슬러 또는 고문으로 봉사했다.

평생 동안 전 세계 185개국에서 수많은 사람들에게 설교를 했으며

라디오, TV 및 인터넷에서 거의 일정한 존재감을 유지하면서 

수백만 건의 메시지를 전했다.

빌리 그래함의 설교 사역은 1949년 로스 앤젤레스 다운타운에서

'캔버스 대성당'이라고 알려진 대형 흰색 천막 아래에서 

‘십자군 운동’을 펼칠 때 처음 전국적인 명성을 얻었다.(펌)

 

十字軍 전쟁은 인류역사에 기록된 기독교 범죄이지

천사들의 선한 전쟁은 될 수 없다.

아닌가?

마약 에 알콜 중독자였던 아들에게 모든 걸 대물림 했으니 

손가락질 받아야 하는 데 
모두 입 다물었다.

?

야홰가 죄를 사해주고 천국으로 초청했으니 끝인가?

참 이해 할수 없는 게 '야홰라는 잡신의 처신이다.

이것도 내로남불인가

 

좀 정상적(?)이었던 것은

땅을 치고 통곡하는 예배가 없었던 것이다.

 

십자가 운동 

아니 

전쟁하려 떠나는 

출정식인데

엄숙하게 폼 잡았던 것도 맘에 안 들어~~


백과사전에서 훔처온 자료.

십자군 전쟁(十字軍戰爭,: Crusade  중세 라틴 교회의 공인을 받은 종교전쟁들이다좁은 의미의 십자군 전쟁이라고 하면 성지 이슬람 세력으로부터 탈환하기 위해 지중해 동해안지역에서 진행된 전쟁들을 가리키나넓은 의미에서 중세의 기독교회에서 주동한 다른 전쟁들을 십자군 전쟁으로 보는 관점 또한 존재한다이교도 이단의 토벌가톨릭 집단 내부의 분쟁정치적 이득 등 전쟁의 동기는 매우 다양했다십자군 시대에는 '십자군 전쟁'이라는 말이 존재하지 않았으며, 1760년경을 전후하여 처음 사용례가 나타난다.

1095 교황 우르바노 2 클레르몽 공의회에서 제1 십자군을 소환한 것을 최초의 십자군 

1차 십자군의 성공으로 지중해 동해안에는 4개의 십자군 국가(에데사 백국안티오키아 공국예루살렘 왕국트리폴리 백국)이 세워졌다

십자군들은 이동하는 경로상에서 약탈을 저지르곤 했고십자군 지도자들은 획득한 영토를 본래 명분에 따라 비잔티움 제국에 반환하기보다 자기 영토로 삼는 경우가 많았다민중 십자군 때는 수천 명의 유대인들이 십자군에게 살해당하는 일이 벌어졌고(라인란트 학살), 제4 십자군 때는 비잔티움 제국의 수도 콘스탄티노폴리스가 십자군에게 함락, 약탈당하기도 했다하지만 십자군은 분명히 서양문명사에 유의미한 영향을 남겼다십자군으로 인해 지중해의 상업과 교역이 번창제노바 베네치아 같은 해상공화국들이 번영했다교황의 지도에 따라 라틴 교회라는 집합적 정체성이 형성되었으며영웅주의기사도신앙심은 중세 문학과 철학의 촉매가 되었다십자군들은 이동하는 경로상에서 약탈을 저지르곤 했고십자군 지도자들은 획득한 영토를 본래 명분에 따라 비잔티움 제국에 반환하기보다 자기 영토로 삼는 경우가 많았다민중 십자군 때는 수천 명의 유대인들이 십자군에게 살해당하는 일이 벌어졌고(라인란트 학살), 제4 십자군 때는 비잔티움 제국의 수도 콘스탄티노폴리스가 십자군에게 함락, 약탈당하기도 했다하지만 십자군은 분명히 서양문명사에 유의미한 영향을 남겼다십자군으로 인해 지중해의 상업과 교역이 번창제노바 베네치아 같은 해상공화국들이 번영했다교황의 지도에 따라 라틴 교회라는 집합적 정체성이 형성되었으며영웅주의기사도신앙심은 중세 문학과 철학의 촉매가 되었다.

The Oxford English Dictionary links the etymology of the word "crusade" to the modern French croisade, Old French croisee, Provencal crozada, Spanish cruzada, Italian/medieval Latin crociatabased on the verb "to cross", "a being crossed", "a crossing" or "marking with the cross", or "a taking the cross". The Middle English equivalents were derived from Old French; croiserie in the 13th?15th centuries and croisee in the 15?17th century. "Croisade" appeared in English c. 1575, and continued to be the leading form until c. 1760.[2] Although the term "Crusade" has been adopted by historians to describe the Christian holy wars from 1095, the range of events to which it has been applied is so great that its use can create a misleading impression of coherence, particularly regarding the early Crusades.[1]

The Crusades in the Holy Land are traditionally counted as nine distinct campaigns, numbered from the First Crusade of 1095?99 to the Ninth Crusade of 1271?72. This convention is used by Charles Mills in his History of the Crusades for the Recovery and Possession of the Holy Land (1820), and is often retained for convenience even though it is somewhat arbitrary. The Fifth and Sixth Crusades led by Frederick II may be considered a single campaign, as can the Eighth Crusade and Ninth Crusade led by Louis IX.[3]

 

The Oxford English Dictionary links the etymology of the word "crusade" to the modern French croisade, Old French croisee, Provencal crozada, Spanish cruzada, Italian/medieval Latin crociatabased on the verb "to cross", "a being crossed", "a crossing" or "marking with the cross", or "a taking the cross". The Middle English equivalents were derived from Old French; croiserie in the 13th?15th centuries and croisee in the 15?17th century. "Croisade" appeared in English c. 1575, and continued to be the leading form until c. 1760.[2] Although the term "Crusade" has been adopted by historians to describe the Christian holy wars from 1095, the range of events to which it has been applied is so great that its use can create a misleading impression of coherence, particularly regarding the early Crusades.[1]

The Crusades in the Holy Land are traditionally counted as nine distinct campaigns, numbered from the First Crusade of 1095?99 to the Ninth Crusade of 1271?72. This convention is used by Charles Mills in his History of the Crusades for the Recovery and Possession of the Holy Land (1820), and is often retained for convenience even though it is somewhat arbitrary. The Fifth and Sixth Crusades led by Frederick II may be considered a single campaign, as can the Eighth Crusade and Ninth Crusade led by Louis IX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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