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새벽녘 정원
04/12/2013 05:1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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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쩐일인지 새벽 4시 반에 잠이 깼다. 뒤치락 거리다 얼마전에 파머스마켓에서 사다둔 몇가지 허브와 꽃 모종이 생각났다. 모종을 사오면 늦어도 그 다음날 심는편인데, 지난 며칠간 날씨가 영 뒤숭숭해서 꽃을 옮겨심을 엄두가 안났다. 소위 도깨비날씨래나.... 꽃피는 춘삼월도 지나고 춘 사월에 웬 서리, 이건 아침에 일어나니 한 겨울이 다시온것 같았다. 무엇보다 요즘 한참 잘 자라고 있는 상추와 케일을 비롯한 봄채소들이 걱정이 되었는데 다행히 얼지는 않았고, 사다둔 꽃 모종들도 꽃잎을 잔뜩 오무리고 있는것이  안쓰러웠지만 그런대로 괜잖아 다행이었다.

 

내친김에 커피믹스를 한잔 타 마시고 가든용 고무장갑을 손에 끼었다. 사온 모종들을 앞마당으로 옮기고, 부활절 기간동안 내내 향기를 품었던 거의 시들어가는 백합과 튜울립도 뿌리만 땅에 묻기위해 밖으로 가지고 나왔다. 민트와 베질 모종을 화분에 옮겨심고 이웃에게서 얻어온 돗나물은 그늘진곳에 그냥 뿌려 두었다. 번식력이 좋은 돗나물은 물기만 충분하면 그라운드 커버로도 무척 잘 자란다.양귀비 처럼 생긴 꽃 모종은 그새 바람에 꽃잎이 달아나버리고 기다란 목만 남았다. 늘 바람이 부는 우리집 마당에 잘 안  어울리는 꽃을 파머스마켓에서 봤을때 청초하고 여린 자태에 반해 덜컥 사온것이다.해마다 봄이 되면 여러종류의 꽃을 사다심는데, 더운 텍사스 날씨에 그나마 잘 자라는 꽃들을 알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꽃을 사러 가면 꼭 즉흥적으로 사게 되는 꽃들이 있다. 이유는 단 한 가지다. 예쁘다는것....

 

모종을 다 옮겨심고 새벽 불빛에 가든을 보니 느낌이 새삼 다르다. 모든 살아있는것은 눈짓을 한다고 어떤 시인이 그랬던가...겨우내  잊고있었던 장미들도 푸릇푸릇한 잎으로 살아있음을 말하고 작년가을에 사다심었던 노란색 보라색 팬지도 큰화분 한켠에서 부활절을 잘 지냈다고 말하고 있다.글라디 올러스도 잎을 틔우기 시작했고, 개나리는 핀가 싶었는데 벌써 꽃잎이 보이지 않는다. 새벽녘어스름한 빛에 모든 화초들이 다들 '살아있다' 고 합창을 하고 있는것이다.

 

똑 같은 정원인데도 새벽녘 정원은 특유의 무언가 가  있다. 늘 있던 자리에 그대로 있는 나무들 조차 처음보는 나무처럼  느껴진다. 사람은 위치가 그사람을 만든다고 하지만, 새벽녘에 바라보는 정원은 여명의 기다림과 신선한 공기가  모든것을 새롭게 만든다.  아직 아무도 찾아오지 않는 고요와 새벽빛이 만들어내는 아주 오래전 이야기 같은 정원, 살아있음을 말하지 않아도 느껴지는 생명력과 아침을 준비하는 바쁜 몸짓들.... 이슬이 사라지기 전에 뮤즈 들은 꽃잎위에 살포시 내려놓은 날개를 접지 않을것이다.

 

화분흙을 만지며 베이지 쉐타의 소매끝이 흙에 범벅 된것을 집안으로 들어와서야 알게 되었다. 흐르는 물에 소매끝을 씻으며 언제쯤 새벽녘 정원을 다시 볼까 생각해본다. 그냥 후다닥 잠깐동안 불을 켜고 보는것이 아닌 그들과 함께 머무는 새벽녘 구도의 시간, 언제쯤 그 시간을  다시한번 갖게 될까, 꽃들이 주는 모든 살아있는 것들에게서 나는 생명의 내음,그 내음을  난 놓칠수가 없다.

봄꽃,화분정리,돗나물,새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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