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변신, 장영희
06/10/2010 17:23
조회  1517   |  추천   5   |  스크랩   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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변신

 

 

 

 

 

 

아침에 눈을 뜨면 문득 천장의 벽지 무늬가 낯설게 느껴지는 날이 있다.

주위를 둘러보면 매일 습관처럼 보는 방이 갑자기 생경하게 느껴지고

내가 잠들어 있는 동안 누군가 나를 4차원의 세계에 옮겨 놓은 듯,

내가 있는 곳이 어디인지,

나는 누구인지 순간적인 기억상실증에 걸릴 때가 있다.


시간이 되면 일어나 기계처럼 학교 가고, 버릇처럼 가르치고

이런저런 일에 치여 밤이 되면 지쳐 잠들고…. 벌써 오월인데,

다람쥐 쳇바퀴 도는 생활 속에 그야말로 쏜살같이 흐르는 세월,

허무할 뿐 아니라 죄의식마저 느낄 정도이다.

장영희가 이 세상에 존재하는 이유가 뭔지,

하루하루 귀중한 삶을 낭비하고 있는 것은 아닌지….


그저 타성처럼 살아가며 정말 내 삶이 단지 그냥 한 마리 벌레보다 나은 게 무엇인지

간혹 섬뜩한 공포로 다가온다.

그런 맥락에서 카프카의 ‘변신’(1915)이 단지 기괴한 이야기만은 아니다.

인간실존의 허무와 절대 고독을 주제로 하는 ‘변신’은 바로 이렇게,

사람에서 벌레로의 ‘변신’을 말한다. 

가족의 생계를 떠맡고 상점의 판매원으로 고달픈 생활을 반복해야 하는

그레고르는 어느 날 아침 깨어났을 때 자신이 흉측한 벌레가 되어 있음을 알게 된다.

문밖에서 출근을 재촉하는 가족들의 소리가 들리지만,

그는 ‘장갑차처럼 딱딱한 등을 대고 벌렁 누워 있는’ 벌레가 되어 꼼짝할 수도 없다.

겨우 문밖으로 나갔을 때 식구들은 경악하고 그를 한낱 독충으로 간주한다.


 



 

 

 

 

 

그는 ‘변신’ 이전의 가족에 대한 사랑을 그대로 유지하며

벌레로서의 삶에 적응해 보려고 노력해 보지만 가족의 냉대는 더욱 심해간다.

그가 없이는 살아갈 수 없을 줄 알았던 가족은 모두 새로운 직장을 잡고,

그레고르는 없어져야 할 골칫거리일 뿐이다.



어느 날 그림에 달라붙어 있는 그레고르의 모습을 보고 어머니가 기절하자

아버지는 그에게 사과를 던져 큰 상처를 입힌다.

며칠 뒤 각별히 아끼던 누이동생이 하숙생들 앞에서

음악을 연주하는 것을 들으러 나가지만

벌레의 존재를 보이고 싶지 않은 가족에 의해 방에 감금된다.

그 이튿날 청소를 하러 왔던 가정부는 그레고르의 죽음을 알리고,

가족들은 마치 아무 일도 없었다는 듯 함께 피크닉을 간다.




‘변신’은 벌레라는 실체를 통해 현대 문명 속에서 ‘기능’으로만 평가되는 인간이

자기 존재의 의의를 잃고 서로 유리된 채 살아가는 모습을 형상화한다.

그레고르가 생활비를 버는 동안 그의 기능과 존재가 인정되지만

그의 빈자리는 곧 채워지고 그의 존재의미는 사라져 버린다.

인간 상호 간은 물론, 하물며 가족 간의 소통과 이해가 얼마나 단절되어 있는가를 말하고 있는 것이다.





 
 
 


프란츠 카프카는 프라하 유대인 상인의 가정에서 태어나 법학을 전공하고

스물다섯 살 되던 해부터 일생을 보험국 관리로 일했다.



기계적이고 천편일률적인 생활에 매여 오직 밤에만 글을 쓸 수 있었지만,

결국 마흔한 살의 젊은 나이로 죽을 때까지 그 직업을 떠나지 못했다.

‘변신’은 어쩌면 그가 일생을 통해 느꼈던 철저한 소외와 고립감을

묘사하고 있는지도 모른다.



헨리 8세의 왕비였던 앤 여왕이 부정의 누명을 쓰고 단두대의 이슬로 사라지기 전에

마지막으로 한 말은

“오월이군요”였다.

햇볕이 너무 밝아서,

바람이 너무 향기로워서,

나뭇잎이 너무 푸르러서, 꽃이 너무 흐드러져서,

그래서 세상살이가 더욱 암울하고 버겁게 느껴지는 이 아름다운 오월,

새삼 내 존재의 의미를 생각하며

본능으로 사는 벌레가 아닌 진정한 인간으로의 ‘변신’을 꿈꾸어 본다.



<장영희 에세이 집, 문학의 숲을 거닐다 중에서 펌>


 

* 위의 그림은 샤갈의 그림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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