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섬진강 시인
02/13/2010 21:08
조회  1876   |  추천   0   |  스크랩   0
IP 76.xx.xx.6


 

시인의 가슴에서 흐르는 강물의 언어

김용택

 

(글, 삽화-김병종)

 

 


 
 
 
산길을 돌아서자 거기 강이 있었습니다.
 
강은 사행을 그리며 지금 막 노을 속으로 빨려 들어가고 있습니다.
사람들이 '섬진강 시인'이라고 부르는 시인은
여우치 둔덕 위 분교 앞마당에 서 있었습니다.
 
저물어 가는 강을 바라보고 있었습니다.
그가 선 앞으로 꽃잎이 분분히 날렸습니다.
밭일을 하다가 허리를 펴고 일어선 농부의 모습으로
시인은 두터운 손을 내밀어 나를 맞았습니다.
 
.............
 
서울살이가 팍팍할 때마다
나는 김시인과 함께 바람불고 곷피는 마암 분교와 강변 마을을
그림처럼 떠 올리곤 했습니다.
섬진강 주변이 그토록 그리운 장소가 되어버린 것은
김시인의 시 때문 일 것입니다.
 
우리는 강을 따라 함께 걸었습니다.
남도 오백 리의 들판을 적셨다가는 산자락으로 숨어버리고
마을을 데불고 나타났다가는
솔밭 속으로 다시 숨어버리기를 거듭하는 강을
시인은 '산골 색시' 같다고 말합니다.
 
 


 
 
'많이 늙어버렸어요. 강이 수척해요. 물살의 빠르기가
예전 같지 않고. 수기도 잘 전해지지 않아요...'
 
강이 수척하다. 섬진강 지킴이답게 시인은
강의 안부를 소상히 들려주었습니다.
 
그러면서도 그는 자신이 문학으로
섬진강을 너무 많이 퍼내었노라고 너털웃음을 웃었습니다.
섬진강 물 팔아서 땟거리도 마련하고 자식놈 공부도 시켰다면서,
섬진강은 자신에게 문전옥답이라고 했습니다.
 
확실히 강은 시인에게 시를 캐내는 좋은 밭인 셈입니다.
그가 강에서 건져올린 시는 산지사방으로 보내져
사람들이 잊고 지낸 바람의 안부,
풀과 들꽃의 소식을 전해줍니다.
 
나같이 메마른 도회에 사는 사람도 시인이 강 주변의 삶과 풍경들을
정겹게 바라보고 살갑게 기록하여 보내주는 글을 통해,
배달 받아 마시는 샘물로 목을 축이듯
그렇게 목을 축이는 것입니다.
 
그는 따뜻하고 아름다웠던 유년의 날들에 대해서도
이야기 해 주었습니다.
이제는 사라져버린 그 추억의 곳간을 뒤지며
시인의 입에서는 그리움, 외로움, 기다림 같은 말들이 나옵니다.
이미 서울에서의 내 일상 속에서는 죽어서 비늘처럼 떨어져 나가버린 말들입니다.
 
그리움이라니...그 말을 써 본지가 얼마나 오래되었던가요.
 
시인이 지금껏 그런 말들을 지키고 있음도
어쩌면 저 강이 있어서였을 것입니다.
 
..............중략.............
 
 
일몰의 강은 차츰 신비함으로 가득해집니다.
강을 따라 걷는 우리까지
숫제 그 신비한 빛 속으로 빨려 들어가는 형국입니다.
거기에는 태고의 빛이 있었습니다.
따스한 모성이 있었습니다.
이러한 강을 조석으로 거닐 수 있는 시인이 부럽다고 했을 때
시인이 말했습니다.
 
현실의 강만이 강은 아니라고,
강이 가슴속으로 흘러들게만 하면 누구라도 강을 가진 것이라고,
이제라도 우리는 모두 가슴마다 흐르는 강을 가져야 할 것이라고,
그대로 받아 적으면 시가 되는 말이었습니다.
 
.....................
 
 
 
지금쯤 붐비는 지하철이나 자동차에서 내려
터벅터벅 회색 도회의 숲을 지나 귀가 하고 있을 그대여.
 
오늘 나도 바스데바처럼 저문 섬진강에서 배웁니다.
지금 내가 바라보고 있는 저 일몰의 강을
이 저녁, 당신에게도 선물로 드리고 싶습니다.
 
 
 
*바스데바-헤르만 헤세의 '싣다르타'에 나오는 뱃사공
 
 
 
김병종의 화첩기행 네 번째, 모노레터 중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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