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피카소 거리.....
02/13/2010 10:30
조회  769   |  추천   0   |  스크랩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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젊음이 출렁, 실험이 꿈틀하는 예술의 전방

젊은 피카소들

 

(글과 삽화,  김 병종)

 

 

 

(피카소 거리에서)

 

 

그대 아름다운 영혼의 사람이여.

 

이봄에 그대는 눈부시게 서있는 푸른 나무 한 그루입니다.

그리고 나는 그 나무 위를 외롭게 맴돌다 가는 한 마리 새입니다.

마침내 스며든 봄기운에 땅은 지진처럼 흔들립니다.

겨우내 매캐한 연구실의 서책 내음과 화실의 어두운 묵향 속에 묵여있다가

주문의 덫에서 풀려 난 듯 나는 어떤 거리로 봄마중을 갑니다.

사람들이 '피카소 거리'라고 부르는 곳입니다.

 

바야흐로 젊음과 사람이 출렁거리고 예의 기운이

아지랑이 처럼 피어오르는 곳입니다.

실험예술과 언더그라운드 문화가 꿈틀거리는 곳입니다.
골목길 담벼락까지 벽화가 그려진 미술의 동네입니다.

밤이면 펑크와 테크노 라이브 음악이 진동하는 곳입니다.

산천의 봄은 남녘에 먼저 왔지만

서울의 봄은 이 거리에 먼저 와 있습니다.

 

 

한 카페의 문을 열고 들어가봅니다.

몇몇 20대들이 앉아 사랑의 언어들을 나누고 있는 모습이 보입니다.

흰 거품이 피어오르는 카페라테 한 잔을 시켜놓고 창밖의 풍경을 바라봅니다.

 

문득 '저 나이에 봄은 내게 형벌과 같았는데...

꽃이 터지는 것도 아픔이었고

햇빛 눈부신 것도 눈물겨웠는데...'라는 생각이

스치고 지나갑니다.

 

유리창 밖으로 바라보이는 거리는 마치 물구나무선 몬드리안의 추상화처럼

간판들로 화면을 이루고 있습니다.


 .....중략.....

 

 

 
(선인장의 생명력 처럼)
 
 
몸 담고 있는 관악산 주변의 을씨년스러운 분위기가 싫어,
나는 이른 봄과 늦은 가을 홀로 이 거리를 찾아오곤 합니다.
 
이념의 가파를 등성이를 넘어오며 시대의 칼바람을 맞았던 관악에서는
아직도 지축을 흔들던 함성의 여진들이 남아있는 느낌입니다.
 
유난히 겨울이 빨리오고 긴 듯이 느껴지는 이유도,
관악산의 산그늘이 깊어서만은 아닐겝니다.
지나간 아픈 시대의 춥고 스산한 풍경을 아직 온전히
벗어나지 못한 까닭일 겝니다.
그래서 봄이 와도, 그곳에서는
어쩐지 활짝 웃는 것마저 죄가 될 듯한 분위기입니다.
 
 
피카소거리에 와서야 나는 비로소 강물처럼 부드럽게 밀려와
도시를 헤집어놓는 봄의 기운을 느낍니다.
땅 속 깊은 데로부터 올라오는 먼 함성같은 봄의 소리를 듣게 됩니다.
 
살갗을 간질이는 햇빛에 그 힘을 주체치 못해 동서남북에서
모여든 사람들이 내지르는 함성입니다.
 
 
갑자기 거리가 소란해진다 싶더니 문이 열리고
오뉴월 소낙비를 맞고 선 초목들처럼 싱싱한 젊음들이 밀려옵니다.
내 주의는 삽시간에, 해초 사이를 유유히 유영하는
인어들처럼 미끈한 다리를 드러내고 생명력을 발산하는
스므 살 안팍의 젊음들로 채워집니다.
그들의 소란한 언어는 카페의 천장과 유리창과 내 찻잔 위까지
마구 날아다니고 혹은 부서집니다.
 
그런데 그 모습들을 바라보며 식어버린 카페라테 한 잔을 다 마시기도 전에,
나는 이상한 공복감 같은 것을 느끼게 됩니다.
화사한 의상과 떠들썩한 언어에도 불구하고 어떤  '결여'에서 오는
정신적 공복감 말입니다.
 
'결여'는 카페의 유리문 앞으로 지나가는 차고 넘치는 아름다움
마다에서도 한결같이 느껴져 왔습니다.
하나같이 아름답기는 한데 톡 쏘는 콜라 맛같은 감각만이 출렁댈 뿐
도무지 여운이 없습니다.
 
'아름다움'이라는 말뜻이 진실로 포괄해야 할 
안온한 눈빛이나 훈훈함, 자기 희생 같은 그 어떤 것이
피카소 거리에는 비어있습니다.
 
 
그렇습니다.
예전 피카소 거리는
광기와 난폭의 어떤 점령군에게 점령되어버린 느낌입니다.
 
음악과 춤과 맥주와 흐느적임이 있지만
그저 그뿐입니다.
 
그 이름이 무색하게 이곳이 화가 마을, 예술인 촌의 빛과
색을 잃어가는 현실이 안타깝기만 합니다.
 
.......
 
 
피카소 거리가 제발 또 하나의 카페촌이나 먹자 골목으로 전락하지 않고,
우리니라 예술의 희망 1번지로 남겨지기를 소원합니다.
우리 모두 그리워하고 사랑하는 공간으로 말입니다.
 
이 피카소 거리가 장차 20대 만의, 미대생만의 거리가 아니라
프라하와 부다페스트와 베를린 혹은 잘츠브르크 같은 도시에서와
같은 묵직한 예술적 여운이 감돌기를 소원합니다.
 
 
그때 백발을 휘날리며 홍대 앞 오르막을 넘어 찾아 온 내가
이 거리에서 피카소같이 사랑받는 예술가를 여럿 만날 수 있다면,
그 또한 행복한 일이 될 것 같습니다.
 
 
 
 
김병종의 화첩기행 네 번째, 모노레터 중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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