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감동의 연주회....
05/31/2018 11: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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Liszt Piano Concerto....

<한천자님 그림-펌>


오월 중순에 New West Symphony 연주회에서

리스트 피아노 협주곡 1번을 들었다.

New west Symphony는 벤츄라 지역의 로컬 오케스트라다.

아는 분의 초청으로 가게 되었는데

두 번째 곡으로, 리스트의 피아노 곡을 연주 했다.

차이나 피아니스트 Haochen Zhang....

(4회 차이콥스키 콩쿨, 샹하이. 차이나 등

여러 대회에서 1위를 한 자) 

 

협주곡. 교향곡의 대부분이 드라마틱하게

연주의 마지막을 장식하는 이유도 있겠지만,

연주가 끝났을 때

모든 관객은 자리에서 일어 나, 박수로 환호했다.

그 감동이 가시지 않아

요즘 자주 리스트의 피아노 협주곡을 듣고 있다.

 

리스트는 3 곡의 피아노 협주곡을 작곡했는데

세 번째 곡은 그가 죽은 후 발표되었다.

 

리스트 피아노 협주곡 1번은,

독주자의 현란한 기교가 돋보이는 작품으로

1830년부터 구상하여 1848년에 완성되었고

1855년 독일 바이마르에서 초연 되었을 때

베를리오즈의 지휘 하에, 리스트가 연주했다.






리스트는 활달하고 카리스마를 가진 성격이었으며

잘생긴 외모와

신들린 듯한 피아노 연주 솜씨에

연주회 때마다 수많은 여성 팬들을 몰고 다녔다.

그리고 평생 여자들과 스캔들을 뿌렸다.

       

쇼팽보다 일 년 늦게

오스트리아의 라이딩(비엔나의 남쪽)에서 태어 안 리스트는

쇼팽과는 아주 다르다.

      

그의 아버지는 에스터하지 가의 토지 관리인이었다.

에스터하지 후작은 피아노와 첼로를 연주하는 등

음악을 즐길 줄 아는 사람이었다.

 

토지 관리인인

리스트의 아버지에게도 그 영향이 미쳤으며 

리스트가 여섯 살 되던 해

아버지는 어린 아들이 음악에 소질이 있는것을 알게 되고,

아들에게 피아노를 가르치기 시작했다.

리스트는 열 살이 되자

어느 피아니스트 못지않은 실력을 갖추게 되었다.

 

프레스부르크라는 곳에서 공개 독주회를 열었는데

지켜본 사람들은 그의 천재적 재능에 모두 감탄하게 되었고

리스트를 후원하는 후원회가 조직되고

유학자금을 만들어 리스트를 빈으로 유학을 보냈다.

 

리스트는 빈에서 체르니와 살리에르에게 작곡을 배웠다.

 

22세가 되던 해,

리스트는 가족과 함께 빈을 떠나 파리로 갔다.

이곳에서 리스트는 상류 사회에 첫 선을 보이고

그 실력을 인정받았으며

피아노 연주자 외에 작곡가로서 자신을 드러내기 시작했다.

 

이 무렵 리스트는 음악세계를 알려준 스승이자, 후원자인

아버지를 잃게 되어 큰 슬픔을 겪게 된다.

 

리스트는 그 충격에 사랑에 빠지게 된다.

자신이 가르치던 생크릭 백작의 딸 카롤린과 사랑에 빠진 것이다.

그러나

백작의 반대에 부딪쳐 사랑을 잃게 되고

실연의 아픔을 견디다 못해 리스트는 병에 걸리고,

한동안 삶을 접고 싶은 허무주의에 빠져 지내지만

얼마 지나지 않아 다시 음악 활동을 시작 한다.

그리고 사교계에서 알게 된 마리다구 부인과 다시 사랑을 하게 된다

 

두 사람은 함께 살면서 브랑딘, 코지마, 다니엘 등 세 자녀를 둔다.

(그 중 코지마는 독일의 유명한 작곡가 바그너의 부인임)

그러나 리스트는 11년 후 마리다구 부인과 헤어지고, 4년 후에

러시아의 비트겐슈타인 후작 부인을 만나게 된다.

      

비트겐슈타인 후작 부인과의 결혼은 집안의 반대로 실패하고

더 이상 미련을 갖지 않고 각자의 길로 돌아간 리스트는

성직자의 삶을 선택하고,

몬테카를로의 마돈나 델사리오 수도회로 들어간다.

그의 나이 52세 때 일이다.

 

이때부터 그는 <그리스도 탄생하시다>등 수많은

종교 음악을 작곡하게 된다.

로마교황은 그 공로를 인정하여

바티칸으로 불러들이고 3개의 성직을 주었다

세월이 갈수록 그의 명성은 더욱 높아져,

1871년에는 헝가리 왕실 고문으로 임명되기도 했다.

리스트는 1886년 여름, 감기에서 시작된 폐렴으로

75세의 나이로 세상을 떠나고 말았다.

 

 

리스트, 피아노 협주곡1번은

한편으로 트라이앵글 협주곡이라고 불리기도 한다.

그 이유는 첫 악장부터 서서히

나오기 시작하는 트라이앵글이

3악장에서 전체를 통하여 활약하기 때문이다.

트라이앵글이 앞장서서 모든 악기들을 유혹하는 듯이.

이와 같은

리스트의 파격적인 시도는

듣는 이에게 한층 더 즐거움을 준다.

 

 

한천자님 그림 



<리스트의 음악세계>

 

초월적인 피아노 연주

피아노로 가능한 모든 기교를 보여주었다 할 만큼

최고의 역량을 발휘한 피아니스트이자 작곡가였던 리스트.

솜씨와

실험적인 시도로 가득찬 작곡 활동,

그리고 뛰어난 외모와 세련 된 매너를 갖추었던 리스트는

예술가를 영웅으로 숭배하던 낭만주의 시대를 대표하는 음악가로서

이른바 '낭만주의의 화신' 이라는 칭호에 전혀 손색이 없는 인물이다.

 

또한 그는 19세기 낭만주의 음악의 가장 중요 한 소산 중 하나인

'교향시'의 창시자였다.

원래 낭만파 음악이란 문학과 음악의 결합을 추구했는데,

표제 음악인에 문학을 결합시킨 교향시는

다른 예술과 음악이 결합된 가장 대표적인 형식이라 할 수 있다.

관현악곡 형식인 리스트의 '교향시'

선배인 베를리오즈의 '환상 교향곡'의 자극을 받고

탄생했다고 전해지고 있다.


<위키 백과에서 펌>




 


Martha Argerich - Liszt Piano Concerto No 1 in E flat major (2016UK )


  BBC Prom 43:

on Martha Argerich 75 years old

Daniel Barenboim and the West?Eastern Divan Orchestra



 

3.4악장은,  Play/ Sunnwoo Yekwon





Liszt Piano Concerto No1 in E-flat Majo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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