sosickr
니르바나(sosickr)
한국 블로거

Blog Open 03.05.2017

전체     42766
오늘방문     54
오늘댓글     0
오늘 스크랩     0
친구     0 명
  최근 방문 블로거 더보기
  친구 새글
등록된 친구가 없습니다.
  달력
 
70년 만의 귀환, 빌리 브란트의 사죄
06/24/2020 02:30
조회  333   |  추천   3   |  스크랩   0
IP 113.xx.xx.118



[Social Essay]


70년 만의 귀환-머나먼 전쟁



6. 25 남북전쟁 70주년을 하루 앞둔 미 하와이 공군기지, 아주 특별한 귀빈을 태운 전투기가 뜬다. 연합뉴스 기사는 짤막했다. 영웅들 돌아오는 날-- 그때 북측에서 숨진 한국군 유해 147구가 공군기에 실려 마침내 고국으로 돌아옵니다. 

미 국방부 산하 전쟁포로 및 실종자 확인국(DPAA)은 이날 하와이 진주만-히캄 합동기지(JBPHH)에서 한국군으로 밝혀진 이들을 봉환하기 위한 유해 인수식을 가졌는데요.(하략) 유해를 화물기가 아닌 기내 좌석에 정중히 모셨다고 한다. 동맹국으로서 예를 다한 것이다. 


그들이 고국에 돌아오는데 70년이 걸렸다.  참 머나먼 전쟁이다.  코앞에 내 조국, 사랑하는 가족을 두고, 머나먼 이국땅을 돌아 이제야 돌아오는 것이다. 차마 눈감지 못하는 유해가 되어, 오늘 귀환하는 것이다. 잠시 눈을 감았다. 불현듯 어느 시인의 싯구가 떠오른다.  

<폴란드 바르샤바에서 유태인 위령탑을 지나가던/ 서독총리(‘70년대) 빌리 브란트가  넘어졌다 / 넘어진 게 아니라 무릎을 꿇고 / 목 고개를 꺾은 것이다 //

어떤 기자는 이 기사를 이렇게 썼단다 // 무릎 꿇을 이유가 없는 사람이 / 무릎을 

꿇어야함에도 불구하고 / 무릎 꿇지 않는 이들을 대신하여 / 무릎을 꿇었다. // >

(하략)  -유안진 시 <빌리브란트 >에서  (계간문예 20 여름호)


그랬다. 빌리브란트는 아직 우리의 기억 속에 남아있는 인물이다. 1970년 당시 서독 총리였다. 그가 폴란드 바르샤바를 방문한 것은 12월 이었다.  바르샤바의 홀로코스트(나치의 유대인 대학살) 희생자 위령탑을 방문한 그는 헌화하던 도중 연설문을 제쳐 놓은 채 한겨울의 차가운 콘크리트 바닥에 털썩 무릎을 꿇고 오랫동안 묵념하는 방식으로 사죄했다. 누구도 예상치 못했던 이 행동은 TV 중계와 현장에서 취재하던 기자들의 보도를 통해 전 세계에 전달됐다.  시나리오도 없이 그저 양심이 시키는 대로 그냥 주저앉았을 뿐이다. 그것이 더욱 진심어린 사죄로 받아드려진 것이다.



우리는 아직 '빌리 브란트'의 진심어린 사죄를 받지 못했다.  그것은 태평양 전쟁으로 한반도를 희생양으로 삼은 일본 제국주의와 남침전쟁으로 동족을 학살한 북한집단이다.  아직 전쟁은 끝나지 않았다.  오늘도 위안부 운동은 계속되고 있다. 

보수와 진보진영의 각기 다른 구호가 낭자하다.  북한에 보낸다는 삐라를 두고 탈북민 주최측과 경찰 측이 맞서고 있다.  왜 우리는 당당하게 그들에게 사죄요구를 하지 못하는가?  일본에는 이를 갈면서 북에는 왜 그렇게 작아져야 하는가?


휴전 70년이 지난 오늘까지 북의 남침인지 남의 북침인지 혼란을 자초하고 있다. 누구의 책임인가?

국가 지도자 중에도 애매한 사고를 가진 자들이 더욱 나라의 정체성을 흔들었다. 동족끼리 싸운 내전 또는 상호 우발적으로 일어난 사건으로 치부하는 자들도 있다니 참으로 한심한 노릇이다.  북의 남침주장에 동조해온 일부 친북좌파 학자들의 북침 주장이 허구임이 입증 되었다.  옛 소련의 기밀문서 공개로 그 실체가 분명하게 드러난 것이다. 

“6. 25 전쟁은 스탈린이 주도하였고, 김일성은 2주안에 남한을 점령할 수 있다는 과격주의자 였고 모택동은 여기에 동조하였다.”고 기술하고 있는 것이다.

그래서 중국 공산당 공식 기관지  《백년조류(百年潮流)》에서도 지난 40년간 중국 공산당이 고수해온 남한에 의한 북침 주장을 포기하는 것으로 보도함으로써 일단락 된 것이다.


우리에게 ‘빌리 브란트의 사죄’는 머나먼 애기인가? 문재인 정부는 ‘역사 바로 세우기’ 명목으로 열을 올리고 있다. 광주 5.18 제주 4. 3 사건까지 그들 시각으로 재평가 하고 역사를 직조(織造)했다.  심지어 동학 농민운동까지 희생자의 명예회복과 독립유공자로 지정하기도 했다.  그런데 우리 현대역사의 가장 비극적인 남북전쟁을 일으킨 북에 대해 전쟁책임은커녕 사죄요구 마저 하지 못하는 것은 무엇 때문인가?  역사 바로 세우기의 가장 핵심 사업은 지금이라도 북에 대해 사죄요구를 하는 일이다.  그것은 오늘 70년 만에 돌아오는 한국군 희생자에 대한 최소한의 예우가 아닐까?

(글 청사 칼럼니스트)






유해송환, 빌리 브란트, 하와이, 한국군유해송환
이 블로그의 인기글

70년 만의 귀환, 빌리 브란트의 사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