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팬데믹과 문학적 성찰-월간 문학공간 권두칼럼
06/01/2020 03:5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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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학공간 권두칼럼]






팬데믹과 문학적 성찰

      -기청 (시인 문예비평가)



어느 날 일상이 실종되었다. 너와 나의 거리가 멀어지고 삶과 죽음이 뒤섞여 혼돈의 바다가 되었다. 문명은 힘을 잃고 나약한 한갓 방관자가 되었다. 모두의 얼굴이 사라졌다. 얼굴이 지워진 익명의 거리, 마스크 하나로 존재를 가려보지먄, 보이지 않는 적은 이미 시공간을 벗어나 있다. 가공할 속도와 위력으로 지구촌을 공황상태로 마비시킨다. 신종 ‘코로나 바이러스’의 전파는 인류를 또 한 번 시험대 위에 세우는가? 재앙은 인류에게 말 없는 경고 시그널을 보내고 있는지 모른다.         

        

펜데믹(pandemic)은 전염병이나 감염병이 범지구적으로 유행하는 것을 말한다. 이에 비해 일상적인, 감기나 계절독감 등은 엔데믹(endemic)범주로 구분하여 부르기도 한다. 팬데믹은 인류역사의 고비마다 찾아왔다. 그 엄청난 위력으로 인류는 파괴와 공포 절망의 나락으로 내몰렸다  하지만 역설적으로 재앙이 하나의 터닝 포인트가 되어 역사의 물길을 바꾸기도 했다. 오늘 우리는 그 생생한 역사의 현장에 서 있다. 미래 세대에게 우리는, 예술 혹은 문학은 무엇을 증언할 것인가?

역사상 팬데믹은 예술 혹은 문학에 어떤 영향을 주었을까? 


14세기 이후 유럽을 비롯한 전 세계를 휩쓴 흑사병은 유럽인구의 절반가량을 희생시켰다. 

그 결과 죽음의 공포와 염세주의를 불러왔다. 이 시기에 쓰여진 보카치오의 《데카메론Decameron》은 현실 도피적이라는 비판을 받기도 하지만 당시 절망에 빠진 사람들을 위무하고 교훈을 주며 윌리엄 세익스피어 같은 작가들에게도 영향을 준 팬데믹의 문학적 산물이었다. 

흑사병은 죽음을 몰고 오는 사자(使者)지만, 한편으로 르네상스 문예운동으로 이어지는 계기가 되었다.  당시 유럽인은 엄격한 종교적 속박에 회의를 느끼기 시작했다. 삶의 주체로서의 이성적 개성적 자아에 대한 각성이다. 이는 정신적 해방이었다. 이런 자유정신이 바탕이 되어 문예부흥운동으로 승화되고 정신문화의 꽃을 피운 것이다. 


한편 ‘스페인 독감’은 1차 세계대전이 끝날 무렵(1918년)부터 약3년 간 미국과 유럽 아시아까지 휩쓸었다.  이 팬데믹으로 최대 5천만 명이 사망하는 비극을 낳았다. 

 이 시기 에드바르크 뭉크는 ‘스페인 독감에 걸린 자화상’을 그려 노르웨이 국립미술관에 전시했다. 이때의 재앙으로 인류는 가공할 위기를 맞았지만, 역설적으로 문학과 예술의 새로운 흐름을 만들기도 했다. 1차 세계대전의 후유증과 맞물리면서 다다이즘, 초현실주의 경향으로 흘렀다.  전쟁과 죽음 공포와 허무의 현실에서 꿈과 판타지를 추구한 것은 자연스런 귀결인지 모른다. 이 밖에도 1947년 출간된 알베르 카뮈의《페스트 The Plague》는 재난에 드러나는 인간의 세 가지 유형을 제시한다. 개인의 이익에 몰두하는 장사꾼의 ‘야비한‘ 인간, 신에 의존하는 신부의 ’냉담한‘ 인간, 직분에 충실 하는 의사의 ’성실한‘ 인간형을 제시하여 공동체 윤리를 강조한다. 그 외 헤르만 헤세의 소설 《나르치스와 골드문트》, 교향시로 프랑스 작곡가 생상스의 《죽음의 무도 Dance of Death》(원문은 앙리 카잘리스의 시) 등 많은 작품이 있다.


팬데믹이란 재난이 가져다준 영향으로 많은 예술작품을 남겼지만, 근본적인 문제에 답을 제시하지는 못한다. 재난이 주는 공포와 허무, 죽음의 보편성, 그런 위기의 현상에 반응하는 인간 군상의 모습, 그의 교훈에 초점이 맞춰져 있다.

이제 우리 문학은 좀 더 본질적인 물음에 대한 성찰이 필요한 시점이다. 전문가들은 코로나와 같은 팬데믹의 원인을 생태계 파괴 때문이라 진단한다. 인간의 탐욕으로 자연을 파괴한 결과 물순환이 교란되고 마지막 야생을 침범하면서 야생생명들의 이주가 시작된 결과로, 야생의 역습은 인간의 무분별한 탐욕의 과보인 셈이다.   

재앙이 인류에게 주는 메시지는 의외로 단순 명료한 것인지 모른다. 이번 신종 코로나의 전 지구적 전파로 놀라운 변화가 나타났다고 한다. 인간이 멈추자 지구가 건강해졌다는 것, 이야말로 코로나의 역설 아닌가?

‘멈추고’ ‘성찰하고’ 새로운 ‘선택을 하라’는 것이다. 너무 과학 산업문명 중심으로 질주하지 않았는가? 상대적으로 인본 생태주의적 성찰이 부족한 것 아닌가? 개발 확장 속도에만 집착한 결과, 지구가 비명을 지르는 것 아닌가?


인간은 누구인가? 인간도 자연의 일원이자 다른 생명과 차이가 없다는 겸손, 모든 생명은 하나의 그물로 이어진 인드라망, 공생의 한 그물코에 다름 아닌 것을 아는가? 

그러면 다른 생명을 존중하고 살생을 삼가는 기본적인 윤리적 삶을 살고 있는가? 

미래 생태학자들은 지구가 독자적 생명성을 가진 하나의 문명체임을 인정한다. 우리는 인류의 지속가능한 문명이 건강한 지구의 운명과 직결된다는 대승적(大乘的) 인식으로 바꾸어야 한다. 따라서 우리 문학도 현실안주에서 벗어나 새로운 미래를 약속할 수 있는, 깊은 성찰과 문학적 실험으로 미래를 견인하는, 그런 노력이 필요한 시점이다.

(*)   







                                   


 






팬데믹, 생태주의. 지구미래, 전염병,코로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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