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길가
04/15/2017 18:4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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길가

 

2017415

 

예수님은 하늘나라의 비밀을 말씀하실 때 골방에서 소곤거리지 않으셨습니다.

회당에서는 물론이고 산 위에서 자유롭게 말씀하셨습니다.

정통파 유대인들은 회당을 떠난 야외전도에 가끔 놀라기도 했습니다.

 

오늘 모습은 마치 한 폭의 풍경화 같습니다.

예수님은 배를 타시고 호숫가에 있는 많은 군중에게 비유로 가르치셨습니다.

예수님이 타고 계신 배는 교단이 되었고 군중이 앉아 있는 자연은 교실이 된 것입니다.

예수님이 말씀하실 때 저 산기슭에서는 농부가 씨를 뿌리고 있었습니다.

보라, 저기 씨뿌리는 농부가 있다”. 이것이 비유적 교훈의 방법입니다.

 

예수님은 땅에서 진행되는 일로 시작하여 사람들의 생각을 하늘로 인도하셨습니다.

누구나 다 볼 수 있는 것으로 시작해서 보이지 않는 것들로 인도하셨습니다.

사람들이 다 아는 것으로 시작하여 일찍이 알지 못했던 것으로 이끄셨습니다.

 

예수님이 말씀하시는 길가는 큰 길이 아닙니다.

유대인 농부가 밭을 갈기전 사람들의 발에 밟혀 딱딱하게 된 오솔길을 말하는 것입니다.

팔레스틴 농토는 피륙을 편 것처럼 좁고 깁니다.

휴경기때, 즉 씨를 뿌리는 시기를 기다리는 동안에, 사람과 짐승이 그리로 다닙니다.

그래서 길이 난 것이지요. 그 길은 포장한 도로처럼 단단해져 있습니다.

 

그럼 왜 씨가 길가에 떨어졌을까요?

이스라엘의 농부는 두가지의 씨뿌리는 방법을 가지고 있습니다.

 

첫째는, 농부가 직접 손으로 씨를 뿌리는 방법입니다.

두 번째는, 주로 이 방법을 많이 사용하는데...

나귀에 씨앗이 들어 있는 자루를 그 등에 실고

자루 한 모퉁이에 구멍을 뚫어 씨가 새어나오게 합니다.

그런 다음 농부는 나귀를 밭으로 끌고 다닙니다.

여기저기 씨를 뿌리는 동안 씨는 딱딱하게 굳은 길바닥에 떨어지게 되는 것입니다.

 

예수님이 말씀하시는 밭은 인간의 마음상태를 나타냅니다.

 

길가는 어떤 마음을 의미할까요?

길가는 단단한 마음입니다. 성경에 자주 길가와 같은 마음이 표현되어 있습니다.

그것은 다름 아닌 완악한 마음을 말합니다.

완악한 마음이란 단단한 마음, 즉 굳어진 마음을 가리킵니다.

마음이 딱딱해져 있다는 말입니다.

마치 딱딱한 벽과 같습니다.

이런 마음의 사람은 세상에 나가면 많이 만나볼 수 있습니다.

여러분들이 복음을 전하기 위해 만나는 사람들에게서 볼 수 있는 모습니다.

아무리 좋은 소식, 즉 복음을 전해주어도

마치 벽에다 대고 말하는 것을 느낄 때가 있었을 것입니다.

 

마태 13:15

이 백성들의 마음이 완악하여져서 그 귀는 듣기에 둔하고 눈은 감았으니 ..

 

이렇듯 마음이 완악해지면... 그 귀는 듣기에 아주 둔합니다.

아니, 아예 들으려고 하지 않는다는 말이 맞을 겁니다.

 

* 성경에는 완악한 마음에 대해 여러 가지로 표현해 주십니다.

 

첫째, 강퍅한 마음입니다.

 

출애굽시 애굽왕 바로의 마음을 기억하실 겁니다.

하나님은 모세를 통하여 애굽에서 종살이하는 이스라엘 백성들을 구원하시려고 하는데도

애굽의 왕인 파로호(바로)는 하나님의 뜻을 가로막고 그들을 놓아주지 않았습니다.

Let my people go!”, 내 백성을 가게 하라는 하나님의 말씀을 비웃습니다.

그리고 정면으로 가로막아 섭니다.

그 결과 어떻게 되었습니까?

하나님으로부터 10가지 재앙이 차례차례 내려집니다.

그런데도 바로 왕은 깨닫지 못하고 마음을 점점 강퍅하게 합니다.

10번째 재앙은 장자를 죽이는 것이었습니다.

결국 바로 왕은 자기의 맏아들이 죽고나서야 비로소 두손을 들었습니다.

완악한 마음이란 애굽왕 바로처럼 강퍅한 마음을 말합니다.

 

둘째로, 성경은 완악한 마음을 언급할 때는 자주 교만과 연결하시는 것을 볼 수 있습니다.

 

이사야 9:9

모든 백성 곧 에브라임과 사마리아 거민이 알 것이어늘

그들이 교만하고 완악한 마음으로 말하기를

 

이사야 10:12

이러므로 주 내가 나의 일을 시온산과 예루살렘에 다 행한 후에

앗수르 왕의 완악한 마음의 열매와 높은 눈의 자랑을 벌하리라.

 

그렇습니다.

여러분들이 길가와 같이 완악한 사람들에게서 찾은 수 있는 것은

교만임을 금방 알 수 있습니다.

어떤 사람은 자기의 생각과 철학이 자기 스스로를 지배하고 있는 사람이 있습니다.

하나님의 진리를 말해주어도 거부합니다.

자기의 지식과 교만으로 받아들이지 않습니다. 예수를 못 믿겠다고 합니다.

그래서 가장 복음 전하기 어려운 대상 중의 하나는

미션스쿨에 다닌 사람이라는 말이 있습니다.

중고등학교나 대학 다닐 때 채플에서 몇 가지 기독교 교리나 설교를 들은 사람입니다.

성경을 수박 겉핥기로 알고서는 믿음의 진리로 들어서지 못한 사람 말입니다.

이런 사람에게 복음을 전하는 것이 얼마나 힘든지 모릅니다.

 

길가와 같은 마음을 어떻게 하면 좋은 밭으로 만들 수 있을까요?

 

여기에서 우리는 잠시 팔레스타인의 농사법을 살펴보는게 중요합니다.

팔레스틴의 농사법은 우리 나라의 농사법과 다릅니다.

우리나라에서는 겨울이 지나면 먼저 땅을 갈아 엎고, 그 뒤, 밭에 씨를 뿌립니다.

그러나 팔레스틴에서는 그렇지 않습니다.

오히려 순서가 반대입니다.

즉 씨를 먼저 뿌리고 그 다음에 땅을 갈아 엎습니다.

 

농부는 이렇게 길가에도 씨가 뿌려진 것을 다 보고 압니다.

그러므로 길가 밭을 기경하지요.

그래야 씨가 뿌리를 내리고 열매를 낼 수 있기 때문입니다.

단단한 땅은 갈아 엎어져, 즉 기경되어 땅 밑에 있는 흙과 섞는 것이 중요합니다.

부드러운 땅이 되기위해서 말입니다.

 

사람의 단단한 마음 밑에는 부드러운 마음이 깔려 있습니다.

단단한 마음은 껍질과 같습니다.

그 껍질이 깨질 때 예수 그리스도의 진리를 받아들일 수 있습니다.

그리고 하나님의 말씀인 진리의 씨앗이 떨어져 열매 맺을 수 있습니다.

 

길가에 뿌려진 씨는 새가 와서 먹어버리고 말았습니다.

사단이 우리 심령에 뿌려진 말씀의 씨앗을 다 가져가 버리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길가와 같이 단단한 마음은 기경되어

좋은땅이 되어야 씨를 받아 열매맺을 수 있습니다.

 

**

 

우리는 지금까지 완악한 마음, 딱딱한 마음을 살펴보았습니다.

그것은 어떤 의미에서 자기를 방어하기 위해 능동적인 면을 보여주는 것이기도 합니다.

 

그렇다면,

이제는 수동적인 측면에서 길가는 어떤 마음인가를 살펴보려 합니다.

 

길가 밭이란 수동적인 면에서는 닫혀진 마음입니다.

왜 그럴까요?

앞서 언급한 대로 길가는 사람들이 많이 밟고 지나다닌 밭입니다.

원래는 밭이었는데 길가가 된 것입니다.

이제 우리는 길가 그 자체가 되어 생각해 봅시다.

길가는 자기 스스로 길가가 되고 싶어서 된 것이 아닙니다.

자기는 가만히 있는데 그냥 사람들이 자기 위를, 즉 자기를 밟고 왕래한 것입니다.

이것은 영적으로 볼 때 사람들에게 상처를 많이 받고

엄청나게 자존심이 짓밟히는 것을 의미합니다.

 

그러므로 길가는 누군가로부터 상처 입은 마음이라 할 수 있습니다.

못이 박히고 화살이 박힌 마음입니다.

그 결과 상처 입은 마음은 점점 닫힙니다.

왜 그럴까요? 또 상처 입는 것이 두렵기 때문입니다.

그렇기에 이런 마음은 자기가 닫고 싶어 닫히는 것이 아니라

저절로 마음의 문이 닫혀집니다.

자라보고 놀란 가슴 부뚜막 솥뚜껑보고 놀란다는 법입니다.

상처를 많이 받다보면 이번엔 또 무슨 일인가 하는 두려움이

그 마음 속에 있기 때문입니다.

 

사람이 한번 상처를 받고 사람들로부터 버림받으면 그 마음이 열리지 않습니다.

그 사람에게는 다시 버림 받지 말아야지하는 방어기제가 생기게 됩니다.

그래서 사람에 대해 경계심을 갖고 방어하는 자세를 갖습니다.

쉽게 사람을 향해 마음을 열지 않습니다.

이것이 닫힌 마음이요 상한 마음입니다.

 

이렇게 상한 마음은 사람에 대한 신뢰가 쉽지 않습니다.

상대방이 잘 대해주어도 또 언제 내가 상처를 입을지 모르기 때문에

두려워하면서 쉽게 마음문을 열지 못합니다.

 

때로, 마음의 상처가 심한 사람은 전화벨만 울려도 깜짝 깜짝 놀랍니다.

행여나 어디에서든지 상처준 사람을 만날까 마음이 불안합니다.

어떤 때는 그 사람과 비슷한 사람만 봐도 가슴이 덜컥 내려 앉습니다.

왜 그렇습니까? 상처가 깊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사람들이 많이 모이는 곳에 가는 것이 꺼려집니다.

교회에서 상처를 받은 사람은 교회에 대해 마음을 쉽게 열지 않습니다.

왜 그렇습니까? 다시 상처받기 싫어서입니다.

 

누군가로부터 큰 상처를 입은 사람은

그 사람과 비슷한 사람을 만나도 그 상처로부터 쓴물이 올라옵니다.

심지어 자기에게 상처입힌 사람이 사용하는 사투리만 들어도 싫어집니다.

 

그러면, 이런 닫혀진 마음, 상처입은 마음은 어떻게 해야 할까요?

그 마음은 어떻게 해야 치료될 수 있을까요?

우리 모두는 아픔이 있습니다.

교회 다니면서, 가정에서, 그리고 일터에서 받은 상처가 얼마나 많은지 모릅니다.

 

상처입은 그 마음은 어떻게 해야 치유될 수 있을까요?

영적으로는, 그 상처와 상처 내면 깊은 곳에 고여 있는 쓴물에

십자가의 보혈과 성령의 기름이 부어져야 치유가 일어납니다.

선한 사마리아 비유에서 볼 수 있듯이 어떤 사람이 강도를 만났을 때

선한 사마리아인이 그 사람에게 기름을 부은 것처럼 말입니다.

상처를 싸매어야 주어야 합니다.

 

혹시 여러분이 누군가에게 상처주었으면,

그 사람에게 진정으로 용서를 구하십시오.

그 용서가 진지할 때 그리고 그 진심이 통할 때

상처입은 사람은 서서히 마음의 상처를 치유받고

다시 마음을 열 수 있는 것입니다.

 

 

한상원 목사

솔라그라티아미니스트리 대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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