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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가론, 화가 최욱경
04/12/2020 02: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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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가론>---------------------------

 

한국 추상표현주의 미술의 산 증인

화가 최욱경(崔郁卿, 1940-1985)

 

: 장소현 (미술평론가, 시인)

사진: 최욱경 유족 제공



최욱경은 한국 추상미술의 역사에서 매우 중요한 위치를 차지하는 작가다. 

젊은 나이에 미국으로 유학하여 미국 추상표현주의를 현장에서 생생하게 직접 부딪치며 체험한 

작가라는 점, 표현의 다채로움과 격렬함, 과감한 실험정신 등 여러 면에서 그렇다.

당시 한국 미술계는 현대미술 초창기로 서양의 최신 흐름을 직접 받아들이지 못하고, 일본에서 나온 

미술잡지나 조잡한 인쇄의 화집 등을 통해 간접적으로 받아들이는 형편이었다

이런 상황에서 미국에서 공부하며 추상표현주의를 현장에서 직접 체험한 최욱경의 존재는 중요한 

의미를 갖는 것이었다. 하지만 아쉽게도 그녀는 한국 미술계에서 확고한 자리매김을 하지 못했다.


최욱경은 드물게 보는 지성적 화가이기도 했다. 탁월한 미술이론과 뚜렷한 자기세계를 논리와 

감성으로 설득하는 그림을 그리는 화가였다.


      ▲ 한국의 산천을 그린 <파란 선이 있는 산>, 1983


거기에 그치지 않고, 한국의 산천과 한국적 정서를 적극적으로 작품에 담으려한 점에서도 높은 

평가를 받는다. 요절하는 바람에 그런 시도가 중간에 꺾인 것이 안타깝다.


한창 왕성하게 활동할 시기에 사망한 탓에 작가가 이 시기를 어떻게 소화하여 변모했을 지 

알 수 없다. 특히 사망 시점이 작가의 화력에 있어 눈에 띄는 조형적 변화의 길목이었음은 

큰 아쉬움을 남긴다.” -미술평론가 이영수의 작가론에서


                                ▲ <풀밭 위의 점심식사

 

체계적 연구와 재평가 필요

최욱경의 작품세계는 그동안 나름대로 높은 평가를 받아온 셈이다. 1987년 국립현대미술관 

회고전이나 1989년 호암갤러리 추모전 등을 비롯해서, 그 뒤로도 주요 화랑에서 큰 규모의 작품전이 

열려왔다. 많은 평론가들의 작가론이 발표되었고, 두툼한 작품집들도 발간되었다

작가의 전 작품을 수록한 카탈로그 레조네(catalogue raisonne)도 발간되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한층 더 체계적이고 본격적인 연구와 재평가가 필요하다는 목소리가 많다.

그에 대한 관심은 작가 생전에 쏟아지던 호기심의 크기와 비례하지 않는 것 같다. 최욱경이 

독자적으로 성취한 예술 세계와 여성예술가로서의 선구적 위상도 여느 작가들에 비하면 과소평가된 

느낌마저 들 정도다.” -이영수


최욱경이 제대로 충분한 평가를 받지 못한 까닭은 한창 작업을 해야 할 나이인 45세에 안타깝게 

세상을 떠났기 때문이기도 했고, 당시 한국 미술계의 분위기 때문이기도 했다.

최욱경이 유학을 마치고 완전 귀국한 1970년대 말 80년대 초의 한국 미술계는 단색 추상화나 

민중미술 등의 물결이 거세던 상황이어서 추상표현주의는 크게 주목을 받지 못했다

더구나 여성 화가가 설 자리는 더욱 좁았다.


                               ▲ <꽃피는 사당>, 1975, 91x122cm


국립현대미술관 관장으로 재직할 당시 <최욱경 회고전>을 마련했던, 미술평론가 이경성 선생은 

당시의 상황을 이렇게 설명한다.

 

그가 미국에서 연구를 하고 한국에 돌아왔다가 또다시 미국으로 건너간 것은, 고독하고 내성적인 

그가 복잡하게 얽히고 있던 한국사회에 적응하지 못한 탓이다. 자기 세계에 골몰해서 주변의 관심에서 

초월한 채 살고 싶은 작가에게는 한국의 풍토가 익숙하지 못했던 것이다.

그녀의 이와 같은 방황은 1979년 귀국 후에도 계속됐다. 비록 몸은 한국에 있어도 늘 이방인 같은 

존재였다. 그녀가 이방인이 된 것은 물론 특수 성격과 기질에도 원인이 있지만, 생의 기본이 되는 

생활의 속도와 방법이 근본적으로 이 풍토와 맞지 않기 때문이다.

그렇다고 그녀의 이질적인 생활의 속도와 방법이 어느 특정한 외국에서만 적합하다는 것이 아니다

문제는, 지나치게 자기 집중적인 그녀의 생활철학과 태도가 자기 이외의 외부세계와 좀처럼 화해롭지 

못한 데 이유가 있었던 것이다.

따라서 그녀의 작품세계는 그녀의 비범하고 고독한 성격의 소산이고, 부정도 긍정도 아닌 회의적인 

철학의 표명이었던 것이다.”


 

신화에 가려진 작품세계

45세라는 아까운 나이에 요절한 천재화가, 강렬한 색채의 화면화가 최욱경은 작품세계보다 

작가에 대한 이야기가 한층 널리, 그리고 자극적으로 알려져 있는 작가다

그간 최욱경에 대한 연구는 작품들보다는, 개성 강한 작가적 성격과 평범하지 않았던 생애에 

중되어 있었다. 작품에 관한 관심이 아니라, 흥미 위주의 관심은 올바른 평가를 방해한다.


예를 들어, ‘작은 체구연약한 몸으로 하루 두 갑 이상의 담배를 피우며’ ‘거대한 캔버스’ 

앞에서 고독한 사투를 벌이는 독신 여성이라는 식의 흥미 위주의 관심이다. 1970년대 한국에서 

이런 여성 예술가의 모습과 삶은 호기심의 대상이 되기에 충분했다.

신문 잡지 기자들 입맛에 맞는 개인적 에피소드들… 

실제로 그의 삶은 소설로 쓰여졌고, 시극(무용극)으로 공연되기도 했다.


화가이기도 한 김영태 시인은 “5피트 2인치의 작은 키, 43킬로의 체중으로 사닥다리를 타고 올라가 

5백호짜리 대작을 그리는 최욱경을 보면 화산 같은 여자라는 느낌이 든다.‘라고 말하고

시 <화산 같은 여자>에서 최욱경을 이렇게 묘사한다.


  쬐그만 여자

  얼음 같기도 하고

  불 같은

  장작 같기도 하고

  눈처럼 하늘에서

  매일 내려오는 여자

 

김영태 시인은 최욱경을 다룬 시집 <결혼식과 장례식>을 펴냈고, 최욱경의 친구였던 무용가 

박명숙 씨(경희대 무용과 교수)와 함께 같은 제목의 무용극을 만들기도 했다.


        ▲ 2011년 논란이 되었던 작품 <학동마을>, 1984, 38x45.5cm


                            ▲ <비참한 관계>, 1984, 130x162cm

 

엘리트 교육을 받은 천재화가

널리 알려진 대로, 최욱경은 천재적 기질을 타고난 데다, 최고 수준의 엘리트 교육을 받은, 당시 한국 

미술계에서 독특한 존재였다

그 연배의 작가 중에 최욱경만큼 탄탄한 학력과 경력을 쌓은 사람도 드물다.

어려서부터 미술에 재능을 보여 김기창, 박래현, 김병기, 김흥수, 장운상, 정창섭 같은 당대의 유명한 

화가들에게 교육받으며 서울예고와 서울대학교에서 미술을 공부했다

서울미대 재학 시절에는 21세의 나이로 한국미술가협회전에서 최고상을 받았고, 대한민국미술전람회

(국전)에 입선했으며 차석으로 졸업했다.


졸업 후 비로 미국으로 유학, 크랜브룩 미술 아카데미와 브루클린 미술관 미술학교

스코히간 미술학교에서 수학했다.

이처럼 화려한 이력이 말해주듯 그는 45세에 맞이한 죽음마저 천재 예술가의 안타까운 요절로 

회자하며 대규모 회고전이 열렸다.


물론 최욱경은 치열한 노력의 작가이기도 했다

여의도 작업실 이름을 무무당(無無堂)이라고 짓고, 생전 작업실에 일어나라! 좀더 너를 불태워라는 

전투적인 문구를 붙여놓고 스스로를 강철처럼 단련시켰다.


 

화가 최욱경(崔郁卿, 1940-1985)

1940년 서울에서 태어남. 어린 시절부터 그림에 재능을 보임.

열 살 때부터 부모의 적극적인 후원 하에 운보 김기창(1914~2001), 

   우향 박래현(1920~1976) 부부의 화실에서 미술지도를 받음,

1959년 서울예고 미술과 졸업

1963년 서울대학교 미술대학 서양화과 졸업.

대학 졸업 직후 도미해 크랜브룩 미술학교 서양학과 학사 학위

   1966년 브룩클린 미술관 미술학교 석사 학위 취득.

1966년 뉴욕 브룩클린 미술관 미술학교 서양화과 석사 졸업.

스코히간 미술학교 서양화과 연수, 스코히간, 메인

이후 미국에 거주하며 프랭클린 피어스 대학 조교수, 뉴햄프셔 대학 미술과 조교수 등 역임.

1972년 제8회 파리비엔날레 출품,

1974-76 애틀란타 미술대학 강사

1977-78 위스콘신 주립대학 미술대학 초빙강사

1978년 한국에 귀국해 영남대학교 회화과 부교수,

1981년 제16회 상파울루비엔날레 초대출품.

1981년부터 덕성여자대학교 서양화과 교수 등 역임.

19857월 갑작스러운 심장마비로 45세에 요절.


                                      ▲갤러리 가나 개인전 2017


<주요 개인전>

1965년 뉴욕 코넬 대학교 1971년 서울 신세계 갤러리 

1974년 캐나다 업스테어 갤러리 

1977년 뉴멕시코 로스웰미술관 

1978년 서울 미국문화원 

1981년 서울 공간화랑

1987년 국립현대미술관

1989년 호암갤러리

1996 조선일보미술관, 갤러리현대

2006 국제갤러리 

2013 가나아트센터

2016년 국제갤러리 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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