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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르셀로나 피카소 미술관
03/02/2020 02:2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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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술관 탐방>------------------------------

 

천재 피카소의 예술세계 생생히 보여주는

바르셀로나 피카소 미술관

 

파블로 피카소(Pablo Picasso, 1881~1973)

 

: 장소현 (미술평론가, 시인)

사진촬영: 김인경


                       ▲몬카다 거리에 위치한 바르셀로나 피카소 미술관 입구.

 

파블로 피카소는 살아있을 때 이미 신화(神話)가 된 예술가다.

바르셀로나 피카소 미술관은 그런 피카소의 타고난 천재성과 청년기에 형성된 예술성을 생생하게 

증명하고, 동시에 평생 끊임없이 고전을 탐구한 노력과 실험정신을 읽을 수 있는 아주 특별한 의미를 

갖는 공간이다.



                    ▲피카소가 재창조한 벨라스케즈의 걸작 <시녀들> 1957


이 미술관에는 피카소의 어린 시절 작품들을 비롯하여, 청년기 암울했던 시절부터 사랑이 찾아왔던 

장밋빛시대, 초기 입체주의에 이르기까지의 빛나는 작품들이 시기별로 전시되어 있다

뿐만 아니라, 벨라스케스의 걸작 <시녀들>을 자기 나름으로 분석하고 재해석해서 새롭게 창조한 

연작도 감상할 수 있다.


이처럼 정확한 묘사력으로 탁월한 재능을 선보인 성장기 작품들과 예술가로서 완숙기에 제작한 

<시녀들>의 연작을, 작품의 제작시기와 화법의 현저한 차이에도 불구하고, 함께 전시한 것은 

피카소의 예술세계를 이해하는데 큰 도움을 준다.


              ▲몬카다 거리에 위치한 바르셀로나 피카소 미술관 입구.   (사진: 구글 이미지)

 

피카소미술관의 역사

바르셀로나 피카소미술관은 1963년에 문을 열었는데, 이 건물은 카탈로니아(Catalonia) 고딕양식의 

아길라르 궁전(Aguilar Palace)이었다.

중세풍의 건물이 즐비하여 1947년 역사적 유산으로 지정된 몬카다(Montcada) 거리 뒷골목에 

자리 잡고 있고, 표지판조차 눈에 띄지 않는데도 워낙 유명한 곳이라서 늘 관람객 북새통을 이룬다.


미술관은 22개의 방으로 이루어진 상설전시실과 특별전시실로 꾸며져 있고, 피카소의 예술세계 

형성기에 제작된 회화, 조각, 판화 등 4,251점의 작품들이 전시되어 있다.


     ▲피카소 15살 때 작품 <첫 영성체>, 1895-96, 캔버스에 유채


유년시절 습작부터 이른바 청색시대(1901~1904)로 불리는 청년기의 암울했던 시절과 첫 번째 사랑이 

찾아왔던 장밋빛시대(1905~1906), 초기 입체주의까지 작품을 시대별로 전시해, 피카소의 예술세계와 

시대적 주요 전환점을 이해하도록 이끌어 준다.

 

천부적 신동(神童) 피카소

피카소는 타고난 천재로 어릴 적부터 그림에 뛰어난 재능을 발휘해 주위를 놀라게 했다

말을 시작하기 전에 그림을 먼저 그렸다고 할 정도로 뛰어난 그의 재능은 천부적인 것이었다.

초급학교에서는 학습능력이 뒤떨어지고, 말하기와 쓰기 성적이 좋지 않아서 졸업이 어려울 

정도였지만, 그림을 그리는 능력은 아주 뛰어났다고 한다.


16살 때 작품 <과학과 자비>, 1897, 캔버스에 유채. 마드리드 미술전에 입상, 천재성을 널리 알렸다.


열다섯 살 때인 1896년에 그린 <첫 영성체(First Communion>1897년에 그린 <과학과 자비(Science and Charity)> 같은 작품, 어머니와 아버지 초상화 등 유년시절과 청년기에 제작한 작품들을 보면

정확하고 완벽한 구도, 엄격한 고전주의의 화법 등 피카소의 탄탄한 묘사력에 감탄하지 않을 수 없다

특히 치밀한 원근법, 인물들의 시선 처리, 빛과 그림자의 표현, 사실적인 색채의 완벽한 조화 등으로 

그가 천부적으로 타고난 화가임을 인정하게 한다.

이때부터 피카소는 스페인의 모든 미술대회를 휩쓸 정도로 두각을 나타내며, 천재는 이름을 날리기 

시작한다.


피카소 자신도 이렇게 말했다.

나는 결코 어린아이다운 데생을 하지 않았다. 12살에 이미 라파엘로처럼 그림을 그렸다.


              ▲15살 때 그린 <자화상>, 1896, 캔버스에 유채


피카소의 천재성에 대해서는 많은 일화가 전해진다. 예를 들어

△…189414세에 바르셀로나 미술학교의 입학시험 과제를 단 하루 만에 완성해 모두를 놀라게 했다.

△…화가이자 미술교사였던 아버지의 지원으로 입학한 학교마저도 배울 것이 없다며 가지를 않고

옛 거장의 그림을 찾아 박물관에서 시간을 보냈다. 피카소는 줄곧 프라도 미술관에서 벨라스케스 

그림을 탐구했다.

△…피카소의 놀라운 실력과 성장을 지켜보고, 자신보다 뛰어난 화가로 성장할 것을 확신한 아버지는 

자신이 쓰던 화구를 모두 물려주고 다시는 그림을 그리지 않았다.

△…보통 아이가 세상에 태어나면 제일 먼저 울음을 터뜨리고 호흡을 시작하는데, 피카소는 울지를 

않았다고 한다. 당황한 의사가 뺨을 때려보고 꼬집어도 보았는데도 울지 않아서 급기야 시가 연기를 

아이의 얼굴에 뿜었고, 그제야 아이가 숨을 터트리며 첫 호흡을 했다고 전한다.

그날 말라가의 하늘에는 유난히 별이 밝았다고 하는 사람들도 있다고.


                                ▲14살 때 작품 <늙은 어부>, 1895

 

피카소의 천재성이 제대로 꽃피운 배경에는 아버지와 어머니가 있다.

피카소 아버지 호세 루이지 브라스코(Jose Ruiz y Blasco)는 화가였다. 한때는 말라가 미술관의 

큐레이터로 일하기도 했고, 미술학교 선생으로 근무하기도 했으나, 성공한 화가는 아니었다.


열 살 때인 1891년에 피카소는 아버지가 근무하는 학교에 진학하여, 아버지에게 본격적인 미술교육을 

받았다. 복고풍의 아카데미적 화풍을 지닌 아버지는 피카소에게 데생을 중점적으로 가르쳤다고 한다.


 

          ▲15살 때 작품 <어머니 초상>, 1896, 캔버스에 유채


피카소에게 힘이 되어준 또 한 사람은 바로 어머니다.

피카소의 어머니 마리아 피카소 로페스(Maria Picasso y Lopez)는 어린 피카소에게 늘 자신감을 

심어주었다. 피카소가 군인이 되고 싶다면 대장이 될 것이라고 응원해주고, 선원이 되고 싶다면 

최고의 뱃사람이 될 것이라고 용기를 주었다고 한다

피카소는 자신의 자신감은 어머니에게서 온 것이라고 자랑스럽게 말하곤 했다.


바르셀로나와 피카소

피카소는 바르셀로나에서 화가로서 경력을 키워나갔다. <성가족성당> 같은 가우디의 건축물

첼리스트 파블로 카잘스 등으로 유명한 바르셀로나는 피카소에게도 중요한 의미를 갖는 곳이다.

1881년 말라가에서 태어난 피카소는 14세 때 바르셀로나로 이주하여, 1904년 파리에 정착할 때까지 

이곳에서 미술을 공부하며 화가의 꿈을 키웠다.


어린 피카소가 공부했던 바르셀로나 예술학교지금은 건축회관으로 사용되고 있다건물 3면이 

  피카소의 그림으로 장식되어 있다.


피카소는 14살 때 바르셀로나의 론잔 미술학교에 장학생으로 입학하여, 두각을 나타내며 이름을 

날리기 시작했다.

15살 때인 1896년에는 바르셀로나에 첫 작업실을 열었고, 그해에 <첫 영성체>가 바르셀로나 미술산업 

전시회에 전시되었다. 이어서 1897년에 마드리드 박람회에 출품한 <과학과 자비>가 특선으로 입선한 

것을 계기로 산페르난도 왕립 미술학교에 입학했다.


그러나 학교는 거의 출석하지 않았다. 학교에서 교수들이 가르치는 내용을 별로 좋아하지 않았던 

피카소는 프라도 미술관에서 그림을 보면서 자신의 그림을 구상하였고, 당시 화풍과는 달리 카페

사창가 등을 배회하며 그곳의 생활을 그리는 데 열중했다.


               ▲카페 <4마리 고양이> 피카소가 생애 첫 개인전을 연 곳으로 유명하다.


                   ▲카페 <4마리 고양이> 간판   (사진: 구글 이미지)

 

당시 그는 바르셀로나의 선술집 <네 마리의 고양이(Els Quatre Cats)>에서 여러 근대주의자와 

무정부주의자, 보헤미안 등 예술가와 지식인들을 만나며 자신의 지적 욕구와 작품세계를 넓혀나갔다

<네 마리 고양이>는 카탈루냐 미술가와 작가들이 모임을 열던 곳으로

파리의 카페 <검은 고양이(Chat Noir)>를 본뜬 것이다.


여기에서 피카소는 카를로스 카사헤마스(Carlos Casagemas)와 나중에 피카소의 비서이자 영원한 

친구가 될 시인 사바르테스(Jaime Sabartes)를 만나게 되었다

또한 이곳에서 툴루즈 로트레크와 에드바르트 뭉크 같은 예술가들과 친분을 쌓으며, 당시 북유럽의 

새로운 그림에 대해 관심을 갖기 시작했다.


          ▲친구 <카사헤마스 초상> 1899

그리고, 생애 첫 개인전시회를 19002<네 마리 고양이>에서 열었다. 번듯한 화랑에서의 전시회는 

아니었고, 뒷골목에 있는 선술집에서 150점의 스케치를 전시한 것이었지만, 그는 그렇게 전시회를 하고 정식으로 데뷔하게 되었다.

그 전시회에 출품되었던 작품 중에 죽어가는 여인의 임종을 지키는 한 사제를 그린 어둡고 음울한 

분위기의 <임종의 순간(Last Moments)>도 전시되었는데, 이 작품이 그해 파리 국제박람회의 

스페인관에 걸리게 되었다.


                           ▲<나나(Nana) > 1901, 카드보드에 유화


이를 계기로 190010, 19세의 피카소는 동료인 카를로스 카사헤마스와 함께 바르셀로나에서 

기차를 타고 꿈에 그리던 파리의 오르세 역에 도착했다. 변방인 스페인에서 문화의 중심인 파리로 

입성을 한 것이다.

 

그리고 파리에서 독창적인 신세계를 열어나갔다.

파리에 정착한 피카소는 자신이 유년시절 인정받았던 천재성이 오히려 지극히 평범한 것임을 깨닫고

오랜 전통의 편견과 고정관념에서 벗어나기 위해 작품의 내용보다 공간과 사물을 해체하는데 집중했다.

 

재창조한 벨라스케스의 <시녀들>

바르셀로나 피카소미술관에서 무엇보다 눈여겨볼 점은 피카소가 20세 이전에 사실적으로 그려낸 

작품과 75세에 제작한 <시녀들> 연작 전체가 함께 전시된 유일한 미술관이라는 점이다.


                          ▲벨라스케스의 걸작 <시녀들> 1656


피카소는 대가들의 작품을 재해석하는 데에도 열성을 보였는데 들라크루아 <알제의 여인> 14

벨라스케스 <메닌느가의 사람들> 44, 그리고 마네의 <풀밭 위의 식사> 27점 등 과거 거장들의 

그림을 해체하고 재조립하는 과정을 통해 과거와 소통하며 자신의 작품세계를 넓혔다

그중 가장 유명한 작품이 벨라스케스의 작품을 재해석한 <시녀들> 연작이다.


                   ▲피카소가 재창조한 벨라스케스의 걸작 <시녀들> 1957


피카소의 <시녀들>(1957)은 스페인의 가장 위대한 화가로 추앙받는 17세기 벨라스케스(Velazquez, 1599~1660)<시녀들>(1656, Las Meninas)을 토대로 재해석한 작품들이다.

피카소는 1957년 자신이 존경했던 벨라스케스를 뛰어넘기 위해 <시녀들>을 큐비즘으로 재해석하기 

시작했다. 해체하고 분해하여 다양한 시점을 근거로 자유로운 형태를 재창조해나갔다.


이러한 과정을 거쳐 새롭게 재구성된 46점의 <시녀들>은 그림 속에 등장한 벨라스케스, 벽의 거울에 

비친 펠리페 4세 국왕 부부, 마르가리타 공주, 시중을 드는 두 시녀들과 난쟁이, 문 바깥 쪽 계단에 

서있는 남자, 대형견에 이르기까지 상상을 뛰어넘는 독창적인 형태와 색채를 이룬다.


파카소는 벨라스케스의 걸작 <시녀들>을 자기 나름대로 재해석하여 새로운 작품으로 재창조하기 

위해 수많은 습작을 그렸다.


       ▲벨라스케스의 걸작 <시녀들> 재창조를 위해 피카소가 그린 수많은 습작들.


이 작품을 위해 피카소는 셀 수 없을 정도의 수많은 스케치와 지속적인 실험을 통해, 자신이 어릴 적에 

습득했던 사실성과 묘사력을 넘어서서, 작품의 기법과 형식에 구속되지 않는 새로운 양식, 표현방법에 

도달했던 것이다.

피카소의 <시녀들>은 단순히 고전 작품을 모방하는 것에 그치지 않고, 파헤치고 분석하는 지속적인 

연습의 과정을 통해 탄생된 작품이다. 동시에 그의 천재적 재능 역시 노력에 의한 결과임을 말해준다.


                    ▲피카소가 재창조한 벨라스케스의 걸작 <시녀들> 1957


천재화가 피카소의 예술세계는 하나의 작품을 완성하기 위해 수백 장의 스케치를 시도하고

또 지우기를 멈추지 않았던 노력의 결과다

그것 자체만으로도 위대한 교훈이요, 새로운 길을 향한 출발점이다.



                   ▲벨라스케스의 걸작 <시녀들> 재창조를 위한 습작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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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피카소의 작품 감상>


              ▲<비둘기> 1957, 캔버스에 유화마티스의 작품과 비슷한 느낌을 준다.


               ▲<비둘기> 1957, 캔버스에 유화마티스의 작품과 비슷한 느낌이 강하다.


                                   ▲피카소의 도자기 작품들. 


                                      ▲피카소의 도자기 작품들. 


                                 ▲어린 시절 피카소의 스케치 


                                        ▲피카소 어린 시절의 스케치


                                                  스케치 <절규하는 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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